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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전역날 새벽 (3)
대한의 건아들이 서로 모인 이곳이~
자욱한 안개 속, 질질 끄는 것 같은 군홧발 소리.
그 와중에 몇 키는 낮아서 더욱 음산하게 들리는 육군훈련소가.
오~ 젊은이의 자랑~
어떻게 해야 하나.
초소 바로 앞을 지나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느릿느릿,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철모도 쓴 것 같다. 소총을 들지는 않았고, 요대도 없는 비무장 상태.
군가를 부르는 것부터 야간에 비무장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까지…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다.
육군훈련소~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그래.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일단 사람이잖아.
탈영하려고 막사를 빠져나온 훈련병인지, 괴물들에게 살아남은 생존자인지 모르지만, 일단 겉보기로는 사람이 맞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달려갈 수는 없고.
미련한 방법 같지만 그나마 가장 확실한 방법.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놈이 멈추었다. 마침 노래도 끝났으니.
“빛나리!”
암구호.
과연 녀석이 알까?
역시 대답하지 않는다.
“빛나리!”
조금 더 크게 소리치자 비로소 녀석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124번 훈련병이 내 옆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이 자식, 똑똑하긴 한데… 이제 보니 호기심이 많다. 가만히 움츠리고 있으라니까.
“분대장님, 저 사람… 상처가 큰 거 같습니다.”
“뭐?”
내가 다시 자세히 보려는 찰나, 갸우뚱하던 놈의 목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그런 뒤, 그의 시선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러더니 다시금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언뜻 보니 몽롱한 표정의 녀석은 붉은 눈동자에 왼팔과 다리 부분이 피로 젖어 있었다.
터벅터벅.
녀석을 붙잡아야 하나? 이대로 보내도 되나?
입술을 깨물며 초소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군가를 부르고 돌아다니는 미친놈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바로 나가서 녀석의 상태를 살핀 후에 바로 지구 병원에 연락을 넣어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하지만 녀석의 비정상적인 행동 때문에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부상자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선임병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훈련소에도 괴담이 몇 개 있는데, 공반기(훈련병이 없는 시기)에 선임병들과 초소 근무를 설 때 들은 내용.
뭐, 별건 없다.
목을 매단 훈련병, 오발 사고로 죽은 옛날 훈련병 등등.
다만, 눈앞에 그런 귀신이 나타나면 별게 된다.
빌어먹을.
축제냐? 축제야? 나 전역한다고 다들 나와서 반겨 주는 거야?
결국 나가지 않기로 했다.
부상자라면 뭔가 ‘구해 달라’는 제스처가 있어야 하지만, 놈은 전혀 그런 기미가 없지 않은가.
공포 영화에서 괜히 호기심을 갖고 먼저 나서는 멍청이는 반드시 죽는다. 그런 사망 플래그를 꽂을 수는 없다. 오늘은 내 전역날이니까.
죽어도 오늘은 안 돼.
그때, 갑자기 녀석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괴상한 소리를 냈다.
우으으…….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냥… 가라. 포박이고 뭐고 안 할 테니까, 그냥 꺼져.
아니, 꺼져 주세요.
괴상한 소리를 내는 녀석을 보자 뭘 어떻게 해 볼 생각이 싹 달아났다. 옆에서 고개를 빠끔 내밀고 있던 124번 훈련병도 놈이 멈추는 걸 보더니 황급히 초소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때, 무언가 뚠뚠한 동물이 뒤뚱거리며 초소밖에 얼쩡거리는 게 보였다.
그 녀석 때문에 병사가 멈춰 선 것 같았다. 익숙한 형체에 당황해서 살펴보니, 다름 아닌 짬타이거였다. 나가랄 땐 꼼짝 않고 초소 안에 들어앉아 식빵 자세를 하고 있더니, 어느새 초소 밖으로 걸어 나가 병사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야옹~
젠장, 가만히 있어, 짬타이거.
저런 놈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좋을 게 없다고.
우… 으… 으…….
야옹~
짬타이거는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내며 병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병사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어 힐끗 쳐다볼 뿐, 딱히 짬타이거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부동자세로 몇 초를 있더니, 놈이 곧이어 멍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응?
