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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전역날 새벽 (6)
다행히 교육대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입구는 바깥쪽의 난리와 무관하게 고요했다.
2교육대의 우측 문 앞에 도착하자, 유리문을 잠근 채 안쪽에 서 있던 훈련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나리.”
그 와중에 현관에 배치된 6중대 훈련병들은 입구를 잘 지키고 있다.
딱히 겁먹은 기색도 없었다.
하긴 바깥이 안개로 가득한데다 어둡기까지 하니 상황을 모를 수밖에 없겠지.
“무지개.”
“신분 확인이 있겠습니다.”
“불 켜지 마!”
딸각.
화들짝 놀란 나의 절규에도 현관 경계 훈련병은 기어코 현관 불을 켜 내 얼굴을 확인했다.
어차피 내 얼굴도 모르는 주제에 배운 그대로 하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불빛은 위험했다.
“꺼, 빨리! 문 열어!”
“신분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녀석은 살짝 졸린 목소리로 불을 끄더니 문을 열었다.
나는 황급히 들어가서 문을 다시 잠갔다.
다행히 불빛을 보고 쫓아 들어오는 놈은 없는 것 같다.
“충성!”
“불 켜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야!”
현관 근무를 서던 훈련병들은 뜬금없이 내게 욕을 먹고 당황한 눈치였다.
하긴 녀석들 입장에서야 억울하겠지. 배운 대로 현관 근무를 선 것뿐인데. 하지만 이 현관문이 놈들에게 어그로를 끌려서 뚫리면 끝장이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아까 훈련병 네 명 먼저 들어왔지?”
“130번 훈련병, 정철. 예, 그렇습니다.”
“걔들 어디로 갔어?”
“그…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애들이 상황실로 갔는데도 지금 이렇게 고요하단 말이지. 빤하다. 1소대장이 녀석들 말을 믿지 않은 거다.
나는 뒤쪽에 텅 비어 있는 6중대 당직 분대장 자리를 쳐다보았다.
기태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였다.
젠장…….
나는 곧바로 복도에서 경계를 서던 훈련병을 불렀다.
“88번 훈련…….”
“됐어, 네 이름 안 궁금해. 지금 당장 가서 각 소대별 인원 체크와 소총 개수 확인 다시 한 다음에 나한테 직접 보고 준비하라고 해. 숫자 똑바로 안 맞으면 다 뒈진다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녀석이 내 말을 듣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뒤돌아 달렸다.
나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8중대 당직 분대장 김호철 병장이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나 경례했다.
“어, 충성! 이장군 병장님, 왜 이제 오십니까? 그 훈련병들은…….”
“그래, 걔들 어딨어? 상황실로 갔지?”
“아, 예. 안 그래도 같이 근무 나간 분대장들 없이 지들끼리 왔기에 놀랐습니다. 아마… 지금 상황실에서 한참 털리는 중일 겁니다.”
“하아~ 준혁이… 말인데…….”
8중대 이준혁.
나와 함께 초소 근무를 나간 녀석이다. 그리고 기태가 말했다.
자신의 손으로… 준혁이를 죽였노라고.
그러나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네. 안 그래도 준혁이랑 훈련병들이 전부 돌아오지를 않아서 이상해하던 참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시간은 3시 40분. 슬슬 4시 근무자들을 인솔해 나갈 타이밍이었다.
“너, 다음 인솔자냐?”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준비 중이었는데… 아까 성욱이가 7중대 상헌이 못 봤냐고 물어봤지 말입니다. 직전 근무자들까지 싹 다 돌아오지를 않아서 지금 성욱이도 당황한 거 같습니다.”
7중대 김상헌 병장은 3시 근무자들을 인솔한 7중대 당직 분대장이었다. 녀석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김성욱 일병. 오늘 1소대장 옆에서 함께 상황실 근무를 서는 대대 당직병이다. 그럼 지금 당직병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는 건데…….
문제는 당직병의 짬이 너무 낮고, 1소대장은 무능하다.
총체적 난국이란 이런 거겠지.
