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새벽의 사투 (2)
“으, 아아아아아악!!”
크르아아악!!
“우와악!!”
5중대 쪽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와중에 복도 끝 5중대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활관에 들어가던 1, 2소대 훈련병들은 갑작스런 소란에 놀란 듯 움직임이 둔해졌다.
“1, 2소대 훈련병, 전원 주목!!”
5중대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7중대가 있고, 그대로 우측으로 쭉 내달리면 중앙 현관을 지나 내가 있는 6중대 1, 2소대 복도에 닿는다.
즉, 1, 2소대는 5중대를 뚫고 들어온 놈들의 길목이었다.
“주목!!”
훈련병들은 기계적으로 복명복창하며 수군거림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생활관에 들어가서 각자 야전삽 챙기고 3, 4소대 쪽 복도로 이동한다!! 실시!!”
“실시!!”
야전삽은 자물쇠가 달린 보관함에 모아 놓은 총기와 달리 각자의 관물대 위에 보관되어 있다. 당장 몸을 보호할 만한 무기였다.
소총과 대검을 장착한 126번 훈련병이 복도 가운데에서 1, 2소대 동료 훈련병들을 재촉했고, 1, 2소대 훈련병들은 나의 명령에 따라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통통통통…….
그 와중에도 6중대 현관문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딱따구리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려 댔다. 당장 5중대 쪽으로 달려가서 시간을 벌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만약 6중대 쪽 문이 뚫리면 3, 4소대까지 전부 위험해진다.
“젠장, 젠장……!”
바로 그때였다.
문을 두드려 대던 괴물 훈련병 뒤쪽으로 웬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가 잡아채듯 문을 두드리던 딱따구리 병사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이어서 대검으로 훤히 드러난 목을 그대로 그어 버렸다.
“너……!”
6중대 출입문을 철모로 두드리던 병사가 피를 내뿜으며 앞으로 쓰러지는 그 순간, 나는 문밖에 선 녀석의 붉은 눈을 보았다. 깜짝 놀란 나머지 잠깐 뒷걸음질까지 쳤다.
어떻게…….
피를 뒤집어쓴 상태이지만,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미 한차례 나와 훈련병 일행을 구한 적 있는 녀석. 내 후임, 김기태 상병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잠깐 망설여졌다. 붉은 눈동자는 분명 앞서 기태의 손에 의해 목숨이 끊어진 괴물 녀석과 같다. 만일 기태 역시 그런 괴물로 변해 버린 것이라면…….
그때, 기태의 입술이 다급히 움직였다.
“이장군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잠긴 문을 열어 주었다.
“형이라고 불러, 인마!”
다짜고짜 들어오는 녀석을 한 번 껴안았다.
피 냄새가 코를 훅 찔러 왔지만, 기태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진짜… 진짜 다행이다, 새끼야!”
“형,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형은 내 취향도 아니고.”
붉은 눈동자와 별개로 이 녀석은… 멀쩡하다! 명백히 이성을 갖고 있고, 그 와중에 농담까지 한다.
하지만 녀석의 말이 맞았다. 기뻐할 틈 따위는 없다.
5중대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1, 2소대 훈련병들은 빠르게 한 손에 야전삽을 챙겨 들고 나와 3, 4소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든 상황은 말할 수 없이 급박했다.
나는 황급히 6중대 현관문을 다시 닫아걸고 5중대 쪽을 노려보았다.
드디어 피를 뒤집어쓴 붉은 눈의 병사와 온갖 짐승들이 6중대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5중대 쪽에서 도망오던 훈련병 하나가 붉은 눈의 맹견에게 다리를 잡혀 질질 끌려가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다.
“사, 사, 살려… 으아아아아아아!!”
“으, 으아아!! 도망쳐!!”
훈련병을 덮쳐 물어뜯는 그 괴물은 더 이상 흔히 길가에서 볼 수 있는 개로 보이지 않았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친 6중대 1, 2소대 훈련병들이 내 쪽으로 달려오며 황급히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기태야, 일단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내가 가서 막을 테니까, 형은 애들 빨리 피신시켜.”
