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5화 전역날 새벽 (5)



전역날 꾸는 악몽이 분명하다.

플롯은 엉망이면서 온통 클리셰덩어리.

이렇게 황당한 스토리라니… 내 뇌 내 망상이어야 맞다. 전역날 목숨 걸고 새벽에 죽어라 뛰고 있는 지금 이 황당한 상황이 현실일 리 없잖아? 그런데 들고 있는 소총의 무게와 방탄모의 답답함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래, 내 뒤에서 지금 멧돼지가 쫓아오고 있다. 무슨 강원도 산속도 아니고, 무려 육군 훈련소 안에서.

꾸이이익!!

“헉, 헉…….”

심장 박동이 격렬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싶을 때, 21개월간 맛없는 짬밥을 주구장창 먹은 식당이 보였다. 그런 후, 곧바로 우회전.

안개를 뚫고 드러난 식당 문을 보니, 아직 짐승들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 방금까지는.

콰장창!

가장 뒤에서 뛰던 126번 훈련병이 황급히 우회전을 하자 미처 방향을 틀지 못하고 정면으로 돌진한 멧돼지가 식당 문을 박살 내며 돌진했다.

젠장, 몇 시간 뒷면 훈련병들이 아침을 먹어야 할 장소에 멧돼지를 들여놓고 말았다. 뒤이어 식당 안에서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식탁과 의자들이 박살 나는 소리 같았다.

설마 음식들까지 털리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식당 안쪽의 낌새를 잠시 살피던 중이었다.

“이 병장님…….”

기태가 긴장한 말투로 나를 불렀다. 내 옆의 다른 네 훈련병을 보니, 뒤돌아선 상태로 바짝 얼어 있었다.

젠장, 등 뒤에 뭔가 있다.

크르르…….

천천히 뒤돌아서자 우리 앞을 어슬렁거리며 슬슬 포위해 오는 대형견들이 보였다. 이제야 확실히 녀석들의 모습이 보인다. 붉은 눈의 맹견들. 놈들의 털은 붉게 물들어 있고, 날카로운 이빨 사이사이로 피거품이 흘러나왔다.

…낭패다.

입술을 깨무는 내게 기태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좌측 길을 열겠습니다. 훈련병들과 교육대 쪽으로 뛰십쇼.”

길을 열긴 개뿔.

희생정신은 갸륵하다만, 후임을 희생양 삼고 돌아갈 수야 없다. 게다가 제 사수를 구하겠다고 그 길을 다시 온 놈인데.

나는 황급히 내 옆에 바짝 따라붙은 124번 훈련병에게 말했다.

“나랑 옆에 김기태 분대장이 좌측 애들한테 달려들 거야. 어떻게든 길을 열어 줄 테니까 이 악물고 교육대로 달려. 그런 후에 지금 상황 전부 2층 상황실에 보고해.”

“이 병장님!”

기태가 반발하며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웃기지 마. 어디서 영웅 행세야? 네 팔 꼬라지를 보니 그럴 역량도 안 되는구만. 저런 똥개 새끼들한테 물리고 다니는 주제에 어디 가서 논산 훈련소 조교라고 하지 마라.”

이 와중에도 농담이 나오는 걸 보면 내 유머 감각도 참…….

물론 그 누구도 내 농담에 웃지 않았다. 더불어 누구 하나 내 결정에 이의를 제기도 하지 않았다.

그때, 기태가 단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 병장님, 절대 놈들에게 물리면 안 됩니다. 그럴 경우… 교육대로 복귀해서도 안 됩니다. 훈련병들도 마찬가지. 놈들에게 만에 하나라도 물렸을 경우에는 절대 교육대 안에 들어가지 마라. 절대로.”

…뭐?

지금 이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나 당장 그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대형견들이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난 소총을 꼬나 잡은 채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정면에 셋, 우측은 울타리로 막혀 있고, 좌측에 둘.

훈련병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신호 주면 곧장 달려.”

훈련병들이 나를 보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태 역시 소총을 꼬나 잡고 당장에라도 달려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대형견들이 입맛을 다지면서 슬슬 가까이 다가온다. 저러다가 단박에 덮쳐 올 게 분명했다.

7중대 곽철이 단번에 목덜미를 물려 절명한 것을 기억하니까.

“지금!”

크르르! 컹!

나의 고함 소리와 동시에 네 명의 훈련병이 죽을힘을 다해 좌측 2교육대 입구로 전력 질주했고, 나와 기태가 각자 좌측을 막고 있던 개 두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 잠깐 보니 개 두 마리가 전부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젠장, 내가 제일 만만해 보였나?

슬쩍 부아가 치민 나는 소총 끝에 꽂힌 대검으로 당장 내 정면에 있는 대형견 하나의 목덜미를 그대로 찍어 눌렀다.

