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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또 다른 전역자 (2)



3층 중앙 계단 앞으로 분대장들이 빠르게 모이기 시작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늦장 부리던 분위기는 이미 간데없었다.

김찬과 곽철우는 모인 분대장들을 점검하며 인원을 파악했다. 그 와중에 다른 고참급들은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인원 파악을 끝낸 김찬 병장이 먼저 지시를 내렸다.

“5, 6중대 분대장들, 전부 따라와! 1층으로 곧바로 내려간다!”

김찬의 뒤로 스무 명가량의 분대장들이 따라붙었다.

이어서 곽철우 상병이 7, 8중대 분대장들에게 지시를 내리려는 찰나.

뚜벅뚜벅.

모두의 시선이 복도 끝을 향했다.

3층 우측 복도 끝에서 웬 병사 하나가 느릿느릿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등병 생활관 쪽이다. 어두운 와중에 녀석의 차림을 보니, 생활복이 아닌 군복 차림이었다.

철우는 그 모습을 보고 성이 나서 외쳤다.

“거기, 너! 뭐야?! 빨리 빨리 안 튀어와?”

그 순간, 놈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상함을 눈치챘다.

우측 복도 끝에는 이등병 생활관만 있는 게 아니지. 1층 5중대, 2층 7중대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철우야, 가까이 가지 마라.”

“박 병장님?”

철우가 의아해하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의 지시에 따라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부터 정체 모를 병사 놈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 이등병 누구 있지?”

“이병 한성찬!”

훈련병처럼 바짝 군기가 잡힌 녀석 하나가 손을 들고 나왔다. 잘 모르는 녀석이다. 이등병들 중 대부분은 내가 말년 휴가를 나간 사이에 들어왔다. 알 도리가 없었다.

“저거 누군지 알아보겠냐?”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생활관 사람들은 전부 나왔습니다!”

그럼 저 끝에서 오는 새끼는 대체 뭐지?

대답을 들은 철우의 표정에 의아함이 스쳤다.

나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복도 쪽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곧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입은 군복은 폐급 군복. 훈련병이다.

그때, 분대장들 중 가장 껄렁대는 양아치, 8중대 홍지우 상병이 건들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이, 너 뭐야? 분대장 맞아?”

“…….”

홍지우 상병의 말을 들었는지, 훈련병이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홍지우는 상대가 훈련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긴장을 푼 것 같았다. 여유만만하게 피식 웃더니, 소총을 어깨에 멨다.

“하~ 나, 이 새끼. 귓구멍이 막혔나? 야! 너, 몇 중대 훈련병이야?”

뭔가 이상하다.

뭐지, 이 위화감은?

“어이, 홍지우. 물러서.”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나 홍지우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겁 없이 앞으로 나섰다. 놈은 동기인 곽철우 상병에게 느낀 열등감 때문인지 지금 괜한 객기를 부리고 있다.

“물러서라고, 새끼야.”

홍지우가 고개를 슬쩍 뒤로 돌리더니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턱을 치켜든 꼴이, 노골적으로 나를 비웃는 모양새다.

“아~ 우리 진상이 형님, 겁먹으셨소? 훈련병 무서워서 분대장 하겠나, 어디. 빨리 전역…….”

“앞을 봐, 이 멍청한 새끼야!”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우가 목청을 높였다.

…이미 늦었다.

시선을 내리깐 채 가만히 서 있던 훈련병이 별안간 홍지우를 덮쳤다.

크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바닥에 엎어져 포개어진 둘을 본 모든 분대장들이 당황해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똑똑히 보았다. 홍지우를 공격한 녀석의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뭐, 뭐야 이… 컥!!”

훈련병은 마치 흡혈귀마냥 홍지우의 목덜미를 냅다 물었다. 녀석의 이빨이 들어간 자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훈련병이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홍지우의 목 살점이 뜯겨 나오며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뿜어져 복도 곳곳에 흩뿌려졌다.

“젠장……!”

그 꼴을 본 누군가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내 옆에 버티고 선 철우 역시 평소답지 않게 신음 소리를 냈다. 나 역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역겹다.

살면서 이렇게 구역질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던가.

“우, 우아아아아아악!!”