기태가 내 말을 막더니, 피투성이의 단검이 끼워진 소총을 고쳐 잡았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5중대 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들에게로 달려갔다. 그야말로 피를 뒤집어쓴 전사의 모습이었다.
대체 이 자식은 어떤 밤을 보냈기에…….
나는 입술을 깨문 채 기태와 함께 달렸다.
“김기태, 건방 떨지 마! 너 혼자 뭘 하겠다고. 126번 훈련병!!”
1, 2소대 훈련병들과 함께 5중대 쪽에서 나타난 괴물들을 보고 얼어 있던 126번 훈련병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이어 기태에 시선이 닿자 녀석이 입이 쩍 벌어졌다.
하긴, 나도 처음 기태를 보았을 때는 어지간히 놀랐으니까.
“부, 분대장님!”
“뭐 해, 인마! 빨리 남은 애들이랑 3, 4소대 쪽으로 달려!! 나랑 김기태 분대장이 뒤를 막을 테니까, 그냥 졸라 달려!!”
“네, 넵!!”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직 책상 쪽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목청껏 외쳐 댔다.
“1, 2소대 훈련병들, 모두 빨리 나오십쇼!! 어서 3, 4소대 쪽으로!!”
허둥대다가 늦은 훈련병들이 1, 2소대 생활관에서 뒤늦게 쏟아져 나왔다. 나와 기태는 5중대 복도 쪽에서 슬슬 먹잇감을 노리고 다가오는 붉은 눈들과 마주했다.
크르르…….
가장 앞에 있던 붉은 눈의 애꾸눈 대형견이 먼저 나섰다.
한때 흰색을 띠었을 게 분명한 녀석의 털은 이미 대부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주둥이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내장 기관이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고,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등 근육이 도드라졌다.
그 오른편으로 <3―031> 교번을 단 훈련병 복장의 녀석이 입에 피 칠갑을 한 채 나타났다. 3중대 훈련병, 즉 1교육대 훈련병이다. 아마도 몇 시간 전에 초소 근무를 나갔다가 괴물들에게 물려서 변해 버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1교육대도 이미 괴물들에게 짓밟혔거나.
“내가 오른쪽 훈련병.”
“왜? 훈련병이 더 쉬울 것 같아?”
기태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 새끼는 이 와중에도…….
나 역시 이 끔찍한 상황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인마.”
어차피 좌측의 애꾸눈 똥개도 나를 노릴 것임을 이미 안다. 몇 시간 전에 이미 확인했다. 붉은 눈의 괴물은… 역시 붉은 눈으로 변해 버린 기태를 공격하지 않는다.
“믿는다, 기태야.”
“온다!”
개와 병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개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오로지 훈련병만을 응시했다.
개의 입이야 날선 이빨이 박힌, 어찌 보면 빤한 짐승의 아가리지만, 3중대 훈련병 쪽은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다.
3중대 훈련병도 마치 짐승처럼 입을 쩍 벌렸는데, 통상적인 의미의 입 벌림이 아니었다. 녀석의 입 좌우가 아예 찢어져 있고, 그 속은 핏물로 가득했다. 흉측한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인 놈이 목을 쭉 뺀 채 옆의 똥개와 함께 온몸을 던져 왔다.
“으아아!!”
나는 그대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3중대 녀석의 미간만 바라보았다. 과도하게 찢어진 입 위쪽에 드러난 코와 눈.
좌측 발은 디딤축으로 오른발을 쭉 빼며 놈의 미간을 향해 대검을 내질렀다.
‘찔러’ 총검술의 자세였다.
바로 그 순간, 내 쪽으로 달려들던 똥개의 목에는 기태가 내지른 단검이 파고들었다.
크르륵!!
컥!!
나를 향해 달려들던 개와 3중대 훈련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되어 그 자리에 엎어졌다. 각각 목과 머리를 관통당한 둘은 잠깐의 움찔거림 후 곧바로 절명했다.
