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6화 [외전] 당직 사관 오상만 중사 (2)
그럴 리가 없다.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논산 훈련소가 짐승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그래서 다수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
왜… 왜 하필 오늘?
내 당직날 왜?
“우리 교육대에서 현재 밖에 나가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냐?”
김성욱 일병이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근무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에, 그… 6중대 김기태 상병, 7중대 곽철 일병과 훈련병 셋…….”
“그중 하나는 돌아와서 여기 얼차려 받고 있잖아.”
이장군이 김성욱의 말을 막더니 빠른 속도로 보고했다.
“1시에서 2시 초소 근무자, 2시에서 3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3시에서 4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이 인원들 중 지금 복귀한 건 저희뿐입니다. 맞지?”
총 20명 중 복귀 인원 5명.
김성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거 같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그럼 한 시에 나간 놈들이 지금 네 시가 다 되도록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거잖아! 넌 그런 거 집계해서 보고 안 하고 뭐 했어!”
나는 더 참지 못하고 김성욱의 멱살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녀석에게서 나올 다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전부 털어놔라.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짜고 친 거짓말이라고. 털어놔라.
하지만 김성욱은 기대한 말 대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건 전부 진짜다.
젠장, 젠장… 왜 하필 오늘!
“그리고 소대장님, 오면서 보니 연대 창고와 병영 식당도 뚫렸습니다.”
“뭐?”
그러고 보니 연대도 전화를 받지 않았지.
“소대장님, 일단… 인원과 총기 수량 파악해서 보고받으시는 게… 보고하겠습니다.”
이장군이 뭐라뭐라 말하고 있다,
띄엄띄엄 녀석의 말이 들려왔지만, 제대로 머릿속에 와닿지 않았다.
하얗게 변해 버린 의식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지금 6중대, 7중대 당직 분대장이… 임시로라도 성욱이에게 맡기시면 어떻습니까?”
깜짝 놀라서 다급히 말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수족 같은 녀석을 보낼 수는 없지.
“얘는 대대 당직이잖아! 이장군, 네가 7중대 병장급으로…….”
잠깐.
그래…….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내가 해야 하는 건 병사들 한 놈이라도 더 이 상황을 공유해야지. 내 잘못은 없잖아.
그래. 기간병들을 전부 불러 모아서… 불러 모은 다음…….
일단 모으자. 그래, 그러자.
“기간병들과 상황 공유를 해야지. 전원 기상 시켜. 불 끈 상태로 조용히. 싹 다 내려보내.”
이장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잠깐 빤히 나를 쳐다보던 이장군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소대장님, 여기 훈련병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아서 해.”
제기랄, 제기랄…….
상황실의 TV를 보았지만, 옛날에 해 준 개그 프로그램만 재방송되고 있을 뿐이다.
별다른 속보는 없다.
그래, 아직 뉴스가 나거나 그런 거 없잖아. 이건 그렇게까지 큰 상황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마음과 달리 손은 덜덜 떨렸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마구 연락을 돌렸다.
중대장, 2소대장, 3소대장, 4소대장…….
누구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김성욱 쪽을 보니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멍때리고 있다.
부아가 치밀어 다짜고짜 외쳤다.
“이런, 이런 젠장… 다, 다시 연대본부랑 지구 병원이랑 다 걸어 봐!”
“네, 넵!”
그 와중에 이장군과 훈련병들이 알아서 몸을 추스르더니, 경례를 하고는 상황실을 나갔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당장 누구하고라도 연락을 해야 한다.
바깥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이 터진 건지 알아야 한다.
오늘 1교육대 당직 사관, 3교육대 당직 사관이 누구지?
황급히 명단을 살폈다.
3교육대 사관은 거의 교류가 없는 신임 중사다.
그리고 1교육대 사관은… 하필이면 나랑 사이가 제일 껄끄러운 이욱환 상사.
이욱환.
후배지만 나보다 진급이 빨랐다. 그래서 그동안 좀 퉁명스럽게 굴기는 했는데…….
그래, 이놈이 그래도 똑똑하지. 훈련소 내에서 평판도 꽤 좋다고 했던가?
다급히 전화를 돌렸다.
제발, 제발 받아라. 제발…….
하지만 이욱환 상사마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잠깐. 가족.
내, 내 마누라와 딸이 지금 집에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일, 만일 논산시까지 전부 사달이 났다면… 내 가족은?!
