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8화 또 다른 전역자 (6)



조금 더 가면 병영 식당이 나오고… 좌회전해서 얼마간 가면 3교육대가 나온다.

지난주에 훈련병들을 배출하고 아직 훈련병을 받지 않은 3교육대.

이런 감염 사태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역설적으로 사람이 가장 없는 곳이다. 훈련병 없이 기간병 몇 명뿐인 3교육대라면 그나마 안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슬슬 2교육대 우측 현관을 지나친다.

“기범아! 차기범, 이 새끼야!”

2교육대 우측 현관을 지나칠 때, 철우가 갑자기 교육대 안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크르르…….

2교육대 우측 현관, 5중대 쪽 입구다.

교육대에서 가장 먼저 뚫린 곳.

피에 젖어 털이 붉게 변한 대형견들 몇 마리가 붙어서 누군가의 시신을 뜯어먹고 있었다.

5중대 당직 분대장이었던 차기범 상병. 곽철우의 동기다.

현관 근무를 서던 5중대 훈련병들 역시 좀비 개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녀석들을 위로해 줄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들이 허무하게 뚫리면서 일이 커졌다.

6중대 이장군처럼 차기범이 5중대 현관을 지켜 줬다면… 7중대에서 더 많은 훈련병들을 살릴 수 있었다.

한편, 철우는 동기의 시신을 훼손하는 개들을 보고 화가 치밀었는지 소총을 꼬나 잡고 당장에라도 달려들려 했다.

“제기랄, 이 똥개들이!”

“곽철우, 잠깐!”

“박 병장님!”

녀석이 나를 보며 외쳤다. 철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곽철우, 지금 들어가서 어쩌게?”

김찬이 좀비의 머리를 소총으로 후려갈기면서 나지막이 철우를 말렸다.

김찬의 말투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가면 답이 나오냐? 이미 다 뒈졌다. 생존자는 없다고.”

김찬의 말투는 냉랭했다.

녀석은 지금 2교육대 안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다.

중앙 현관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분대장들을 지휘하며 훈련병들을 구하려 하던 녀석이 바로 김찬이었다.

그러던 녀석이 지금은 냉정하게 철우를 말리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눈빛에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이 깃들어 있었다.

잠깐 뒤를 바라보았다.

이미 우리 셋의 뒤를 따르던 이들 상당수는 뒤처져 놈들에게 당했다. 지금껏 살아남아 우리 뒤에서 싸우는 녀석은 이제 다섯 명뿐이었다.

훈련병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8중대와 6중대 훈련병은 몰라도 5, 7중대 훈련병은 제대로 무장할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비무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교육대 당직병 김성욱, 5중대 이율태 일병, 6중대 차지석 일병과 김희운 일병, 7중대 김진 상병.

처음 수십 명이 중앙 현관을 사수하며 싸운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생존자는 고작 여덟이다.

다시 말해 나머지는 전부 당한 것이다.

김찬이 싸늘하게 식은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든 살겠다며 다 버리고 나왔다. 근데 지금 와서 다시 들어가려고?”

매우 건조한 말투지만, 그래서 더욱 스산했다.

김찬은 그 와중에도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눈앞의 좀비 둘을 더 박살 냈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김찬의 표정에는 이제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나 역시 달려드는 좀비들을 밀쳐 내며 다시 한번 철우의 이름을 불렀다.

철우가 여기서 낙오되어선 안 된다.

“곽철우.”

“빌어먹을… 빌어먹을!”

철우는 처음으로 격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더니, 그대로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돌린 뒤 다시 병영 식당 쪽으로 길을 잡았다.

“으아아아악!!”

“희, 희운아!! 안 돼!”

바로 그때,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김희운 일병이 떼로 몰려든 좀비 개들에게 물리며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그 옆에서 함께 싸우던 차지석 일병이 다급히 소총을 휘둘러 개들을 쳐내려 했지만, 곧이어 자신마저 표적이 되고 말았다.

끝이다.

나는… 그 모습까지만 보고 시선을 돌렸다.

“우와아아아악!!”

곧이어 김희운과 차지석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그 와중에 내 바로 옆에서 정면을 돌파하는 김찬의 목소리를 들었다.

“젠장, 젠장…….”

녀석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나처럼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살기가 돌고, 피와 땀이 뒤섞인 얼굴은 악귀와도 같았다.

그래. 다 버리고라도 간다.

무조건 살아남는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 * *



부릉! 부르릉!

콰쾅!!

이런 미친…….

2교육대와 병영 식당 사이의 길 안쪽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물러서!”

황급히 외치며 일행을 멈춰 세웠다.

밝은 헤드라이트, 큰 엔진 소리.

대체… 어떤 멍청이가!

부우우우웅―

텅!

터텅!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과 함께 승용차 한 대가 교육대 뒤쪽에서 나타나 좀비 몇을 치면서 전진해 나갔다.

동시에 우리를 향해 달려들던 모든 좀비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래. 그런 멍청이가 바로 우리 교육대 당직 사관이셨지.

“1소대장, 저 씹새끼. 지만 살겠다고 지금!”

김찬이 이를 갈면서 달려가는 차를 노려보았다.

붉은색의 소형차. 당직 사관의 승용차였다.

하지만 나는 김찬과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무모하게 차로 돌진하다니…….

차는 2교육대와 병영 식당 사이에서 나타나더니, 그대로 직진했다. 좀비들이 헤드라이트 빛과 엔진 소리에 반응하여 차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차는 기세 좋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좀비들의 몸이 박살 냈다.

물론 주변의 좀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연병장을 누비던 놈들까지 전부 차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덤프트럭도 아닌 승용차 따위가 인해전술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당직 사관은 그대로 직진해서 29연대 출구 쪽으로 향하려는 듯했다. 그대로 연무문을 통과해 부대를 떠날 생각인 것이다.

