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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새벽의 사투 (1)
“이런, 이런 젠장… 다, 다시 연대본부랑 지구 병원이랑 다 걸어 봐!”
상황실을 나오기 직전에 슬쩍 보니, 당직병 김성욱 일병은 내가 밤새 눌러 대던 번호를 누르면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불쌍한 녀석. 이런 상황에 하필 1소대장 바로 옆에서 당직을 서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훈련병들은 상황실 밖으로 나오자 기진맥진한 표정을 한 채 내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분대장님.”
오랫동안 숨죽인 채 숨어 있다가 괴물들을 피해 질주했으며, 방금 전까지 얼차려를 받은 녀석들이다.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샤워 시간을 주고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총과 대검을 소지한 눈앞의 훈련병들은 교육대 내에서 유일하게 바깥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유사시 제일 적극적으로 대응 가능한 녀석들이었다.
“6중대 세 명, 너희는 일단 내려가서 당직 책상 앞에 대기해. 소총이랑 대검 잘 간수하고, 다른 훈련병들에게 함부로 입 열지 마라. 바깥에서 있던 일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뜻이야.”
“네!”
조금은 걱정되었다. 분명 동료 훈련병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 와중에 이 녀석들이 입을 잘못 놀리면 훈련병들 전체가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내려가서 복도 불침번들한테 내가 보고 준비 확실히 하랬다고 미리 얘기해 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7중대 너…….”
네 명의 훈련병 중 유일한 7중대 훈련병. 녀석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지금 7중대는 공백 상태다. 인솔 나간 당직 분대장은 돌아오지 않았고, 훈련병들끼리 불침번을 돌면서 유지되고 있다.
“일단 7중대로 돌아가. 아마 다른 당직 분대장이 곧 갈 거다. 그때 네가 겪은 일들을 보고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중대 훈련병이 내게 경례한 뒤, 소총을 늘어뜨린 채 7중대 쪽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간신히 살아남으면서 당장 함께 근무 나간 전우조의 죽음을 목격했다.
녀석의 심리 상태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다른 중대 훈련병을 따로 빼돌릴 경우 인원 파악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었다. 더불어 내게 다른 중대 훈련병까지 챙겨 줄 만한 심적 여유도 없었다.
“분대장님…….”
126번 훈련병이 나를 불렀다.
“김기태 분대장님은… 함께 못 오신 겁니까?”
1소대장에게 기태의 인식표를 내보였을 때,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때문에 훈련병들은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해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126번 훈련병의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내려가 있어.”
훈련병들이 중앙 계단을 통해 1층 6중대 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입술을 깨물며 3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 모든 기간병들을 깨울 차례였다.
“추, 충성!”
3층에 오르자 체력 단련실 앞에서 서성이던 불침번이 날 알아보고 경례했다.
젠장, 이번 달에 막 일병으로 진급한 놈이다.
“…니가 불침번이냐?”
“일병 차승준. 예, 그렇습니다.”
“…….”
녀석에게 시켜서 대대 기간병들을 깨우면 어떤 꼴이 날지 안 봐도 빤했다. 선임병들이 쌍욕을 박으면서 눈앞의 불쌍한 녀석을 잡아먹으려고 하겠지.
지난 기수부터 도입된 동기 생활관이 이런 면에서는 편했다.
“가서 일병하고 이병들부터 전부 깨워. 전 기간병 상황실로 집합이다. 단, 불 켜지 말고.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모여야 돼.”
“네?”
얼빵한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니 속이 답답했다.
이런 판국에 ‘네?’라니…….
“당직 사관님 지시야. 다 깨워. 병장들은 내가 깨우러 간다.”
“네, 넵!”
나는 곧바로 병장들이 모여 자는 곳으로 향했다.
“야, 다들 기상!”
꿈쩍도 않는다.
“일어나라고, 다들!”
“…….”
“야, 이 새끼들아! 비상이라고! 일어나!”
본인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모르쇠를 놓는 데에 도가 튼 병장들이지만, 나보다 짬 높은 놈은 없다. 가장 깊숙한 곳에 내 동기가 한 놈 있긴 하지만.
“아, 뭐야~!”
“으음…….”
“뭐야… 몇 시야?”
“에이, 시발.”
아니나 다를까, 험한 욕부터 튀어나온다.