뚜루루루루―
다행히 신호가 간다.
새벽 3시 50분. 웬만한 사람들은 아직 잠에 들어 있을 시간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제길, 제기랄…….
그때, 누군가가 상황실 문을 두드리더니 문을 열었다.
6중대 김찬 병장이다. 1소대 선임 분대장, 즉 내 직속 분대장이었다.
“충성! 소대장님, 밖에 전 기간병 모였습니다.”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었다.
가족은 무사할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그래, 일단은 기간병들에게 상황 공유를 하고… 그리고…….
…일단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 * *
크아아아아!!
“야, 김성욱! 상헌이 어디 갔어? 우리 중대 당직 분대장이 없잖아!”
“그, 그게… 인솔 나가셨다가 아직…….”
“뭐?”
잔뜩 성난 박진상 병장이 김성욱 일병을 붙잡고 마구 외치는 사이, 나는 황급히 상황실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쾅!
문을 닫아 걸고 그대로 주르륵 내려앉았다.
제기랄, 제기랄!
내가,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내가 한창 이야기하던 중에 7중대 박진상 병장, 그놈이 내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총기함 열쇠를 다 가져갔고… 잠시 뒤, 짐승들이 7중대 쪽에서 나타났다.
진짜였다.
이장군, 놈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
짐승들이 교육대까지 진입해서… 훈련병들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크르르르르!
밖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7중대 곽철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 뱀, 올라가시죠. 아무래도 빨리 무장하고 내려와야 할 거 같습니다.”
후욱, 후욱…….
나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상황실에는 이제 나뿐이다.
바깥에서는 끔찍한 비명 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온다.
띠링.
문자다.
문자가 왔다. 누구에게……
― [1급 기밀]
연달아 온다.
띠링.
― [1급 기밀]
띠링.
― [1급 기밀]
“미, 미친… 이게 다 대체……!”
제대로 머리가 구르지 않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대체…….
뚜루루루! 뚜루루루!!
빌어먹을 문자 메시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화다.
나는 기적처럼 울린 핸드폰을 황급히 꺼내 들어 후들거리는 손으로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 선배, 무사하십니까? 오 선배!!]
이렇게 녀석의 목소리가 반가운 날이 올 줄이야.
1교육대 당직 사관 이욱환 상사. 그의 전화였다.
“이, 이 상사? 무사해?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정확히 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당최 뭔 일인지……. 일단 근무 투입 멈추고 문 닫아 걸긴 했는데… 병사 몇이 짐승 놈들한테 물려서 왔습니다. 게다가 근무병 태반이 돌아오질 않고 있단 말입니다.]
크아아아악!!
크르르르…….
빌어먹을. 지금 당장 문밖에서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와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1교육대는 그나마 문을 틀어막은 거 같았다.
2교육대는… 이미 틀렸다. 이미 다 뚫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오 선배! 괘,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방금 웬 짐승 소리가……!]
“이 상사, 너도 연락받았냐? 훈련소 차원에서… 그 명령을 너도 받았냐고!!”
[그게… 받긴 받았는데, 당최… 지금 당장은 부상병들 지혈하고 하느라 당최 정신이 없어서…….]
안 되겠다.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교육대 두 곳이 공격당했고… 어쩌면 연대까지 당했다.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한다.
차로, 내 차로 가야 한다.
“이, 일단 차로 직접 가 봐야겠다.”
아니다. 명령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일단 집으로 가야 한다. 집에 내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한다.
[오 선배?!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육대는 어쩌고…….]
빌어먹을, 지금 교육대가 문제냐?
하지만 녀석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일단 끊어. 또 연락할게!”
[오 선배?! 오 선배!!]
전화를 끊었다.
숨을 다듬는다.
그래, 나가자. 밖으로 탈출해서… 차를 타고 일단 여길 벗어나자. 교육대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소총을 꺼내 들고 공포탄이 삽탄된 탄알집을 챙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김성욱 일병이 무장한 상태로 등장한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붙잡았다.
“소, 소대장님!”
“저리 비켜, 이 새끼야!”
* * *
“충성! 소대장님 오셨습니까!”
김호철 병장이 8중대 당직 책상 앞에 도착한 내게 경례했다.