“형은 오지 마! 표적이 되잖아!”
기태가 곧바로 대검을 빼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기태를 따라붙었다.
기태는 표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기태는 놈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없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끔찍한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옆을 보니 기태 역시 우뚝 멈춰서 얼어 있다.
“이런 제길…….”
최소 열 명은 되어 보이는 5중대 훈련병들이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6중대 쪽으로 도망가려다가 뒤를 잡혀 당한 듯 보였다. 그 와중에 몇은 피투성이인 채 아직 살아 있었다.
“분대장님… 사, 살려…….”
그러나 내 쪽으로 손을 뻗은 훈련병의 목덜미에 곧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이 깊숙이 박혔다. 뒤이어 훈련병의 목이 짐승의 턱 힘에 의해 그대로 꺾여 버렸다. 붉은 눈의 다른 병사가 와서 그의 다리를 물어뜯는다.
“젠장…….”
언뜻 살피니 이미 중앙 현관의 다른 훈련병들 상당수는 목숨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일부는 여전히 움찔거리고 있다.
“이런 시발…….”
나는 이를 악물고 소총을 들어 올렸다.
조정간 단발.
기태는 그런 내 움직임을 보고 놀라서 내 팔을 잡았다.
“형!”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 있잖아.”
“…형!!”
방아쇠를 당긴다.
격발.
탕!!
소총에 장전되어 있던 공포탄이 폭죽 터지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초소 근무를 나가기 전에 챙긴 공포탄이다. 살상 능력은 없으며, 그저 주의만 끌 뿐이라는 걸 나도 안다.
놈들은 도망가지 않겠지.
하지만 눈앞에서 훈련병들이 뜯어 먹히는 꼴을 본 내 선택은… 이런 멍청한 짓이었다.
중앙 현관에서 쓰러진 5중대 훈련병들을 포식하고 있던 무수한 붉은 눈들이 모조리 이쪽을 향했다.
치밀어 오르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공포탄 소리를 듣고 5중대 생활관 안에서 사냥 중이던 놈들까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눈에 보아도 최소 수십은 되어 보였다.
“젠장, 대체 얼마나 들어온 거냐?”
쾅!
챙그랑!!
그때, 좌측에서 유리문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 현관의 굳게 닫힌 유리문이 땅바닥으로 쓰러지며 산산조각 났다.
쿠익!
“하아…….”
붉은 눈의 멧돼지가 몸을 던져 중앙 현관문을 부수며 들어왔다. 중앙 현관에 진입한 멧돼지는 목 부위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콧김을 내뿜으며 주변을 사납게 살폈다.
공포탄 소리를 들은 녀석이 다짜고짜 돌진해 온 것 같았다.
그래, 내 행동은 바보 같았다. 인정한다.
중앙 현관에 출몰한 멧돼지와 5중대 쪽에서 달려온 괴물들까지… 전부 몰려왔군.
“기태야.”
“…왜?”
“내 꼴이 저 돼지랑 똑같아지면, 이성을 잃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
“에이 씨!!”
기태가 얼굴을 붉히며 쌍욕을 퍼부었다.
“네 손으로 나를 죽여 줘. 만약 네가 아직 전역하기 전이라면 말이야.”
“형! 진짜… 이 와중에!”
녀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건 녀석이 나와 훈련병들을 살리고 나서 친 대사를 따라 한 것이었으니까.
‘형, 하나만 더 부탁할게. 이 엿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곧 또 볼지도 몰라. 그때 내 꼴이 저 돼지랑 똑같으면… 이성을 잃고 형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
‘형 손으로 나를 좀 죽여 줘. 만약… 형이 전역하기 전이라면 말이야.’
“네 평생의 흑역사다, 인마.”
“…….”
“살자, 둘 다.”
“오케이.”
나와 기태는 소총을 굳게 잡고 조금 뒷걸음질 치면서 수없이 늘어난 붉은 눈의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많기도 하다.
