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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약자, 그리고 강자 (2)



“빌어먹을!”

김찬은 이를 갈면서 조리실 안쪽의 문을 닫아 좀비들의 내부 진입을 막았다. 그런 뒤, 일행 모두에게 손짓하며 몸을 낮추었다. 식당과 조리실 사이에 거대한 창문이 있어 여차하면 안쪽이 보인다.

좀비들은 식당 곳곳을 느릿느릿 누비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취사장 안쪽까지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

“쉿! 모두 목소리 낮추십시오.”

하지만 지금 내게 결정적인 위협은 조리실 바깥의 좀비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취사병, 이 녀석이다.

취사병은 어느새 다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돌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기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건가.

분명 부상자들의 피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사실. 녀석은 감염자다.

“대, 대체 다들 왜 그러십니까? 집단 탈영이라도 하신 겁니까?”

어찌 보면 그럴듯한 추측이다.

간밤에 병사들이 지휘관 없이 진중을 자유롭게 나돌고 있다면 그게 곧 탈영이니까.

더구나 우리의 몸은 좀비 혹은 자신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물리고 나서 무슨 조치를 취했지? 그냥 냉장고에만 들어간 거야?”

김찬이 낮은 목소리로 취사병을 다그쳤다. 김찬은 이 와중에 놈에 대한 의심 없이 희망을 가진 것 같았다.

김찬이 보기에 이 취사병은 어떤 존재일까?

좀비에게 물린 취사병이 아직까지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부상병들 역시 좀비로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김찬이라면 아예 감염된 좀비들을 되돌리려 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의식을 유지한 좀비다. 그만한 공격성과 생살을 뜯는 취향을 가진 좀비가 이성과 두뇌까지 갖춘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김찬의 뒤쪽에서 소총을 고쳐 잡았다. 여차하면… 만일 나를 공격할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취사병의 머리를 박살 낼 것이다.

“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지혈하고… 냉장고에 들어가서… 정신을 조금 잃은 채…….”

취사병이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이상한 경험을 한 건 분명해 보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냉장고!”

성격이 급한 김찬은 취사병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서둘러 부상자들에게 달려갔다.

얼굴에 자신들의 후임을 구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않고 취사병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함도 있지만, 녀석을 온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대, 대략 한 시간 이상은 된 것 같습니다. 몸에 추위가 느껴지질 않아서…….”

취사병이 머물렀다고 말하는 칸을 힐끗 보았다. 냉장고의 ‘냉동 칸’이다. 꽁꽁 언 생선들과 고기들이 아직까지 들어 있다.

그런데 한 시간 이상 그 차가운 냉동고 안에 방한 도구 없이 있었다?

웬만한 인간은 결코 멀쩡할 수 없다.

취사병의 붉은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속이는 건가, 아니면 정말…….

함께 듣고 있던 철우가 눈을 빛내며 낮게 말했다.

“박 뱀, 이 말대로라면, 어쩌면…….”

철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다. 녀석의 얼굴에 슬슬 열이 오르는 것을 보자 내심 속이 답답해졌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부상자, 전부 이쪽으로 와! 빨리!”

김찬은 어느새 부상자들을 이끌고 오는 중이었다.

감염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흥분한 것 같았다.

병영 식당에서는 매일 연대 훈련병과 분대장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많게는 2,0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의 규모가 컸으며, 차라리 창고라는 명칭이 더 알맞았다.

이 정도 크기라면 사람 몇 명을 넣기에는 적당하다.

물론 안에 보관 중인 것들은 다 빼야 했다. 김찬과 이율태가 달려들어 냉장고의 냉동 칸과 냉장 칸 전부를 비우기 시작했다.

“무슨……!”

취사병이 얼빠진 표정으로 김찬과 이율태의 행동을 쳐다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다.

그래, 일단 도박을 걸자.

그냥 둬도 어차피 부상자들은 좀비가 된다. 뭐라도 해 보는 게 낫겠지.

취사병의 표정을 확인한 나는 내 옆에 선 철우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철우야, 너도 들어가라.”

“…….”

철우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곧이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안다, 여차하면 내가 자신을 두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잠깐의 침묵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박 뱀,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철우 녀석은 이 마당에도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철우는 천천히 냉장고 쪽으로 다가가서 김찬과 함께 안을 비우기 시작했다.

한편, 취사병은 얼빠진 와중에도 우리들의 정신 나간 행동을 차마 말리지 못했다.

계속 주시하고는 있지만, 순간적으로 비친 모습, 피를 보고 입맛을 다신 그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다른 먹을 게 없습니까?”

이 와중에 식욕에 충실한 녀석은 다름 아닌 김성욱 일병이었다.

내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보자, 김성욱이 얼굴을 붉혔다.

“이런 상황일수록 식량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녀석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말을 말지.

“아, 아앗!!”

김성욱의 질문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취사병이 황급히 달려가 곳곳의 음식들을 점검했다.

생쌀은 그대로고, 국 역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밥 준비를 마친 상태여야 하지만, 간밤에 그 난리가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취사병은 부상자들이 들어간 냉장고 앞에 서더니, 식당 상황에 절망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아아!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식당도 부서졌고… 으아!! 행보관님이 아시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이 판국에 저런 순진한 걱정이라니.

역시 괜한 의심이었나? 잘못 본 게다.

