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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전역날 새벽 (2)



“통신보안, 통신보안!”

받지 않는다.

고작 몇 분 전, 교대 완료 보고와 온도 보고를 할 때에는 잘만 되던 통신이 먹통이었다.

연대 지휘 통제실은 물론, 지구 병원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

내 뒤에서는 훈련병들이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면서 몸을 낮춘 채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써 진정하려 했지만, 나 역시 몸이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다시 훈련병들 앞으로 다가갔다.

“대검 끼워.”

“부, 분대장님, 저희 어쩝니까?”

“끼우라고.”

125번 훈련병이 겁에 질린 듯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124번 훈련병이 옆의 동료를 다독이면서 빠릿빠릿하게 자신의 소총에 대검을 끼웠다. 가장 머리가 잘 굴러 가는 녀석이었다.

나는 서둘러 대검을 소총에 끼우고, 버벅거리는 126번 훈련병의 대검까지 장착해 주었다. 실탄은커녕 공포탄도 없는 훈련병들에게 대검 끼운 소총은 거의 유일한 무기였다.

그러나 공포탄도 딱히 의지가 되지는 않는다. 공포탄으로 짐승들을 쫓아낼 수 없다는 건 이미 놈들에게 목숨을 잃은 곽철이 몸소 증명했다.

“니들… 총검술 안 배웠지?”

훈련병들이 고개를 저었다.

실은 알면서도 물었다. 이미 몇 기수 전에 총검술은 교육과정에서 삭제되었다. 사실 나 역시 분대장 교육대에서 잠깐 배운 게 전부다. 대강의 지식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정자세로 ‘찔러’, ‘때려’, ‘돌려 쳐’를 배운다 한들 실전에서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별거 없어. 위험하다 싶으면 대검으로 졸라 찔러.”

나는 훈련병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몸을 감추도록 지시한 뒤, 고개를 빠끔 내밀어 바깥의 동향을 살폈다.

여전히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낮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무언가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피 냄새인지 짐승의 냄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간 구역질나는 냄새였다.

“하아…….”

이미 근무 투입 후 15분가량이 흘렀다. 경계 근무를 나온 우리는 적을 막기 위한 경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이른바 기도비닉(企圖秘匿) 상태를 유지했다.

사실 훈련소에서의 초소 근무는 짐승이나 북괴를 막기 위한 게 아니다. 이런 후방에 북괴가 나타날 리도 없고, 멧돼지 같은 짐승이 출몰하면 있던 근무도 안전을 이유로 취소된다.

초소 근무는 어디까지나 훈련병들에게 경계 절차를 체험하도록 한다는 명분과 탈영 훈련병을 방지한다는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녀석들은 탈영 훈련병같이 귀여운 존재가 아니었다.

크르르―

젠장.

나는 황급히 몸을 숙이고 훈련병들에게 완전히 엎드리도록 지시했다. 이제는 완전한 포복 자세에 가까웠다.

짐승 하나가 모래주머니가 쌓인 초소 방벽 위로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코를 벌름거린다.

숨을 참고 슬쩍 위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송곳니와 턱 밑으로 자란 붉은 수염이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피에 젖은 털이다.

놈의 주둥이에서 흘러내린 침이 내 방탄모 위로 떨어졌다.

내 옆의 125번 훈련병이 벌벌 떨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그르르르르.

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초소 안쪽을 살피는 것 같았다.

만일 녀석이 초소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다음의 선택지는 없다. 대검을 꽂은 소총으로 찔러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소란을 일으키면 놈들의 무리가 초소를 덮쳐 올 것이다.

최대한 참고 버텨야 한다.

그르릉.

짐승은 이빨을 내밀고 한차례 낮게 울부짖었지만, 다행히도 우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잠시 뒤, 놈은 초소 안으로 내민 주둥이를 빼고 터벅터벅 어디론가 걸어 사라져 버렸다.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녀석은 갔다.

하지만 무려 몇 분간 나와 훈련병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터벅터벅.

초소 입구 쪽에서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숨을 참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젠장.

훈련병들이 겁을 잔뜩 먹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단검을 끼운 소총을 단단히 부여잡은 채로 입구 쪽을 겨누었다.

여차하면 목덜미를 단박에 찔러야 한다. 놈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놈의 동료들이 몰려올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단 한 방, 그 한 방으로 끝내야만 했다.

제발, 제발…….

터벅터벅.

몸집이… 작다.

뚠뚠한 고양이 한마리가 초소 안으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무늬의 고양이, ‘짬타이거’였다.