“싹 다 죽은 거 같다.”
“자, 잘 못 들었습니다?”
나는 얼이 나간 김호철을 내버려 두고 황급히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8중대 복도를 지나 상황실에 도착하자, 안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아주 개판이구만!”
당직을 서고 있는 1소대장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일단 당직 사관을 설득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는 저 인간이 이 대대의 책임자이니까.
“충성!”
“어! 그래, 너 이 새끼! 이장군, 너 인마!”
내가 상황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1소대장은 욕을 처박았다.
“너 돌았어? 이 미친 새끼가… 처 돌아가지고 훈련병만 보냈냐? 초소에서 상황실에 직접 전화를 하더니, 이제는……!!”
지금 그게 문제냐?
옆을 보니 네 명의 훈련병이 엎드려뻗쳐 상태로 얼차려를 받는 중이었다.
“얘들한테 보고 못 받으신 겁니까?”
“개소리하고 있네. 뭐, 인마! 밖에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서 지들만 간신히 도망쳤다는, 그 미친 소리? 네가 시켰지, 이 새끼야? 전역날 왜 지랄이야! 조용히 나가면 그만이지, 대체 왜 그래?”
1소대장이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러 댔다.
“소대장님, 지금 바깥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훈련병들부터…….”
내가 한숨을 몰아쉬며 조곤조곤 설명하려 하자, 1소대장은 나의 말을 막아 버렸다.
“너 각오해, 이장군. 네가 전역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러더니 수화기를 직접 집어 든다. 번호 누르는 것을 보니, 연대본부에 전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간밤에 나도 수십 번은 전화한 그 번호다. 당연히 그들은 받지 않았다.
“이 새끼들은 또 왜 안 받아?!”
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1소대장 앞으로 가서 아직까지 주먹에 움켜쥐고 있던 물건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의 돌발 행동에 1소대장이 당황한 듯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가만히 살폈다.
기태의 피 묻은 인식표였다.
소대장은 인식표를 보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쩍 벌렸다. 내가 들고 있는 소총과 대검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내 군복에 튄 피까지.
비로소 내 모습을 제대로 본 소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너……!”
“밖에 나간 근무자들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전부 당했습니다.”
1소대장은 입을 헤, 벌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러기를 잠깐. 그는 그대로 뒤돌아 유리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짙은 안개로 인해 바깥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어?”
1소대장이 눈을 부릅뜨면서 다짜고짜 외쳤다.
이미 그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런데 그는 내게 다시 묻고 있다. 인내심을 갖고 주먹을 떨며 차분하게 말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안개 속에서 뭔가가 나와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어떤 미친놈이 훈련소를 습격해!”
“소대장님,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젠장!”
1소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손으로 입을 막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하필이면 내 근무날에 시발……!”
오늘은 내 전역날이기도 하다.
눈앞의 당직 사관은 지금 피해 상황이나 대처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책임을 회피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
하긴 군대에서 질기게 살아남는 것들은 이런 놈들일지도 모르지.
“우리 교육대에서 현재 밖에 나가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냐?”
1소대장의 질문은 딱히 누군가를 향한 게 아니었다.
당직병은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근무표를 살피기 시작했다.
“에, 그… 6중대 김기태 상병, 7중대 곽철 일병과 훈련병 셋…….”
“그중 하나는 돌아와서 여기 얼차려 받고 있잖아.”
내가 지적하자 당직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꼴을 보다 못해 곧바로 현황을 말했다.
“1시에서 2시 초소 근무자, 2시에서 3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3시에서 4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이 인원들 중 지금 복귀한 건 저희뿐입니다. 맞지?”
총 20명 중 복귀 인원 5명.
마지막으로 당직병에게 확인하자, 그는 목록을 확인하다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거 같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그럼 한 시에 나간 놈들이 지금 네 시가 다 되도록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거잖아! 넌 그런 거 집계해서 보고 안 하고 뭐 했어!”
