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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새벽의 사투 (5)
꽤 오래전 일이지만, 입대 전 얼마 동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물량을 옮기다 보면 팔과 허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새하얗게 된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지만 일정 한계를 넘으면, 어느 순간부터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할 뿐.
그리고 지금, 나는 정확히 그런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한 대, 그리고 또 한 대.
나는 착실하게 눈앞의 놈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복도에서 붉은 눈의 괴물들은 쓰러진 동료의 사체를 밟고 우리를 향해 덮쳐 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놈들을 끊임없이 밀려드는 택배 상자 처리하듯 기계적으로 하나둘 쓰러뜨렸다.
무언가에 도취된 것처럼 각성 상태를 유지했다. 놈들의 피가 내 온몸을 덮었으며, 피로 질퍽이는 군화는 장마철 행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호철이와 8중대 일병들 역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 같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소총을 휘둘렀다.
반면, 기태는 전혀 지친 기색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많은 적들을 없애고 있었다. 괴물들은 기태를 노리지 않기에 놈들의 한가운데 들어가 춤을 추듯 주변 괴물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파각!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소총 끝에서 난 불길한 소리 때문이었다.
내 소총에 끼워진 단검의 날이 빠져 버렸다.
논산 훈련소에서 근무를 나갈 때, 그리고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사용하는 단검은 어차피 뭉툭하고 상당히 오래된 것들이다. 지금껏 버텼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 소총을 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놈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더 많은 힘이 들어가야 했고, 팔이 빠질 것만 같았다.
곧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온몸이 비명을 내지른다.
얼마나 더… 버터야 하는 걸까? 아직인가?
치열한 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천천히 밀려나고 있었다. 놈들은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고, 우리를 물어뜯기 위해 안달했다.
그때였다.
“훈련병들은 전부 야외 건조장으로 나갔습니다!! 분대장님, 어서 나오셔야 합니다!”
124번 훈련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철과 나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제는 도망칠 타이밍만 잡으면 된다.
하지만 자칫하면 놈들을 꼬리에 달고 나가서 야외 건조장의 훈련병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도망치면서 야외 건조장으로 통하는 철문을 막아야만 했다.
“먼저 가서 문 잠그십쇼!!”
갑자기 호철이에게 멱살을 잡혔던 8중대 일병 녀석이 괴력을 발휘하며 나를 뒤로 밀쳐 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이 자식들이?
옆을 보니 호철이 역시 8중대의 다른 일병들에게 뒤로 밀려나는 중이었다. 녀석도 이 와중에 황당해하는 중이었다.
“야, 야! 뭐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호철이가 힘껏 고함을 질렀지만, 그의 후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기태 상병님도 빠져나가십시오! 여기는 저희 넷이 맡겠습니다!!”
“이, 이런 미친놈들이……!!”
나와 호철이, 그리고 세탁실로 빠져나가는 모든 훈련병들의 앞에 2층에서 살아 내려온 8중대 분대장 네 명이 버티고 섰다.
김욱, 장현태, 박우명, 진태곤.
이름만 알 뿐, 나는 녀석들과 말조차 제대로 섞어 본 적이 없다.
그 정도로 짬이 낮은 녀석들이니까.
당장 나와 호철이를 밀쳐 낸 넷 모두 이미 곳곳을 물려 온몸이 피투성이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설마 이 녀석들, 지금…….
“건방진 짬찌 새끼들이… 무슨 짓이야, 이게! 누가 너희보고……!”
호철이 역시 네 명의 일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는 눈앞에 있는 8중대 일병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소문은 들었다. 같은 달에 넷이 한꺼번에 전입을 왔기에 교육대 내에서도 상당히 말이 많았으니까. 이른바 ‘8중대의 네 쌍둥이’가 바로 이들이었다.
― 넷이 한꺼번에 중대에 들어왔으니, 말도 더럽게 안 듣겠는데?
― 야, 그… 이제 막 전입한 이병 새끼들이 일은 안 하고 지들끼리 노닥거린다면서?
