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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새벽의 사투 (3)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젠장맞을…….”
팔도 부들부들 떨린다.
얼마간의 교통 체증으로 붉은 눈 괴물들의 진입은 원활하지 못했고, 그 가운데 6중대 복도에 진입한 괴물 몇의 머리통을 부수었다.
어느새 발밑에는 시체로 변한 붉은 눈의 훈련병들과 개, 멧돼지의 사체가 뒤섞여 뒹굴고 있었다. 사체로부터 풍겨 오는 피비린내로 인해 머리가 띵했다.
퍼퍽!
반면, 기태는 지치지도 않는 듯 다가오는 놈들을 기계적으로 스스럼없이 처리하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에 힘이 실렸고, 치명적이었다.
“기태, 넌… 헉, 헉… 지치지도 않냐?”
“…괴물이 되어 버려서.”
기태는 별다른 감정을 싣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하면서 다시금 나를 향해 달려드는 1중대 훈련병 하나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어느 순간부터 기태는 골키퍼마냥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들을 거의 홀로 방어하고 있었다.
크르르…….
크아아…….
놈들은 천천히 입구 쪽 정체를 극복해 내면서 좌우 양면으로 오로지 나만을 집요하게 노려왔다. 하지만 결코 기태만은 노리지 않았다. 마치 기태가 보이지 않는 것마냥 무조건적으로 나만을 노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놈들…….”
“형, 아무래도 안 되겠어. 조금씩 뒤로 물러나자.”
기태의 말에 이미 온몸이 지쳐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슬 뒤로 물러났다. 1, 2소대 훈련병들은 이미 3, 4소대 쪽으로 전부 피신한 상태였다.
그래,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그때, 갑자기 큰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전부 박살 내 버려!!”
부산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중앙 계단을 통해 몰려 내려온 분대장들이 저마다 소총을 휘두르며 붉은 눈의 괴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괴물과 분대장들의 소리가 뒤엉겨 귀가 먹먹했다.
“젠장, 이제야… 내려왔네. 다들 들리냐?!”
“이장군 병장님?! 무사하십니까?”
중앙 계단 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박에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지난달 병장을 단 6중대 1소대 선임 분대장, 김찬 병장이었다.
몸집이 곰과 같고 리더십도 탁월해서 웬만한 간부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나이. 나와는 상당히 친하게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그래, 인마! 빨리도 왔다!”
“그래도 최대한 서두른 겁니다! 어어, 저거 뭐야!! 거기 훈련병! 너, 이 새끼!”
“으아아악!!”
뒤쪽에서 콰직, 소리가 나며 분대장 하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불길함을 느낀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것들 훈련병 아니야!! 붉은 눈깔에다가 사람을 무는 새끼들은 그냥 다 머리통을 깨부숴 버려!!”
“…젠장, 빨간 눈깔들 전부 박살 내고, 다친 훈련병만 구조해서 뒤로 빼!”
김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분대장들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붉은 눈동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유가 된 것 같았다.
“조심해라! 절대 물리면 안 돼! 놈들과 싸울 때는 머리를 노려!”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주기 위해 힘껏 외쳤지만, 김찬이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대장들이 중앙 현관에서 가세하자, 앞뒤로 공격을 당한 괴물들이 분산되었다.
그 와중에 나를 향해 달려들던 붉은 눈의 병사 셋을 기태가 묵묵히 해치우는 중이었다.
그때, 내 뒤쪽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분대장님!”
124번 훈련병이었다. 6중대 쪽, 교육대 좌측 계단을 통해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아마 녀석 덕분에 김찬과 분대장들이 무장하고 내려온 것이리라. 하지만 정작 124번 훈련병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 그래! 지금 분대장들 왔더라. 너는…….”
“다, 당직 사관님이… 우리 6중대 현관이……!”
녀석의 몸을 덜덜 떨면서 횡설수설했다. 겁에 질린 것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분노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뭐? 왜 그래?”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쪽, 그러니까 6중대 입구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쾅!!
“우와아아악!!”
젠장.
3, 4소대 쪽에 몰려 있는 6중대 훈련병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쪽 문에 붉은 눈 병사들이…….”
