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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또 다른 전역자 (4)



내 목소리를 들은 철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7중대 전원!! 중앙 계단으로 탈출한다!! 전부 1층으로 튀어!”

“곽철우! 지금 무슨 소리야! 아직 구조 못 한 애들 전부 두고 튀겠다고? 게다가 너희가 그렇게 도망쳐 버리면 우리 8중대는……!”

8중대 쪽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8중대 박현철 상병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 훈련병 하나를 고꾸라뜨린 뒤, 철우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괴물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와중에도 박현철 상병의 눈은 원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철우의 선택이 아니다.

“내가 지시했다!”

“박 병장님!”

박현철이 나를 보며 대들 듯 쏘아붙였다.

아랑곳 않고 철우에게 다시금 지시를 내렸다.

“철우, 너는 가서 7중대 애들 지휘해. 구할 수 있는 놈만 구해서 1층으로 전부 내려보내.”

철우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7중대 복도로 달려갔다. 그나마 살아남은 훈련병과 분대장들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한편, 8중대 복도 쪽에서 박현철 상병은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박 병장님, 대체 지금 무슨…….”

그렇게 박현철이 내게 오기 위해 8중대 1소대 생활관 입구를 지날 때였다.

크아아아악!!

별안간 생활관 안에서 튀어나온 붉은 눈의 병사 하나가 달려오던 현철이를 덮치며 어깨를 물어뜯었다.

“끄아아!! 빌어먹을!!”

박현철은 그대로 몸을 비틀어 괴물 병사를 밀어내고, 어느새 소총에 장착한 대검으로 놈의 머리통을 찍었다.

빠각!

순간적인 힘을 버티지 못한 대검이 부러졌다. 동시에 그의 어깨를 문 짐승이 배를 드러내며 고꾸라졌다.

박현철은 피가 쏟아지는 어깨를 부여잡고 부러진 대검이 매달린 소총을 질질 끌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녀석을 쳐다보았다.

“박 병장님! 아직, 아직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도망은…….”

박현철 상병이 내 팔을 붙잡고 외쳤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박현철의 물어뜯긴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녀석은 이제 곧… 괴물로 변한다.

“박현철…….”

“조금만 더 버티면…….”

“그러면 전부 감염되겠지.”

내 마지막 말을 들은 현철이가 순간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난 낮은 목소리로 녀석에게 가혹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물리면 놈들처럼 된다.”

“그게 무슨……!”

“좀비(Zombie). 한번 물린 이상, 놈들처럼 되는 거야. 지금 사람을 물어뜯는 병사들도 전부… 그런 놈들이다.”

박현철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랑곳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투? 버티는 거? 무의미해. 당장 놈들을 쓰러뜨려도 물려 버린 우리가 곧 놈들처럼 될 테니까. 가서 호철이한테 전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고 해.”

나는 충격받은 표정의 박현철을 외면하고 7중대 복도로 향했다.

난 방금 녀석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물려 버린 박현철은 곧 놈들처럼 변해 버릴 것이다.

녀석의 선택은 무엇일까?

잠깐의 침묵 후, 박현철 상병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김호철 병장님, 이제부터 2층은 제가 막겠습니다! 훈련병들 데리고 1층으로 가십시오! 물린 분대장들은 전부 이쪽으로 모여!!”

내심 감탄했다.

박현철. 녀석은 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나름대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녀석은 지금 좀비로 변하기 직전까지 다른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도망시킬 생각이다.

고결하다고 박수라도 쳐 줘야 할까?

한편, 8중대 안쪽에서 그런 현철이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현철, 지금 무슨 말을……!”

“우현아! 뒤에!! 빌어먹을!!”

크아아아아악!!

나와 함께 상황실을 뚫은 장우현도 물린 것 같았다.

…이제 8중대에 남은 분대장은 사실상 김호철 병장뿐이다.

“김호철 병장님! 제가 어떻게든 막고 있을 테니, 빨리 모인 훈련병들과 함께 1층으로!!”

박현철의 절절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하지만 지금은 8중대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급한 것은 7중대 쪽이었으니까.

7중대 복도 쪽에서는 나의 명령을 받은 철우가 목소리를 높이며 생존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7중대 전원! 중앙 계단 쪽으로! 빨리 모여!”

철우의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도망쳐 온 7중대 분대장과 훈련병들은 고작 수십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 대부분은 이미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 뒤를 좀비들이 따라붙었지만, 철우와 몇몇 7중대 분대장들이 엄호했다.

부상자들의 경우, 생존하여 중앙 계단까지 왔다 해도 전부 ‘감염자’들이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들에 불과하다.

이들이 언제 어떻게 좀비로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모두 눈동자가 검었다.

하지만 박현철에게 한 것처럼 이들에게 감염에 대한 정보를 알리지는 않았다.

녀석은 재빨리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겁에 질려 오들거리는 대부분의 훈련병과 분대장들은 어떨까?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패닉 상태에 빠질 게 빤하다. 자칫 패닉에 빠진 극소수의 멍청한 짓으로 인해 전멸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훈련병들을 믿지 않는다.

나의 행동은 가장 효율적이고도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결국 나는 구할 수 있는 사람, 구할 가치가 있는 사람만을 구한다. 이를테면… 곽철우 상병. 그리고 물리지 않은 생존자들.

“곽철우! 이제 그만하고 와라! 1층으로 내려간다!”

철우는 입술을 깨물며 7중대 복도 안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지금 7중대 생활관에는 아직 더 많은 훈련병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곽철우! 빨리 와!”

