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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또 다른 전역자 (5)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내 옆의 철우와 모든 분대장, 훈련병들이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부산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침묵에 빠졌다.

‘감염’.

혹시나 하던 생각이 현실로서 공유된다.

크아아아아악!!

크르르르!

좀비들은 그 틈에 날뛰며 주변의 생존자들을 마구 공격했다.

나의 말에 잠깐 행동을 멈춘 병사 몇 명이 허무하게 뜯어 먹혔다.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져 당한 병사들을 보면서 김찬 병장이 떨리는 말투로 외쳤다.

“박 병장님, 대체……!”

대답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 말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중앙 현관에서 간신히 버티며 싸우던 생존자들의 사기가 바닥을 쳤고, 순식간에 상당수가 당해 버렸다.

하지만 부상자를 구하겠다고 어설프게 시간을 끌다가는 어차피 전멸한다.

부상자는 버려야 한다.

나는 소총을 휘둘러 당장 내 앞을 막아선 놈들의 머리통을 부수며 김찬 쪽으로 다가갔다. 철우 역시 침묵하며 기계적으로 싸울 뿐이다. 녀석은 집요하게 내 옆을 지켰다.

내 충격적 발언에 정작 철우는 동요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7중대를 버리고 1층으로 도망치자는 내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철우는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김찬은 자신을 향해 다가가는 나를 보며 화가 난 표정으로 외쳤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부상자는 버려! 감염이야! 물리면 놈들처럼 된다!’



내가 했던 말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 말뜻은 무엇인가.

아직 살아 있는 상당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중앙 현관에서 한창 전투를 벌이는 분대장들과 나를 따라온 녀석들 상당수는 좀비에게 물렸다.

나의 말을 이해한 생존자들은 이제 그 누구도 제 옆의 병사들을 돕지 않았다. 제 한목숨 구하기 위해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살, 살려 줘!”

“우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는 부상자.

피해자들을 이제 모두 외면한다.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다. 부상자는 좀비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생존자들은 부상자를 먹이로 방치한 채 살길을 도모했다.

김찬 병장 역시 이제 더는 부상자를 구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 이게 옳다.

나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난, 살아남을 수 있는 녀석들만 챙긴다.

강자가 살고, 약자는 죽는다. 나는 살아 있는 녀석들과 함께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사실을 알린 뒤부터 김찬의 지휘를 받던 분대장들의 진형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었다.

협력 대신 도망부터 생각하고, 옆의 부상자들을 믿지 못하면서 몸동작이 둔해졌다.

결국 더 많은 병사들이 순식간에 좀비들에게 당해 버렸다.

그래.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내 탓일까?

“어차피 곧 알게 될 사실이잖아. 김찬, 네 살길부터 찾아.”

김찬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그 녀석 자신조차도 더 이상 부상자들을 챙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좀비들이 잔뜩 몰려 잘 보이지도 않는 6중대 복도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기태야! 여기는 막아 봐야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가자!”

이장군 병장.

녀석의 목소리다. 오늘 나와 함께 전역날을 맞이한 녀석.

확신이 생겼다. 공포탄을 쏜 것은 분명 이장군, 이 녀석이다.

좀비들의 시선을 끌어 5중대를 구할 생각이었을까?

지금껏 도망치지 않고 1층에서 버틴 건 훈련병들을 구해 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지금의 어려움은 녀석 탓이다.



“너는 이장군 발뒤꿈치에도 못 미쳐! 알아?”



나의 상사인 7중대장이 한 말이다.

이 와중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 인정한다. 이장군은 뛰어난 분대장이다. 이장군의 책임감에 매료된 많은 훈련병과 후임병들이 녀석을 믿고 따른다. 전역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부하를 한 명이라도 더 챙길 녀석이니까.

나는 기꺼이 8중대를 버릴 수 있고, 망설임 없이 부상자를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녀석은 그러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서 만들어진 결과를 보라.

크아아아아악!!

“젠장, 또 온다! 빌어먹을!”

“이제 못 버팁니다! 빨리 피할 길을 열어야……!”

나의 친애하는 동기 녀석이 야기한 이 참혹한 광경을 보라.

중앙 현관문을 통해 괴물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녀석의 공포탄 소리를 듣고 모든 좀비들이 모여들었다.

만찬이 준비되어 있음을 온 연대에 알린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결과, 중앙 현관에 모인 김찬과 우리는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

그런데도 지금 이 피해가 내 탓인가?

이장군과 나는 다르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나는 속으로 냉소를 보내며 외쳤다.

“김찬! 곽철우! 무조건 중앙 현관을 뚫어! 3교육대 쪽으로 간다!”

그러자 김찬이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장군 병장님은 1교육대로 간다고…….”

“그래서?”

순간, 나의 표정을 본 김찬이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이 어땠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웃는 낯은 아니겠지.

나는 얼어붙은 김찬을 무시한 채 내 옆에 선 철우에게 말했다.

“철우야, 길을 뚫자. 3교육대다.”

“네, 박 뱀.”

철우가 새빨갛게 피로 물든 소총을 가볍게 휘두르며 내 앞에 섰다. 놈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좀비들로 빼곡하던 길이 열렸다. 과연 무시무시한 괴력이었다.

이 모습을 본 생존자들은 황급히 나와 철우에게로 몰렸다.

“각자 살아남아라. 나는 3교육대로 갈 테니까.”

나의 말을 들은 부상자들이 어떻게든 우리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비열한 생존자 몇이 은근슬쩍 그들을 좀비 떼에게 밀어버렸다.

“으, 으아아아악!!”

크르르아악!!

좀비들이 달려들어 아직 검은 눈동자 부상자들의 살갗을 찢었다.

부상자들은 그렇게 산 자를 위해 미끼로 전락했다.

