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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약자, 그리고 강자 (1)



탕! 탕!!

바깥에서 공포탄 소리가 들려온다.

당직 사관이 공포탄까지 쏘고 있는 모양이었다.

놈이 미련하게도 좀비들을 전부 끌어모으는 가운데, 2교육대 안쪽 5중대 당직 책상 앞은 오히려 고요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부상자는 버리고 가십니까?”

김찬이 가라앉은 말투로 나에게 묻고 있다. 녀석은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 다만, 내게 질문할 뿐이다.

더불어 나머지 생존자들의 시선도 내게 집중되었다.

김희운 일병과 차지석 일병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김찬이 자신의 후임 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김진 상병이 물린 팔을 부여잡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박 병장님…….”

김진 상병. 1소대 녀석이다. 쾌활하고 가벼워 늘 농담을 즐겼다.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곤 했다. 심지어 훈련병들에게 친구처럼 격 없이 대할 때도 있어서 내게 몇 차례 욕을 얻어먹곤 했다.

“저희는 그냥 두고 가십쇼.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장하게 말하려면 목소리나 떨지 말든가.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목소리는 녀석이 지금 본인의 말과 달리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투명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녀석이 두려워하는 게 좀비로 변하는 걸까?

어쩌면 녀석은 내가 자신을 버릴까 봐, 아니, 나아가 자신을 살해할까 봐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차를 향해 마구 달려가는 좀비들을 힐끗 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어 머리가 박살 난 차기범의 시신에 시선이 닿았다.

이제 부상자들은 곧 저놈처럼 변할 것이다. 차기범이 철우를 문 것처럼 이 녀석들도 제 옆 동료의 살점을 뜯으려 들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5중대 세탁실 쪽이다. 3교육대로 향하는 길 중 취사장 앞쪽이 당직 사관의 차로 막힌 지금, 이제 우리에게 남은 길은 5중대 쪽 뒷문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 나 역시 단지 그럴 뿐이니까. 누군가 나를 물려고 하면 내 소총으로 박살 낼 뿐이고, 누가 뒤처져도 구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모든 선택은 각자 알아서 해.”

나와 함께 갈 것인가?

부상을 당했다 한들 철우가 나를 따를 것임을 나는 안다. 녀석이 감염되었다 한들 나 역시 녀석을 당장 어찌할 생각은 없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인가?

그냥 주저앉아 죽음을 택하겠다고 한들 내가 그걸 막지는 않을 것이다.

훈련병들 대다수가 중앙 현관에서 어땠는지 기억한다. 그저 겁을 먹은 채 분대장들의 등 뒤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분대장들의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가운데, 그들은 자신의 살길을 자발적으로 찾지 못했고, 결국 허무하게 끝장났다. 그조차 그들의 선택이다.

혹은 다른 동료들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

8중대 박현철 상병은 좀비들에게 물려 자신이 감염된 것을 파악한 후, 다른 훈련병들을 위해 희생을 각오했다. 고귀하다고 누군가는 박수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 때는 ‘그럴듯한 자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역시 본인의 선택이다.

그래. 각자의 선택이다.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품평할 이유는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나는 그저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할 뿐, 누군가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5중대 세탁실로 향하는 내 뒤를 철우와 김성욱 일병이 가장 먼저 따라붙었다. 뒤이어 김찬과 6중대 일병 둘이 따라왔다.

“가, 같이 가! 진짜 버리고 가냐, 이 매정한 놈들아!”

“아, 그냥 여기서 포기하신 줄 알았습니다.”

김진 상병까지 황급히 따라붙자, 이율태 일병이 피식 웃으면서 부축했다. 다소 안도한 목소리였다.

내 뒤에 따라붙은 김찬이 조용히 말했다.

“박 병장님, 제가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김찬은 아직도 오해를 하고 있다.

…난 처음부터 다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니까.

단지 김찬 녀석은 이제 막 스스로 한 행동을 ‘정당화’시켰을 뿐이다. 녀석은 이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굳이 일깨워 주지는 않았다.



* * *



세탁실을 통과해 5중대 쪽 야외 건조장으로 나왔다. 뒤쪽은 고요했다. 좀비들도 보이지 않는다.

방금까지 울리던 공포탄 소리도 이제 더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당직 사관도 놈들에게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가자.”

내가 앞장서고, 그 옆에 철우가 섰다. 김찬은 뒤쪽 부상자들을 부축하면서 따라왔다.

해가 떠오를 시간이다.

안개는 걷혔고, 종전에 비해 앞이 잘 보였다.

얼마간 걷다가 병영 식당과 2교육대 사잇길 끝자락에 시선이 닿았다.

차는 반파되었고, 운전석 쪽 문은 이미 박살 났다. 좀비들이 아득바득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박 뱀… 볼 게 못 됩니다.”

철우가 옆에서 채근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차의 조수석 문에 고정되었다. 문이 이제 막 열리고 있었으며, 피투성이의 당직 사관이 육중한 몸으로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물론 그쪽으로도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 안다.

그러나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당직 사관의 눈길이 내게 닿았다.

그러자 놈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사, 살려 줘!! 거기!! 분대장!!”

“저 미친 새끼가……!”

내 뒤를 따라붙던 김찬이 이를 뿌득 갈면서 당직 사관을 노려보았다.

김찬과 당직 사관은 인연이 깊었다. 같은 6중대일 뿐만 아니라 같은 1소대였다. 김찬이 그의 직속 부하였다.

듣기로는 1소대장의 뒤치다꺼리를 김찬이 전담한다 했던가.

당직 사관은 지금 우리에게 손을 뻗으며 애타게 외쳐 댔다. 하지만 그런 당직 사관의 팔을 좀비들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크, 크아아아아악!! 제발!!”