병장이 되면 다들 까닭 없이 건방져진다. 친절하고 신중하던 녀석들까지 뭐라도 잘못 먹은 것마냥 병장 계급을 달자마자 후임에게 함부로 하는 꼴을 많이 보았다.
이쯤 되면 ‘병장’이라는 계급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뭐, 어쨌든 다시 말하지만, 지금 여기에 나보다 짬이 높은 사람은 없다.
“지금 밖에 난리 났다. 일어나!”
“아~ 형, 뭐야? 전역날이라고 자랑하는 거야?”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를 지껄여 대는 놈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전역날 기쁨에 못 이겨 새벽부터 일어나 장난치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끔찍했다.
“기태랑 준혁이가 죽었어… 일어나.”
나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고,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병장들이 부스럭대며 일어났다.
“당직 사관이 기간병 전부 깨워서 다 2층 상황실로 집합시키라더라. 일어나.”
“…방금 뭐랬어, 형?”
“뭔 소리야? 누가 죽었다고?”
누군가의 물음이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불 켜지 마. 큰 소리도 내지 말고. 잘못하면 좆 된다. 조용히 상황실 앞으로 모여.”
3층이면 안전할 수도 있지만, 또 모를 일이다. 안개 속에 하늘을 나는 괴물이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잠에서 덜 깬 병장들을 남겨 둔 채 밖으로 나와 상병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억지로 일어난 직후의 험악한 분위기는 병장 생활관과 얼추 비슷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상병들 역시 반신반의하면서 침구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3층은 다소 떠들썩해졌고, 나는 녀석들이 일어난 것을 확인한 후 곧장 1층으로 향했다. 기태의 빈자리를 일단 내가 메워야 한다.
6중대 현관. 이제부터 내가 지켜야 할 곳은 2교육대의 우측 출입문이었다.
* * *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가 6중대 당직 책상에 도착하니 각 소대 불침번들이 나와서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124번, 125번, 126번 훈련병들 역시 책상 앞에서 대기하다가 나를 보고 경례했다.
“1소대부터 인원 총기 상태 보고해.”
“충성! 41번 훈련병 우길태. 1소대 인원은 47명, 총기 47정 이상 없습니다.”
나는 훈련병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틈틈이 현관 밖 안개를 노려보았다.
당장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훈련병 생활관에는 다행히 별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훈련병들의 보고가 끝날 무렵.
통, 통, 통.
현관 너머의 안개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빛나리.”
현관 불침번을 서던 훈련병들이 배운 그대로 또다시 암구호를 말했다.
난 황급히 손을 들어 인원을 보고하던 4소대 생활관 불침번의 말을 멈추고 현관을 주시했다.
살아 돌아온 병사일까?
통, 통, 통.
누군가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소리가 좀 이상했다.
“부, 분대장님.”
현관 불침번을 서던 훈련병 하나가 뒤돌아서서 나를 불렀다.
나 역시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당직 책상을 박차고 나와 바깥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저기… 철모로…….”
“보고 있다.”
통, 통, 통.
안개 속에서 보이는 것은 분명 사람의 형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팔이 빠진 것처럼 덜렁거리고, 놈의 다리 역시 부들부들 떨린다. 진득한 액체 같은 것이 안면에서 흘러나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철모 쓴 머리를 앞쪽으로 숙인 탓에 녀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괴한 행색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놈이 취하고 있는 괴상한 행동이었다.
통, 통, 통.
머리로, 정확히는 철모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두워서 철모에 새겨진 것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저건… ‘훈련병의 철모’다.
기간병이나 간부들의 철모와 달리 훈련병의 것은 초록색으로 페인트칠 같은 것을 한 뒤, 그 위에 교번을 하얗게 새겨 놓았다. 그 투박한 칠 자국이 어두운 와중에도 확실하게 보였다. 하지만 방탄에 새겨진 놈의 교번이나 군복의 교번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훈련병이 혼자서 살아 돌아온 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통, 통, 통.
문을 두드린 그 자리에 정체 모를 끈적끈적한 액체가 흔적을 남기더니 천천히 흘러내린다.
피다.
그때, 가까이 다가오던 내 모습을 본 현관 불침번이 확인에 용이하도록 도울 요량으로 현관 전등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부, 불 켜지 마!”
이미 늦은 뒤였다.