놈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키는 우리~
이 노래도 지겹게 들었다. ‘멸공의 횃불’.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려는 찰나, 녀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로를 따라 이동해 갔다.
군가를 부르는 놈의 목소리가 무언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마치 쇠가 긁히는 것처럼 듣기 싫은 노랫소리였다.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노랫소리는 천천히 멀어져 갔고, 짬타이거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계속 주시했다.
그때까지 내 옆의 훈련병 넷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124번 훈련병이 소곤거리며 밖에서 본인이 본 것을 열심히 전달하는 것 같았다.
난 가볍게 124번 훈련병의 철모를 툭, 쳤다.
이럴 때 애들한테 겁을 줘서 뭘 어쩌자는 거야.
“조용히 해. 갔다, 그 새끼.”
124번 훈련병의 얘기를 들은 녀석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125번은 겁에 질린 나머지 오줌이라도 쌀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지렸나?
반면 7중대 훈련병의 표정은 창백했다. 하긴, 이미 못 볼 꼴 많이 본 녀석이다.
한편, 126번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말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녀석이었다.
“그거, 귀신 아닙니까?”
“후우… 몰라, 인마.”
“피가…….”
“모른다고.”
나는 식은땀을 닦고는 다시 바깥은 살폈다.
안개는 여전히 짙고, 따로 보이는 것은 없다.
시계를 보니 이제 2시 50분을 막 넘어서고 있다.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이면 교대 근무자들이 투입되었을 수 있다. 만일… 만일 바깥 상황을 모른 채 공포탄만 들고 초소 쪽으로 온다면…….
“124번.”
“124번 훈련병, 김지철.”
“바깥쪽 잘 보고 있어. 수상한 낌새 있으면 바로 말하고. 나는 통신 장비 좀 다시 확인할게.”
“예,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통신 장비들을 붙잡고 연대에 연락을 넣었지만, 역시나 여전히 먹통이었다. 본부와 지구 병원 쪽 모두 신호가 가건만, 받는 사람이 없다.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익숙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본래대로라면 초소에서 직접 연락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연대본부뿐이다. 긴급사태 시에는 지구 병원에 전화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초소 근무자는 절대로 사사로이 전화를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규칙에 매달려 본부 연락만 매달리고 있던 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좀 더 빨리 걸었어야 했다. 이미 교대 병력이 투입되었을까? 제발, 제발…….
2교육대 상황실 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갔다. 초소 규칙을 어겼다면서 1소대장이 온갖 진상을 부리겠지만, 당장 상황을 공유하고 혹시 모를 교대 병력 투입을 막아야 한다.
[통신보…….]
받았다!
2교육대 당직병을 서고 있는 7중대 김성욱 일병의 목소리였다.
“성욱이냐?! 성욱아, 여기 4초소다. 나 이장군 병장이야!”
“어엇?! 추, 충성!”
“됐어. 지금 옆에 사관님 계셔?”
“아, 네…….”
“빨리, 빨리 바꿔 줘!”
수화기를 통해 성욱이가 1소대장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더불어 1소대장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뭐? 4초소? 이장군, 이 새끼가 돌았나? 초소에서 교육대로 전화를 넣어?! 이리 내놔 봐!]
수화기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더니 곧 1소대장의 험악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야, 이장군. 너 미쳤어?]
“충성!”
[충성 같은 소리 하네. 야, 전역날이라고 지금 시위하냐? 이게 뭔 짓이야?!]
“소대장님, 지금 바깥에 긴급 상황입니다. 근무자들이 죽었고, 정체 모를 짐승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침묵.
수화기 건너편에서 잠시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소대장님, 지금 혹시 교대 병력 투입했습니까? 걔들 막아야 합니다. 바깥에 그냥 나오면 안 됩니다!”
[……야.]
1소대장의 가만히 듣다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이 새끼, 바깥 상황을 아예 모르는구나. 게다가… 내 말을 믿지도 않는다.
[하~ 진짜 골고루 하네, 이 새끼가. 어? 나 좆 되게 만들어 보겠다고 기껏 머리 굴려서 짜낸 게 고작 그런 수준 낮은 스토리냐? 뭐가 어쩌고 어째?]