지금 그 문이 뚫린 것 같았다. 6중대 현관에서 언뜻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그걸 본 당직 사관님이…….”
설마…….
“세탁실을 통과해 달아나셨습니다.”
세탁실.
그곳엔 야외 건조장으로 통하는 샛문이 있다.
퍽!
“시발 새끼.”
뒤쪽에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괴물 병사 하나의 목을 대검으로 찌르면서 기태가 중얼거렸다.
순간, 맥이 빠졌다.
우리 교육대 유일한 간부가, 6중대 소대장이… 6중대 입구가 뚫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혼자 줄행랑을 쳤다고? 훈련병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황급히 중앙 현관 쪽에서 분전 중인 김찬에게 외쳤다.
“김찬! 6중대 쪽 문도 뚫렸다!! 난 훈련병들 데리고 세탁실 쪽으로 도망칠 테니까, 너도 어떻게든 훈련병들 데리고 몸을 피해!! 이 새끼들, 끝도 없다!”
“젠장, 알겠습니다! 어디로 피하십니까?!”
반대쪽에서 김찬의 물음이 들려왔다.
어렵다. 지금 이 판국에 어디가 안전할까?
당장 초소 쪽부터 연무문, 공급 창고, 병영 식당 전부 놈들에게 뚫린 게 확실한데…….
“1교육대! 일단 1교육대로 갔다가 거기도 깨졌으면 본부로 간다! 어떻게든 안전한 장소를 찾을 거야!”
“알겠습니다! 야야!! 뒤쪽, 뒤쪽!!”
컹! 컹!
김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중앙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붉은 눈의 짐승들이 슬쩍 보였다. 5중대로 침입한 놈들이 교육대 우측 계단을 올라 2층의 7중대를 뒤집어놓은 뒤, 다시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온 모양이었다.
김찬과 함께 싸우던 분대장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5중대, 5중대 쪽으로!”
“이쪽은 안 돼! 5중대 생활관 안에 아직도 놈들이 많아!!”
“중앙 현관으로 나가!!”
“부상자들 챙겨!!”
분대장들이 저마다 외쳐 대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부상자를 챙긴다는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은… 붉은 눈의 괴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부상자는……!”
버리고 가라고 말하려다가 퍼뜩 멈추었다.
젠장.
붉은 눈의 기태는 물러섬 없이 벌써 열 마리도 넘는 괴물들을 쓰러뜨렸다. 기태는 엄연히 괴물이 아니다.
놈들에게 물리면 정말 다 괴물이 되어 놈들과 같아진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부상자들을 버리고 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부상자는 버려! 감염이야! 물리면 놈들처럼 된다!”
반대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는 금방 알았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사나운 말투. 나의 동기다. 7중대 박진상 병장. 녀석 역시 오늘 전역을 앞둔 놈이다.
난리 중에도 녀석은 상황을 발빠르게 파악한 듯했다.
하지만 녀석이 1층 중앙 현관에 내려왔다는 것은… 2층의 7중대도 박살 났다는 뜻이다.
“으아아악!!”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 나와 기태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124번 훈련병은 당장에라도 싸울 기세로 6중대 현관 쪽을 보고 있었다.
활짝 열린 6중대 문으로 괴물들이 끝없이 밀려 들어온다. 전부 피범벅이 된 병사들이었다.
6중대 3, 4소대 복도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두 명의 훈련병이 소총을 들고 앞장서서 괴물들과 맞서고 있었다. 125, 126번 훈련병이다.
“젠장! 기태야, 여기는 막아 봐야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가자!”
기태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땅에 널브러진 멧돼지 사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내 쪽으로 달려들던 괴물 병사 몇 명이 멧돼지 사체를 얻어맞고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그 공격을 마지막으로 나와 기태, 124번 훈련병은 그대로 6중대 문 쪽으로 달렸다. 그런 우리의 뒤로 몇몇 대형견들이 따라붙었다.
나와 124번 훈련병은 각자 소총을 꼬나 잡고 6중대 입구를 통과해 들어온 놈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뒤를 쫓아온 짐승들은 기태가 전담했다.
그때부터는 난투에 가까웠다. 입구나 특정 공간을 막는 게 문제가 아니다. 탈출을 위해서는 각자도생밖에 남지 않았다.