야옹~

녀석이 바짝 엎드린 내 옆으로 다가와 몸을 비빈다.

“하아… 젠장.”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한숨을 내쉬며 초소 내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짬타이거가 초소 안으로 무사히 들어왔다는 건… 적어도 놈들이 정말 가 버렸다는 뜻이겠지. 훈련병들 역시 잠깐이나마 긴장이 풀린 듯 서로를 마주 보았다.

29연대의 최고참이자 명물인 개냥이 짬타이거는 평소 잔반을 바치던 나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배라도 긁어 드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들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똥꼬발랄한 짬타이거의 시중을 들어 줄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녀석의 울음소리가 혹시 녀석들을 불러들이기라도 한다면…….

“짬타이거, 저리 가. 나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녀석은 듣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리를 잡고 식빵 자세를 취했다.

하여간 속편한 자식.

나는 그저 녀석이 울어 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숨을 죽였다.

“흐, 흐흑.”

깜짝 놀라 갑작스레 울음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이런 젠장.

고양이보다 이 녀석이 더 문제구나.

“우냐?”

125번 훈련병이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나를 따라온 훈련병들 중에 가장 몸집도 큰 놈이 다짜고짜 울음을 터뜨렸다.

“125번 훈련병 차재상. 아,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겁을 집어먹고 충실히 관등성명을 대고 있다. 이런 놈이랑 전역날 절체절명의 위기를 함께 겪고 있다니.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나지 않은 말투로, 최대한 친절하게.

“울고 있고만. 괜찮냐?”

“죄, 죄송합니다.”

“됐어. 괜찮으니까 진정해. 곧 지원병이 올 거다. 좀 있으면 근무 교대 시간이야.”

어느새 2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근무 교대까지 약 40분가량 남았다.

하지만 솔직히 지원병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부대 밖으로 근무 교대를 위해 나왔다가 밖의 괴물 놈들에게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일단… 통신으로 이 상황부터 알려야 한다.

초소 안쪽 통신기기로 다시 향하던 순간이었다.

땅!

따당!

멀리서 연달아 공포탄 소리가 들렸다. 모두 우측이다.

우측에는 우리가 지나온 2초소와 훈련소 입구인 연무문이 있다.

땅! 땅!

한번 들리기 시작한 총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그 와중에 부산히 움직이는 초소 밖 네발짐승들의 발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몸을 납작 엎드리면서 훈련병들에게 신호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훈련병들은 나를 따라 황급히 몸을 낮추면서 숨을 죽였다.

제발 그대로 사라지길. 제발.

평소 믿지도 않던 신에게 이 순간만큼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다행히 부산한 발소리는 사격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다시 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확인했다. 여전히 안개 때문에 상황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근방에서 짐승들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한숨을 돌린 나는 다시 초소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 통신 장비를 확인했다.

되라, 제발 되라, 좀.

역시나 먹통이었다. 연락이 한꺼번에 몰려서 이쪽 통신이 닿지 않거나, 상대 쪽에 문제가 터진 거겠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걸어 보았다. 어찌 되었든 본부 측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을 것이다. 곧 지원군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손 놓고 누군가의 구원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초소 안의 물품들을 점검했다. 예비용으로 비치된 큰 랜턴. 역시 먹통이다. 건전지가 다된 것 같았다.

훈련소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장비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어떻게 아냐고? 사격장에서 방탄모를 걸어 놓고 사격했더니 뻥뻥 구멍이 잘만 뚫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게다가 훈련소 방독면 중 화생방에 들어갔을 때 정화통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많이 새냐, 조금 새냐의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

침을 꿀꺽 삼킨 뒤, 초소 밖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초소 근무 교대를 위해 나를 따라오던 7중대 곽철 일병과 훈련병들, 그리고 근무 교대 후 이동한 기태까지……. 초소 안에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었다.

“부, 분대장님!”

그때, 125번 훈련병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뭐, 왜?”

“그… 위,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냥 조용히 여기 있는 게…….”

초소 안에 가만히 버티고 있는 게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짐승이 초소 안으로 주둥이를 내미는가 하면, 당장 언제 울음소리를 낼지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초소 안에 있다.

생존자의 파악과 탈출로 모색을 위해서도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걸 125번 훈련병에게 일일이 설명할 마음은 없다. 대신 그나마 믿을 만한 녀석의 교번을 불렀다.

“124번 훈련병.”

“124번 훈련병 김지철.”

“두 사람이랑 여기 꿈쩍 말고 있어. 애들 잘 다독이고. 내가 밖의 상황을 잠깐 살피고 올게. 아, 각자 가지고 있는 랜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있다가 내가 돌아오면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역시 맘에 든다. 125번 훈련병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A급이었다.