애꿎은 당직병만 곤죽이 되도록 털리고 있다. 대대 당직병은 보통 일병들이 선다. 당직 사관의 보좌 정도 역할이니, 높은 계급은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보고가 미흡한 당직병에게 잘못이야 있겠지만, 내내 처 자고 있던 누군가의 잘못이 더 클 것이다.
당장 1소대장은 내가 보낸 훈련병들이 보고하는 건 제대로 듣지도 않고 얼차려부터 부여했다. 내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4시 근무 교대 병력도 밖으로 보냈겠지.
“젠장, 젠장! 하필 오늘!”
1소대장은 지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와중에 겁에 질려 있었다.
밖의 괴물들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책임져야 할 지금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도 진급이 밀려서 중사에 머무른 1소대장은 ‘책임’에 있어서만큼은 민감했다.
간밤에 연대가 뒤집어지고, 교육대 근무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책임’을 대체 어떻게 진단 말인가.
“이런 젠장…….”
“그리고 소대장님, 오면서 보니 연대 창고와 병영 식당도 뚫렸습니다.”
“뭐?!”
그냥 얘기하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교육대의 지휘권은 유일한 간부인 1소대장에게 있다. 1소대장이 바깥 사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야, 당직병! 전화, 전화 아직도 안 돼?”
1소대장이 거의 이성을 반쯤 잃고 외치자, 얼이 빠져 있던 녀석은 황급히 수화기를 들고 확인했다.
“안 받습니다!”
1소대장은 그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한 채 벌벌 떨고만 있다.
한편, 옆에서 아직까지 얼차려를 받고 있던 훈련병들은 다른 의미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이런 총체적 난국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일단 각 중대별로 인원과 총기 수량 파악해서 보고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건장치 상태와 위험 요소도 확인해서 보고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해!”
지극히 일반론적인 처방이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지만, 최소한 취해야 하는 조치.
인원과 총기.
훈련소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다.
“지금 6중대, 7중대 당직 분대장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6중대는 제가 맡을 테니, 7중대 인원, 장비 파악은 임시로라도 성욱이에게 맡기시면 어떻습니까?”
대대 당직병, 김성욱 일병이 못내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너도 지금 같은 때에 1소대장 옆에 있는 게 지옥 같겠지.
하지만 1소대장이 어떤 사람인가. 늘 갈굴 수 있는 먹이를 옆에 둬야 안심을 하는 양반이다.
“얘는 대대 당직이잖아! 이장군, 네가 7중대 병장급으로…….”
갑자기 1소대장이 말을 멈췄다.
“아니지. 잠깐만.”
순간, 1소대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공은 독차지하고, 책임은 나눠 진다. 그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기간병들과 상황 공유를 해야지. 전원 기상 시켜. 불 끈 상태로 조용히. 싹 다 내려보내.”
지금 1소대장은 본인이 어떤 조치라도 취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생각이다.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상황을 공유하면서 결정적 의사결정은 늦추려는 것이다.
짬이 늘수록 본인 과시 혹은 책임 회피 기술만 는다. 아니, 어쩌면 그게 능력이려나?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만큼은 내가 말한다고 양보할 리가 없으니까.
더구나 만에 하나 입구가 뚫린다면 그냥 자다가 참변을 당할 수 있으니, 상황을 공유할 필요도 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소대장님, 여기 훈련병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아서 해.”
팔을 후들거리면서 얼차려를 받던 훈련병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한숨을 내쉬며 내 팔에 들린 소총과 피 묻은 대검을 반납하기 위해 근무자 총기 보관실로 향했다.
잠깐.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반납해서는 안 된다. 흘끗 보니 1소대장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허둥대느라 내가 소총과 대검을 반납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훈련병들에게 그들의 소총과 대검 역시 챙기도록 눈으로 신호했다.
124번 훈련병이 가장 먼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납해야 할 소총과 대검을 그대로 챙겼다.
“아직도 안 돼? 지구 병원은?!”
“아, 안 받습니다!”
진땀을 흘리는 1소대장과 성욱이를 내버려 두고 무기를 든 채 상황실을 나왔다.
