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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전역날 새벽 (1)
“이장군 병장님, 이장군 병장님!”
“…….”
“이 병장님, 초소 근무 나가셔야 됩니다.”
“…….”
“이 병장님.”
“일어났다, 인마.”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불침번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누구지?
…아, 알겠다. 오다가다 얼굴 몇 번 본 7중대 이등병 녀석이다.
군 생활 많이 남았겠구만. 불쌍한 녀석.
녀석은 엉거주춤하더니 곧 내무반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나가 버렸다.
“하아… 시발.”
전역 당일 날 초소 근무라니.
상도덕도 모르고 이따위 근무표를 짠 인간은 1소대장이었다.
하긴 그 새끼가 부리는 몽니가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본인의 무능을 분대장들에게 덮어씌우고, 분대장들의 공은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개자식.
여하간 그 심술 맞은 얼굴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래.
나는 이제 여섯 시간 뒤면 연무문을 나서서 자유의 몸이 된다.
논산 훈련소 29연대 6중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고, 정확히 같은 장소에서 21개월의 군 생활을 끝마칠 예정이다.
정말 지긋지긋했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는 A급 전역복 옆에 걸어 둔 전투복을 갖춰 입고 요대와 방탄모를 챙겼다.
그 와중에 전투복에 박힌 이름을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이장군]
이 이름 때문에 훈련병 시절부터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집안에 군인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군인이 없으니까 그런 건가?
여하간 이 전투복의 이름표는 곧 떼어지고 후임병의 이름이 붙을 것이다.
요대를 착용하면서 수통과 빈 탄알집도 확인했다.
교육대 당직 사관을 서고 있는 1소대장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떠나는 그날까지 사람을 뭣같이 괴롭힌다, 정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21개월을 함께 구른 시계. 훈련병들 앞에서 각개전투 시범을 보일 때 깜박 잊고 벗지 않아 겉면에 흠집이 많고, 군데군데 흙도 끼어 있었다. 그래도 시간만큼은 정확히 알려 주던 녀석이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해 놔도 돌아간다는 격언을 몸소 증명해 온, 기특한 물건.
구질구질한 감상이 길었다.
새벽 1시 20분. 슬슬 지금쯤 상황실로 가면 훈련병들이 기다리고 있겠군.
“충성!”
기간병들이 머무르는 3층에서 상황실이 있는 2층으로 내려오니, 복도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던 8중대 훈련병이 각 잡힌 태도로 경례했다.
5주 차 훈련병쯤 되니 제법 경례도 자연스러웠다.
“그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상황실로 향했다. 이 건물 전체에서 유일하게 불이 훤하게 켜진 2층의 상황실 앞에는 훈련병 여섯 명과 8중대 이준혁 상병이 서 있었다.
이준혁이 빙긋 웃으면서 반갑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다.
8중대 분대장들 중에서도 나와 꽤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었다. 붙임성 있는 성격에다가 머리도 잘 굴러 가는 녀석이다.
“오셨습니까, 이 병장님.”
“어, 그래.”
“전역날 이게 무슨 개고생이십니까.”
“그러게 말이다. 하아.”
한편, 우리의 대화를 들은 여섯 명의 훈련병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훈련병들에게 전역이란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일일 테니까.
나는 슬쩍 곁눈질로 훈련병들의 요대와 탄입대, 수통 상태를 확인하고 준혁이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예.”
준혁이와 나, 그리고 훈련병 여섯 명이 상황실로 들어서자 요란한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몸집의 당직 사관, 우리 1소대장님께서 숙면을 취하는 중이셨다.
입에 파리가 들어가도 모르겠군.
“충! 성!”
“…어, 어! 아, 너냐?”
일부러 크게 경례하자 1소대장이 침을 닦으며 일어나려다가 나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새끼, 연대장이 와서 이 꼬라지를 봐야 하는데.
그러는 사이, 1소대장 옆에서 함께 당직을 서던 당직병이 상황실에 보관해 둔 초소 근무병들의 소총을 꺼내고 있었다. 귀찮게 되었다는 듯 표정이 죽상이다.
