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0화 새벽의 사투 (4)



“목이다! 목을 노리거나 뇌를 부숴!”

8중대 훈련병들은 이미 2층에서 한차례 전투를 치른 듯, 저마다 생활복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와중에 놈들에게 물려 부상을 입은 훈련병도 더러 눈에 띄었다.

부상을 입은 녀석들을 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저 녀석들도 곧 붉은 눈동자의 괴물로 변해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상자들도 열심히 소총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당장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날뛰며 주변의 동료를 공격하지 않았다.

한편, 8중대 훈련병들을 이끌고 내려온 김호철 병장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붉은 눈의 병사 둘을 가볍게 쓰러뜨린 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장군 병장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 병장님 덕분에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래,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딱 필요할 때 내려와 줬어!”

“대체 이 미친 것들은 다 뭡니까? 광견병마냥……!”

호철은 능숙하게 부대를 지휘하면서 신속하게 교전에 뛰어들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8중대 호철이와 훈련병들의 지원은 분위기를 바꿔 놓기 충분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호철이와 8중대 훈련병들만으로 이 사태의 수습은 불가능했다.

8중대 훈련병들도 내려온 인원은 고작 수십 명에 불과했다. 반면, 5중대 쪽에서 몰려오는 괴물과 6중대 현관으로 밀려드는 괴물들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다. 다른 연대에서 넘어온 파란 표찰의 괴물 훈련병들이 합류해 거의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지금 현철이랑 우현이가 7중대에서 넘어온 새끼들과 싸우면서 뒤를 막고는 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합니다.”

8중대 박현철 상병과 장우현 상병이 분전하면서 훈련병들이 무장할 시간을 번 것 같았다. 살아남은 8중대 훈련병들은 이미 2층에서 싸움을 겪은 덕분에 일사불란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속절없이 무너진 5중대와 7중대에 비하면 8중대는 그나마 대응을 한 듯 보였다. 물론 이런 차이를 각 중대 분대장의 역량 차이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5중대는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괴물들의 침입을 허락했고, 7중대는 당직 분대장이 인솔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지휘 공백이 생겼다.

1소대장이 교육대의 또 다른 입구인 5중대에 상황 공유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7중대 당직을 대체할 분대장을 빠르게 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대 우측 중대들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셈이었다.

반면, 6중대에서 나와 기태가 시간을 번 덕분에 바로 위층에 있는 8중대는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더불어 8중대 당직 분대장 김호철 병장은 이러한 시간을 자못 적절하게 활용했다.

“당직 사관, 그 인간 어딨습니까?”

호철이가 이를 뿌득 갈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자식이 이쪽 계단으로 도망치는 걸 본 것 같은데… 그 새끼 때문에 5중대와 7중대가 박살 났습니다.”

“…튀었다.”

“시발 새끼. 만나면 제가 죽일 겁니다, 그 새끼는.”

호철이는 걸쭉한 욕을 해 대면서 다시 한번 이쪽으로 달려오는 괴물 훈련병을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겼다. 그런 호철이를 보고 깜짝 놀라서 순간 얼어붙었다.

김호철은 보디빌딩을 전문적으로 했기 때문에 근육이 괴물 수준인 녀석이었다. 그런 그의 한 방, 한 방이 묵직하게 꽂힐 때마다 얻어맞은 괴물들은 피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든든함을 느낄 정도였다.

“호철아, 너희 훈련병들까지 전부 우리 중대 세탁실 쪽으로 해서 탈출하자!”

“예, 알겠습니다! 그보다… 그쪽은… 기태?!”

호철이는 괴물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내게 다가오다가 내 옆에서 악귀처럼 피를 뒤집어쓴 채 싸우는 기태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기태 역시 자신을 호명한 호철이 쪽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빨간……!!”

호철이가 기태의 눈을 보고 식겁하여 손가락질했다. 나는 당장 기태에게 달려드려는 호철이를 붙잡으며 황급히 말했다.

“괜찮아. 걘… 이성 있다.”