“6중대 훈련병, 전부 주목!!”
기태와 124번 훈련병이 싸움에 임하는 와중에 잠깐의 틈을 확보한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메어 온다.
“세탁실을 통해서 전부 후퇴해!! 야외 건조장에 모여라! 최대한 뒤를 막으면서 달려!!”
“세탁실로!!”
“빨리!”
내 말을 들은 3, 4소대 쪽 복도의 훈련병들이 저마다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뒤에 벌어질 혼란 역시 알고 있었다.
“아악! 밀지 마!”
“으으아아아!!”
훈련병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아비규환과도 같은 아우성은 붉은 눈의 괴물들에 의한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전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교전이 아니다. 후퇴다.
넘어진 이는 짓밟히고, 동료의 무기에 다친다. 가장 많은 희생은 이때 벌어진다.
하지만 내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통솔할 분대장은 없고, 훈련병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규율은 없고, 도망과 생존만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내 바로 앞에서 125번 훈련병과 126번 훈련병이 대검을 장착한 소총을 휘두르며 앞장서 싸우는 게 보였다. 그들과 함께 몇몇 용감한 훈련병들이 야전삽을 든 채 괴물들의 머리통을 찍어 대고 있었다.
속이 울컥했다. 이 녀석들이야말로 1소대장보다 몇 백 배는 낫다.
“얘들아!”
“분대장님!”
“조, 조심하십쇼!”
126번 훈련병이 갑자기 나를 향해 외치더니, 기태를 향해 소총을 내뻗었다.
“멈춰!”
나는 황급히 녀석의 소총을 짓누르며 행동을 막았다. 그런 뒤, 126번을 향해 좌측에서 달려드는 다른 괴물 하나를 급한 대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
“부, 분대장님……!”
“얘는 아니야. 괜찮다고.”
“…….”
기태는 자신을 공격해 온 126번 훈련병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시선을 돌리더니, 주변의 다른 괴물 병사들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하긴 지금 기태의 꼴은 웬만한 괴물들보다 더 으스스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로 적셔진데다 붉은 눈동자까지 가지고 있다. 언뜻 보기에 괴물들의 보스 정도라 여겨졌다.
한편, 126번 훈련병은 그제야 기태를 알아본 듯 흠칫 놀랐다.
“김기태 분대장님?! 죄, 죄송합니다!!”
“됐어. 나도 언제 저것들처럼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분대장님…….”
기태의 차가운 말투에 나마저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크아아아아!!
크워어어!!
꽤 공간이 넓은 6중대 현관은 이미 붉은 눈동자들로 득시글거렸다. 6중대 훈련병 대부분은 세탁실을 통해 아직 피난하는 중이고, 상당수는 이미 물려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지만, 그 와중에 당당하게 전투에 나서는 훈련병은 극히 드물었다. 몇몇 용감한 훈련병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야삽을 거꾸로 든 채 그저 세탁실로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저, 저리 비켜!”
“밀지 말란 말이야!!”
“악! 내 발!!”
제가 누굴 밟고 지나가는지조차 모르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빌어먹을… 아수라장이군.”
기태 역시 그 꼴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 와중에도 좌측의 괴물 병사 하나의 이마를 찌르는 중이었다. 이제 보니 지금 6중대 입구를 덮쳐 온 녀석들은 하나같이 파란색 표찰을 착용한 훈련병들이었다.
29연대는 노란색 표찰을 사용한다. 즉, 이들은 아예 다른 연대에서 온 훈련병들이다.
논산 훈련소 내의 다른 부대 역시 이 꼴이 났다는 뜻이었다.
한창 막막함을 느끼던 찰나, 2층으로 오르는 교육대 우측 계단, 즉 6중대 쪽 계단에서 한 무리의 훈련병과 분대장들이 내려왔다. 전부 소총으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8중대 당직 분대장 김호철 병장이 가장 선두에 있었다.
“이장군 병장님! 무사하십니까?”
“호철아!!”
“8중대 전원, 가세한다!”
호철이가 거의 4성 장군과 같은 포스로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뒤쪽에서 따르던 8중대 훈련병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아래로 내달려왔다.