당직병 녀석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1소대장 놈을 자게 내버려 뒀어야 하나 싶지만, 그럼 또 안 깨우고 몰래 근무 나갔다고 나중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를 일이었다.
1소대장은 길게 하품을 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그 와중에도 뱀 같은 눈으로 훈련병들과 내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졸린 와중에도 트집 잡을 건 없나 보는 거겠지. 하여간 이 새끼는 남 괴롭히는 맛으로 군 생활 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 이 장군.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 알잖냐. 요새 애새끼들은 정신이 빠졌어. 1교육대에서 랜턴도 안 들고 경계 근무를 갔단 말이야. 그거 연대장님한테 들켜서 그날 당직 사관 엿 됐어.”
하아…….
제발 입에 묻은 침 자국이나 닦고 말했으면.
연대장이 왔다가 당직 사관이 처 자고 있으면 그 표정이 참 볼만하겠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몇 시간 뒤의 전역만을 생각하면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데, 그동안 눈앞의 똥돼지 때문에 참을 인 자 수십 개는 그리지 않았던가.
이제 저 꼴을 더 안 봐도 된다.
앞으로 몇 시간만 더 지나면.
나는 당직병에게 랜턴과 공포탄이 삽탄된 탄알집, 포승줄과 대검을 받은 뒤, 훈련병들의 상태를 다시 살폈다.
훈련병들에게는 공포탄이 지급되지 않지만, 포승줄과 랜턴, 대검과 대검집은 똑같이 지급되었다.
“충성!”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자, 인솔자가 경광봉을 들고 상황실에 도착했다.
나의 부사수, 김기태 상병이었다.
초소까지 가는 길은 꽤 멀다.
제2초소는 5분 정도, 제4초소는 10분가량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2초소에서 준혁이와 8중대 훈련병 세 명이 근무 교대를 마쳤고, 교대한 7중대 녀석들이 합류하여 함께 4초소로 향했다.
“하아, 이제 날 좀 풀리나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기태가 빙긋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가면 뭐 하십니까?”
“뭐, 복학해야지.”
“이제 겨우 4월 아닙니까. 복학할 때까지 몇 개월은 남는데…….”
“하아, 글쎄다. 연애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겠냐?”
“제가 소개팅 한번 주선합니까?”
“예쁘냐?”
“스튜어디스입니다.”
“기태야, 아이고~ 이 기특한 녀석! 내가 부사수 하나는 잘 뒀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우리 뒤를 열심히 따라오는 6중대 훈련병 세 명과 교대를 마친 7중대 녀석들을 잠깐 살핀 뒤, 기태와의 비밀리에 협상을 이어갔다.
기태와는 벌써 1년도 넘게 6중대 3소대를 담당했다.
나는 아직 일병이고 녀석은 이등병일 때부터 같이 개고생을 하면서 분대장 생활을 버텨 냈고, 온갖 고생도 함께했다.
뭐, 전역 후 얼마나 오래 연락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녀석인 건 맞다.
아니, 이제부터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분이시다.
무려 스튜어디스를 소개해 줄 분 아닌가.
“그나저나 웬 안개가 이렇게 끼냐?”
“그러게 말입니다.”
2초소를 지나 4초소로 가는 길, 주변에서 안개가 슬슬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시야가 완전히 가려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안개가 두터워졌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왈! 왈!
“쯧, 재수 없게. 안개에다 개 짖는 소리까지… 뭐 이러냐?”
안개가 워낙 짙었다. 기태의 경광봉이 길을 인도하고 있어 별걱정은 없지만, 정작 이쪽에서는 뒤를 따라오고 있을 7중대 근무자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짙은 안개 속을 헤치면서 곧 4초소 앞에 도착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으레 그렇듯 이어진 경계 절차.
암구호를 대고 교대를 한다.
“그럼 고생하십쇼.”
“오냐,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라. 안개가 심상치 않네. 아, 스튜어디스 약속 잊지 말고!”