홍지우는 땅에 엎어진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한 손으로 피가 쏟아지는 자신의 목을 붙잡으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바닥을 마구 긁어 댔다.

하지만 훈련병은 홍지우를 그냥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넘어진 홍지우의 가슴팍에 올라타더니, 이번에는 얼굴을 물어뜯었다. 흡사 집요하게 사냥에 나선 짐승 같았다.

홍지우의 얼굴 살점이 길게 늘어지며 찢어진다.

인간의 네모난 이빨과 턱의 악력으로 생살을 뜯을 수 있을까?

눈앞의 광경은 명백히 비정상적이었다.

“쯧.”

더는 못 봐주겠군.

비위가 상한다.

분대장들은 충격에 빠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허수아비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훈련병은 지금 홍지우의 살점을 뜯느라 내가 본인에게 다가가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퍼억!

홍지우의 생살을 씹는 훈련병의 턱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냅다 올려 쳤다. 홍지우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가 갑자기 턱을 가격당한 놈은 단박에 뒤로 밀려나며 고꾸라졌다.

“끄, 끄으으으…….”

드디어 괴물 훈련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홍지우는 피범벅이 되어 땅바닥을 기었다. 사실 나는 홍지우 같은 양아치 녀석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내 시선은 오로지 괴물로 변해 버린 훈련병에게 고정되었다.

내게 한 방 얻어맞고 고꾸라진 훈련병은 버둥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빠른 움직임이다.

그 와중에 녀석의 폐급 군복에 박음질된 노란색 교번표를 보았다.



<1―023>



노란색이니 29연대. 1중대 23번 훈련병. 1교육대 훈련병이다.

차림이 군복인 걸 보면, 잠을 자다가 우리 교육대에 방문한 놈은 아니다. 야간 근무를 나간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

광견병?

인간이 광견병에 걸리면 마구 날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당장 7중대 쪽에서 나타난 네발 달린 그 짐승은 분명 ‘개’였다. 그 짐승도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입에 피 칠갑을 한 채 몸을 일으킨 1교육대 훈련병은 이제 나를 노려보았다. 표적이 변경된 모양이다. 하지만 나 또한 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철우야.”

“상병 곽철우.”

“일이 급하게 됐다. 눈동자 빨간 새끼들이 날뛰는 모양이야. 겉모습이 훈련병이더라도 상관없어. 눈동자가 빨간 새끼들은 전부 조져.”

철우는 어느새 정신을 다잡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네,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잠깐의 정적.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철우가 목청껏 다시 외쳤다.

“대답 안 해?! 들었지?”

“네, 넵!”

겁에 질린 일병과 이등병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이 자리에는 나를 제외하고 철우보다 계급이 높은 8중대 병장이 둘, 7중대 병장이 하나 섞여 있다.

하지만 일견 하극상처럼 보일 정도로 난폭한 철우의 말씨에 대해 병장들은 침묵하며 묵인했다. 계급이 상병에 불과하지만, 병장들도 녀석에게 함부로 덤빌 놈은 없다.

저 정도 기백은 있어야 분대장이지.

나는 철우가 분대장들을 이끌고 2층으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총을 고쳐 잡았다.

이제 내 관심은 눈앞의 훈련병으로 다시 옮아갔다.

“바, 박 병장…님… 사, 살려…….”

아, 이 녀석이 있었지.

양아치 홍지우 상병이 벌벌 떨며 피 묻은 손으로 내 다리를 붙잡았다.

이런 병신 같은 녀석과 한 큐에 묶여 분대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내 군 생활이 모욕당하는 기분이랄까.

그대로 발을 들어 녀석의 손을 치워 버렸다. 홍지우는 눈물, 콧물 짜내면서 꼴사납게 흐느꼈다. 이 순간에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생활관에 들어가 숨어 있어. 방해 말고. 일단 지혈부터 해라.”

“크, 흐으으으…….”

홍지우는 마치 벌레처럼 기어서 가장 가까운 상병 생활관 쪽으로 향했다. 홍지우가 이동할 때마다 복도 바닥에는 그의 선혈이 흔적을 남겼다.

이 순간에까지 놈은 멍청하게 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지혈이 먼저일 텐데.