“대체 어떻게……?!”

“그것도 일단 이 지옥부터 빠져나가고 나서 얘기하자!!”

이야기를 마친 나는 5중대 쪽에서부터 따라온 괴물 대형견의 머리통에 대검을 찔러 넣으며 다시 참전했다.

크아아아아악!!

크오!!

어느새 놈들은 더 늘어났다.

124, 125, 126번 훈련병들을 포함해 야삽을 들고 전면에 나선 6중대 훈련병들은 이제 슬슬 지친 듯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 사이를 8중대 훈련병들이 메우며 전투에 가세했다. 분대장인 나와 호철, 기태는 선두에서 놈들과 대적했다.

이미 나의 팔은 감각이 거의 없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머리도 지끈거렸다. 힘이 빠져 제대로 녀석들의 목이나 머리를 제대로 노리지 못했고, 불필요한 동작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야 했다.

8중대 훈련병들이 가세한 덕에 규칙 없이 후퇴하던 6중대 훈련병들도 조금은 여유를 얻을 수 있었고, 지금은 서로 협력하여 탈출하는 중이다.

“밀지 말고 천천히!! 넘어진 사람 없는지 확인하면서 갑시다!”

“거기! 밀지 마세요! 혼자 살려다 다 죽습니다!”

그 와중에 꽤 리더십이 있는 훈련병들은 본인의 탈출을 미루면서까지 자발적으로 나서서 동료들의 이동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어느새 6중대 훈련병 대부분은 세탁실을 통해 밖으로 탈출했고, 뒤이어 8중대 훈련병들 역시 탈출 행렬에 끼었다.

만일 이때 전면에 선 분대장, 즉 내가 함부로 물러선다면 훈련병들 사이에 혼란이 야기될 위험성이 높았다. 그럴 경우, 다시금 서로 먼저 탈출하려고 동료를 짓밟게 된다.

“형, 아무래도 더는…….”

“괜찮아. 조금만 더!”

기태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를 걱정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투에 임했다. 기태는 여전히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호흡에 흔들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움직임이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기태를 제외한 나와 호철이, 선두의 훈련병들은 이제 거의 악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왔다.

“김호철 병장님!”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8중대 분대장 네 명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하나같이 다리를 절뚝이거나 팔이 축 처진 상태다. 그들은 계단을 막아서는 괴물들을 밀쳐 내며 힘겹게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내가 길을 열 테니까 조심해서 내려와!”

그 모습을 본 호철이는 달려드는 괴물들을 패대기치면서 후임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어느새 살아남은 8중대 분대장들이 숨을 헐떡이며 호철이 앞에 도달했다.

당장 눈앞에서 보니,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괜찮냐? 이런 젠장, 적당히 하고 내려올 것이지. 미련하게!”

“…….”

하지만 녀석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 꼴을 본 호철이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 황급히 물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이 전부야?! 다른 녀석들은? 우현이랑 현철이는?”

“…대부분 당했습니다. 가장 선두에서 막아선 박 상병님은… 목숨을 잃었고, 장 상병님이 일단 우리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어렵게 입을 연 일병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철이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인마! 그래서 우현이는 내버려 두고 왔다고?!”

“…….”

호철이가 자신에게 보고한 일병의 몸뚱아리를 난폭하게 흔들어 대며 따졌다. 하지만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도망쳐 온 일병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장 일병 일행 역시 놈들에게 물렸다. 끝까지 싸우다 간신히 도망친 것이리라.

주변에서 열심히 괴물들과 싸우던 8중대 훈련병들의 얼굴에도 절망이 떠올랐다. 훈련병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분대장 다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 잠깐의 빈틈 때문에 몇몇 8중대 훈련병이 괴물들에게 물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김호철 병장님!! 위험합니다!”

기태가 8중대 훈련병들을 물어뜯은 괴물 병사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정작 호철이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소식을 전해 온 일병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 역시 넋이 나간 듯 보이는 김호철 병장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어 외쳤다.