그러나 복도는 좁다. 수많은 좀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중앙 현관의 공간에 비해 복도는 세 마리 이상 동시에 통과하기 힘들다. 뭐, 그것도 규칙을 잘 지킬 때의 얘기지만.
크르르!!
쿠익!!
크와아아아아!!
놈들이 동시에 달려들며 좁은 복도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좁아지는 6중대 복도 입구에 끼어 마구 버둥거릴 뿐이다. 오로지 나만을 노리고 앞뒤 없이 달려들다 보니 좁은 복도에 다 같이 끼어 버린 것이었다.
붐비기 전에 먼저 복도 안으로 치고 들어온 놈은 중앙 현관을 깨부수고 돌진해 들어온 멧돼지뿐이었다.
쿠익!!
“내가 오른눈.”
“왼눈.”
이성을 잃은 멧돼지가 단번에 뿔로 쳐 버릴 듯 나만을 보며 달려들었다.
나와 기태가 동시에 앞으로 소총을 내질렀다. 대검이 끼워진 두 정의 소총 끝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멧돼지의 눈을 겨냥했다.
쿠에에에에에에엑!!
나의 대검은 녀석의 오른눈을, 기태의 대검은 왼눈에 꽂혔다.
동시에 두 눈을 잃은 녀석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자, 나와 기태는 그대로 대검을 뽑아 들며 놈의 두개골에 다시 한번 꽂아 넣었다.
마구 달려든 탓에 막혀 버린 좁은 복도.
그 와중에 몸을 빼낸 붉은 눈의 강아지 한 마리가 마구 짖으며 달려들었다. 딱 봐도 앞서 대형견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게거품을 물고 짖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자못 사납다.
“기태야, 이대로면 끝이 없겠다.”
깨갱!!
군홧발로 자그마한 강아지를 차 버리면서 혀를 찼다.
슬슬 숨이 차오른다. 순간, 문득 자각했다.
…오늘이 내 전역날이구나.
“으, 아아아아아악!!”
크르아아악!!
“우와악!!”
5중대 쪽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와중에 복도 끝 5중대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활관에 들어가던 1, 2소대 훈련병들은 갑작스런 소란에 놀란 듯 움직임이 둔해졌다.
“1, 2소대 훈련병, 전원 주목!!”
5중대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7중대가 있고, 그대로 우측으로 쭉 내달리면 중앙 현관을 지나 내가 있는 6중대 1, 2소대 복도에 닿는다.
즉, 1, 2소대는 5중대를 뚫고 들어온 놈들의 길목이었다.
“주목!!”
훈련병들은 기계적으로 복명복창하며 수군거림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생활관에 들어가서 각자 야전삽 챙기고 3, 4소대 쪽 복도로 이동한다!! 실시!!”
“실시!!”
야전삽은 자물쇠가 달린 보관함에 모아 놓은 총기와 달리 각자의 관물대 위에 보관되어 있다. 당장 몸을 보호할 만한 무기였다.
소총과 대검을 장착한 126번 훈련병이 복도 가운데에서 1, 2소대 동료 훈련병들을 재촉했고, 1, 2소대 훈련병들은 나의 명령에 따라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통통통통…….
그 와중에도 6중대 현관문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딱따구리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려 댔다. 당장 5중대 쪽으로 달려가서 시간을 벌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만약 6중대 쪽 문이 뚫리면 3, 4소대까지 전부 위험해진다.
“젠장, 젠장……!”
바로 그때였다.
문을 두드려 대던 괴물 훈련병 뒤쪽으로 웬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가 잡아채듯 문을 두드리던 딱따구리 병사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이어서 대검으로 훤히 드러난 목을 그대로 그어 버렸다.
“너……!”
6중대 출입문을 철모로 두드리던 병사가 피를 내뿜으며 앞으로 쓰러지는 그 순간, 나는 문밖에 선 녀석의 붉은 눈을 보았다. 깜짝 놀란 나머지 잠깐 뒷걸음질까지 쳤다.