8중대 쪽은 그나마 안전했다. 김호철 병장이 훈련병들을 전부 깨우고는 빠르게 조치에 나서는 모양이었다. 뒤늦게 투입된 분대장들이 어느새 소총을 잡고 각 생활관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 그래, 잘하고 있네!”
“대체 무슨 상황인 겁니까? 지금 6, 7중대 전부 대체…….”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나는 김호철을 옆으로 밀치면서 황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소, 소대장님?! 소대장님!”
뒤에서 김호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다 소용없다. 그 짐승들의 붉은 눈을 똑똑히 보았다.
지금은 일단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서… 밖에 세워 둔 차로 가서…….
탕!
공포탄 소리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이장군, 이 미친놈이!
* * *
1층 6중대 당직 책상에 이장군은 없었다.
바닥에 피가 질퍽거렸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덕분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측 복도를 보니 웬 분대장 둘이서 5중대 쪽에서 한창 싸우고 있다.
덕분에 아직 이쪽으로는 짐승들이 침입하지 못했다.
아마도 싸우고 있는 둘 중 하나는 이장군일 것이다.
공포탄을 쏜 탓에 짐승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잔뜩 몰려드는 것 같았다.
한편, 3, 4소대 쪽을 보니 훈련병들이 전부 겁에 질린 채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5중대와 밀접한 1, 2소대 훈련병들을 전부 후퇴시킨 것이리라.
“뭐, 뭘 봐!”
훈련병들의 시선이 내게 모이자, 얼굴이 벌게진 나는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 지금 훈련병들은 날 보고 있는 게… 아니구나.
콩! 콩! 콩!
6중대 쪽으로 들어오는 문밖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놈이… 머리로 문을 두들기고 있다.
머리로.
분명 사람이다. 그런데 붉은 눈에… 놈이 문을 칠 때마다 피가 새겨진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다.
나는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괴물이다.
분명히 보았다.
놈들의 뒤틀린 팔과… 흉측한… 면상.
사람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대체 뭐지? 뭐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거지?
그대로 뒤로 돌았다. 세탁실 쪽으로 가야 한다. 뒷길로 내가 세워 둔 차를… 빨리…….
복도에 잔뜩 몰려 있는 훈련병들을 마구 밀치면서 길을 열었다.
“비켜! 안 비켜? 비켜!!”
“소, 소대장님!”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일단,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 * *
미친 듯이 달렸다.
제발, 제발…….
연대 순찰을 돌 때 남몰래 쓰려고 교육대 뒤쪽에 주차해 둔 차가 보인다.
그래, 그건 신의 한 수였다. 일단 차를 타고 연무문을 나가서 논산 시내로 가자. 일단 가족부터…….
제발 내 딸만은…….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오~ 젊은이의… 자랑…….”
군가?
어둑한 뒤쪽 길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육…군…훈…….”
비무장 상태의 철모를 쓴 군인.
훈련병? 누구지?
놈이 터벅터벅 걸어서 길가로 나오더니, 차로 향하는 내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가만히 내 쪽을 쳐다본다.
“너, 너 뭐야? 이 새끼야, 저리 비켜!”
소총을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그러나 놈은 가만히 나를 쳐다볼 뿐이다.
“련…소…….”
노래? 군가?
잠깐 당황한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놈이 고개를 든다.
붉은 눈.
그리고…….
크아아아악!!
나를 향해 갑자기 달려들었다.
“우, 우아아아악!!”
놈이 내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잡아채듯 양손으로 내 양 팔을 붙잡더니, 내 어깨에 입을 가져다 댔다.
뭐지?
우그적.
날카로운 통증이 한발 늦게 느껴졌다.
…물었다고?
내 어깨에 놈의 이빨이 박힌다.
“제, 젠장!!”
황급히 놈을 밀쳐 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어깨에서 피가 흐른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턱 힘이 생살을…….
이제 피투성이가 된 놈은 더 이상 군가를 부르지 않았다.
“이 개자식이!”
소총을 들고는 그대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허억, 허억…….
차에 시동을 건다.
물린 자리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병원, 의사…….
의식이 흐릿해진다.
[4 : 20]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늘 잔소리하는 내 마누라, 그리고 내 딸.
내 딸이…….
시내로, 시내로 가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나아간다.
헤드라이트가 앞을 밝힌다. 그리고 그곳에 잔뜩 모여 있던 놈들의 붉은 눈동자가 일제히 내 쪽으로 모였다.
빌어먹을.
뚫고 나간다.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
…….