이등병 때부터 녀석들에 대해 좋은 말은 없었다.
그래 봐야 군대 몇 달 일찍 온 게 전부인데, 뭐 잘났다고 그렇게 평가하고 꼰대질을 해 댔을까…….
넷 모두 일병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분대장 교육대에서 갓 수료한 녀석들이었다. 이제 막 이등병을 탈출한 이들은 분대장보다는 훈련병에 더 가까웠다.
그런 놈들이 지금 모두를 살리고 본인들이 죽겠다며 길을 막아섰다.
네 명 중 가장 몸집이 큰 장현태가 우리 쪽을 돌아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는 이미 놈들에게 물렸습니다. 언제든 변해 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녀석의 시선이 기태에게로 향했다. 기태는 아직까지 맨 앞, 놈들의 한가운데에서 신들린 전투를 보여 주고 있었다. 기태의 붉은 눈은 그런 움직임과 맞물려 야차(夜叉)를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 물리고도 이성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살아서 다시 뵙겠습니다.”
“너희들……!”
호철이가 입술을 깨물면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기태의 시선이 잠깐 사이에 네 명의 분대장을 훑었다. 기태는 소총으로 바로 옆 괴물 훈련병 한 놈의 머리를 부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남겠습니다.”
“기태야!”
깜짝 놀라 외쳤지만, 기태는 지금 8중대의 일병들과 달리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차피 괴물들은 기태를 노리지 않는다. 지금 행동을 멈춘 기태의 옆으로 괴물 훈련병들은 마치 없는 사람인 양 그대로 지나치고 있었다.
“얘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뒤는 저희 다섯이 막을 테니, 두 분은 먼저 가십쇼.”
기태의 표정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호철이의 팔을 붙잡았다. 녀석은 여전히 패닉에 빠진 듯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호철아, 가야 돼! 야외 건조장에 훈련병들만 남아 있다고, 지금!”
“…제 후임들이 전부 여기 있는데… 제가 어딜, 어딜 갑니까?!”
“기태가 책임질 거다! 살아남는다면… 기태처럼 돌아올 거라고! 그러니 일단 훈련병들부터 살피자! 당장 급한 게 어느 쪽인지 똑바로 생각해!”
“…….”
호철이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깨문 녀석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부 반드시 살아서 다시 보자. 반드시 쫓아 나와라.”
“…감사합니다.”
“꼭 살아남겠습니다!”
“부디 무사하십쇼!”
“가자!”
네 명의 8중대 일병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기태의 전투에 합류해 밀려오는 괴물들을 상대했다. 세탁실 쪽을 보니, 124번 훈련병까지 모든 훈련병들이 이미 빠져나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호철이가 돌아선 채 조용히 말했다.
좀비들의 끔찍한 고함 소리가 울리는 와중에도 호철이의 목소리는 굵직하게 울렸다.
“미안했다. 전부 너희의 탓이 아니었어. 우현이와 현철이도, 그전에 모든 것도.”
8중대 일병들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뭐라 대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철이는 그 말이 끝난 뒤,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세탁실 방향으로 달렸다. 나 역시 호철이와 함께 세탁실 문으로 내달렸다.
그 와중에 군데군데 떨어진 핏자국이 눈에 띄었다.
놈들에게 물린 훈련병들의 흔적이었다.
* * *
철컹!
끼익―
세탁실 구석의 야외 건조장으로 통하는 철문을 열면서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겨누는 총구와 날카로운 야삽 끝이 보인다. 곧 우리의 얼굴 방향으로 랜턴 불빛이 비쳤다.
나와 호철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으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확인한 훈련병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분대장님이다!”
“붉은 눈 아니지?”
“김호철 분대장님!”
“아, 이장군 분대장님!”
야외 건조장 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훈련병들이 안도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몰려왔다. 124, 125, 126번 훈련병을 필두로 8중대 훈련병들이 다수 서 있었다. 저마다 지친 표정이며, 동시에 겁을 먹고 있는 듯했다.