순간, 날붙이가 깊숙이 살을 파고드는 감촉이 손을 타고 느껴졌다.

젠장, 전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한낱 고기를 써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건… 살아 숨 쉬는 무언가의 목숨을 거두는 행위다.

커… 커…….

놈이 발악을 하며 네 다리를 마구 휘젓는 와중에 검붉은 피가 주변으로 마구 튀었다.

살생(殺生).

생각해 보면 이렇게 커다란, 살아 숨 쉬는 무언가의 숨통을 끊는 것은 이게… 처음이다.

놈에게서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찌릿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잠깐 소총이 쥐어진 나의 손을 잠깐 쳐다보았다.

“이 병장님! 아직입니다!”

기태가 절박하게 외치면서 소총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나를 향해 달려들던 다른 개 한 마리는 기태의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직격으로 얻어맞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좌측을 막은 개들을 우리 둘이 각자 한 마리씩 쓰러뜨리는 사이, 네 명의 훈련병은 교육대 쪽으로 달려갔다. 안개로 인해 훈련병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녀석들이 무사히 닿기를 바라면서… 뒤를 막아야 한다.

기태의 말대로 아직 놈들은 많이 남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놈의 목덜미에 꽂아 넣은 대검을 회수하여 뒤로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맹견의 이빨이 보였다.

“젠장!”

나는 슬쩍 등을 빼면서 놈의 목구멍 천장을 향해 대검을 내질렀다. 소총 끝에 끼운 대검이 녀석의 입을 묵직하게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좌우에서 한 마리씩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고 있던 것이다. 방금 대검을 찔러 넣은 놈을 발로 걷어차 다급히 대검을 회수했지만,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눈앞에 닥친 두 아가리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이 빌어먹을 똥개 새끼들이 왜 나만 노리지?

순간의 패닉 상황.

그때, 고막을 울리는 기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측 놈!!”

반사적으로 몸을 우측으로 틀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운이 좋게도 이 한 방은 달려들던 놈의 주둥이를 직격했고, 퍽!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이 그대로 멀리 날아가 엎어져 버렸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내 좌측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태가 달려들어 나를 덮치려던 놈을 갈긴 것이었다.

그때, 입천장이 뚫린 개가 비치적거리며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주둥이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와중에도 놈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런 젠장, 저런 꼴이 되어서……!”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달려들어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턱을 쳐 올렸다. 공중에 놈의 피가 흩뿌려지고, 다시 한번 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죽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개머리판으로 주둥이를 직격당한 다른 녀석 또한 불사신처럼 머리를 흔들며 다시금 몸을 일으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만히 보니 놈의 한쪽 눈은 멀어 있었다.

그때, 기태가 애꾸눈 개의 뒤에서 달려들어 대검으로 목을 그대로 찍어 버렸다. 그 과감한 행동에 놀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기태가 다급하게 외쳤다.

“목! 목을 노리거나 머리를 부숴야 합니다!! 다른 곳은 아무리 때려 봐야 의미 없습니다!”

순간, 기태에게서 어떤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단 내 상대는 다른 쪽에 있다. 주둥이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지옥귀처럼 달려드는 마지막 한 마리.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것마냥 도움닫기를 위해 뒷다리를 굽히고 있다.

나는 놈이 공중으로 뛰어드는 타이밍에 맞춰 마치 드러눕 듯이 땅에 엎어졌다. 아래쪽에서 보니 놈의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 있다.

“이장군 병장님!!”

기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인지 모르지만, 기태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 없이 놈의 목덜미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그와 동시에 옆구리로 둔탁한 타격이 느껴지면서 내 몸이 ‘ㄱ’ 자로 휘어 옆으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대검을 낀 소총마저 놓쳤다.

“쿨럭! 컥!”

나는 세게 한 방 얻어맞은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 보니 내가 최종적으로 목덜미에 대검을 꽂아 넣은 대형견의 사체 밑에 기태가 깔려 있었다.

내 대검이 대형견의 모가지를 파고드는 바로 그 순간, 기태가 태클로 나의 몸을 밀쳐 버린 것이다. 어찌나 강하게 차였는지,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나는 대형견의 사체를 발로 걷어차 치운 뒤, 땅에 누워 있는 기태를 노려보았다. 그 와중에도 녀석이 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야, 김기태. 무슨 짓이야? 왜 나를 걷어찬 거야? 전역빵이냐?”

“…놈들의 피가 눈이나 입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정작 말하는 기태 본인은 아예 얼굴부터 온몸에 개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만 보면 아까부터 무언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고 있다.

뭐라더라? 물리면 교육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가? 그리고… 피가 눈이나 입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대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장군 병장님.”

기태가 일어나기 위해 나의 손을 붙잡았다.

뭐지?

녀석의 손이… 왜 이렇게 차갑지? 이건 아예 얼음이다.