나는 기태와 인사를 나눈 뒤, 훈련병 셋과 함께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개 속에서 직전 근무자인 5중대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충성!”
5중대 행정병 이태훈 일병이다.
“어, 그래. 고생했다.”
“네, 고생하십쇼.”
그의 뒤를 따라 5중대 훈련병 셋이 쫄래쫄래 움직였다.
“자, 자, 들어와. 여기 서.”
전임 근무자들이 기태를 따라 복귀하자, 나를 따라 초소 안으로 들어온 훈련병들이 각자 위치를 잡았다. 그들의 철모에는 각자의 교번이 적혀 있었다.
<6―124>, <6―125>, <6―126>
우리 소대 훈련병이지만 이름은 알지 못했다. 어차피 이번 기수의 거의 절반 이상을 말년 휴가로 보냈다.
서류상으로야 내가 3소대 선임 분대장이지만, 이번 기수는 훈련병들과 거의 함께하지 않아서 기태가 실질적인 선임 분대장 역할을 맡았다.
“잠깐 기다려.”
“네, 분대장님.”
나는 근무 투입 시마다 그랬듯, 초소 안쪽 통신기의 수화기를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충성, 4초소 근무자 이장군입니다. 현재 시각 공두 시 공오 분, 근무 교대 완료하였습니다.”
이어 평소처럼 안쪽에 비치된 온도계와 습도계를 확인해 그 수치까지 알려 주었다.
“고생하십쇼.”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난 뒤 수화기를 내려놓고 초소 바깥이 잘 보이는 위치로 나오려는 찰나, 갑자기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탕! 탕!
“뭐야!”
나는 황급히 초소 밖을 살폈고, 훈련병 셋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저흰 아닙니다.”
“당연 아니겠지.”
훈련병들에게는 애당초 공포탄조차 지급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총성이 너무 가까웠다. 멀리서 들린 게 아니다.
“뭐 본 거 없어?”
그나마 좀 똑똑해 보이는 124번 훈련병이 다급히 보고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불꽃 같은 것도 본 거 같습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2초소와 이어진 길목이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이다.
뒤따라오던 7중대 녀석이 사고를 친 건가?
물론 애초에 훈련소 내 근무자들은 실탄이 아닌 공포탄만 갖고 근무에 투입하니 큰 사고가 터질 일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고작 몇 분 사이에 짙어진 안개가 불길한 느낌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월! 월!!
“으, 으아아아!!”
크르르!
“으아아아아아!!”
정체모를 짐승의 소리와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우측에서 혼비백산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는 황급히 훈련병들을 뒤로 밀어내고 총구를 겨누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으, 으아아악!! 사, 살려 줘!!”
황급히 경계 절차를 거치려던 나는 언뜻 드러난 피투성이의 사내를 보고 얼어붙어 버렸다.
피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분명 보였다.
7중대 곽철 일병. 근무 교대를 마친 뒤, 우리 일행을 따라오던 녀석이다. 하지만 곽철과 함께 근무했을 7중대 훈련병 셋은 보이지 않았다.
곽철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초소 바로 앞까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비, 빌어먹을!”
놀란 내가 황급히 초소 밖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갑자기 곰처럼 거대한 몸집의 무언가가 곽철을 뒤에서 덮쳤다.
문제는 그렇게 거대한 네발짐승들이 넘어진 곽철에게 여럿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한 놈이 아니다.
“으, 으아아아아악!!”
이미 내 옆의 훈련병 셋은 바짝 얼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동물들에게 잡힌 곽철은 그대로 흙바닥에 엎어졌고, 손가락으로 처절하게 땅을 긁어 댔다.
발악하는 곽철의 모습과 그를 덮친 동물들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져 갔다.
이윽고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곽철의 버둥거림이 멈춘 것 같았다.
안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수준으로 두터워졌고, 당장 고작 몇 미터 앞에 있을 곽철과 정체 모를 짐승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끔찍한 소리만이 여전히 들려올 뿐.
꽈드드득―
콰직―
크르르―
지지직―
무언가 찢기고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울음.