철우는 아직까지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훈련병들을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내 관심 밖이었다. 남은 훈련병들을 구할 타이밍은 지나갔다. 이미 버린 패다.

그러나 철우는 아니었다. 녀석은 가장 훌륭한 분대장이다. 또한 필수적인 전력이었다.

“곽철우!!”

다시 한번 부른 뒤에야 철우는 시선을 거두고 곧바로 내 쪽으로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가자.”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1층으로 향했고, 철우가 내 옆에 붙어 섰다. 모여든 7중대 인원들도 열심히 우리 뒤를 따랐다.

그렇게 나와 철우가 선두에 서서 계단을 몇 칸 내려갈 때였다.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컹! 컹!

“으, 으아아아악!!”

나와 철우를 뒤따라오던 훈련병 몇 명이 좀비 개들에게 뒤를 잡혔다. 몇 놈이 8중대 쪽으로 가지 않고 우리를 쫓아 내려온 것 같았다.

특히 뒤처진 부상병들부터 차례로 당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철우가 뒤쪽의 소요를 듣고 이를 갈며 시선을 돌렸다. 여차하면 다시 돌아가 부상자들을 구하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철우를 다시금 붙잡았다. 의미 없는 행동이다.

부상자는 어차피… 좀비가 될 테니까.

“뒤돌아보지 마!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간다!”

부상자들이 미끼가 되어 좀비들에게 붙잡힌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함께 갈 수 없는 녀석들이었다.

철우는 이번에도 잠깐의 망설임을 보였지만, 곧 나의 명령에 따라 선두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철우의 나에 대한 신뢰. 그것은 내가 철우에게 보내는 신뢰만큼이나 절대적이었다.

우리는 뒤쪽의 소요를 무시한 채 무조건 아래로 내려갔다. 7중대 분대장과 훈련병들은 좀비들에게 잡히지 않으려 기를 쓰고 우리 뒤에 따라붙었다.

철우는 내 바로 옆에 서서 엄호하며 중앙 현관으로부터 기어 올라온 좀비 병사 두 마리를 개머리판으로 쳐서 날려 버렸다.

퍽!!

크아아악!!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

철우에게서 나지막한 욕설이 들려왔다.

철우의 타격에는 명백히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린다면, 죄책감을 덜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그러나 나는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 * *



1층 중앙 현관의 전경이 곧 눈에 들어왔다.

중앙 현관 역시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크와아아아악!!

컹! 컹!

“5중대, 5중대 쪽으로!”

“이쪽은 안 돼! 5중대 생활관 안에 아직도 놈들이 많아!!”

“중앙 현관으로 나가!!”

이미 시뻘겋게 물든 1층 중앙 현관 바닥에는 정체 모를 내장이 마구 흩어져 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분대장들에 의해 머리가 부서져 뇌수가 흐르는 좀비 병사들이 곳곳에 나뒹굴고 있으며, 반대로 좀비에 의해 목의 동맥이 뜯겨 나가 피를 뿜어내는 시신도 있었다.

모든 장면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잔혹했다. 물론 이때의 비현실성은 CG로 대강 만든 B급 좀비물의 그것과는 달랐다. 내장 기관의 퍼덕거림과 피를 뿜어내는 그 모습은 그 무엇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이었으니까.

때때로 지나치게 현실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환각에 취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전쟁터에서 약에 취한 듯 싸우는 군인이 그러하고, 자극을 위해 인간을 도살하는 연쇄살인마도 그런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 1층 중앙 현관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김찬 병장의 지휘 아래 5, 6중대 분대장들이 뭉쳐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이미 무언가에 도취되어 있고, 정신없이 온몸을 움직이며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박 병장님!”

한창 1층 중앙 현관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던 김찬이 나를 보더니 힘껏 외쳤다.

순간적으로 나와 7중대 병사들을 구원병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크아아아악!!

하지만 내 뒤에서 함께 나타난 좀비 개들을 본 녀석의 표정이 곧 일그러졌다.

2층 중앙에 집결해 나와 철우의 뒤를 따르던 스무 명가량의 일행은 이제 대부분이 당했다. 당장 내 바로 뒤에서 따라 내려오던 훈련병 하나가 좀비 개에 의해 어깨를 물리고 계단 위로 엎어졌다.

2층에서 우리를 쫓아온 좀비 개와 좀비 병사들이 1층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생존자들을 보더니 눈이 뒤집혀 달려 내려갔다.

그래, 우리는 구원병이 아니라 패잔병이다. 도망치면서 괴물들을 달고 온.

김찬이 2층에서 우리를 따라 달려 내려오는 좀비들을 황망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외쳤다.

“부상자들 챙겨!!”

그때까지도 5, 6중대 분대장들은 중앙 현관 입구를 사수하면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어떻게든 아득바득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명백히 한계 상황이다.

좌측 5중대 복도 쪽에서 달려드는 좀비들, 정면 중앙 현관으로 진입한 놈들, 우측 6중대 복도 쪽으로 달려들었다가 다시 돌아온 놈들, 마지막으로 뒤쪽 2층에서 달려 내려온 놈들까지.

이미 중앙 현관의 생존자들은 철저하게 포위된 형세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생존자들은 부상자들을 부축하고 있다니. 어리석은 행동이다.

목이 탄다.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이게 맞다.

목소리를 높였다.

“부상자는 버려! 감염이야! 물리면 놈들처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