크아아아악!!

키아아아악!!

몇 마리의 대형견이 붉은 눈을 빛내며 차를 향해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놈들이 차의 문에 받히면서 저만치 밀려났지만, 차문이 파이면서 흔적이 남았다.

다른 좀비들이 차 앞쪽에 덕지덕지 매달렸고, 그 엄청난 압력에 차츰 보닛도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차가 좌우로 흔들리며 나아가면서 몇 놈이 저만치 날아가 땅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든 좀비들은 차의 유리를 박살 내기 위해 발광을 했다.

좀비들의 시선이 모조리 자동차에 집중된 덕분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당직 사관의 차는 굶주린 놈들의 관심을 끌었고, 당장 코앞에서 우리를 노리던 놈들마저 그쪽으로 몰려간 것이다.

“저 병신 새끼가……!”

김찬이 전복되기 직전의 상황에 놓인 당직 사관의 차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한마디 했다. 그러더니 침을 탁, 뱉고는 그대로 뒤쪽으로 돌아섰다.

“김희운! 차지석! 물렸냐? 비켜 봐!”

김찬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후임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더불어 철우는 기어코 2교육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좀비견 몇 마리의 면상을 날린 뒤, 동기의 시신을 확인하려 했다.

이제는 말릴 이유가 없었다. 당직 사관의 차로 인해 3교육대로 향하는 길 자체가 막혀 버렸으니까.

나의 시선은 계속해서 당직 사관의 차에 고정되어 있었다.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 사람이 제 살길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소 이기적일지 몰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차를 몰고 저렇게 멍청하게 등장한다고?

저렇게 허무하게 끝장난다고?

게다가 이 와중에 우리 길까지 틀어막아?!

좀비가 새까맣게 모인 가운데 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좀비들은 악착같이 달라붙었고, 차체를 마구 두들겨 댔다.

운전석에 탄 당직 사관이 필사적으로 가속기를 밟는 모양이지만, 바퀴는 어느 순간부터 헛돌고 있었다.

당장 바퀴 사이사이에 좀비들이 끼어서 몸부림 치고 있다. 상체만 움직이는 징그러운 놈들이 매달려 바퀴 고무를 마구 물어뜯었다.

좀비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차에 부딪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차에 깔려도 마구 발버둥치는 괴물들이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 가며 차를 겹겹이 둘러싼 좀비들은 빠른 속도로 차체를 부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크오오!!

식당과 교육대 사이에 애매하게 멈춰 선 당직 사관의 승용차.

이런 시기에 차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멍청한 당직 사관 때문에 이제 저 차는… 끝이다.

부르르르릉!!

앞으로 나아가려는 당직 사관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가속기를 밟으면 밟을수록 오히려 더 많은 좀비들의 주의만 끌 뿐이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오로지 본능만 남은 좀비들은 홀린 듯 당직 사관의 차로 몰려갔다.



* * *



“방심해서 그만…….”

“죄송합니다…….”

“이 멍청한 자식들, 대체 어쩌자고!!”

6중대 김희운 일병과 차지석 일병. 김찬의 후임이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건만, 끝내 부상을 입고 만 그들의 풀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상처를 확인하는 김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교육대 안쪽에서 요란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악!!

퍼억!

철우가 들어간 2교육대 현관 쪽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2교육대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어차피 3교육대와 병영 식당 사이가 틀어 막힌 이상, 5중대 세탁실을 통해 뒷길로 돌아가야 한다.

소리가 들려온 2교육대 당직 책상 쪽을 보니 철우가 누군가를 무릎으로 짓누른 채 소총을 내려찍고 있었다.

잠시 뒤, 좀비를 끝장낸 철우가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녀석의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잠깐.

녀석이 방금 무릎으로 짓눌러 죽인 그 좀비…….

“너?!”

뒤쪽에 피투성이가 되어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난 5중대 차기범 상병의 시신이 보였다.

차기범이 좀비로 변한 것이다.

방심했다. 물린 놈들이 언제 어떻게 완연한 좀비로 변하는지 아직 모른다.

크게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한 녀석이 좀비로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지금 죽은 듯 누워 있는 놈들도 언제 다시 몸을 일으켜 달려들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죄송합니다.”

철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녀석의 표정이 어둡다.

설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철우가 천천히 자신의 팔을 내 앞에 내밀었다.

제기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선명한 이빨자국이 보였다.

철우 녀석, 끝내 제 동기에게 물리고야 말았다.

“박 병장님.”

김찬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2교육대 안쪽으로 들어온 녀석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철우의 팔을 내려 녀석의 상처를 감춘 뒤, 뒤돌아 김찬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김찬을 본 순간, 철우의 부상을 굳이 감출 필요조차 없었음을 알았다.

김찬의 뒤에는 부상당한 생존자들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5중대 이율태 일병의 부축을 받고 있는 우리 중대(7중대) 김진 상병은 한쪽 팔을 깊게 물려 너덜거리고 있다.

6중대 김희운과 차지석 역시 각각 한쪽 다리와 옆구리가 뭉텅 잘려 나갔고, 좀비들에게 뜯어 먹힌 자리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겁이 많은 김성욱 일병은 의외로 멀쩡해 보였다. 어쩌면 겁이 많기 때문에 멀쩡하게 살아남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찬이 부상자들의 선두에 서서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남은 여덟 명 중 희운이와 지석이, 그리고 김진까지 셋이 물렸습니다.”

아니, 철우까지 넷이다. 절반이 감염자다.

그 와중에 3교육대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은 막혀 버렸다.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