“김호철!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이러다가는 8중대 훈련병들과 함께 막고 있는 방어선이 무너진다.

벌써부터 호철이가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한 8중대 훈련병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던 호철이 고개 숙인 일병의 멱살을 내팽개치듯 놓아 버렸다. 그러더니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멍청한 짓이었다.

당장 다가오는 괴물 놈들을 기태에게 맡기고, 황급히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이거 놓으십쇼!”

호철이가 눈을 부라리며 나를 다그쳤다.

녀석은 내 전역날이 다가와도 결코 나를 형이라고 부르거나 가볍게 장난을 걸어오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나를 늘 선임으로 대우하며 깍듯했다.

운동을 하다 군에 온 탓인지 선배나 상급자에 대한 가치관이 확실한 놈이었다. 후임들에게 그런 예의를 강요했지만, 동시에 자신 역시 강박적으로 상급자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그런 호철이가 1소대장에게 걸쭉한 욕설을 내뱉더니, 지금은 나에게 대들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호철이가 무너지면 8중대 훈련병들도 무너지고… 그러면 전부 죽는다.

“안 된다고, 이 새끼야! 올라가면 너도 뒈져! 모르겠냐?”

“아직 우현이가……!”

녀석의 말끝이 가라앉았다. 입술을 깨물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나는 김호철을 안다. 뛰어난 분대장이고, 뛰어난 선임병이다. 그런 녀석을 그냥 사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걔가 뭐 때문에 남았는데! 네가 올라가면 좋아할 거 같아?”

“제가, 제가 뒤를 막으라고 명령했단 말입니다!”

호철이가 울부짖듯 악을 쓰며 외쳤다.

크아아아악!!

그사이, 무방비 상태가 된 우리에게 몇몇 괴물들이 달려들었지만, 기태가 혼자서 착실하게 베어 넘기며 모두를 보호했다. 이제는 아예 익숙해진 듯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확실히 상대의 목숨을 끊어 놓고 있었다.

기태가 놈들을 쓰러뜨리는 와중에도 우리의 대화를 모두 들었는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냥 보내 드리십쇼.”

“김기태!”

도리어 기름을 붓는 기태의 발언에 화가 난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기태는 굴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대신 김호철 병장님이 가시면 8중대 훈련병들을 지휘할 사람도, 책임질 사람도 이제 없습니다.”

기태의 말을 들은 호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장 살아 돌아온 8중대 일병들도 전부 물린 상태다. 그 의미를 나와 기태는 잘 알고 있었다. 이들 역시 괴물들처럼 변할 수 있다. 물론 기태처럼 이성을 유지할 가능성 역시 있지만, 달려드는 괴물 병사들의 수를 볼 때, 확률은 희박했다.

결국 김호철 병장만이 8중대 훈련병들을 이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대장이다. 당장 호철이가 흔들리자 전투에서 임하던 8중대 훈련병 몇이 물려 버리지 않았는가. 호철이의 존재감은 그 정도로 중요했다.

“호철아, 제발!”

이제는 거의 사정하듯 외쳤다. 녀석이 2층으로 가게 둘 수는 없었다.

이윽고 호철이가 무언가 결심한 듯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러더니 교육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호령했다.

“6중대, 8중대 훈련병은 빨리빨리 움직여!! 싸우는 건 분대장들에게 맡겨 두고, 지금부터는 전부 빠져나가는 데만 집중해라!”

녀석의 눈은 괴물들에게 물리지 않았음에도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붙잡은 녀석의 손목을 놓은 뒤, 다시 내게 달려드는 괴물들과 맞섰다. 호철이와 기태가 내 옆에 섰다. 훈련병들은 이제 거의 빠져나갔고, 조금의 시간만 더 벌면 될 터였다.

8중대 훈련병들은 정신을 차린 호철이의 명령에 따라 빠르게 세탁실 방향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근육질의 호철이 우악스럽게 주먹을 휘두르는 그 와중에 나는 분명히 보았다. 호철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