“소대장님, 진짭니다. 제발…….”
[닥쳐, 새끼야! 어딜 장난 전화야!]
“소, 소대장니…….”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
제기랄, 제기랄.
나는 황급히 다시 교육대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받지도 않는다. 대신 이번에는 7중대 당직 책상에 전화를 넣었다. 이전 인솔자가 우리 중대 당직병이었으니, 다음 인솔자는 7중대다. 부디 아직 출발하지 않았길…….
하지만 신호만 갈 뿐, 누구도 받지 않았다.
7중대 당직 책상은 비어 있다. 근무자들이 이미 교대를 위해 나섰다는 뜻이다.
나는 망연한 표정으로 통신 장비를 내려놓고 나왔다.
훈련병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지만, 정작 내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 내 표정이 어지간히 엉망이겠지.
우리를 구해 줄 병력이 오기는커녕 희생자만 더 늘어나게 생겼다.
바로 그때였다.
땅, 땅!
어디선가 또다시 공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상으로 보면 근무 교대를 위해 교대자들이 한참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였다.
빌어먹을.
실탄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 정보 없이 근무자들을 그냥 밖으로 내보내면 다 죽이는 것과 다를 게 없잖은가.
“분대장님.”
“응?”
“126번 훈련병, 박규태.”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126번 훈련병이다. 상당히 침착한 말투였다.
“지금 교육대로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그냥 맘대로 복귀하자고?”
“네. 지금 저 사격 소리, 다음 근무자들이 쏜 거 아닙니까? 저렇게 쏴 버리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다. 이 자식, 소총에 대검 끼울 때 워낙 서투르기에 무시했더니, 상황 파악만큼은 정확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하다.
“안 돼.”
“분대장님…….”
“안 된다고, 인마. 내가 그걸 몰라서 여기 가만히 죽치고 있는 줄 알아?”
다른 훈련병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냐?”
“…….”
“지금은 여기 4초소가 가장 안전해.”
물론 4초소는 정작 적의 습격을 막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하지만 위치가 좋다. 대로변 외진 곳에 만들어진 4초소는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안개까지 낀 상태에서는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아무리 조악하다 해도 몸을 숨기기에 좋은 벽과 통신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했을 때, 교육대로 가는 길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게다가 훈련병 넷을 달고 가는 것은 더더욱.
5주 차 훈련병쯤 되면 본인들이 군 생활 다 한 것처럼 착각을 하지만, 그냥 멋모르는 짬찌(짬 찌끄래기)들일 뿐.
“일단 여기서 최대한 버틴다.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특히 125번 훈련병과 7중대 훈련병은 도리어 안심한 것 같았다.
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교육대로 간다고? 다시 생각해 봐도 큰일 날 소리였다.
내가 오늘 전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무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조교다. 어깨에 초록 견장을 찬 분대장 말이다. 그리고 분대장에게는 부하인 훈련병의 안전이 최선이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꼴에 무슨 되도 않는 책임감? 그래 봐야 고작 십 몇 개월 군 생활 더 한 게 전부인데.
그래도 조교들 중 상당수가 그 책임감 때문에 보직을 포기한다.
분대장이 교보재를 준비하지 않으면 곧바로 훈련이 펑크 나고, 배식에 문제가 터지면 훈련병이 굶는다. 아픈 놈들 관리가 소홀해져서 병이 커지면 핵폭탄급 문제로 번질 수도 있고, 인원 관리 못해서 사람 하나 사라지면 훈련소가 뒤집힌다.
무능한 나머지 훈련병에게 무시당하는 분대장도 있고, 감정을 통제 못 해서 훈련병에게 가혹행위를 했다가 징계받는 놈은 거의 매 기수마다 나온다.
훈련병 새끼들이 퇴소 직전에 설문에 찌르고 도망가거든.
내가 분대장 생활을 하는 동안 보직 이동하거나 해임당한 조교들은 우리 연대에서만 두 자릿수에 이른다.
그 와중에 어떤 머리 빈 새끼들은 조교는 휴가 많다고 부러워하지만.
앞으로 다섯 시간 정도만, 그 정도만 버티면 나는 살아서 전역한다.
무사히 전역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뭣 같은 상황부터 타개해야지.
