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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또 다른 전역자 (1)



문득 시계를 보았다.



[06:00]



“…유감이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손에서 피가 진득거린다. 이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다.

내 발밑에서 병사들이 피를 쏟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녀석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으, 으으…….”

우리 중대 대표 겁쟁이, 김성욱 일병. 벌벌 떨던 녀석이 몸을 질질 끌면서 나로부터 물러났다.

그런 녀석에게 손을 내밀려다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 젖은 복도를 둘러보았다.

“쯧.”

혀를 찼다.

썩 유쾌한 장면은 아니군.

“바, 박진상 병장님…….”

김성욱이 나를 부른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녀석의 눈동자가 점차 붉게 변해 간다.

아, 병장… 그랬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전역날이던가?



* * *



[03:55]



병장 박진상.

자정을 넘겼으니… 오늘은 내 전역날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든 분대장들이 2층 상황실 앞에 모여서 중대별로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7중대 줄의 끝자락에 섰다.

가장 뒤에 서서 가만히 상황을 보니, 분대장들 대부분이 하품을 쩍쩍 하면서 반쯤 눈을 감고 있다.

새벽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분대장들을 깨운 건 내가 일병 때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집중호우로 인해 교육대 창고가 물에 잠겼고, 그 물을 퍼내기 위해 간밤에 깼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이장군, 그 녀석이 우리를 깨우면서 뭔가 이상한 말을 했지.



“기태랑 준혁이가 죽었어.”



분대장들은 지금 대부분 그 말을 믿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장군, 그 녀석은 결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녀석들이 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 버린 이장군. 녀석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잠시 뒤, 6중대 1소대장이 창백한 표정으로 상황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무능한 인간 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돼지였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핸드폰을 쥔 퉁퉁한 손 역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그 옆에 선 당직병 김성욱 일병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분명 무슨 일이 터지긴 했군.

“모두 모였냐?”

“예, 소대장님.”

“지금… 뭔가 긴급한 일이 벌어진 거 같다.”

‘같다’라……. 시작부터 불분명한 표현이다. 즉, 이 돼지도 지금 굴러가는 상황을 모른다.

당직 사관이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 와중에 응당 해야 할 중대별 인원 파악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 외부로 근무 나간 분대장과 훈련병들이 돌아오지 않고… 밖에 뭔가가 돌아다니고 있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일단 훈련병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각자 중대에 가서 잘 다독이고…….”

훈련병들은 지금 당황은커녕 대부분 곤히 자고 있다. 옆을 보니 7, 8중대 전부 고요했다.

당직 사관은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 되는대로 마구 지껄이고 있다. 전형적인,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는 화법이었다.

“인원 파악이랑 총기 확인을…….”

못 들어 주겠군.

밖에서 근무병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저 인간 하나만 믿어야 하는 건가?

나는 슬쩍 김성욱 일병을 쳐다보았다. 단지 당황한 수준이 아니었다. 녀석은 지금 완전히 패닉 상태다.

당직 사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았다. 놈은 지금 말하는 내내 자신의 손에 쥔 핸드폰을 슬쩍슬쩍 살피고 있었다. 뭔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이미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바로 그때, 8중대 쪽에서 군복을 입은 훈련병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녀석은 지금 소총을 들고 있다.

이전 근무자인가?

“추, 충성!”

“뭐야, 너?!”

군복의 표찰을 보았다.



<6―124>



6중대 훈련병. 그렇다면 이장군과 같이 근무를 나간 훈련병인가?

“전부 무장하셔야 합니다! 바, 밖에… 6중대 현관에서 뭔가가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뭔가’라고 했다. ‘누군가’가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

당직 사관이 그 자그마한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뜬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장군, 이장군, 그 새끼는 어디 가고, 네가 여길 올라왔어?”

이장군, 그 녀석이 직접 올라오지 않았다는 건…….

뭔지 몰라도 지금 6중대 현관 쪽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다.