다행히 교육대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입구는 바깥쪽의 난리와 무관하게 고요했다.
2교육대의 우측 문 앞에 도착하자, 유리문을 잠근 채 안쪽에 서 있던 훈련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나리.”
그 와중에 현관에 배치된 6중대 훈련병들은 입구를 잘 지키고 있다.
딱히 겁먹은 기색도 없었다.
하긴 바깥이 안개로 가득한데다 어둡기까지 하니 상황을 모를 수밖에 없겠지.
“무지개.”
“신분 확인이 있겠습니다.”
“불 켜지 마!”
딸각.
화들짝 놀란 나의 절규에도 현관 경계 훈련병은 기어코 현관 불을 켜 내 얼굴을 확인했다.
어차피 내 얼굴도 모르는 주제에 배운 그대로 하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불빛은 위험했다.
“꺼, 빨리! 문 열어!”
“신분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녀석은 살짝 졸린 목소리로 불을 끄더니 문을 열었다.
나는 황급히 들어가서 문을 다시 잠갔다.
다행히 불빛을 보고 쫓아 들어오는 놈은 없는 것 같다.
“충성!”
“불 켜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야!”
현관 근무를 서던 훈련병들은 뜬금없이 내게 욕을 먹고 당황한 눈치였다.
하긴 녀석들 입장에서야 억울하겠지. 배운 대로 현관 근무를 선 것뿐인데. 하지만 이 현관문이 놈들에게 어그로를 끌려서 뚫리면 끝장이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아까 훈련병 네 명 먼저 들어왔지?”
“130번 훈련병, 정철. 예, 그렇습니다.”
“걔들 어디로 갔어?”
“그…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애들이 상황실로 갔는데도 지금 이렇게 고요하단 말이지. 빤하다. 1소대장이 녀석들 말을 믿지 않은 거다.
나는 뒤쪽에 텅 비어 있는 6중대 당직 분대장 자리를 쳐다보았다.
기태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였다.
젠장…….
나는 곧바로 복도에서 경계를 서던 훈련병을 불렀다.
“88번 훈련…….”
“됐어, 네 이름 안 궁금해. 지금 당장 가서 각 소대별 인원 체크와 소총 개수 확인 다시 한 다음에 나한테 직접 보고 준비하라고 해. 숫자 똑바로 안 맞으면 다 뒈진다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녀석이 내 말을 듣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뒤돌아 달렸다.
나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8중대 당직 분대장 김호철 병장이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나 경례했다.
“어, 충성! 이장군 병장님, 왜 이제 오십니까? 그 훈련병들은…….”
“그래, 걔들 어딨어? 상황실로 갔지?”
“아, 예. 안 그래도 같이 근무 나간 분대장들 없이 지들끼리 왔기에 놀랐습니다. 아마… 지금 상황실에서 한참 털리는 중일 겁니다.”
“하아~ 준혁이… 말인데…….”
8중대 이준혁.
나와 함께 초소 근무를 나간 녀석이다. 그리고 기태가 말했다.
자신의 손으로… 준혁이를 죽였노라고.
그러나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네. 안 그래도 준혁이랑 훈련병들이 전부 돌아오지를 않아서 이상해하던 참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시간은 3시 40분. 슬슬 4시 근무자들을 인솔해 나갈 타이밍이었다.
“너, 다음 인솔자냐?”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준비 중이었는데… 아까 성욱이가 7중대 상헌이 못 봤냐고 물어봤지 말입니다. 직전 근무자들까지 싹 다 돌아오지를 않아서 지금 성욱이도 당황한 거 같습니다.”
7중대 김상헌 병장은 3시 근무자들을 인솔한 7중대 당직 분대장이었다. 녀석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김성욱 일병. 오늘 1소대장 옆에서 함께 상황실 근무를 서는 대대 당직병이다. 그럼 지금 당직병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는 건데…….
문제는 당직병의 짬이 너무 낮고, 1소대장은 무능하다.
총체적 난국이란 이런 거겠지.
“싹 다 죽은 거 같다.”