그나마 아직까지 초소 안 세 훈련병의 얼굴은 식별이 가능했다.
초소라고 해 봤자 실외에 흙주머니들로 대강 쌓아 만든 진지 수준이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은 결코 아니다.
나는 몸을 최대한 낮춘 뒤, 얼어붙은 훈련병 셋에게 같은 동작을 취하도록 했다. 일단 진지 밖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바깥 경계가 문제가 아니라, 바깥에서 이쪽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 것이다.
나는 한껏 몸을 낮춘 뒤, 훈련병들을 보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정신 차려. 몸 더 낮추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
“부, 분대장님, 지금 저 소리가…….”
나도 듣고 있다.
무언가 찢어지고 뜯기는 소리, 그리고 짐승들의 낮은 울음소리.
안개에 완전히 가려지기 전에 본 장면만으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지만,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곽철이… 죽었다.
이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초소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하려는 생각은 일단 접었다. 이미 바로 몇 미터 앞에 정체 모를 식인 짐승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을 보았으니.
자칫하다간 나와 훈련병들까지 덩달아 먹이가 될 판이었다.
섣불리 초소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일단 보고가 먼저다.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초소 안쪽에 비치된 통신 기기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과거, 훈련소에서 멧돼지가 몇 차례 목격된 적은 있지만, 안개 속에서 보인 실루엣으로 보아 멧돼지는 아니다.
개, 늑대 혹은 다른 무언가.
아니, 대체 이 평화로운 논산에서 어떻게 갑자기 저런 짐승들이 나타나 날뛸 수 있지.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전역하는 날 새벽에.
빌어먹을…….
“이장군 병장님, 이장군 병장님!”
“…….”
“이 병장님, 초소 근무 나가셔야 됩니다.”
“…….”
“이 병장님.”
“일어났다, 인마.”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불침번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누구지?
…아, 알겠다. 오다가다 얼굴 몇 번 본 7중대 이등병 녀석이다.
군 생활 많이 남았겠구만. 불쌍한 녀석.
녀석은 엉거주춤하더니 곧 내무반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나가 버렸다.
“하아… 시발.”
전역 당일 날 초소 근무라니.
상도덕도 모르고 이따위 근무표를 짠 인간은 1소대장이었다.
하긴 그 새끼가 부리는 몽니가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본인의 무능을 분대장들에게 덮어씌우고, 분대장들의 공은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개자식.
여하간 그 심술 맞은 얼굴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래.
나는 이제 여섯 시간 뒤면 연무문을 나서서 자유의 몸이 된다.
논산 훈련소 29연대 6중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고, 정확히 같은 장소에서 21개월의 군 생활을 끝마칠 예정이다.
정말 지긋지긋했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는 A급 전역복 옆에 걸어 둔 전투복을 갖춰 입고 요대와 방탄모를 챙겼다.
그 와중에 전투복에 박힌 이름을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이장군]
이 이름 때문에 훈련병 시절부터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집안에 군인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군인이 없으니까 그런 건가?
여하간 이 전투복의 이름표는 곧 떼어지고 후임병의 이름이 붙을 것이다.
요대를 착용하면서 수통과 빈 탄알집도 확인했다.
교육대 당직 사관을 서고 있는 1소대장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떠나는 그날까지 사람을 뭣같이 괴롭힌다, 정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21개월을 함께 구른 시계. 훈련병들 앞에서 각개전투 시범을 보일 때 깜박 잊고 벗지 않아 겉면에 흠집이 많고, 군데군데 흙도 끼어 있었다. 그래도 시간만큼은 정확히 알려 주던 녀석이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해 놔도 돌아간다는 격언을 몸소 증명해 온, 기특한 물건.
구질구질한 감상이 길었다.
새벽 1시 20분. 슬슬 지금쯤 상황실로 가면 훈련병들이 기다리고 있겠군.
“충성!”
기간병들이 머무르는 3층에서 상황실이 있는 2층으로 내려오니, 복도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던 8중대 훈련병이 각 잡힌 태도로 경례했다.