세탁실로 넘어오는 길을 기태와 8중대 일병들이 막고 있지만, 괴물들이 철문을 뚫고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 따위는 없었다.
밖에는 괴물 놈들이 곳곳을 누비고 있다.
야외 건조장에 일시적으로 모였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김찬에게 말한 대로 일단은 1교육대로, 그리고 만일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다면 본부로 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몸을 숨기고 대응할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다들 야외 건조장에 모여 있냐?”
“124번 훈련병, 김지철! 네, 그렇습니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124번 훈련병이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눈을 치켜뜨자 바로 옆에 있던 126번 훈련병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물린 훈련병들의 몸 상태에 이상이 있습니다.”
“어디야?”
“전부 야외 건조장에 눕혀 놓았습니다.”
젠장, 올 게 왔구나.
나는 황급히 야외 건조장 쪽을 바라보았다.
본래 이 시기의 야외 건조장은 늘 빽빽하다. 2교육대 훈련병들은 이번 주 가족과의 면회 후, 곧 자대 배치 예정이었다. 훈련병들은 훈련소를 떠나기 직전 주에 다음 기수를 위해 자신들이 쓰던 모든 물건들을 정비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시기의 야외 건조장에는 세탁을 마친 훈련소용 폐급 전투복들이 가득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투복들이 지금은 전부 건조장 바닥에 깔려 있고, 그렇게 급조된 병동에 훈련병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멀쩡한 훈련병들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다들 물러서!”
호철이가 우렁차게 외치더니, 누워서 신음하는 훈련병들로부터 멀쩡한 녀석들을 떨어지도록 했다. 그러더니 자신을 비춘 랜턴을 훈련병으로부터 빼앗아 들고, 곧바로 누워 있는 훈련병들 쪽으로 달려갔다.
나 역시 호철이의 뒤를 따랐다.
“으, 으으으으…….”
“아아…….”
수십의 훈련병들이 건조장 바닥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8중대 훈련병이지만, 6중대 쪽 입구가 뚫린 직후에 물린 6중대 훈련병들도 몇 있었다.
호철이 랜턴을 켜고 그들 중 하나를 자세히 살폈다.
나는 그 와중에 호철이 옆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훈련병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그러나 순간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말았다.
뜨겁다. 비록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냥 단순한 감기 수준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고열이었다.
“이장군 병장님, 이거…….”
호철이가 옆에서 조용히 나를 불렀다. 랜턴은 훈련병의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훈련병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다.
“빌어먹을…….”
“전부 감염되었다고밖에…….”
호철이가 다른 훈련병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감염’.
박진상도 그렇게 표현했지.
그래. 지금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를 습격한 괴물 훈련병들은 전부 어딘가 물린 녀석들이 변한 것이었다.
눈과 입에 놈들의 피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물리면 교육대로 돌아가지 말라는 기태의 말이 생각났다. 기태는 분명 공격당한 정황까지 말했다. 8중대 이준혁 상병이 물린 뒤, 어느 순간 변해서 자신을 공격했다고 했던가.
기태의 말대로라면,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훈련병들은 잠재적인 감염자들이다.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태는 어떻게 이성을 유지한 것일까?
훈련병들은 이 와중에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는 중이었다. 하긴, 그 녀석들도 전부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알 것이다. 오늘 훈련소를 덮친 괴물이 본인들과 같은 병사들이었다는 사실을.
“분대장님.”
125번 훈련병이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또다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혹시… 그러니까… 오늘 공격해 온 것들… 좀비 아닙니까?”
좀비(Zombie).
마구 날뛰며 사람을 물어뜯는 저 괴물들을 그 외에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야외 건조장에서 눈동자가 시뻘겋게 변해 끙끙 앓고 있는 훈련병들. 이들 역시 곧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125번 훈련병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였다.
누워 있던 훈련병들 중 하나가 갑자기 몽롱한 말투로 외치기 시작했다.
“복무신조… 우리의 결의…….”
나와 호철, 그리고 모든 훈련병들의 시선이 중얼거리는 훈련병에게로 집중되었다.