뒤이어 차 밑에 버둥거리던 좀비가 소대장의 뱃살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놈을 제 손으로 못 죽이는 게 한입니다.”

김찬은 그 한마디를 내뱉은 뒤, 부상자들과 함께 병영 식당 뒷문으로 향했다.

나 역시 시선을 거두고 철우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병영 식당 뒷문 쪽 잔반 처리장에서 오물 냄새가 고약하게도 풍겨 왔다.

끼이이익.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며 병영 식당 뒷문이 열렸다.

안쪽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식당 내부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집기들이 마구 부서져 있다.

“다들 조용.”

나와 철우가 앞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좀비가 식당 안까지 침투해 들어온 걸까?

긴장 상태로 주방부터 살폈지만, 다행히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놈의 짓이든 지금 이 공간에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잠깐의 여유를 찾은 우리는 그대로 주방에서 숨을 돌렸다.

김찬과 이율태 일병은 침착하게 부상자들의 상처를 지혈했다.

5중대 이율태 일병. 의대 출신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야, 야… 아프다, 아파. 마취제 없냐?”

“마취제는 무슨. 엄살 부리지 마십쇼. 다른 애들에 비하면 상처가 그렇게 크지도 않습니다.”

김진 상병은 이 와중에도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철이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어처구니가 없어 녀석을 힐끗 쳐다보니, 히죽 웃어 보인다.

덜떨어진 녀석.

한편, 철우와 김성욱 일병은 식당 곳곳을 뒤지면서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식량은 중요하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다행히 선반에 산처럼 쌓인 생선 튀김을 발견했다. 일단 입에 욱여넣었다.

부서진 식당, 그리고 준비되어 있는 음식.

뭔가 기묘한 풍경에 위화감을 느낀 그 순간, 갑자기 냉장고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으, 으아아!! 사, 사람입니다! 사람!”

한 사람은 김성욱 일병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다가가 보니 녀석의 정체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생활복 위에 걸친 앞치마. 취사병이다.

언뜻 보니 몸집도 작은 녀석이었다.

…뭔가 낯이 익다. 연대 식당 취사병이라 그런 걸까?

취사병은 냉장고 안에 숨어 있다가 김성욱 일병에게 들킨 것 같았다.

그런데… 놈의 눈동자 색이 붉다.

“물러서.”

나는 김성욱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붉은 눈의 취사병. 의심할 여지없이 감염자다.

나는 그대로 소총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까 분명히 이 취사병의 목소리를…….

“사, 살려 주십쇼!”

…이번에는 확실히 들었다.

내 옆으로 달려온 철우와 김찬 역시 놀란 표정으로 치켜든 소총을 늘어뜨렸다.

취사병은 피로 시뻘겋게 물든 우리의 소총을 보면서 겁에 질려 떨고 있다. 평소의 거만한 태도는 간데없었다.

좀비가 저럴 리는 없지.

“당신… 뭡니까?”

“네, 네?”

“물린 거 아닙니까?”

“아, 네. 그게 멧돼지가…….”

지금껏 말하는 좀비는 보지 못했다.

취사병은 붉은 눈을 하고 있지만 지극히 이성적이고, 말도 곧잘 했다.

김찬이 그를 다그쳤다.

“멧돼지라니,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당직을 서면서 점검을 하고 있는데, 멧돼지가 들어왔습니다. 식당을 전부 헤집더니 저에게 달려들어서…….”

잘 보니 어깨가 물린 듯 수건 같은 걸로 단단히 감싸 맨 상태였다.

“멧돼지 눈동자가 무슨 색이었습니까?”

“아, 붉은색이었습니다.”

하다하다 멧돼지까지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지.

쓴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어째서 멀쩡한 겁니까?”

“아, 어깨를 물렸습니다만… 그나마 간신히 몸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그러다가 냉장고 안에 숨었는데, 바깥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서 놈이 밖으로…….”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물렸으면서 어떻게 멀쩡하냐는 뜻이야.”

김찬이 더는 참지 못하고 취사병에게 반말로 캐물었다.

김찬의 표정에 그만큼 다급함이 떠올라 있고, 모두의 시선은 취사병에게 집중되었다.

물렸어도 좀비처럼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방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 그게… 안 그래도 몸에 열이 끓으면서 죽을 거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환각도 보고…….”

감염자의 증상이 그건가?

문득 8중대에서 좀비로 변하기 직전이던 홍지우 상병이 생각났다. 홍지우 역시 분명히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너무 몸이 뜨겁고 죽을 거 같아서… 그래서 어떻게든 몸을 가눠 냉장고에 들어갔습니다. 얼마간 버티다 보니 제정신이 돌아와서 이렇게…….”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냉장고? 그러면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아니,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바로 그때였다. 병영 식당 안쪽으로 좀비 병사 몇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바깥에서 한창 시선을 끌던 차는 박살 났고, 소대장도 끝장난 것 같다.

놈들이 다음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일까?

이제는 식당도 안전하지 않다.

“어, 저, 저거… 훈련병들이 왜?”

반면, 취사병은 천천히 들어오는 좀비들을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취사병의 반응에 의구심이 더해졌다.

좀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얼굴 가죽이 절반은 벗겨져 있는 놈도 있고, 팔 한 쪽이 너덜거리는 놈도 있다. 하나같이 피투성이인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취사병은 그런 끔찍한 모습에 크게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녀석의 그런 반응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취사병이 묘한 표정으로 좀비들을 보다가 옆쪽에 상처 입은 김진 상병과 6중대 일병들 쪽을 힐끗 본 것이다.

꿀꺽.

이 자식, 방금 분명 군침을 삼켰는데?

뭘 보고?

땅바닥에는 그저 흥건한 피뿐이다.

녀석은… 피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