하지만 더 이상 홍지우에게 조언을 할 여유는 없었다.

홍지우의 피 맛을 본 훈련병이 이제는 나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온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소총의 총구 쪽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크아아아아악!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일으킨 훈련병이 마치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그대로 힘껏 소총을 휘둘렀다.

빠각!

개머리판이 훈련병의 얼굴을 직격했고, 놈은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좌측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어 벽에 사정없이 충돌한 녀석은 볼썽사납게 땅에 엎어졌다.

이 정도면… 끝났겠지?

평범한 인간이라면 방금 전 일격을 맞고 당분간 다시 일어날 수 없다.

크… 으… 아…….

질리지도 않는군.

훈련병이 몸을 꿈틀거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녀석의 시뻘건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자식, 다시 일어날 속셈이다.

애초에 살아 있는 놈이 맞긴 한가?

광견병에 걸렸다고 해도 통증까지 느끼지 않을 리 없다.

살짝 흥미가 돋은 나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버둥거리는 놈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래, 어떻게 해야 뒈지는지 확실히 알아야겠다.

소총 개머리판이 아래를 향하도록 고쳐 잡았다.

그대로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빠각!

허리.

키야아아아아악!!

분명히 느낌이 왔다.

방금 한 방으로 녀석의 허리는 부서졌다. 그러나 이런 타격을 맞고도 녀석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하반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상반신을 마구 허우적거리며 나를 물어뜯으려 기를 썼다.

허리를 부수는 정도로는 단번에 끝낼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소총을 들어 올렸다.

놈의 눈을 보았다.

녀석의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퍼억!

목.

드디어… 녀석이 조용해졌다.

이로써 깨달았다.

목뼈가 완전히 부서질 경우, 죽는다.

머리가 박살 날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가만히 무릎을 굽히고 앉아 훈련병의 시신을 살폈다.

대체 정체가 뭘까?

괴물? 광견병?

훈련병의 몸을 살피다가 옆구리 쪽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이건 내가 만든 상처가 아니다. 동그란 구멍 몇 개. 짐승의 이빨자국이었다.

거듭 광견병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확률은 낮다. 광견병에 걸려도 사람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허리가 부러졌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발광한다고?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 2층과 1층에서는 한창 이런 괴물 놈들과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빌어먹을 녀석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상병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아으으…….”

상병 생활관 입구 바닥에는 훈련병에게 물린 홍지우가 신음 소리를 내며 대자로 누워 있었다.

지혈에 실패한 듯, 주변에는 녀석의 피가 흥건했다.

그나마 의식은 남아 있는 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다.

아직 살아 숨 쉬는 것을 본 나는 혹시 살릴 가능성이 있나 싶어 잠깐 녀석을 살폈다. 양아치에 버러지라도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겠지.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과다 출혈.

…살 수 없다.

“유감이군.”

나는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고 시선을 돌려 침상들을 살폈다. 가장 깊숙한 곳의 침상 위에 TV 리모컨이 있었다. 홍지우의 자리. 녀석은 상병들 중에서도 짬이 가장 높기 때문에 상병 생활관에서 왕처럼 행세했다.

뭐,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분쟁을 귀찮아하는 곽철우가 그런 홍지우를 모른 척 내버려 뒀기 때문이지만.

TV를 틀었다.

뭐라도 나와라…….

현재 시각.



[04:05]



가장 먼저 틀어진 채널은 영화 채널 OXN이었다. 한창 야한 영화가 방영되고 있다.

간밤에 상병 생활관 녀석들이 몰래 본 것 같았다.

그보다… 역시 긴급한 소식이라면 공중파겠지.

SBC, MBS, KBC…….

차례로 채널을 돌려 보았지만, 전부 먹통이다. 일반적으로 정규 편성 시작 시간은 5시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재난 사태가 벌어졌다면 이렇게 고요할 리 없다.

지금 상황이 훈련소 내의 특수한 상황이거나, 제대로 상황 공유가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리모컨을 내려놓은 뒤, 그대로 뒤돌아섰다.

빨리 가서 철우를 도와야 한다.

서둘러 상병 생활관 밖으로 나왔다.

잠깐!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발걸음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