나는 슬쩍 주변 분위기를 곁눈질로 살피면서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곽철우 상병을 콕콕 찔렀다.

“네, 박 뱀.”

철우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일이 터진 거 같다. 전부 무장해야 돼.”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들었다.

지금 당직 사관은 6중대 훈련병에게 그저 이장군의 이름만 연호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사관님!”

“뭐, 뭐야?”

“상병 곽철우.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거 같습니다. 저희 분대장들 총기를 좀 챙겨도 되겠습니까?”

철우가 묵직한 음성으로 나의 주장을 대신 전하자, 당직 사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병신 새끼.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우물쭈물하는 다른 분대장들을 헤치고 나가 당직병 성욱이의 목에 걸려 있는 열쇠를 집어 들었다.

“바, 박 병장님…….”

“벗어.”

내 말을 들은 성욱이가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목에 걸린 상황실 열쇠 뭉치를 넘겨주었다.

“야, 야, 박진상! 너 뭐야?”

당직 사관이 아무렇지 않게 나와서 당직병의 열쇠를 빼앗는 나를 보고는 손가락질을 해 대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멍청한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느니, 직접 내 살길을 찾는다.

당직 사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상황실로 들어갔다. 분대장 생활관의 총기 보관함 열쇠들을 모아 놓은 통이 보인다. 망설임 없이 통의 자물쇠를 열었다.

5, 6, 7, 8중대의 모든 분대장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의 일탈 행동을 지켜보았다. 전부 잠이 달아난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철컥.

열쇠 통을 열어 병장, 상병, 일병, 이등병 생활관의 총기 보관함 열쇠들을 전부 꺼내 들고 나왔다.

“박진상!”

당직 사관이 외쳤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않고 나의 행동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는 6중대 훈련병을 쳐다보았다.

“훈련병.”

“124번 훈련병, 김지철!”

“지금 6중대 현관이 어떻다고?”

“그게… 뭔가가 문을 부수려고…….”

“밖에 나간 다른 근무병은 어떻게 됐지? 이장군이랑 너희들 말고.”

“그게… 전부… 죽은 것 같습니다.”

나는 124번 훈련병과의 짧은 대화를 마친 뒤, 잠이 달아난 표정으로 나를 주목하는 분대장들을 바라보았다.

“각 생활관 대표들 나와서 열쇠 받아.”

이번에는 당직 사관도 내 말을 감히 막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좌측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7중대 쪽이다.

크아아악!

크르르르르.

곧이어 누군가의 비명 소리도 들려왔다.

“으, 으아아아악!”

빌어먹을.

짐승? 짐승들이 교육대에 침입했다고?

다른 분대장들의 시선이 전부 7중대 쪽을 향했다. 다들 넋이 나간 듯 비명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당직 사관은 이번에도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장군.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지만, 결코 허튼 판단을 내릴 놈이 아니다.

녀석이 옳았다. 그렇다면 일단 무장을 서둘러야 한다.

“받아. 거기 일병!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빨리 열쇠 받아! 3층 가서 총기 꺼내란 말이야!”

당황한 분대장들을 다그치며 열쇠를 넘겼다. 열쇠를 받은 분대장들은 곧바로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완전히 통제 능력을 잃어버린 당직 사관은 이 모든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무, 무슨……!”

크와아아아!!

그 와중에 7중대 쪽을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계단을 통해 올라온 짐승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우르르 몰려와 훈련병들이 자고 있는 생활관까지 침입하고 있었다.

불침번을 서던 훈련병들이 이쪽으로 도망쳐 왔다.

“살려 주… 으아아악!!”

그 와중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던 복도 불침번 훈련병을 웬 거대한 개 한 마리가 뒤에서 덮쳤다. 언뜻 보면 늑대처럼 보이지만, 분명 개다. 놈의 이빨은 피로 젖어 있고… 무엇보다 눈동자가 붉다.

놈은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자신이 붙잡은 훈련병의 목덜미를 그대로 물어뜯었다.