“자, 잘 못 들었습니다?”
나는 얼이 나간 김호철을 내버려 두고 황급히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8중대 복도를 지나 상황실에 도착하자, 안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아주 개판이구만!”
당직을 서고 있는 1소대장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일단 당직 사관을 설득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는 저 인간이 이 대대의 책임자이니까.
“충성!”
“어! 그래, 너 이 새끼! 이장군, 너 인마!”
내가 상황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1소대장은 욕을 처박았다.
“너 돌았어? 이 미친 새끼가… 처 돌아가지고 훈련병만 보냈냐? 초소에서 상황실에 직접 전화를 하더니, 이제는……!!”
지금 그게 문제냐?
옆을 보니 네 명의 훈련병이 엎드려뻗쳐 상태로 얼차려를 받는 중이었다.
“얘들한테 보고 못 받으신 겁니까?”
“개소리하고 있네. 뭐, 인마! 밖에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서 지들만 간신히 도망쳤다는, 그 미친 소리? 네가 시켰지, 이 새끼야? 전역날 왜 지랄이야! 조용히 나가면 그만이지, 대체 왜 그래?”
1소대장이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러 댔다.
“소대장님, 지금 바깥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훈련병들부터…….”
내가 한숨을 몰아쉬며 조곤조곤 설명하려 하자, 1소대장은 나의 말을 막아 버렸다.
“너 각오해, 이장군. 네가 전역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러더니 수화기를 직접 집어 든다. 번호 누르는 것을 보니, 연대본부에 전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간밤에 나도 수십 번은 전화한 그 번호다. 당연히 그들은 받지 않았다.
“이 새끼들은 또 왜 안 받아?!”
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1소대장 앞으로 가서 아직까지 주먹에 움켜쥐고 있던 물건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의 돌발 행동에 1소대장이 당황한 듯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가만히 살폈다.
기태의 피 묻은 인식표였다.
소대장은 인식표를 보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쩍 벌렸다. 내가 들고 있는 소총과 대검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내 군복에 튄 피까지.
비로소 내 모습을 제대로 본 소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너……!”
“밖에 나간 근무자들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전부 당했습니다.”
1소대장은 입을 헤, 벌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러기를 잠깐. 그는 그대로 뒤돌아 유리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짙은 안개로 인해 바깥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어?”
1소대장이 눈을 부릅뜨면서 다짜고짜 외쳤다.
이미 그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런데 그는 내게 다시 묻고 있다. 인내심을 갖고 주먹을 떨며 차분하게 말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안개 속에서 뭔가가 나와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어떤 미친놈이 훈련소를 습격해!”
“소대장님,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젠장!”
1소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손으로 입을 막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하필이면 내 근무날에 시발……!”
오늘은 내 전역날이기도 하다.
눈앞의 당직 사관은 지금 피해 상황이나 대처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책임을 회피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
하긴 군대에서 질기게 살아남는 것들은 이런 놈들일지도 모르지.
“우리 교육대에서 현재 밖에 나가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냐?”
1소대장의 질문은 딱히 누군가를 향한 게 아니었다.
당직병은 머뭇거리다가 황급히 근무표를 살피기 시작했다.
“에, 그… 6중대 김기태 상병, 7중대 곽철 일병과 훈련병 셋…….”
“그중 하나는 돌아와서 여기 얼차려 받고 있잖아.”
내가 지적하자 당직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꼴을 보다 못해 곧바로 현황을 말했다.
“1시에서 2시 초소 근무자, 2시에서 3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3시에서 4시 초소 근무자 및 인솔자. 이 인원들 중 지금 복귀한 건 저희뿐입니다. 맞지?”
총 20명 중 복귀 인원 5명.
마지막으로 당직병에게 확인하자, 그는 목록을 확인하다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거 같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그럼 한 시에 나간 놈들이 지금 네 시가 다 되도록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거잖아! 넌 그런 거 집계해서 보고 안 하고 뭐 했어!”