“야, 이 시발 새끼야!”

그 꼴을 본 김찬이 분노에 차 외쳤지만, 이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세상이 박살 난 지금의 생존법이다.

나와 철우를 선두로 하여 길을 열고 중앙 현관 밖으로 나섰다.

“빌어먹을…….”

카으아아아아악!!

크오아아아!!

밖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좀비들이 알아듣지 못할 괴성을 내지르며 사방에서 몰려들어 우리를 맞이했다.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힌 가운데, 언뜻 보이는 연병장은 좀비들로 가득했다.

붉은 눈의 야수들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 야수의 대다수는 생활복을 입은 병사들이었다. 잠자던 중에 물려서 좀비로 변해 버린 이들이 지금 2교육대로 몰려들고 있었다.

공포탄 소리에 반응했기 때문이겠지.

개떼처럼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시발.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건만, 바깥은 이 꼴이다.

그래, 세상이 확실히 박살 났구나.

이제 좀 실감이 난다.

“하, 하느님…….”

“바, 박 병장님! 어떻게 합니까?”

“으, 으아아아! 밀지 마!!”

겁먹은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 내 뒤에 달라붙은 약자들은 이 상황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만들고 있다.

고작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훈련병을 구하겠다며 싸우던 분대장들이 이제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다. 누구도 구하려 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내가 구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용감한 척하던 분대장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그래, 곽철우 상병. 이 녀석은 빼고.

“니 혼자서 되겠냐? 건방 떨지 마라.”

김찬 병장이 무뚝뚝하게 몇 마디 하더니 철우 옆에 섰다. 녀석은 여전히 나의 언행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충분히 알 수 있다. 지금 녀석은 비열하게 부상자들을 던져 버리고 저 혼자 살아남으려 하는 생존자들에 대해 혐오감까지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설 배짱이 있는 분대장이었다. 누군가의 뒤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원하는 비겁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 가자.”

나 역시 소총을 고쳐 잡고 둘 사이에 섰다.

곽철우, 나, 김찬.

셋이 정면에서 서자 뒤쪽에 움츠러 있던 분대장들도 그제야 본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지 느낀 듯했다. 살아남은 훈련병들과 함께 좌우로 둘러서 달려드는 좀비들과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병영 식당을 거쳐서 3교육대로 간다.”

“…갑니다.”

그런 후, 돌격.

“머리나 목만 노려!”

우측 병영 식당 쪽으로 길을 잡은 뒤, 오로지 앞만을 보고 전진했다.

사방에서 피가 튄다.

내 좌우에서 두 거인, 김찬과 철우는 어마어마한 근력으로 달려오는 놈들을 박살 냈다.

“우아아아악!!”

“무, 물렸어!”

“저, 저리 가! 잡지 마!”

뒤쪽에서 가끔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을 바라본다.

앞으로, 또 앞으로.

포위되어 끝장나지 않으려면 멈추거나 뒤로 돌아서서는 안 된다.

크아아아아악!!

퍽!

개머리판으로 달려오는 놈의 안면부를 부순다.

피와 함께 이빨이 우수수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어 날아갔다.

그러나 뒤로 엎어진 놈은 버둥거리면서 다시 일어나려 했다. 그대로 다시 한번 놈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크르아아!!

퍽!

이어서 내게 달려드는 다른 좀비 놈을 발로 걷어찼다.

군복 차림에 방탄모까지 쓰고 있다. 가슴팍에는 일병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근무자였을까?

그대로 다가가 방탄 아래 붉게 드러난 얼굴을 내려찍었다.

코가 뭉개지면서 소총이 깊숙이 들이박혔다.

그 와중에 녀석의 방탄을 벗겨 손에 쥐었다.

방탄모는 좀비보다 산 사람에게 더 필요하다.

옆에서 분전 중인 철우의 머리에 씌웠다.

“써!”

“괜찮습니다! 박 병장님 쓰십쇼!”

“됐어, 인마! 앞에!”

철우와 나를 향해 달려드는 놈을 소총으로 후려쳤다.

철우 역시 곧 시선을 돌려 고함을 내지르며 소총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계속된 피 냄새와 진득거리는 손의 감각.

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안개가 걷히며 드러나기 시작한 주변의 풍경으로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좀비로 가득한 이곳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꾸준히 전진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슬슬 팔힘이 빠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팔 저림을 느끼는 바람에 소총을 들어 올리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크아아악!!

급한 대로 가까이 달려드는 놈의 입을 소총으로 다급히 가로막았다.

카악! 카악!!

소총을 마구 갉아 댄다.

그런 녀석의 입은 길게 찢어져 있었다. 사람의 목을 당장 물어뜯을 수 있는 턱의 악력. 그 비정상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도 같다.

잠깐 뒤로 물러선 놈이 다시금 턱을 아래로 길게 빼고 피로 가득한 입을 벌린 채 달려들었다.

피를 뒤집어쓴 놈들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붉게 빛났다.

…한 방에 머리를 박살 낼 정도로 충분히 거리를 벌리지 못했다.

콱!

황급히 소총 소염기로 가장 앞에선 놈의 목울대를 올려 쳤다.

커거거거걱!!

놈이 비틀거리면 몇 발짝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달려든다.

그러나 그 잠깐의 틈 덕분에 거리를 확보한 내가 먼저 달려들어 이번에야말로 이마를 제대로 노려 찍었다.

뒤로 엎어진 놈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하아, 하아…….”

옆에서 곽철우와 김찬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한 놈, 두 놈, 세 놈, 네 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쓰러뜨린 놈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피와 땀이 온몸을 적신다.

팔과 다리에서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휘두르고, 또 친다. 발은 그저 앞으로만 향하고 있다.

내 뒤의 상황이 어떤지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