그 꼴을 본 당직 사관과 분대장들 모두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맴돌고 있었다.

뭐지? 아무리 그래도 고작 짐승한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다고?

오늘 당직 분대장은?

김상헌 병장. 그 녀석은 어디 갔지?

“으, 으아아아!”

당직 사관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꼴사납게 상황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직병인 김성욱 일병 역시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내게 뒷덜미를 붙잡혔다.

“바, 박 병장님!”

“야, 김성욱! 상헌이 어디 갔어? 우리 중대 당직 분대장이 없잖아!”

“그, 그게… 인솔 나가셨다가 아직…….”

“뭐?”

밖에 나간 근무자들은 전부 죽었다…고 했던가.

그런데도 당장 7중대 분대장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지금 7중대 쪽에는 분대장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훈련병들은 완벽히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런 개 같은 상황을 봤나.

성욱이는 그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 멍청이를 갈궈 봐야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콰앙!

그사이, 당직 사관은 상황실 문을 닫아 버렸다. 이 상황을 나서서 지휘할 마음 따위 없는 게 분명했다.

“박 뱀, 올라가시죠. 아무래도 빨리 무장하고 내려와야 할 거 같습니다.”

내 옆에서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던 부사수 철우가 나지막이 충고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일단 무장이 먼저다.

나는 우측에서 나를 지켜보며 가만히 서 있는 6중대 훈련병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이 상황을 주도하는 나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누가 자신에게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릴지 아는 놈이다. 똑똑한 녀석이었다.

“훈련병, 너는 바로 6중대 쪽으로 내려가서 이장군을 도와. 그전에 8중대 당직 분대장한테도 상황 전달하고 가라.”

“네! 충성!”

나는 8중대 쪽으로 멀어지는 훈련병을 본 뒤,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즈음, 뒤쪽에서 상황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대장님…….”

“저, 저리 비켜, 이 새끼야!”

당직 사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목소리만으로도 그의 생각을 대충 알 수 있었다.

당직 사관은 지금… 저 혼자 도망갈 생각이다.



* * *



3층은 한창 부산했다. 모든 분대장들이 생활관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다.

“철우야, 전부 중앙으로 모아서 내려가자. 인원을 분산시키는 것보다 그 편이 안전할 거 같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내 옆에 선 철우에게 그 말만을 남기고 곧바로 병장 생활관으로 향했다. 병장들은 제각기 총을 빼 들고 나오는 중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녀석은 6중대 김찬 병장이었다. 녀석의 손에는 두 정의 총이 들려 있었다.

“받으십쇼, 박 병장님.”

“그래, 고맙다.”

김찬에게 소총을 건네받은 그 순간, 철우의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가 3층을 울렸다.

“중앙으로 집합! 중앙으로 집합!! 다 함께 내려간다!”

내가 지시한 대로 분대장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별명이 흑곰인 철우는 8중대 김호철 병장과 쌍벽을 이루는 수준의 몸집을 자랑했다. 그 어떤 분대장이나 간부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철우의 목소리는 결국 나로부터 비롯된다. 이를 잘 아는 김찬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내 생각을 묻고 있었다.

“김찬, 너는 5, 6중대 애들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가. 5중대가 뚫린 거 같으니, 거길 한번 살펴보고 이장군 지원해. 철우가 남은 애들 이끌고 7, 8중대 쪽으로 갈 거다.”

“네, 알겠습니다.”

“6중대는 이장군이 지키고 있어. 쉽게 안 무너진다. 5중대가 위험하니까, 가능하면 거기 훈련병들부터 구해.”

김찬은 내 말을 곧바로 이해한 듯 추가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장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김찬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5중대, 6중대 분대장들, 전원 내 앞에 모여!! 전부 1층으로 내려갈 거다!!”

가끔 ‘분대장들의 분대장’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통제 능력을 지닌 인간이 몇 있다.

6중대 김찬 병장.

7중대 곽철우 상병.

이 둘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겠지.

소총을 단단히 쥐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내 전역날은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