어떻게…….
피를 뒤집어쓴 상태이지만,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미 한차례 나와 훈련병 일행을 구한 적 있는 녀석. 내 후임, 김기태 상병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잠깐 망설여졌다. 붉은 눈동자는 분명 앞서 기태의 손에 의해 목숨이 끊어진 괴물 녀석과 같다. 만일 기태 역시 그런 괴물로 변해 버린 것이라면…….
그때, 기태의 입술이 다급히 움직였다.
“이장군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잠긴 문을 열어 주었다.
“형이라고 불러, 인마!”
다짜고짜 들어오는 녀석을 한 번 껴안았다.
피 냄새가 코를 훅 찔러 왔지만, 기태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진짜… 진짜 다행이다, 새끼야!”
“형,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형은 내 취향도 아니고.”
붉은 눈동자와 별개로 이 녀석은… 멀쩡하다! 명백히 이성을 갖고 있고, 그 와중에 농담까지 한다.
하지만 녀석의 말이 맞았다. 기뻐할 틈 따위는 없다.
5중대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1, 2소대 훈련병들은 빠르게 한 손에 야전삽을 챙겨 들고 나와 3, 4소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든 상황은 말할 수 없이 급박했다.
나는 황급히 6중대 현관문을 다시 닫아걸고 5중대 쪽을 노려보았다.
드디어 피를 뒤집어쓴 붉은 눈의 병사와 온갖 짐승들이 6중대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5중대 쪽에서 도망오던 훈련병 하나가 붉은 눈의 맹견에게 다리를 잡혀 질질 끌려가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다.
“사, 사, 살려… 으아아아아아아!!”
“으, 으아아!! 도망쳐!!”
훈련병을 덮쳐 물어뜯는 그 괴물은 더 이상 흔히 길가에서 볼 수 있는 개로 보이지 않았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친 6중대 1, 2소대 훈련병들이 내 쪽으로 달려오며 황급히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기태야, 일단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내가 가서 막을 테니까, 형은 애들 빨리 피신시켜.”
기태가 내 말을 막더니, 피투성이의 단검이 끼워진 소총을 고쳐 잡았다. 그러더니 망설임 없이 5중대 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들에게로 달려갔다. 그야말로 피를 뒤집어쓴 전사의 모습이었다.
대체 이 자식은 어떤 밤을 보냈기에…….
나는 입술을 깨문 채 기태와 함께 달렸다.
“김기태, 건방 떨지 마! 너 혼자 뭘 하겠다고. 126번 훈련병!!”
1, 2소대 훈련병들과 함께 5중대 쪽에서 나타난 괴물들을 보고 얼어 있던 126번 훈련병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이어 기태에 시선이 닿자 녀석이 입이 쩍 벌어졌다.
하긴, 나도 처음 기태를 보았을 때는 어지간히 놀랐으니까.
“부, 분대장님!”
“뭐 해, 인마! 빨리 남은 애들이랑 3, 4소대 쪽으로 달려!! 나랑 김기태 분대장이 뒤를 막을 테니까, 그냥 졸라 달려!!”
“네, 넵!!”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직 책상 쪽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목청껏 외쳐 댔다.
“1, 2소대 훈련병들, 모두 빨리 나오십쇼!! 어서 3, 4소대 쪽으로!!”
허둥대다가 늦은 훈련병들이 1, 2소대 생활관에서 뒤늦게 쏟아져 나왔다. 나와 기태는 5중대 복도 쪽에서 슬슬 먹잇감을 노리고 다가오는 붉은 눈들과 마주했다.
크르르…….
가장 앞에 있던 붉은 눈의 애꾸눈 대형견이 먼저 나섰다.
한때 흰색을 띠었을 게 분명한 녀석의 털은 이미 대부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주둥이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내장 기관이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고,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등 근육이 도드라졌다.