대한의 건아들이 서로 모인 이곳이~
자욱한 안개 속, 질질 끄는 것 같은 군홧발 소리.
그 와중에 몇 키는 낮아서 더욱 음산하게 들리는 육군훈련소가.
오~ 젊은이의 자랑~
어떻게 해야 하나.
초소 바로 앞을 지나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느릿느릿,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철모도 쓴 것 같다. 소총을 들지는 않았고, 요대도 없는 비무장 상태.
군가를 부르는 것부터 야간에 비무장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까지…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다.
육군훈련소~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그래.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일단 사람이잖아.
탈영하려고 막사를 빠져나온 훈련병인지, 괴물들에게 살아남은 생존자인지 모르지만, 일단 겉보기로는 사람이 맞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달려갈 수는 없고.
미련한 방법 같지만 그나마 가장 확실한 방법.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놈이 멈추었다. 마침 노래도 끝났으니.
“빛나리!”
암구호.
과연 녀석이 알까?
역시 대답하지 않는다.
“빛나리!”
조금 더 크게 소리치자 비로소 녀석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124번 훈련병이 내 옆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이 자식, 똑똑하긴 한데… 이제 보니 호기심이 많다. 가만히 움츠리고 있으라니까.
“분대장님, 저 사람… 상처가 큰 거 같습니다.”
“뭐?”
내가 다시 자세히 보려는 찰나, 갸우뚱하던 놈의 목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그런 뒤, 그의 시선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러더니 다시금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언뜻 보니 몽롱한 표정의 녀석은 붉은 눈동자에 왼팔과 다리 부분이 피로 젖어 있었다.
터벅터벅.
녀석을 붙잡아야 하나? 이대로 보내도 되나?
입술을 깨물며 초소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군가를 부르고 돌아다니는 미친놈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바로 나가서 녀석의 상태를 살핀 후에 바로 지구 병원에 연락을 넣어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하지만 녀석의 비정상적인 행동 때문에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부상자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선임병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훈련소에도 괴담이 몇 개 있는데, 공반기(훈련병이 없는 시기)에 선임병들과 초소 근무를 설 때 들은 내용.
뭐, 별건 없다.
목을 매단 훈련병, 오발 사고로 죽은 옛날 훈련병 등등.
다만, 눈앞에 그런 귀신이 나타나면 별게 된다.
빌어먹을.
축제냐? 축제야? 나 전역한다고 다들 나와서 반겨 주는 거야?
결국 나가지 않기로 했다.
부상자라면 뭔가 ‘구해 달라’는 제스처가 있어야 하지만, 놈은 전혀 그런 기미가 없지 않은가.
공포 영화에서 괜히 호기심을 갖고 먼저 나서는 멍청이는 반드시 죽는다. 그런 사망 플래그를 꽂을 수는 없다. 오늘은 내 전역날이니까.
죽어도 오늘은 안 돼.
그때, 갑자기 녀석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괴상한 소리를 냈다.
우으으…….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냥… 가라. 포박이고 뭐고 안 할 테니까, 그냥 꺼져.
아니, 꺼져 주세요.
괴상한 소리를 내는 녀석을 보자 뭘 어떻게 해 볼 생각이 싹 달아났다. 옆에서 고개를 빠끔 내밀고 있던 124번 훈련병도 놈이 멈추는 걸 보더니 황급히 초소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때, 무언가 뚠뚠한 동물이 뒤뚱거리며 초소밖에 얼쩡거리는 게 보였다.
그 녀석 때문에 병사가 멈춰 선 것 같았다. 익숙한 형체에 당황해서 살펴보니, 다름 아닌 짬타이거였다. 나가랄 땐 꼼짝 않고 초소 안에 들어앉아 식빵 자세를 하고 있더니, 어느새 초소 밖으로 걸어 나가 병사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야옹~
젠장, 가만히 있어, 짬타이거.
저런 놈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좋을 게 없다고.
우… 으… 으…….
야옹~
짬타이거는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내며 병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병사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어 힐끗 쳐다볼 뿐, 딱히 짬타이거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부동자세로 몇 초를 있더니, 놈이 곧이어 멍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응?