한편, 멀리서 들리는 공포탄 소리가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짐승들을 때려잡았거나 혹은 잡아먹혔거나. 아니면 교전 중이거나.

여하간 이 근방 짐승들의 어그로를 확실히 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틈에 빨리 주변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곽철과 7중대 훈련병 녀석들.

랜턴을 켜고 앞쪽을 비춰 보면서 천천히 근방을 살폈다. 먼저 곽철이 녀석들에게 사로잡힌 방향으로 다가갔다.

“우욱…….”

젠장, 그냥 보지 말걸.

고어 영화도 몇 차례 보았지만, 현실과 영화의 괴리는 크다. 정말 사람의 시체는, 그것도 마구 헤집어진 시체는… 볼 게 못 된다. 곽철은 목덜미를 물려 절명한 것 같았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전역날 정신병원부터 가게 생겼군.

나는 올라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면서 랜턴의 방향을 돌려 곽철이 걸어왔을 방향을 살폈다.

천천히 걸으면서 바닥을 살펴보니, 핏자국이 흥건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쫓다가 두 구의 시체에 닿았다.

“젠장…….”



<7―88>, <7―89>



심하게 훼손된 시체 두 구의 철모에 쓰인 번호는 7중대 훈련병들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꼴을 보니 포위된 상태에서 소총을 마구 휘둘러 대며 싸운 것 같다. 하지만 둘 모두 목을 물어뜯긴 뒤, 다량의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잠깐. 두 구?

나머지 한 놈은?

나는 랜턴으로 곳곳을 비추었다.

크게 드러난 길이 아닌, 좌측 수풀로 불빛을 돌렸다.

큰길에서 서성였다면 곽철이나 다른 훈련병 둘처럼 살해당했을 것이다. 만일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면…….

부스럭.

“거기 누구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괴물? 아니면… 살아남은 7중대 훈련병?

소총을 전방으로 겨누었다. 공포탄을 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소리를 듣고 놈들이 개떼처럼 몰려들 테니까. 대신 어그로에 끌리지 않은 짐승이 나타난다면 대검을 쑤셔 박아 줄 요량이었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풀 속에서 바짝 몸을 낮추어 포복하고 있던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7―90>



“이쪽으로 나와.”

역시나 생존자였다.

보니까 상처를 입은 흔적은 없다. 괴물들과 싸우기보다는 곧바로 몸을 낮추고 수풀로 도망쳤다는 뜻이겠지.

“흐, 흐흑…….”

나쁘게 말하면 동료를 버렸다. 좋게 말하면 살아남았다.

난 냉정하게 생존한 훈련병을 재촉했다.

“이리 와. 놈들이 오기 전에 빨리 초소로 들어가야 돼.”

90번 훈련병은 훌쩍이면서도 서둘러 나를 따라왔다.

나는 곽철과 7중대 훈련병들의 시신 쪽으로 빛이 닿지 않도록 애쓰면서 녀석을 초소 쪽으로 인도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역시. 124번 훈련병 이 녀석은 물건이다.

이 와중에 경계할 생각을 다 하네.

나는 순순히 손을 들고 암구호를 말한 뒤, 살아남은 7중대 훈련병과 함께 초소에 귀환했다.

“충성.”

124번 훈련병은 절도 있게 경례하며 나를 맞아들였다. 그사이 125번 훈련병은 좀 진정이 된 것 같고, 126번 훈련병의 경우는 표정이 좀 굳었지만 그래도 멀쩡해 보였다.

“그래, 잘했어. 그보다 랜턴은 잘 켜지냐?”

“그게… 제 것은 잘되는데 125번 훈련병의 것은 망가졌고, 126번 훈련병 것은 빛이 너무 약해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그럼 그렇지.

내 뒤에 선 7중대 훈련병의 모습을 본 세 훈련병이 다소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긴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흙투성이에 벌벌 떠는 온몸, 반쯤 정신을 놓은 듯 헤 벌린 입…….

그때였다.

무언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백제의 옛 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노래?



관창의 어린 넋이~



군 생활 내내 지겹게 들은 그 노래, 바로 육군훈련소가였다.

어떤 미친놈이 육군훈련소가를 부르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훈련병 넷이 그대로 얼어붙었고, 나는 다시금 녀석들에게 몸을 낮추도록 지시했다.

그런 다음,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하면서 총을 겨누었다.

안개 때문에 아직은 녀석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웅장한 황산벌에 연무대 높이 섰고~



군가는 이제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