그 오른편으로 <3―031> 교번을 단 훈련병 복장의 녀석이 입에 피 칠갑을 한 채 나타났다. 3중대 훈련병, 즉 1교육대 훈련병이다. 아마도 몇 시간 전에 초소 근무를 나갔다가 괴물들에게 물려서 변해 버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1교육대도 이미 괴물들에게 짓밟혔거나.
“내가 오른쪽 훈련병.”
“왜? 훈련병이 더 쉬울 것 같아?”
기태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 새끼는 이 와중에도…….
나 역시 이 끔찍한 상황에서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인마.”
어차피 좌측의 애꾸눈 똥개도 나를 노릴 것임을 이미 안다. 몇 시간 전에 이미 확인했다. 붉은 눈의 괴물은… 역시 붉은 눈으로 변해 버린 기태를 공격하지 않는다.
“믿는다, 기태야.”
“온다!”
개와 병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개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오로지 훈련병만을 응시했다.
개의 입이야 날선 이빨이 박힌, 어찌 보면 빤한 짐승의 아가리지만, 3중대 훈련병 쪽은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다.
3중대 훈련병도 마치 짐승처럼 입을 쩍 벌렸는데, 통상적인 의미의 입 벌림이 아니었다. 녀석의 입 좌우가 아예 찢어져 있고, 그 속은 핏물로 가득했다. 흉측한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인 놈이 목을 쭉 뺀 채 옆의 똥개와 함께 온몸을 던져 왔다.
“으아아!!”
나는 그대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3중대 녀석의 미간만 바라보았다. 과도하게 찢어진 입 위쪽에 드러난 코와 눈.
좌측 발은 디딤축으로 오른발을 쭉 빼며 놈의 미간을 향해 대검을 내질렀다.
‘찔러’ 총검술의 자세였다.
바로 그 순간, 내 쪽으로 달려들던 똥개의 목에는 기태가 내지른 단검이 파고들었다.
크르륵!!
컥!!
나를 향해 달려들던 개와 3중대 훈련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되어 그 자리에 엎어졌다. 각각 목과 머리를 관통당한 둘은 잠깐의 움찔거림 후 곧바로 절명했다.
“형은 오지 마! 표적이 되잖아!”
기태가 곧바로 대검을 빼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기태를 따라붙었다.
기태는 표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기태는 놈들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없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끔찍한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옆을 보니 기태 역시 우뚝 멈춰서 얼어 있다.
“이런 제길…….”
최소 열 명은 되어 보이는 5중대 훈련병들이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6중대 쪽으로 도망가려다가 뒤를 잡혀 당한 듯 보였다. 그 와중에 몇은 피투성이인 채 아직 살아 있었다.
“분대장님… 사, 살려…….”
그러나 내 쪽으로 손을 뻗은 훈련병의 목덜미에 곧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이 깊숙이 박혔다. 뒤이어 훈련병의 목이 짐승의 턱 힘에 의해 그대로 꺾여 버렸다. 붉은 눈의 다른 병사가 와서 그의 다리를 물어뜯는다.
“젠장…….”
언뜻 살피니 이미 중앙 현관의 다른 훈련병들 상당수는 목숨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일부는 여전히 움찔거리고 있다.
“이런 시발…….”
나는 이를 악물고 소총을 들어 올렸다.
조정간 단발.
기태는 그런 내 움직임을 보고 놀라서 내 팔을 잡았다.
“형!”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 있잖아.”
“…형!!”
방아쇠를 당긴다.
격발.
탕!!
소총에 장전되어 있던 공포탄이 폭죽 터지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초소 근무를 나가기 전에 챙긴 공포탄이다. 살상 능력은 없으며, 그저 주의만 끌 뿐이라는 걸 나도 안다.
놈들은 도망가지 않겠지.
하지만 눈앞에서 훈련병들이 뜯어 먹히는 꼴을 본 내 선택은… 이런 멍청한 짓이었다.
중앙 현관에서 쓰러진 5중대 훈련병들을 포식하고 있던 무수한 붉은 눈들이 모조리 이쪽을 향했다.