그럴 리가 없다.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논산 훈련소가 짐승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그래서 다수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
왜… 왜 하필 오늘?
내 당직날 왜?
“우리 교육대에서 현재 밖에 나가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냐?”
김성욱 일병이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근무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에, 그… 6중대 김기태 상병, 7중대 곽철 일병과 훈련병 셋…….”
“그중 하나는 돌아와서 여기 얼차려 받고 있잖아.”
이장군이 김성욱의 말을 막더니 빠른 속도로 보고했다.
“1시에서 2시 초소 근무자, 2시에서 3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3시에서 4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이 인원들 중 지금 복귀한 건 저희뿐입니다. 맞지?”
총 20명 중 복귀 인원 5명.
김성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거 같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그럼 한 시에 나간 놈들이 지금 네 시가 다 되도록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거잖아! 넌 그런 거 집계해서 보고 안 하고 뭐 했어!”
나는 더 참지 못하고 김성욱의 멱살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녀석에게서 나올 다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전부 털어놔라.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짜고 친 거짓말이라고. 털어놔라.
하지만 김성욱은 기대한 말 대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건 전부 진짜다.
젠장, 젠장… 왜 하필 오늘!
“그리고 소대장님, 오면서 보니 연대 창고와 병영 식당도 뚫렸습니다.”
“뭐?”
그러고 보니 연대도 전화를 받지 않았지.
“소대장님, 일단… 인원과 총기 수량 파악해서 보고받으시는 게… 보고하겠습니다.”
이장군이 뭐라뭐라 말하고 있다,
띄엄띄엄 녀석의 말이 들려왔지만, 제대로 머릿속에 와닿지 않았다.
하얗게 변해 버린 의식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지금 6중대, 7중대 당직 분대장이… 임시로라도 성욱이에게 맡기시면 어떻습니까?”
깜짝 놀라서 다급히 말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수족 같은 녀석을 보낼 수는 없지.
“얘는 대대 당직이잖아! 이장군, 네가 7중대 병장급으로…….”
잠깐.
그래…….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내가 해야 하는 건 병사들 한 놈이라도 더 이 상황을 공유해야지. 내 잘못은 없잖아.
그래. 기간병들을 전부 불러 모아서… 불러 모은 다음…….
일단 모으자. 그래, 그러자.
“기간병들과 상황 공유를 해야지. 전원 기상 시켜. 불 끈 상태로 조용히. 싹 다 내려보내.”
이장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잠깐 빤히 나를 쳐다보던 이장군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소대장님, 여기 훈련병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아서 해.”
제기랄, 제기랄…….
상황실의 TV를 보았지만, 옛날에 해 준 개그 프로그램만 재방송되고 있을 뿐이다.
별다른 속보는 없다.
그래, 아직 뉴스가 나거나 그런 거 없잖아. 이건 그렇게까지 큰 상황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마음과 달리 손은 덜덜 떨렸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마구 연락을 돌렸다.
중대장, 2소대장, 3소대장, 4소대장…….
누구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김성욱 쪽을 보니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멍때리고 있다.
부아가 치밀어 다짜고짜 외쳤다.
“이런, 이런 젠장… 다, 다시 연대본부랑 지구 병원이랑 다 걸어 봐!”
“네, 넵!”
그 와중에 이장군과 훈련병들이 알아서 몸을 추스르더니, 경례를 하고는 상황실을 나갔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당장 누구하고라도 연락을 해야 한다.
바깥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슨 일이 터진 건지 알아야 한다.
오늘 1교육대 당직 사관, 3교육대 당직 사관이 누구지?
황급히 명단을 살폈다.
3교육대 사관은 거의 교류가 없는 신임 중사다.
그리고 1교육대 사관은… 하필이면 나랑 사이가 제일 껄끄러운 이욱환 상사.
이욱환.
후배지만 나보다 진급이 빨랐다. 그래서 그동안 좀 퉁명스럽게 굴기는 했는데…….
그래, 이놈이 그래도 똑똑하지. 훈련소 내에서 평판도 꽤 좋다고 했던가?
다급히 전화를 돌렸다.
제발, 제발 받아라. 제발…….
하지만 이욱환 상사마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잠깐. 가족.
내, 내 마누라와 딸이 지금 집에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일, 만일 논산시까지 전부 사달이 났다면… 내 가족은?!