한 타이밍 빠르게 현관의 불이 밝혀졌다.
젠장.
놈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코가 뜯어 먹힌 듯 뭉텅 잘려 나갔고, 볼도 찢어져 있다. 코와 볼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무엇보다 놈의 붉은 눈이 빛난다.
<8―113>
오늘 초소 근무에 투입된 8중대 훈련병이었다. 그 순간, 8중대 초소 근무를 나간 분대장 이준혁 상병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태의 팔을 군복째로 물어뜯어 감염시켰다고 했다.
기태가 말한 ‘그것’이 분명했다. 붉은 눈의 괴물.
식겁한 훈련병이 황급히 다시 불을 껐다.
통통통통통통통…….
하지만 잠깐의 불빛만으로 교육대 내부를 살핀 놈이 미친 듯이 박치기를 해 대기 시작했다.
이제 교육대 내부마저 확실히 위험해졌다.
“현관 불침번, 둘 다 뒤로 물러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놈의 얼굴을 본 현관 불침번 훈련병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이미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선 뒤였다.
난 황급히 소총에 대검을 끼운 뒤, 현관을 겨냥했다.
그래, 역시 상황실에서 무기를 들고 나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교육대 입구인 6중대 현관을 막으려면 무장하고 있어야 했다.
한편, 보고하던 훈련병들과 다음번 교대를 위해 당직 책상 앞으로 나온 훈련병들까지 전부 이쪽을 보고 있다.
대부분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훈련병들은 밖에 나가 보지 않았다. 밖에서 누가 죽어 나갔다는 사실 역시 모른다. 그러니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알 리 없었다.
그 와중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밖에 없는 세 명은 반대로 내 곁에 다가와 서 있다. 긴장한 표정으로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126번!”
“126번 훈련병, 박규태!”
“가서 1, 2소대 훈련병들 전부 깨워. 야전삽 챙겨 들라고 한 다음, 생활관 문 닫아 잠그라고 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절대 열어 주지 말고! 나머지 1, 2소대 불침번들은 126번 훈련병 도와라.”
“부, 분대장님……!”
훈련병 하나가 겁을 먹고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들어줄 여유 따위는 없다. 나는 녀석의 말을 막고 사납게 다그쳤다.
“실시!”
“실시! 1, 2소대 불침번분들, 이쪽으로 와요! 빨리!”
126번 훈련병이 복명복창 후 황급히 움직이더니, 1, 2소대 훈련병들을 이끌고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지금껏 참아 온 듯 바깥을 돌아다니는 괴물에 대해 입을 털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제 더는 비밀도 아니다.
“125번!”
“125번 훈련병, 차재상!”
“넌 3, 4소대 쪽 맡아.”
사실 녀석이 제일 불안했다. 울음 많고 겁도 많은 녀석.
괜찮을까?
“네, 넵! 3, 4소대 훈련병들은 이쪽으로 오십쇼!”
의외로 우렁차게 대답하며 빠르게 움직인다. 이제야 비로소 곰같이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관 밖의 괴물을 보고 정신이 바짝 든 모양이었다.
“124번!”
“124번 훈련병, 김지철!”
훈련병들 중에서는 제일 똑똑하던 녀석이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나 124번 훈련병에게 맡길 역할이 제일 중요하면서도 가장 골치 아픈 역할이다.
“너는 2층 상황실 올라가서 당직 사관님이랑 모여 있는 분대장들한테 교육대 인원 전부 무장해야 한다고 전해. 꼭, 꼭 설득해야 한다! 네 역할이 진짜 중요해!”
“명심하겠습니다. 충! 성!”
녀석이 결연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에 경례까지 해 보이고는 2층에 뛰어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중요하다.
어떻게든 버틴다.
통통통통통통통…….
딱따구리 새끼. 놈은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행히 그 정도로 깨질 문은 아니지만, 안개 속에 놈 하나만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딱따구리 놈의 철모에 집중하고 있던 찰나.
쨍그랑!!
컹! 컹!
으아아아아!!
반대쪽, 5중대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1, 2소대 생활관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고 있는 우리 중대 훈련병들이 보였다.
젠장.
우리 교육대 전면의 문은… 세 개다.
5중대가 뚫렸다면…….
다음은 우리 6중대 1, 2소대다.
“1, 2소대 훈련병 전원 주목!!”