치밀어 오르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공포탄 소리를 듣고 5중대 생활관 안에서 사냥 중이던 놈들까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눈에 보아도 최소 수십은 되어 보였다.
“젠장, 대체 얼마나 들어온 거냐?”
쾅!
챙그랑!!
그때, 좌측에서 유리문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 현관의 굳게 닫힌 유리문이 땅바닥으로 쓰러지며 산산조각 났다.
쿠익!
“하아…….”
붉은 눈의 멧돼지가 몸을 던져 중앙 현관문을 부수며 들어왔다. 중앙 현관에 진입한 멧돼지는 목 부위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콧김을 내뿜으며 주변을 사납게 살폈다.
공포탄 소리를 들은 녀석이 다짜고짜 돌진해 온 것 같았다.
그래, 내 행동은 바보 같았다. 인정한다.
중앙 현관에 출몰한 멧돼지와 5중대 쪽에서 달려온 괴물들까지… 전부 몰려왔군.
“기태야.”
“…왜?”
“내 꼴이 저 돼지랑 똑같아지면, 이성을 잃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
“에이 씨!!”
기태가 얼굴을 붉히며 쌍욕을 퍼부었다.
“네 손으로 나를 죽여 줘. 만약 네가 아직 전역하기 전이라면 말이야.”
“형! 진짜… 이 와중에!”
녀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건 녀석이 나와 훈련병들을 살리고 나서 친 대사를 따라 한 것이었으니까.
‘형, 하나만 더 부탁할게. 이 엿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곧 또 볼지도 몰라. 그때 내 꼴이 저 돼지랑 똑같으면… 이성을 잃고 형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
‘형 손으로 나를 좀 죽여 줘. 만약… 형이 전역하기 전이라면 말이야.’
“네 평생의 흑역사다, 인마.”
“…….”
“살자, 둘 다.”
“오케이.”
나와 기태는 소총을 굳게 잡고 조금 뒷걸음질 치면서 수없이 늘어난 붉은 눈의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많기도 하다.
그러나 복도는 좁다. 수많은 좀비들이 머무를 수 있는 중앙 현관의 공간에 비해 복도는 세 마리 이상 동시에 통과하기 힘들다. 뭐, 그것도 규칙을 잘 지킬 때의 얘기지만.
크르르!!
쿠익!!
크와아아아아!!
놈들이 동시에 달려들며 좁은 복도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좁아지는 6중대 복도 입구에 끼어 마구 버둥거릴 뿐이다. 오로지 나만을 노리고 앞뒤 없이 달려들다 보니 좁은 복도에 다 같이 끼어 버린 것이었다.
붐비기 전에 먼저 복도 안으로 치고 들어온 놈은 중앙 현관을 깨부수고 돌진해 들어온 멧돼지뿐이었다.
쿠익!!
“내가 오른눈.”
“왼눈.”
이성을 잃은 멧돼지가 단번에 뿔로 쳐 버릴 듯 나만을 보며 달려들었다.
나와 기태가 동시에 앞으로 소총을 내질렀다. 대검이 끼워진 두 정의 소총 끝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멧돼지의 눈을 겨냥했다.
쿠에에에에에에엑!!
나의 대검은 녀석의 오른눈을, 기태의 대검은 왼눈에 꽂혔다.
동시에 두 눈을 잃은 녀석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자, 나와 기태는 그대로 대검을 뽑아 들며 놈의 두개골에 다시 한번 꽂아 넣었다.
마구 달려든 탓에 막혀 버린 좁은 복도.
그 와중에 몸을 빼낸 붉은 눈의 강아지 한 마리가 마구 짖으며 달려들었다. 딱 봐도 앞서 대형견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게거품을 물고 짖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자못 사납다.
“기태야, 이대로면 끝이 없겠다.”
깨갱!!
군홧발로 자그마한 강아지를 차 버리면서 혀를 찼다.
슬슬 숨이 차오른다. 순간, 문득 자각했다.
…오늘이 내 전역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