녀석이 상체를 일으킨 채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입대 전 얼마 동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물량을 옮기다 보면 팔과 허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새하얗게 된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지만 일정 한계를 넘으면, 어느 순간부터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할 뿐.
그리고 지금, 나는 정확히 그런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한 대, 그리고 또 한 대.
나는 착실하게 눈앞의 놈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복도에서 붉은 눈의 괴물들은 쓰러진 동료의 사체를 밟고 우리를 향해 덮쳐 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놈들을 끊임없이 밀려드는 택배 상자 처리하듯 기계적으로 하나둘 쓰러뜨렸다.
무언가에 도취된 것처럼 각성 상태를 유지했다. 놈들의 피가 내 온몸을 덮었으며, 피로 질퍽이는 군화는 장마철 행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호철이와 8중대 일병들 역시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 같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소총을 휘둘렀다.
반면, 기태는 전혀 지친 기색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많은 적들을 없애고 있었다. 괴물들은 기태를 노리지 않기에 놈들의 한가운데 들어가 춤을 추듯 주변 괴물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파각!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소총 끝에서 난 불길한 소리 때문이었다.
내 소총에 끼워진 단검의 날이 빠져 버렸다.
논산 훈련소에서 근무를 나갈 때, 그리고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사용하는 단검은 어차피 뭉툭하고 상당히 오래된 것들이다. 지금껏 버텼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 소총을 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놈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더 많은 힘이 들어가야 했고, 팔이 빠질 것만 같았다.
곧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온몸이 비명을 내지른다.
얼마나 더… 버터야 하는 걸까? 아직인가?
치열한 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천천히 밀려나고 있었다. 놈들은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고, 우리를 물어뜯기 위해 안달했다.
그때였다.
“훈련병들은 전부 야외 건조장으로 나갔습니다!! 분대장님, 어서 나오셔야 합니다!”
124번 훈련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철과 나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제는 도망칠 타이밍만 잡으면 된다.
하지만 자칫하면 놈들을 꼬리에 달고 나가서 야외 건조장의 훈련병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도망치면서 야외 건조장으로 통하는 철문을 막아야만 했다.
“먼저 가서 문 잠그십쇼!!”
갑자기 호철이에게 멱살을 잡혔던 8중대 일병 녀석이 괴력을 발휘하며 나를 뒤로 밀쳐 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이 자식들이?
옆을 보니 호철이 역시 8중대의 다른 일병들에게 뒤로 밀려나는 중이었다. 녀석도 이 와중에 황당해하는 중이었다.
“야, 야! 뭐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호철이가 힘껏 고함을 질렀지만, 그의 후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기태 상병님도 빠져나가십시오! 여기는 저희 넷이 맡겠습니다!!”
“이, 이런 미친놈들이……!!”
나와 호철이, 그리고 세탁실로 빠져나가는 모든 훈련병들의 앞에 2층에서 살아 내려온 8중대 분대장 네 명이 버티고 섰다.
김욱, 장현태, 박우명, 진태곤.
이름만 알 뿐, 나는 녀석들과 말조차 제대로 섞어 본 적이 없다.
그 정도로 짬이 낮은 녀석들이니까.
당장 나와 호철이를 밀쳐 낸 넷 모두 이미 곳곳을 물려 온몸이 피투성이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설마 이 녀석들, 지금…….
“건방진 짬찌 새끼들이… 무슨 짓이야, 이게! 누가 너희보고……!”
호철이 역시 네 명의 일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는 눈앞에 있는 8중대 일병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소문은 들었다. 같은 달에 넷이 한꺼번에 전입을 왔기에 교육대 내에서도 상당히 말이 많았으니까. 이른바 ‘8중대의 네 쌍둥이’가 바로 이들이었다.
― 넷이 한꺼번에 중대에 들어왔으니, 말도 더럽게 안 듣겠는데?
― 야, 그… 이제 막 전입한 이병 새끼들이 일은 안 하고 지들끼리 노닥거린다면서?
이등병 때부터 녀석들에 대해 좋은 말은 없었다.