5주 차 훈련병쯤 되니 제법 경례도 자연스러웠다.
“그래.”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상황실로 향했다. 이 건물 전체에서 유일하게 불이 훤하게 켜진 2층의 상황실 앞에는 훈련병 여섯 명과 8중대 이준혁 상병이 서 있었다.
이준혁이 빙긋 웃으면서 반갑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다.
8중대 분대장들 중에서도 나와 꽤 친하게 지내는 녀석이었다. 붙임성 있는 성격에다가 머리도 잘 굴러 가는 녀석이다.
“오셨습니까, 이 병장님.”
“어, 그래.”
“전역날 이게 무슨 개고생이십니까.”
“그러게 말이다. 하아.”
한편, 우리의 대화를 들은 여섯 명의 훈련병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훈련병들에게 전역이란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일일 테니까.
나는 슬쩍 곁눈질로 훈련병들의 요대와 탄입대, 수통 상태를 확인하고 준혁이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예.”
준혁이와 나, 그리고 훈련병 여섯 명이 상황실로 들어서자 요란한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몸집의 당직 사관, 우리 1소대장님께서 숙면을 취하는 중이셨다.
입에 파리가 들어가도 모르겠군.
“충! 성!”
“…어, 어! 아, 너냐?”
일부러 크게 경례하자 1소대장이 침을 닦으며 일어나려다가 나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새끼, 연대장이 와서 이 꼬라지를 봐야 하는데.
그러는 사이, 1소대장 옆에서 함께 당직을 서던 당직병이 상황실에 보관해 둔 초소 근무병들의 소총을 꺼내고 있었다. 귀찮게 되었다는 듯 표정이 죽상이다.
당직병 녀석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1소대장 놈을 자게 내버려 뒀어야 하나 싶지만, 그럼 또 안 깨우고 몰래 근무 나갔다고 나중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를 일이었다.
1소대장은 길게 하품을 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그 와중에도 뱀 같은 눈으로 훈련병들과 내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졸린 와중에도 트집 잡을 건 없나 보는 거겠지. 하여간 이 새끼는 남 괴롭히는 맛으로 군 생활 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 이 장군.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 알잖냐. 요새 애새끼들은 정신이 빠졌어. 1교육대에서 랜턴도 안 들고 경계 근무를 갔단 말이야. 그거 연대장님한테 들켜서 그날 당직 사관 엿 됐어.”
하아…….
제발 입에 묻은 침 자국이나 닦고 말했으면.
연대장이 왔다가 당직 사관이 처 자고 있으면 그 표정이 참 볼만하겠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지만, 몇 시간 뒤의 전역만을 생각하면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데, 그동안 눈앞의 똥돼지 때문에 참을 인 자 수십 개는 그리지 않았던가.
이제 저 꼴을 더 안 봐도 된다.
앞으로 몇 시간만 더 지나면.
나는 당직병에게 랜턴과 공포탄이 삽탄된 탄알집, 포승줄과 대검을 받은 뒤, 훈련병들의 상태를 다시 살폈다.
훈련병들에게는 공포탄이 지급되지 않지만, 포승줄과 랜턴, 대검과 대검집은 똑같이 지급되었다.
“충성!”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자, 인솔자가 경광봉을 들고 상황실에 도착했다.
나의 부사수, 김기태 상병이었다.
초소까지 가는 길은 꽤 멀다.
제2초소는 5분 정도, 제4초소는 10분가량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2초소에서 준혁이와 8중대 훈련병 세 명이 근무 교대를 마쳤고, 교대한 7중대 녀석들이 합류하여 함께 4초소로 향했다.
“하아, 이제 날 좀 풀리나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기태가 빙긋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가면 뭐 하십니까?”
“뭐, 복학해야지.”
“이제 겨우 4월 아닙니까. 복학할 때까지 몇 개월은 남는데…….”
“하아, 글쎄다. 연애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겠냐?”
“제가 소개팅 한번 주선합니까?”
“예쁘냐?”
“스튜어디스입니다.”