뚜루루루루―
다행히 신호가 간다.
새벽 3시 50분. 웬만한 사람들은 아직 잠에 들어 있을 시간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제길, 제기랄…….
그때, 누군가가 상황실 문을 두드리더니 문을 열었다.
6중대 김찬 병장이다. 1소대 선임 분대장, 즉 내 직속 분대장이었다.
“충성! 소대장님, 밖에 전 기간병 모였습니다.”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었다.
가족은 무사할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그래, 일단은 기간병들에게 상황 공유를 하고… 그리고…….
…일단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 * *
크아아아아!!
“야, 김성욱! 상헌이 어디 갔어? 우리 중대 당직 분대장이 없잖아!”
“그, 그게… 인솔 나가셨다가 아직…….”
“뭐?”
잔뜩 성난 박진상 병장이 김성욱 일병을 붙잡고 마구 외치는 사이, 나는 황급히 상황실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쾅!
문을 닫아 걸고 그대로 주르륵 내려앉았다.
제기랄, 제기랄!
내가,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내가 한창 이야기하던 중에 7중대 박진상 병장, 그놈이 내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총기함 열쇠를 다 가져갔고… 잠시 뒤, 짐승들이 7중대 쪽에서 나타났다.
진짜였다.
이장군, 놈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
짐승들이 교육대까지 진입해서… 훈련병들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크르르르르!
밖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7중대 곽철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 뱀, 올라가시죠. 아무래도 빨리 무장하고 내려와야 할 거 같습니다.”
후욱, 후욱…….
나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상황실에는 이제 나뿐이다.
바깥에서는 끔찍한 비명 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온다.
띠링.
문자다.
문자가 왔다. 누구에게……
― [1급 기밀]
연달아 온다.
띠링.
― [1급 기밀]
띠링.
― [1급 기밀]
“미, 미친… 이게 다 대체……!”
제대로 머리가 구르지 않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대체…….
뚜루루루! 뚜루루루!!
빌어먹을 문자 메시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화다.
나는 기적처럼 울린 핸드폰을 황급히 꺼내 들어 후들거리는 손으로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 선배, 무사하십니까? 오 선배!!]
이렇게 녀석의 목소리가 반가운 날이 올 줄이야.
1교육대 당직 사관 이욱환 상사. 그의 전화였다.
“이, 이 상사? 무사해?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정확히 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당최 뭔 일인지……. 일단 근무 투입 멈추고 문 닫아 걸긴 했는데… 병사 몇이 짐승 놈들한테 물려서 왔습니다. 게다가 근무병 태반이 돌아오질 않고 있단 말입니다.]
크아아아악!!
크르르르…….
빌어먹을. 지금 당장 문밖에서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와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1교육대는 그나마 문을 틀어막은 거 같았다.
2교육대는… 이미 틀렸다. 이미 다 뚫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오 선배! 괘,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방금 웬 짐승 소리가……!]
“이 상사, 너도 연락받았냐? 훈련소 차원에서… 그 명령을 너도 받았냐고!!”
[그게… 받긴 받았는데, 당최… 지금 당장은 부상병들 지혈하고 하느라 당최 정신이 없어서…….]
안 되겠다.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교육대 두 곳이 공격당했고… 어쩌면 연대까지 당했다.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한다.
차로, 내 차로 가야 한다.
“이, 일단 차로 직접 가 봐야겠다.”
아니다. 명령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일단 집으로 가야 한다. 집에 내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한다.
[오 선배?!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육대는 어쩌고…….]
빌어먹을, 지금 교육대가 문제냐?
하지만 녀석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일단 끊어. 또 연락할게!”
[오 선배?! 오 선배!!]
전화를 끊었다.
숨을 다듬는다.
그래, 나가자. 밖으로 탈출해서… 차를 타고 일단 여길 벗어나자. 교육대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소총을 꺼내 들고 공포탄이 삽탄된 탄알집을 챙겼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김성욱 일병이 무장한 상태로 등장한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붙잡았다.
“소, 소대장님!”
“저리 비켜, 이 새끼야!”
* * *
“충성! 소대장님 오셨습니까!”
김호철 병장이 8중대 당직 책상 앞에 도착한 내게 경례했다.
8중대 쪽은 그나마 안전했다. 김호철 병장이 훈련병들을 전부 깨우고는 빠르게 조치에 나서는 모양이었다. 뒤늦게 투입된 분대장들이 어느새 소총을 잡고 각 생활관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 그래, 잘하고 있네!”