“우아아아아!!”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젠장맞을…….”
팔도 부들부들 떨린다.
얼마간의 교통 체증으로 붉은 눈 괴물들의 진입은 원활하지 못했고, 그 가운데 6중대 복도에 진입한 괴물 몇의 머리통을 부수었다.
어느새 발밑에는 시체로 변한 붉은 눈의 훈련병들과 개, 멧돼지의 사체가 뒤섞여 뒹굴고 있었다. 사체로부터 풍겨 오는 피비린내로 인해 머리가 띵했다.
퍼퍽!
반면, 기태는 지치지도 않는 듯 다가오는 놈들을 기계적으로 스스럼없이 처리하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에 힘이 실렸고, 치명적이었다.
“기태, 넌… 헉, 헉… 지치지도 않냐?”
“…괴물이 되어 버려서.”
기태는 별다른 감정을 싣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하면서 다시금 나를 향해 달려드는 1중대 훈련병 하나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어느 순간부터 기태는 골키퍼마냥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들을 거의 홀로 방어하고 있었다.
크르르…….
크아아…….
놈들은 천천히 입구 쪽 정체를 극복해 내면서 좌우 양면으로 오로지 나만을 집요하게 노려왔다. 하지만 결코 기태만은 노리지 않았다. 마치 기태가 보이지 않는 것마냥 무조건적으로 나만을 노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놈들…….”
“형, 아무래도 안 되겠어. 조금씩 뒤로 물러나자.”
기태의 말에 이미 온몸이 지쳐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슬 뒤로 물러났다. 1, 2소대 훈련병들은 이미 3, 4소대 쪽으로 전부 피신한 상태였다.
그래,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그때, 갑자기 큰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전부 박살 내 버려!!”
부산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중앙 계단을 통해 몰려 내려온 분대장들이 저마다 소총을 휘두르며 붉은 눈의 괴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괴물과 분대장들의 소리가 뒤엉겨 귀가 먹먹했다.
“젠장, 이제야… 내려왔네. 다들 들리냐?!”
“이장군 병장님?! 무사하십니까?”
중앙 계단 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박에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지난달 병장을 단 6중대 1소대 선임 분대장, 김찬 병장이었다.
몸집이 곰과 같고 리더십도 탁월해서 웬만한 간부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나이. 나와는 상당히 친하게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그래, 인마! 빨리도 왔다!”
“그래도 최대한 서두른 겁니다! 어어, 저거 뭐야!! 거기 훈련병! 너, 이 새끼!”
“으아아악!!”
뒤쪽에서 콰직, 소리가 나며 분대장 하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불길함을 느낀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것들 훈련병 아니야!! 붉은 눈깔에다가 사람을 무는 새끼들은 그냥 다 머리통을 깨부숴 버려!!”
“…젠장, 빨간 눈깔들 전부 박살 내고, 다친 훈련병만 구조해서 뒤로 빼!”
김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분대장들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붉은 눈동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유가 된 것 같았다.
“조심해라! 절대 물리면 안 돼! 놈들과 싸울 때는 머리를 노려!”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주기 위해 힘껏 외쳤지만, 김찬이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대장들이 중앙 현관에서 가세하자, 앞뒤로 공격을 당한 괴물들이 분산되었다.
그 와중에 나를 향해 달려들던 붉은 눈의 병사 셋을 기태가 묵묵히 해치우는 중이었다.
그때, 내 뒤쪽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분대장님!”
124번 훈련병이었다. 6중대 쪽, 교육대 좌측 계단을 통해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아마 녀석 덕분에 김찬과 분대장들이 무장하고 내려온 것이리라. 하지만 정작 124번 훈련병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 그래! 지금 분대장들 왔더라. 너는…….”
“다, 당직 사관님이… 우리 6중대 현관이……!”
녀석의 몸을 덜덜 떨면서 횡설수설했다. 겁에 질린 것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분노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뭐? 왜 그래?”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쪽, 그러니까 6중대 입구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쾅!!
“우와아아악!!”
젠장.
3, 4소대 쪽에 몰려 있는 6중대 훈련병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쪽 문에 붉은 눈 병사들이…….”