“이런, 이런 젠장… 다, 다시 연대본부랑 지구 병원이랑 다 걸어 봐!”
상황실을 나오기 직전에 슬쩍 보니, 당직병 김성욱 일병은 내가 밤새 눌러 대던 번호를 누르면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불쌍한 녀석. 이런 상황에 하필 1소대장 바로 옆에서 당직을 서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훈련병들은 상황실 밖으로 나오자 기진맥진한 표정을 한 채 내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분대장님.”
오랫동안 숨죽인 채 숨어 있다가 괴물들을 피해 질주했으며, 방금 전까지 얼차려를 받은 녀석들이다.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샤워 시간을 주고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총과 대검을 소지한 눈앞의 훈련병들은 교육대 내에서 유일하게 바깥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유사시 제일 적극적으로 대응 가능한 녀석들이었다.
“6중대 세 명, 너희는 일단 내려가서 당직 책상 앞에 대기해. 소총이랑 대검 잘 간수하고, 다른 훈련병들에게 함부로 입 열지 마라. 바깥에서 있던 일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뜻이야.”
“네!”
조금은 걱정되었다. 분명 동료 훈련병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 와중에 이 녀석들이 입을 잘못 놀리면 훈련병들 전체가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내려가서 복도 불침번들한테 내가 보고 준비 확실히 하랬다고 미리 얘기해 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7중대 너…….”
네 명의 훈련병 중 유일한 7중대 훈련병. 녀석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지금 7중대는 공백 상태다. 인솔 나간 당직 분대장은 돌아오지 않았고, 훈련병들끼리 불침번을 돌면서 유지되고 있다.
“일단 7중대로 돌아가. 아마 다른 당직 분대장이 곧 갈 거다. 그때 네가 겪은 일들을 보고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중대 훈련병이 내게 경례한 뒤, 소총을 늘어뜨린 채 7중대 쪽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간신히 살아남으면서 당장 함께 근무 나간 전우조의 죽음을 목격했다.
녀석의 심리 상태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다른 중대 훈련병을 따로 빼돌릴 경우 인원 파악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었다. 더불어 내게 다른 중대 훈련병까지 챙겨 줄 만한 심적 여유도 없었다.
“분대장님…….”
126번 훈련병이 나를 불렀다.
“김기태 분대장님은… 함께 못 오신 겁니까?”
1소대장에게 기태의 인식표를 내보였을 때,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때문에 훈련병들은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해 모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126번 훈련병의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내려가 있어.”
훈련병들이 중앙 계단을 통해 1층 6중대 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입술을 깨물며 3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 모든 기간병들을 깨울 차례였다.
“추, 충성!”
3층에 오르자 체력 단련실 앞에서 서성이던 불침번이 날 알아보고 경례했다.
젠장, 이번 달에 막 일병으로 진급한 놈이다.
“…니가 불침번이냐?”
“일병 차승준. 예, 그렇습니다.”
“…….”
녀석에게 시켜서 대대 기간병들을 깨우면 어떤 꼴이 날지 안 봐도 빤했다. 선임병들이 쌍욕을 박으면서 눈앞의 불쌍한 녀석을 잡아먹으려고 하겠지.
지난 기수부터 도입된 동기 생활관이 이런 면에서는 편했다.
“가서 일병하고 이병들부터 전부 깨워. 전 기간병 상황실로 집합이다. 단, 불 켜지 말고.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모여야 돼.”
“네?”
얼빵한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니 속이 답답했다.
이런 판국에 ‘네?’라니…….
“당직 사관님 지시야. 다 깨워. 병장들은 내가 깨우러 간다.”
“네, 넵!”
나는 곧바로 병장들이 모여 자는 곳으로 향했다.
“야, 다들 기상!”
꿈쩍도 않는다.
“일어나라고, 다들!”
“…….”
“야, 이 새끼들아! 비상이라고! 일어나!”
본인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모르쇠를 놓는 데에 도가 튼 병장들이지만, 나보다 짬 높은 놈은 없다. 가장 깊숙한 곳에 내 동기가 한 놈 있긴 하지만.
“아, 뭐야~!”
“으음…….”
“뭐야… 몇 시야?”
“에이, 시발.”
아니나 다를까, 험한 욕부터 튀어나온다.