놈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키는 우리~
이 노래도 지겹게 들었다. ‘멸공의 횃불’.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려는 찰나, 녀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로를 따라 이동해 갔다.
군가를 부르는 놈의 목소리가 무언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마치 쇠가 긁히는 것처럼 듣기 싫은 노랫소리였다.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노랫소리는 천천히 멀어져 갔고, 짬타이거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계속 주시했다.
그때까지 내 옆의 훈련병 넷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124번 훈련병이 소곤거리며 밖에서 본인이 본 것을 열심히 전달하는 것 같았다.
난 가볍게 124번 훈련병의 철모를 툭, 쳤다.
이럴 때 애들한테 겁을 줘서 뭘 어쩌자는 거야.
“조용히 해. 갔다, 그 새끼.”
124번 훈련병의 얘기를 들은 녀석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125번은 겁에 질린 나머지 오줌이라도 쌀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지렸나?
반면 7중대 훈련병의 표정은 창백했다. 하긴, 이미 못 볼 꼴 많이 본 녀석이다.
한편, 126번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말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녀석이었다.
“그거, 귀신 아닙니까?”
“후우… 몰라, 인마.”
“피가…….”
“모른다고.”
나는 식은땀을 닦고는 다시 바깥은 살폈다.
안개는 여전히 짙고, 따로 보이는 것은 없다.
시계를 보니 이제 2시 50분을 막 넘어서고 있다.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이면 교대 근무자들이 투입되었을 수 있다. 만일… 만일 바깥 상황을 모른 채 공포탄만 들고 초소 쪽으로 온다면…….
“124번.”
“124번 훈련병, 김지철.”
“바깥쪽 잘 보고 있어. 수상한 낌새 있으면 바로 말하고. 나는 통신 장비 좀 다시 확인할게.”
“예,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통신 장비들을 붙잡고 연대에 연락을 넣었지만, 역시나 여전히 먹통이었다. 본부와 지구 병원 쪽 모두 신호가 가건만, 받는 사람이 없다.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익숙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본래대로라면 초소에서 직접 연락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연대본부뿐이다. 긴급사태 시에는 지구 병원에 전화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초소 근무자는 절대로 사사로이 전화를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규칙에 매달려 본부 연락만 매달리고 있던 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좀 더 빨리 걸었어야 했다. 이미 교대 병력이 투입되었을까? 제발, 제발…….
2교육대 상황실 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갔다. 초소 규칙을 어겼다면서 1소대장이 온갖 진상을 부리겠지만, 당장 상황을 공유하고 혹시 모를 교대 병력 투입을 막아야 한다.
[통신보…….]
받았다!
2교육대 당직병을 서고 있는 7중대 김성욱 일병의 목소리였다.
“성욱이냐?! 성욱아, 여기 4초소다. 나 이장군 병장이야!”
“어엇?! 추, 충성!”
“됐어. 지금 옆에 사관님 계셔?”
“아, 네…….”
“빨리, 빨리 바꿔 줘!”
수화기를 통해 성욱이가 1소대장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더불어 1소대장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뭐? 4초소? 이장군, 이 새끼가 돌았나? 초소에서 교육대로 전화를 넣어?! 이리 내놔 봐!]
수화기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더니 곧 1소대장의 험악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야, 이장군. 너 미쳤어?]
“충성!”
[충성 같은 소리 하네. 야, 전역날이라고 지금 시위하냐? 이게 뭔 짓이야?!]
“소대장님, 지금 바깥에 긴급 상황입니다. 근무자들이 죽었고, 정체 모를 짐승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침묵.
수화기 건너편에서 잠시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소대장님, 지금 혹시 교대 병력 투입했습니까? 걔들 막아야 합니다. 바깥에 그냥 나오면 안 됩니다!”
[……야.]
1소대장의 가만히 듣다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이 새끼, 바깥 상황을 아예 모르는구나. 게다가… 내 말을 믿지도 않는다.
[하~ 진짜 골고루 하네, 이 새끼가. 어? 나 좆 되게 만들어 보겠다고 기껏 머리 굴려서 짜낸 게 고작 그런 수준 낮은 스토리냐? 뭐가 어쩌고 어째?]