지금 그 문이 뚫린 것 같았다. 6중대 현관에서 언뜻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그걸 본 당직 사관님이…….”
설마…….
“세탁실을 통과해 달아나셨습니다.”
세탁실.
그곳엔 야외 건조장으로 통하는 샛문이 있다.
퍽!
“시발 새끼.”
뒤쪽에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괴물 병사 하나의 목을 대검으로 찌르면서 기태가 중얼거렸다.
순간, 맥이 빠졌다.
우리 교육대 유일한 간부가, 6중대 소대장이… 6중대 입구가 뚫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혼자 줄행랑을 쳤다고? 훈련병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황급히 중앙 현관 쪽에서 분전 중인 김찬에게 외쳤다.
“김찬! 6중대 쪽 문도 뚫렸다!! 난 훈련병들 데리고 세탁실 쪽으로 도망칠 테니까, 너도 어떻게든 훈련병들 데리고 몸을 피해!! 이 새끼들, 끝도 없다!”
“젠장, 알겠습니다! 어디로 피하십니까?!”
반대쪽에서 김찬의 물음이 들려왔다.
어렵다. 지금 이 판국에 어디가 안전할까?
당장 초소 쪽부터 연무문, 공급 창고, 병영 식당 전부 놈들에게 뚫린 게 확실한데…….
“1교육대! 일단 1교육대로 갔다가 거기도 깨졌으면 본부로 간다! 어떻게든 안전한 장소를 찾을 거야!”
“알겠습니다! 야야!! 뒤쪽, 뒤쪽!!”
컹! 컹!
김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중앙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붉은 눈의 짐승들이 슬쩍 보였다. 5중대로 침입한 놈들이 교육대 우측 계단을 올라 2층의 7중대를 뒤집어놓은 뒤, 다시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온 모양이었다.
김찬과 함께 싸우던 분대장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악!!”
“5중대, 5중대 쪽으로!”
“이쪽은 안 돼! 5중대 생활관 안에 아직도 놈들이 많아!!”
“중앙 현관으로 나가!!”
“부상자들 챙겨!!”
분대장들이 저마다 외쳐 대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부상자를 챙긴다는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은… 붉은 눈의 괴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부상자는……!”
버리고 가라고 말하려다가 퍼뜩 멈추었다.
젠장.
붉은 눈의 기태는 물러섬 없이 벌써 열 마리도 넘는 괴물들을 쓰러뜨렸다. 기태는 엄연히 괴물이 아니다.
놈들에게 물리면 정말 다 괴물이 되어 놈들과 같아진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부상자들을 버리고 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부상자는 버려! 감염이야! 물리면 놈들처럼 된다!”
반대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는 금방 알았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사나운 말투. 나의 동기다. 7중대 박진상 병장. 녀석 역시 오늘 전역을 앞둔 놈이다.
난리 중에도 녀석은 상황을 발빠르게 파악한 듯했다.
하지만 녀석이 1층 중앙 현관에 내려왔다는 것은… 2층의 7중대도 박살 났다는 뜻이다.
“으아아악!!”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 나와 기태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124번 훈련병은 당장에라도 싸울 기세로 6중대 현관 쪽을 보고 있었다.
활짝 열린 6중대 문으로 괴물들이 끝없이 밀려 들어온다. 전부 피범벅이 된 병사들이었다.
6중대 3, 4소대 복도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두 명의 훈련병이 소총을 들고 앞장서서 괴물들과 맞서고 있었다. 125, 126번 훈련병이다.
“젠장! 기태야, 여기는 막아 봐야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가자!”
기태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땅에 널브러진 멧돼지 사체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내 쪽으로 달려들던 괴물 병사 몇 명이 멧돼지 사체를 얻어맞고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그 공격을 마지막으로 나와 기태, 124번 훈련병은 그대로 6중대 문 쪽으로 달렸다. 그런 우리의 뒤로 몇몇 대형견들이 따라붙었다.
나와 124번 훈련병은 각자 소총을 꼬나 잡고 6중대 입구를 통과해 들어온 놈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뒤를 쫓아온 짐승들은 기태가 전담했다.
그때부터는 난투에 가까웠다. 입구나 특정 공간을 막는 게 문제가 아니다. 탈출을 위해서는 각자도생밖에 남지 않았다.