병장이 되면 다들 까닭 없이 건방져진다. 친절하고 신중하던 녀석들까지 뭐라도 잘못 먹은 것마냥 병장 계급을 달자마자 후임에게 함부로 하는 꼴을 많이 보았다.
이쯤 되면 ‘병장’이라는 계급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뭐, 어쨌든 다시 말하지만, 지금 여기에 나보다 짬이 높은 사람은 없다.
“지금 밖에 난리 났다. 일어나!”
“아~ 형, 뭐야? 전역날이라고 자랑하는 거야?”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를 지껄여 대는 놈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전역날 기쁨에 못 이겨 새벽부터 일어나 장난치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끔찍했다.
“기태랑 준혁이가 죽었어… 일어나.”
나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고,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병장들이 부스럭대며 일어났다.
“당직 사관이 기간병 전부 깨워서 다 2층 상황실로 집합시키라더라. 일어나.”
“…방금 뭐랬어, 형?”
“뭔 소리야? 누가 죽었다고?”
누군가의 물음이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불 켜지 마. 큰 소리도 내지 말고. 잘못하면 좆 된다. 조용히 상황실 앞으로 모여.”
3층이면 안전할 수도 있지만, 또 모를 일이다. 안개 속에 하늘을 나는 괴물이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잠에서 덜 깬 병장들을 남겨 둔 채 밖으로 나와 상병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억지로 일어난 직후의 험악한 분위기는 병장 생활관과 얼추 비슷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상병들 역시 반신반의하면서 침구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3층은 다소 떠들썩해졌고, 나는 녀석들이 일어난 것을 확인한 후 곧장 1층으로 향했다. 기태의 빈자리를 일단 내가 메워야 한다.
6중대 현관. 이제부터 내가 지켜야 할 곳은 2교육대의 우측 출입문이었다.
* * *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가 6중대 당직 책상에 도착하니 각 소대 불침번들이 나와서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124번, 125번, 126번 훈련병들 역시 책상 앞에서 대기하다가 나를 보고 경례했다.
“1소대부터 인원 총기 상태 보고해.”
“충성! 41번 훈련병 우길태. 1소대 인원은 47명, 총기 47정 이상 없습니다.”
나는 훈련병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틈틈이 현관 밖 안개를 노려보았다.
당장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훈련병 생활관에는 다행히 별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훈련병들의 보고가 끝날 무렵.
통, 통, 통.
현관 너머의 안개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빛나리.”
현관 불침번을 서던 훈련병들이 배운 그대로 또다시 암구호를 말했다.
난 황급히 손을 들어 인원을 보고하던 4소대 생활관 불침번의 말을 멈추고 현관을 주시했다.
살아 돌아온 병사일까?
통, 통, 통.
누군가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소리가 좀 이상했다.
“부, 분대장님.”
현관 불침번을 서던 훈련병 하나가 뒤돌아서서 나를 불렀다.
나 역시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당직 책상을 박차고 나와 바깥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저기… 철모로…….”
“보고 있다.”
통, 통, 통.
안개 속에서 보이는 것은 분명 사람의 형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팔이 빠진 것처럼 덜렁거리고, 놈의 다리 역시 부들부들 떨린다. 진득한 액체 같은 것이 안면에서 흘러나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철모 쓴 머리를 앞쪽으로 숙인 탓에 녀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괴한 행색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놈이 취하고 있는 괴상한 행동이었다.
통, 통, 통.
머리로, 정확히는 철모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두워서 철모에 새겨진 것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저건… ‘훈련병의 철모’다.
기간병이나 간부들의 철모와 달리 훈련병의 것은 초록색으로 페인트칠 같은 것을 한 뒤, 그 위에 교번을 하얗게 새겨 놓았다. 그 투박한 칠 자국이 어두운 와중에도 확실하게 보였다. 하지만 방탄에 새겨진 놈의 교번이나 군복의 교번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훈련병이 혼자서 살아 돌아온 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통, 통, 통.
문을 두드린 그 자리에 정체 모를 끈적끈적한 액체가 흔적을 남기더니 천천히 흘러내린다.
피다.
그때, 가까이 다가오던 내 모습을 본 현관 불침번이 확인에 용이하도록 도울 요량으로 현관 전등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부, 불 켜지 마!”
이미 늦은 뒤였다.