“어차피 아침에 여기 와서 편히 밥 먹을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세상이 박살 났으니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행보관에게 털릴 걱정이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참으로 사소한 걱정이다. 어쩌면 그 행보관마저 좀비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나는 취사병에게 상황 설명을 포기한 채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아직 조리실 밖의 좀비들은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냉장고를 비운 김찬이 부상자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려 하고 있었다.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철우를 보며 김찬이 놀란 듯 캐물었다.

“너도 물렸어?”

“네, 김 병장님.”

“이 새끼, 이거… 그냥 숨기고 있으려 했냐?”

“…….”

엄밀히 말하면 철우는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숨긴 것이었다. 하지만 철우는 묵묵히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6중대 차지석 일병과 김희운 일병은 슬슬 열이 올라오는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김찬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둘을 부축해 냉장고 안으로 들여보냈다.

“쯧, 난 추운 거 싫은데……. 장갑이나 귀도리 같은 거 없어?”

김진이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마지막으로 냉장고에 들어갔다.

그렇게 모든 부상자들이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자, 의대 출신 이율태 일병이 눈살을 찌푸리며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거… 정말 효과가 있겠습니까? 부상당한 사람들을 그저 냉장고에 집어넣고 기다린다니…….”

“그럼 어쩌겠냐? 저기 산증인이 있잖아. 뭐라도 해 봐야지.”

김찬이 냉장고 문을 닫더니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하긴 냉정하게 말해서 일련의 조치는 지극히 비과학적이었다.

그러나 애당초 좀비의 존재 자체가 이미 비과학적인 게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상식도 통용될 여지는 없었다.

쿨럭쿨럭!

그때, 취사병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어느새 냉장고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괜찮습니까?”

줄곧 거칠게 군 김찬이 미안했는지 취사병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취사병의 눈빛. 그건 아까 본 바로 그 표정이다.

취사병의 군복 앞에 걸친 앞치마 옆으로 웬 나무 막대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김찬!! 물러서!!”

늦었다.

“크아아아!!”

“으, 으아악!!”

취사병이 갑작스레 달려들더니 앞치마 안에 숨겨 놓은 식칼로 김찬의 목덜미를 그어 버렸다.

김찬의 목에서 검붉은 피가 튀었다.

취사병은 고기 써는 식칼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더니, 비틀거리는 김찬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땅딸막한 체구의 배불뚝이 취사병. 아마 김찬이 방심한 것은 그런 겉모습 때문이었으리라. 김찬은 취사병의 힘에 밀려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김찬의 몸 위로 올라탄 취사병은 눈 깜짝할 사이 김찬의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식칼이 낸 상처에 입을 가져다 대고 살점을 뜯어냈다.

곧이어 김찬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취사장 내부를 울렸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터무니없는 잔혹함에 바로 근처에 있던 이율태와 김성욱은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쾅! 쾅!

그때, 냉장고 문이 크게 흔들렸다.

냉장고 안의 부상자 놈들 역시 지금 김찬의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자 취사병은 김찬을 공격하다 말고 어느새 챙겨 둔 쇠사슬을 냉장고에 묶기 시작했다.

“막아!!”

고함을 지르며 황급히 앞으로 나섰지만, 놈은 재빠른 동작으로 자물쇠까지 채우고는 식칼을 쥐어 들었다.

방심했다. 놈에게 시선을 떼는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놈을 빠르게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날렵하게 소총을 휘둘렀다.

그러나 취사병은 옆으로 펄쩍 뛰어 내 공격을 피하더니, 눈이 멀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김찬의 목에 식칼을 가져다 댔다.

김성욱과 이율태, 두 허수아비는 눈앞의 사태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완전히 얼어 있었다.

취사병 녀석. 다른 좀비들과 달리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순발력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을 보인다.

최악의 괴물이다.

놈이 히죽 웃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후우… 참느라 혼났잖아.”

취사병의 입에서 김찬의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취사병의 손에 머리채가 잡힌 김찬은 양손을 눈에 가져다대고 있었다.

“커, 커거거거거거걱!!”

피투성이가 된 김찬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취사병은 그런 김찬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마치 맛 좋은 고기라도 되는 것마냥 그대로 물어뜯더니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저, 저거……!”

김성욱의 바지가 흥건했다. 이 녀석, 문자 그대로 오줌을 지려 버렸다.

한편, 이율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소총을 들고 언제라도 달려들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손은 사정없이 떨렸다.

쾅! 쾅!

조리실의 문까지 거칠게 흔들린다.

김찬의 비명 소리를 들은 식당의 좀비들이 조리실로 진입하기 위해 마구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더불어 조리실 쪽 유리를 깰 기세로 달라붙은 놈도 있었다.

곧 뚫릴 게 빤했다.

“이 개자식이…….”

조리실 바깥, 식당 출구의 좀비들.

냉장고 안에 갇힌 부상자들.

폐인이 되어 몸부림치는 김찬.

패닉에 빠져 버린 이율태와 김성욱.

빌어먹을.

우리가 들어온 취사장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방법밖에 없을까?

“악의는 없어. 그냥… 배가 너무 고플 뿐이야. 너무 목이 말라서…….”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이는 취사병 녀석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쾅! 쾅!

냉장고 문과 조리실 문이 함께 굉음을 냈다.

“끄, 끄으으윽…….”

반면, 김찬의 목소리와 숨은 천천히 잦아들고 있었다.

김찬은 이미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