그래 봐야 군대 몇 달 일찍 온 게 전부인데, 뭐 잘났다고 그렇게 평가하고 꼰대질을 해 댔을까…….
넷 모두 일병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분대장 교육대에서 갓 수료한 녀석들이었다. 이제 막 이등병을 탈출한 이들은 분대장보다는 훈련병에 더 가까웠다.
그런 놈들이 지금 모두를 살리고 본인들이 죽겠다며 길을 막아섰다.
네 명 중 가장 몸집이 큰 장현태가 우리 쪽을 돌아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는 이미 놈들에게 물렸습니다. 언제든 변해 버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녀석의 시선이 기태에게로 향했다. 기태는 아직까지 맨 앞, 놈들의 한가운데에서 신들린 전투를 보여 주고 있었다. 기태의 붉은 눈은 그런 움직임과 맞물려 야차(夜叉)를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 물리고도 이성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살아서 다시 뵙겠습니다.”
“너희들……!”
호철이가 입술을 깨물면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기태의 시선이 잠깐 사이에 네 명의 분대장을 훑었다. 기태는 소총으로 바로 옆 괴물 훈련병 한 놈의 머리를 부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남겠습니다.”
“기태야!”
깜짝 놀라 외쳤지만, 기태는 지금 8중대의 일병들과 달리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차피 괴물들은 기태를 노리지 않는다. 지금 행동을 멈춘 기태의 옆으로 괴물 훈련병들은 마치 없는 사람인 양 그대로 지나치고 있었다.
“얘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뒤는 저희 다섯이 막을 테니, 두 분은 먼저 가십쇼.”
기태의 표정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호철이의 팔을 붙잡았다. 녀석은 여전히 패닉에 빠진 듯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호철아, 가야 돼! 야외 건조장에 훈련병들만 남아 있다고, 지금!”
“…제 후임들이 전부 여기 있는데… 제가 어딜, 어딜 갑니까?!”
“기태가 책임질 거다! 살아남는다면… 기태처럼 돌아올 거라고! 그러니 일단 훈련병들부터 살피자! 당장 급한 게 어느 쪽인지 똑바로 생각해!”
“…….”
호철이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깨문 녀석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부 반드시 살아서 다시 보자. 반드시 쫓아 나와라.”
“…감사합니다.”
“꼭 살아남겠습니다!”
“부디 무사하십쇼!”
“가자!”
네 명의 8중대 일병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기태의 전투에 합류해 밀려오는 괴물들을 상대했다. 세탁실 쪽을 보니, 124번 훈련병까지 모든 훈련병들이 이미 빠져나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호철이가 돌아선 채 조용히 말했다.
좀비들의 끔찍한 고함 소리가 울리는 와중에도 호철이의 목소리는 굵직하게 울렸다.
“미안했다. 전부 너희의 탓이 아니었어. 우현이와 현철이도, 그전에 모든 것도.”
8중대 일병들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뭐라 대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철이는 그 말이 끝난 뒤,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세탁실 방향으로 달렸다. 나 역시 호철이와 함께 세탁실 문으로 내달렸다.
그 와중에 군데군데 떨어진 핏자국이 눈에 띄었다.
놈들에게 물린 훈련병들의 흔적이었다.
* * *
철컹!
끼익―
세탁실 구석의 야외 건조장으로 통하는 철문을 열면서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겨누는 총구와 날카로운 야삽 끝이 보인다. 곧 우리의 얼굴 방향으로 랜턴 불빛이 비쳤다.
나와 호철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으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확인한 훈련병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분대장님이다!”
“붉은 눈 아니지?”
“김호철 분대장님!”
“아, 이장군 분대장님!”
야외 건조장 문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훈련병들이 안도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몰려왔다. 124, 125, 126번 훈련병을 필두로 8중대 훈련병들이 다수 서 있었다. 저마다 지친 표정이며, 동시에 겁을 먹고 있는 듯했다.
세탁실로 넘어오는 길을 기태와 8중대 일병들이 막고 있지만, 괴물들이 철문을 뚫고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 따위는 없었다.