한 타이밍 빠르게 현관의 불이 밝혀졌다.
젠장.
놈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코가 뜯어 먹힌 듯 뭉텅 잘려 나갔고, 볼도 찢어져 있다. 코와 볼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무엇보다 놈의 붉은 눈이 빛난다.
<8―113>
오늘 초소 근무에 투입된 8중대 훈련병이었다. 그 순간, 8중대 초소 근무를 나간 분대장 이준혁 상병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태의 팔을 군복째로 물어뜯어 감염시켰다고 했다.
기태가 말한 ‘그것’이 분명했다. 붉은 눈의 괴물.
식겁한 훈련병이 황급히 다시 불을 껐다.
통통통통통통통…….
하지만 잠깐의 불빛만으로 교육대 내부를 살핀 놈이 미친 듯이 박치기를 해 대기 시작했다.
이제 교육대 내부마저 확실히 위험해졌다.
“현관 불침번, 둘 다 뒤로 물러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놈의 얼굴을 본 현관 불침번 훈련병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이미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선 뒤였다.
난 황급히 소총에 대검을 끼운 뒤, 현관을 겨냥했다.
그래, 역시 상황실에서 무기를 들고 나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교육대 입구인 6중대 현관을 막으려면 무장하고 있어야 했다.
한편, 보고하던 훈련병들과 다음번 교대를 위해 당직 책상 앞으로 나온 훈련병들까지 전부 이쪽을 보고 있다.
대부분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훈련병들은 밖에 나가 보지 않았다. 밖에서 누가 죽어 나갔다는 사실 역시 모른다. 그러니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알 리 없었다.
그 와중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밖에 없는 세 명은 반대로 내 곁에 다가와 서 있다. 긴장한 표정으로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126번!”
“126번 훈련병, 박규태!”
“가서 1, 2소대 훈련병들 전부 깨워. 야전삽 챙겨 들라고 한 다음, 생활관 문 닫아 잠그라고 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절대 열어 주지 말고! 나머지 1, 2소대 불침번들은 126번 훈련병 도와라.”
“부, 분대장님……!”
훈련병 하나가 겁을 먹고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들어줄 여유 따위는 없다. 나는 녀석의 말을 막고 사납게 다그쳤다.
“실시!”
“실시! 1, 2소대 불침번분들, 이쪽으로 와요! 빨리!”
126번 훈련병이 복명복창 후 황급히 움직이더니, 1, 2소대 훈련병들을 이끌고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지금껏 참아 온 듯 바깥을 돌아다니는 괴물에 대해 입을 털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이제 더는 비밀도 아니다.
“125번!”
“125번 훈련병, 차재상!”
“넌 3, 4소대 쪽 맡아.”
사실 녀석이 제일 불안했다. 울음 많고 겁도 많은 녀석.
괜찮을까?
“네, 넵! 3, 4소대 훈련병들은 이쪽으로 오십쇼!”
의외로 우렁차게 대답하며 빠르게 움직인다. 이제야 비로소 곰같이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관 밖의 괴물을 보고 정신이 바짝 든 모양이었다.
“124번!”
“124번 훈련병, 김지철!”
훈련병들 중에서는 제일 똑똑하던 녀석이다.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러나 124번 훈련병에게 맡길 역할이 제일 중요하면서도 가장 골치 아픈 역할이다.
“너는 2층 상황실 올라가서 당직 사관님이랑 모여 있는 분대장들한테 교육대 인원 전부 무장해야 한다고 전해. 꼭, 꼭 설득해야 한다! 네 역할이 진짜 중요해!”
“명심하겠습니다. 충! 성!”
녀석이 결연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에 경례까지 해 보이고는 2층에 뛰어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중요하다.
어떻게든 버틴다.
통통통통통통통…….
딱따구리 새끼. 놈은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행히 그 정도로 깨질 문은 아니지만, 안개 속에 놈 하나만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딱따구리 놈의 철모에 집중하고 있던 찰나.
쨍그랑!!
컹! 컹!
으아아아아!!
반대쪽, 5중대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1, 2소대 생활관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고 있는 우리 중대 훈련병들이 보였다.
젠장.
우리 교육대 전면의 문은… 세 개다.
5중대가 뚫렸다면…….
다음은 우리 6중대 1, 2소대다.
“1, 2소대 훈련병 전원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