“대체 무슨 상황인 겁니까? 지금 6, 7중대 전부 대체…….”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나는 김호철을 옆으로 밀치면서 황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소, 소대장님?! 소대장님!”
뒤에서 김호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다 소용없다. 그 짐승들의 붉은 눈을 똑똑히 보았다.
지금은 일단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서… 밖에 세워 둔 차로 가서…….
탕!
공포탄 소리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이장군, 이 미친놈이!
* * *
1층 6중대 당직 책상에 이장군은 없었다.
바닥에 피가 질퍽거렸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덕분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측 복도를 보니 웬 분대장 둘이서 5중대 쪽에서 한창 싸우고 있다.
덕분에 아직 이쪽으로는 짐승들이 침입하지 못했다.
아마도 싸우고 있는 둘 중 하나는 이장군일 것이다.
공포탄을 쏜 탓에 짐승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잔뜩 몰려드는 것 같았다.
한편, 3, 4소대 쪽을 보니 훈련병들이 전부 겁에 질린 채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5중대와 밀접한 1, 2소대 훈련병들을 전부 후퇴시킨 것이리라.
“뭐, 뭘 봐!”
훈련병들의 시선이 내게 모이자, 얼굴이 벌게진 나는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 지금 훈련병들은 날 보고 있는 게… 아니구나.
콩! 콩! 콩!
6중대 쪽으로 들어오는 문밖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놈이… 머리로 문을 두들기고 있다.
머리로.
분명 사람이다. 그런데 붉은 눈에… 놈이 문을 칠 때마다 피가 새겨진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다.
나는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괴물이다.
분명히 보았다.
놈들의 뒤틀린 팔과… 흉측한… 면상.
사람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대체 뭐지? 뭐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거지?
그대로 뒤로 돌았다. 세탁실 쪽으로 가야 한다. 뒷길로 내가 세워 둔 차를… 빨리…….
복도에 잔뜩 몰려 있는 훈련병들을 마구 밀치면서 길을 열었다.
“비켜! 안 비켜? 비켜!!”
“소, 소대장님!”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일단,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 * *
미친 듯이 달렸다.
제발, 제발…….
연대 순찰을 돌 때 남몰래 쓰려고 교육대 뒤쪽에 주차해 둔 차가 보인다.
그래, 그건 신의 한 수였다. 일단 차를 타고 연무문을 나가서 논산 시내로 가자. 일단 가족부터…….
제발 내 딸만은…….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오~ 젊은이의… 자랑…….”
군가?
어둑한 뒤쪽 길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육…군…훈…….”
비무장 상태의 철모를 쓴 군인.
훈련병? 누구지?
놈이 터벅터벅 걸어서 길가로 나오더니, 차로 향하는 내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가만히 내 쪽을 쳐다본다.
“너, 너 뭐야? 이 새끼야, 저리 비켜!”
소총을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그러나 놈은 가만히 나를 쳐다볼 뿐이다.
“련…소…….”
노래? 군가?
잠깐 당황한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놈이 고개를 든다.
붉은 눈.
그리고…….
크아아아악!!
나를 향해 갑자기 달려들었다.
“우, 우아아아악!!”
놈이 내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잡아채듯 양손으로 내 양 팔을 붙잡더니, 내 어깨에 입을 가져다 댔다.
뭐지?
우그적.
날카로운 통증이 한발 늦게 느껴졌다.
…물었다고?
내 어깨에 놈의 이빨이 박힌다.
“제, 젠장!!”
황급히 놈을 밀쳐 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어깨에서 피가 흐른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턱 힘이 생살을…….
이제 피투성이가 된 놈은 더 이상 군가를 부르지 않았다.
“이 개자식이!”
소총을 들고는 그대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허억, 허억…….
차에 시동을 건다.
물린 자리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병원, 의사…….
의식이 흐릿해진다.
[4 : 20]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늘 잔소리하는 내 마누라, 그리고 내 딸.
내 딸이…….
시내로, 시내로 가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나아간다.
헤드라이트가 앞을 밝힌다. 그리고 그곳에 잔뜩 모여 있던 놈들의 붉은 눈동자가 일제히 내 쪽으로 모였다.
빌어먹을.
뚫고 나간다.
탈출해야 한다.
그래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