“소대장님, 진짭니다. 제발…….”
[닥쳐, 새끼야! 어딜 장난 전화야!]
“소, 소대장니…….”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
제기랄, 제기랄.
나는 황급히 다시 교육대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받지도 않는다. 대신 이번에는 7중대 당직 책상에 전화를 넣었다. 이전 인솔자가 우리 중대 당직병이었으니, 다음 인솔자는 7중대다. 부디 아직 출발하지 않았길…….
하지만 신호만 갈 뿐, 누구도 받지 않았다.
7중대 당직 책상은 비어 있다. 근무자들이 이미 교대를 위해 나섰다는 뜻이다.
나는 망연한 표정으로 통신 장비를 내려놓고 나왔다.
훈련병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지만, 정작 내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 내 표정이 어지간히 엉망이겠지.
우리를 구해 줄 병력이 오기는커녕 희생자만 더 늘어나게 생겼다.
바로 그때였다.
땅, 땅!
어디선가 또다시 공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상으로 보면 근무 교대를 위해 교대자들이 한참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였다.
빌어먹을.
실탄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 정보 없이 근무자들을 그냥 밖으로 내보내면 다 죽이는 것과 다를 게 없잖은가.
“분대장님.”
“응?”
“126번 훈련병, 박규태.”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126번 훈련병이다. 상당히 침착한 말투였다.
“지금 교육대로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그냥 맘대로 복귀하자고?”
“네. 지금 저 사격 소리, 다음 근무자들이 쏜 거 아닙니까? 저렇게 쏴 버리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다. 이 자식, 소총에 대검 끼울 때 워낙 서투르기에 무시했더니, 상황 파악만큼은 정확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하다.
“안 돼.”
“분대장님…….”
“안 된다고, 인마. 내가 그걸 몰라서 여기 가만히 죽치고 있는 줄 알아?”
다른 훈련병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냐?”
“…….”
“지금은 여기 4초소가 가장 안전해.”
물론 4초소는 정작 적의 습격을 막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하지만 위치가 좋다. 대로변 외진 곳에 만들어진 4초소는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안개까지 낀 상태에서는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아무리 조악하다 해도 몸을 숨기기에 좋은 벽과 통신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했을 때, 교육대로 가는 길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게다가 훈련병 넷을 달고 가는 것은 더더욱.
5주 차 훈련병쯤 되면 본인들이 군 생활 다 한 것처럼 착각을 하지만, 그냥 멋모르는 짬찌(짬 찌끄래기)들일 뿐.
“일단 여기서 최대한 버틴다.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특히 125번 훈련병과 7중대 훈련병은 도리어 안심한 것 같았다.
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교육대로 간다고? 다시 생각해 봐도 큰일 날 소리였다.
내가 오늘 전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무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조교다. 어깨에 초록 견장을 찬 분대장 말이다. 그리고 분대장에게는 부하인 훈련병의 안전이 최선이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꼴에 무슨 되도 않는 책임감? 그래 봐야 고작 십 몇 개월 군 생활 더 한 게 전부인데.
그래도 조교들 중 상당수가 그 책임감 때문에 보직을 포기한다.
분대장이 교보재를 준비하지 않으면 곧바로 훈련이 펑크 나고, 배식에 문제가 터지면 훈련병이 굶는다. 아픈 놈들 관리가 소홀해져서 병이 커지면 핵폭탄급 문제로 번질 수도 있고, 인원 관리 못해서 사람 하나 사라지면 훈련소가 뒤집힌다.
무능한 나머지 훈련병에게 무시당하는 분대장도 있고, 감정을 통제 못 해서 훈련병에게 가혹행위를 했다가 징계받는 놈은 거의 매 기수마다 나온다.
훈련병 새끼들이 퇴소 직전에 설문에 찌르고 도망가거든.
내가 분대장 생활을 하는 동안 보직 이동하거나 해임당한 조교들은 우리 연대에서만 두 자릿수에 이른다.
그 와중에 어떤 머리 빈 새끼들은 조교는 휴가 많다고 부러워하지만.
앞으로 다섯 시간 정도만, 그 정도만 버티면 나는 살아서 전역한다.
무사히 전역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뭣 같은 상황부터 타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