“이 병장님.”

기태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 와중에 나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사실 그리 어려운 추론도 아니었다. 너무 많은 힌트들이 있었으니까.

녀석은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길을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경광봉까지 켠 채.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붉은 눈의 개들이, 그 다섯 마리가 전부 기태를 노리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을 공격했다.

그리고 아까 느낀 위화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태의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경광봉 불빛 때문에 잘못 본 것도 아니다. 지금은 꺼진 채 한 구석에 뒹굴고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손목을 붙잡은 녀석의 손이 얼음장같이 차갑다.

머리가 차갑게 돌아간다.

“이 병장님.”

기태가 다시 나를 불렀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가자. 빨리 교육대로 돌아가야지.”

묘하게 침착해졌다.

두려움도 없었다. 지금 이 자리가 안전하지는 않지만, 그게 적어도 눈앞의 기태 때문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저는 같이 못 갑니다.”

“…무슨 개소리야?”

“아시지 않습니까? 전 이미…….”

“야, 기태야. 김기태!”

21개월 중 16개월을 같이했다.

기태 녀석, 다음 달이면 병장이다.

기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런 표정을 딱 한 번 본 적 있다.

기태가 일병이었을 때, 분대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딱 저런 표정이었다.

죄책감과 괴로움, 자기혐오가 복잡하게 얽힌, 그런 표정.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장군이 형.”

“…….”

녀석이 내 손목을 놓더니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넘겨 주었다.

받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육군]

[12―78039644]

[김기태]

[O RH(+)]



인식표다. 그것도 피가 묻은 인식표.

인식표는 사망한 병사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상시 소지한다. 하나는 시신의 신분 확인을 위해 남겨 두고, 나머지 하나는 훗날 유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우가 시신에서 떼어 온다.

기태는 그중 하나를 내게 건네고 있었다.

“너, 인마. 이게 무슨 장난질이야!”

전역날 괴물 파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한다.

만약 갑자기 분장한 녀석들이 나타나서 전부 다 장난이었다고 말한다면… 좀 화는 나겠지만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도가 지나쳤다. 이게 장난이라면 진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태가 억지로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지금이라도 장난이라고 순순히 인정해라. 제발.

“형은 꼭 살아서 전역해야 돼. 시발, 고생한 게 있는데 여기서 개죽음은 졸라 슬프잖아.”

“…야, 야. 너 신파 질색하잖아. 나도 싫어, 이 개새끼야. 그만하자. 장난은 이 정도만 하라고.”

내 손에 쥐어진 기태의 인식표가 진득거렸다.

“형, 일단 빨리 교육대로 들어가. 놈들에게 물리면… 만일 그래서 살아남는다면, 곧 놈들과 같아지는 모양이야. 그래서… 나는 같이 들어갈 수가 없어.”

“웃기지 마, 새끼야. 같이 들어가자. 아직, 아직 모르잖아! 너 인마, 다음 달이면…….”

기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팔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버티면 버틸수록 저것들이랑 똑같아져.”

멧돼지가 들어간 식당 안쪽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아예 식당 전체를 헤집어 놓는 모양이었다.

“이전 조 근무자들 중 8중대 준혁이도 살아남았어. 놈들에게 물리긴 했지만. 그런데… 잠시 뒤, 내 팔을… 물어뜯더라. 인간의 힘이 아니었어.”

팔 부위의 군복까지 찢겨 나가 다른 군복 천으로 막아 놓은 게 보인다.

인간의 이와 턱 힘만으로 군복을 뚫고 생살을 뜯었다고?

“너…….”

“내가 대검으로 준혁이를 찔렀어. 배, 가슴… 다리…….”

“기태야, 지금 대체……!”

“절대 죽지 않아, ‘그것’들은. 목을 찔렀을 때, 얼마 있다가 겨우 멈추더라.”

“‘그것’? 그게 무슨…….”

때마침 식당 안을 뒤집어 놓은 붉은 눈의 멧돼지가 다시 씩씩거리며 입구 쪽으로 나왔다.

얼굴이 벌게진 내게 기태가 서둘러서 말했다.

“빨리 가. 놈은 내가 붙잡아 두고 있을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태야.”

“형, 하나만 더 부탁할게. 이 엿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곧 또 보게 될지도 몰라. 그때, 내 꼴이 저 돼지랑 똑같으면… 이성을 잃고 형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

“…기태야.”

녀석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설마…….

“형 손으로 나를 좀 죽여 줘. 만약… 형이 전역하기 전이라면 말이야.”

순간, 녀석이 슬쩍 웃은 것 같았다.

지독한 농담이다.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다.

기태는 곧 소총을 들고 돼지 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등을 돌려 교육대 벽을 따라 안개 속으로 내달렸다. 뒤쪽에서 멧돼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 교육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태를… 버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