“6중대 훈련병, 전부 주목!!”
기태와 124번 훈련병이 싸움에 임하는 와중에 잠깐의 틈을 확보한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메어 온다.
“세탁실을 통해서 전부 후퇴해!! 야외 건조장에 모여라! 최대한 뒤를 막으면서 달려!!”
“세탁실로!!”
“빨리!”
내 말을 들은 3, 4소대 쪽 복도의 훈련병들이 저마다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뒤에 벌어질 혼란 역시 알고 있었다.
“아악! 밀지 마!”
“으으아아아!!”
훈련병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아비규환과도 같은 아우성은 붉은 눈의 괴물들에 의한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전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교전이 아니다. 후퇴다.
넘어진 이는 짓밟히고, 동료의 무기에 다친다. 가장 많은 희생은 이때 벌어진다.
하지만 내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통솔할 분대장은 없고, 훈련병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규율은 없고, 도망과 생존만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내 바로 앞에서 125번 훈련병과 126번 훈련병이 대검을 장착한 소총을 휘두르며 앞장서 싸우는 게 보였다. 그들과 함께 몇몇 용감한 훈련병들이 야전삽을 든 채 괴물들의 머리통을 찍어 대고 있었다.
속이 울컥했다. 이 녀석들이야말로 1소대장보다 몇 백 배는 낫다.
“얘들아!”
“분대장님!”
“조, 조심하십쇼!”
126번 훈련병이 갑자기 나를 향해 외치더니, 기태를 향해 소총을 내뻗었다.
“멈춰!”
나는 황급히 녀석의 소총을 짓누르며 행동을 막았다. 그런 뒤, 126번을 향해 좌측에서 달려드는 다른 괴물 하나를 급한 대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
“부, 분대장님……!”
“얘는 아니야. 괜찮다고.”
“…….”
기태는 자신을 공격해 온 126번 훈련병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시선을 돌리더니, 주변의 다른 괴물 병사들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하긴 지금 기태의 꼴은 웬만한 괴물들보다 더 으스스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로 적셔진데다 붉은 눈동자까지 가지고 있다. 언뜻 보기에 괴물들의 보스 정도라 여겨졌다.
한편, 126번 훈련병은 그제야 기태를 알아본 듯 흠칫 놀랐다.
“김기태 분대장님?! 죄, 죄송합니다!!”
“됐어. 나도 언제 저것들처럼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분대장님…….”
기태의 차가운 말투에 나마저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크아아아아!!
크워어어!!
꽤 공간이 넓은 6중대 현관은 이미 붉은 눈동자들로 득시글거렸다. 6중대 훈련병 대부분은 세탁실을 통해 아직 피난하는 중이고, 상당수는 이미 물려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지만, 그 와중에 당당하게 전투에 나서는 훈련병은 극히 드물었다. 몇몇 용감한 훈련병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야삽을 거꾸로 든 채 그저 세탁실로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저, 저리 비켜!”
“밀지 말란 말이야!!”
“악! 내 발!!”
제가 누굴 밟고 지나가는지조차 모르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빌어먹을… 아수라장이군.”
기태 역시 그 꼴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 와중에도 좌측의 괴물 병사 하나의 이마를 찌르는 중이었다. 이제 보니 지금 6중대 입구를 덮쳐 온 녀석들은 하나같이 파란색 표찰을 착용한 훈련병들이었다.
29연대는 노란색 표찰을 사용한다. 즉, 이들은 아예 다른 연대에서 온 훈련병들이다.
논산 훈련소 내의 다른 부대 역시 이 꼴이 났다는 뜻이었다.
한창 막막함을 느끼던 찰나, 2층으로 오르는 교육대 우측 계단, 즉 6중대 쪽 계단에서 한 무리의 훈련병과 분대장들이 내려왔다. 전부 소총으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8중대 당직 분대장 김호철 병장이 가장 선두에 있었다.
“이장군 병장님! 무사하십니까?”
“호철아!!”
“8중대 전원, 가세한다!”
호철이가 거의 4성 장군과 같은 포스로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뒤쪽에서 따르던 8중대 훈련병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아래로 내달려왔다.
“우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