애꿎은 당직병만 곤죽이 되도록 털리고 있다. 대대 당직병은 보통 일병들이 선다. 당직 사관의 보좌 정도 역할이니, 높은 계급은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보고가 미흡한 당직병에게 잘못이야 있겠지만, 내내 처 자고 있던 누군가의 잘못이 더 클 것이다.
당장 1소대장은 내가 보낸 훈련병들이 보고하는 건 제대로 듣지도 않고 얼차려부터 부여했다. 내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4시 근무 교대 병력도 밖으로 보냈겠지.
“젠장, 젠장! 하필 오늘!”
1소대장은 지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와중에 겁에 질려 있었다.
밖의 괴물들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책임져야 할 지금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도 진급이 밀려서 중사에 머무른 1소대장은 ‘책임’에 있어서만큼은 민감했다.
간밤에 연대가 뒤집어지고, 교육대 근무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책임’을 대체 어떻게 진단 말인가.
“이런 젠장…….”
“그리고 소대장님, 오면서 보니 연대 창고와 병영 식당도 뚫렸습니다.”
“뭐?!”
그냥 얘기하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교육대의 지휘권은 유일한 간부인 1소대장에게 있다. 1소대장이 바깥 사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야, 당직병! 전화, 전화 아직도 안 돼?”
1소대장이 거의 이성을 반쯤 잃고 외치자, 얼이 빠져 있던 녀석은 황급히 수화기를 들고 확인했다.
“안 받습니다!”
1소대장은 그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한 채 벌벌 떨고만 있다.
한편, 옆에서 아직까지 얼차려를 받고 있던 훈련병들은 다른 의미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이런 총체적 난국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일단 각 중대별로 인원과 총기 수량 파악해서 보고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건장치 상태와 위험 요소도 확인해서 보고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해!”
지극히 일반론적인 처방이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지만, 최소한 취해야 하는 조치.
인원과 총기.
훈련소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다.
“지금 6중대, 7중대 당직 분대장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6중대는 제가 맡을 테니, 7중대 인원, 장비 파악은 임시로라도 성욱이에게 맡기시면 어떻습니까?”
대대 당직병, 김성욱 일병이 못내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너도 지금 같은 때에 1소대장 옆에 있는 게 지옥 같겠지.
하지만 1소대장이 어떤 사람인가. 늘 갈굴 수 있는 먹이를 옆에 둬야 안심을 하는 양반이다.
“얘는 대대 당직이잖아! 이장군, 네가 7중대 병장급으로…….”
갑자기 1소대장이 말을 멈췄다.
“아니지. 잠깐만.”
순간, 1소대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공은 독차지하고, 책임은 나눠 진다. 그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기간병들과 상황 공유를 해야지. 전원 기상 시켜. 불 끈 상태로 조용히. 싹 다 내려보내.”
지금 1소대장은 본인이 어떤 조치라도 취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생각이다.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상황을 공유하면서 결정적 의사결정은 늦추려는 것이다.
짬이 늘수록 본인 과시 혹은 책임 회피 기술만 는다. 아니, 어쩌면 그게 능력이려나?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만큼은 내가 말한다고 양보할 리가 없으니까.
더구나 만에 하나 입구가 뚫린다면 그냥 자다가 참변을 당할 수 있으니, 상황을 공유할 필요도 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소대장님, 여기 훈련병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아서 해.”
팔을 후들거리면서 얼차려를 받던 훈련병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한숨을 내쉬며 내 팔에 들린 소총과 피 묻은 대검을 반납하기 위해 근무자 총기 보관실로 향했다.
잠깐.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반납해서는 안 된다. 흘끗 보니 1소대장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허둥대느라 내가 소총과 대검을 반납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훈련병들에게 그들의 소총과 대검 역시 챙기도록 눈으로 신호했다.
124번 훈련병이 가장 먼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납해야 할 소총과 대검을 그대로 챙겼다.
“아직도 안 돼? 지구 병원은?!”
“아, 안 받습니다!”
진땀을 흘리는 1소대장과 성욱이를 내버려 두고 무기를 든 채 상황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