밖에는 괴물 놈들이 곳곳을 누비고 있다.
야외 건조장에 일시적으로 모였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김찬에게 말한 대로 일단은 1교육대로, 그리고 만일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다면 본부로 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몸을 숨기고 대응할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다들 야외 건조장에 모여 있냐?”
“124번 훈련병, 김지철! 네, 그렇습니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124번 훈련병이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눈을 치켜뜨자 바로 옆에 있던 126번 훈련병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물린 훈련병들의 몸 상태에 이상이 있습니다.”
“어디야?”
“전부 야외 건조장에 눕혀 놓았습니다.”
젠장, 올 게 왔구나.
나는 황급히 야외 건조장 쪽을 바라보았다.
본래 이 시기의 야외 건조장은 늘 빽빽하다. 2교육대 훈련병들은 이번 주 가족과의 면회 후, 곧 자대 배치 예정이었다. 훈련병들은 훈련소를 떠나기 직전 주에 다음 기수를 위해 자신들이 쓰던 모든 물건들을 정비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시기의 야외 건조장에는 세탁을 마친 훈련소용 폐급 전투복들이 가득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투복들이 지금은 전부 건조장 바닥에 깔려 있고, 그렇게 급조된 병동에 훈련병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멀쩡한 훈련병들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다들 물러서!”
호철이가 우렁차게 외치더니, 누워서 신음하는 훈련병들로부터 멀쩡한 녀석들을 떨어지도록 했다. 그러더니 자신을 비춘 랜턴을 훈련병으로부터 빼앗아 들고, 곧바로 누워 있는 훈련병들 쪽으로 달려갔다.
나 역시 호철이의 뒤를 따랐다.
“으, 으으으으…….”
“아아…….”
수십의 훈련병들이 건조장 바닥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8중대 훈련병이지만, 6중대 쪽 입구가 뚫린 직후에 물린 6중대 훈련병들도 몇 있었다.
호철이 랜턴을 켜고 그들 중 하나를 자세히 살폈다.
나는 그 와중에 호철이 옆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훈련병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그러나 순간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말았다.
뜨겁다. 비록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냥 단순한 감기 수준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고열이었다.
“이장군 병장님, 이거…….”
호철이가 옆에서 조용히 나를 불렀다. 랜턴은 훈련병의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훈련병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다.
“빌어먹을…….”
“전부 감염되었다고밖에…….”
호철이가 다른 훈련병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감염’.
박진상도 그렇게 표현했지.
그래. 지금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를 습격한 괴물 훈련병들은 전부 어딘가 물린 녀석들이 변한 것이었다.
눈과 입에 놈들의 피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물리면 교육대로 돌아가지 말라는 기태의 말이 생각났다. 기태는 분명 공격당한 정황까지 말했다. 8중대 이준혁 상병이 물린 뒤, 어느 순간 변해서 자신을 공격했다고 했던가.
기태의 말대로라면,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훈련병들은 잠재적인 감염자들이다.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태는 어떻게 이성을 유지한 것일까?
훈련병들은 이 와중에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는 중이었다. 하긴, 그 녀석들도 전부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알 것이다. 오늘 훈련소를 덮친 괴물이 본인들과 같은 병사들이었다는 사실을.
“분대장님.”
125번 훈련병이 천천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또다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혹시… 그러니까… 오늘 공격해 온 것들… 좀비 아닙니까?”
좀비(Zombie).
마구 날뛰며 사람을 물어뜯는 저 괴물들을 그 외에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야외 건조장에서 눈동자가 시뻘겋게 변해 끙끙 앓고 있는 훈련병들. 이들 역시 곧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125번 훈련병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였다.
누워 있던 훈련병들 중 하나가 갑자기 몽롱한 말투로 외치기 시작했다.
“복무신조… 우리의 결의…….”
나와 호철, 그리고 모든 훈련병들의 시선이 중얼거리는 훈련병에게로 집중되었다.
녀석이 상체를 일으킨 채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