“기태야, 아이고~ 이 기특한 녀석! 내가 부사수 하나는 잘 뒀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우리 뒤를 열심히 따라오는 6중대 훈련병 세 명과 교대를 마친 7중대 녀석들을 잠깐 살핀 뒤, 기태와의 비밀리에 협상을 이어갔다.
기태와는 벌써 1년도 넘게 6중대 3소대를 담당했다.
나는 아직 일병이고 녀석은 이등병일 때부터 같이 개고생을 하면서 분대장 생활을 버텨 냈고, 온갖 고생도 함께했다.
뭐, 전역 후 얼마나 오래 연락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녀석인 건 맞다.
아니, 이제부터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분이시다.
무려 스튜어디스를 소개해 줄 분 아닌가.
“그나저나 웬 안개가 이렇게 끼냐?”
“그러게 말입니다.”
2초소를 지나 4초소로 가는 길, 주변에서 안개가 슬슬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시야가 완전히 가려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안개가 두터워졌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왈! 왈!
“쯧, 재수 없게. 안개에다 개 짖는 소리까지… 뭐 이러냐?”
안개가 워낙 짙었다. 기태의 경광봉이 길을 인도하고 있어 별걱정은 없지만, 정작 이쪽에서는 뒤를 따라오고 있을 7중대 근무자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짙은 안개 속을 헤치면서 곧 4초소 앞에 도착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으레 그렇듯 이어진 경계 절차.
암구호를 대고 교대를 한다.
“그럼 고생하십쇼.”
“오냐,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라. 안개가 심상치 않네. 아, 스튜어디스 약속 잊지 말고!”
나는 기태와 인사를 나눈 뒤, 훈련병 셋과 함께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개 속에서 직전 근무자인 5중대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충성!”
5중대 행정병 이태훈 일병이다.
“어, 그래. 고생했다.”
“네, 고생하십쇼.”
그의 뒤를 따라 5중대 훈련병 셋이 쫄래쫄래 움직였다.
“자, 자, 들어와. 여기 서.”
전임 근무자들이 기태를 따라 복귀하자, 나를 따라 초소 안으로 들어온 훈련병들이 각자 위치를 잡았다. 그들의 철모에는 각자의 교번이 적혀 있었다.
<6―124>, <6―125>, <6―126>
우리 소대 훈련병이지만 이름은 알지 못했다. 어차피 이번 기수의 거의 절반 이상을 말년 휴가로 보냈다.
서류상으로야 내가 3소대 선임 분대장이지만, 이번 기수는 훈련병들과 거의 함께하지 않아서 기태가 실질적인 선임 분대장 역할을 맡았다.
“잠깐 기다려.”
“네, 분대장님.”
나는 근무 투입 시마다 그랬듯, 초소 안쪽 통신기의 수화기를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충성, 4초소 근무자 이장군입니다. 현재 시각 공두 시 공오 분, 근무 교대 완료하였습니다.”
이어 평소처럼 안쪽에 비치된 온도계와 습도계를 확인해 그 수치까지 알려 주었다.
“고생하십쇼.”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난 뒤 수화기를 내려놓고 초소 바깥이 잘 보이는 위치로 나오려는 찰나, 갑자기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탕! 탕!
“뭐야!”
나는 황급히 초소 밖을 살폈고, 훈련병 셋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저흰 아닙니다.”
“당연 아니겠지.”
훈련병들에게는 애당초 공포탄조차 지급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총성이 너무 가까웠다. 멀리서 들린 게 아니다.
“뭐 본 거 없어?”
그나마 좀 똑똑해 보이는 124번 훈련병이 다급히 보고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불꽃 같은 것도 본 거 같습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2초소와 이어진 길목이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이다.
뒤따라오던 7중대 녀석이 사고를 친 건가?
물론 애초에 훈련소 내 근무자들은 실탄이 아닌 공포탄만 갖고 근무에 투입하니 큰 사고가 터질 일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고작 몇 분 사이에 짙어진 안개가 불길한 느낌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월! 월!!
“으, 으아아아!!”
크르르!
“으아아아아아!!”
정체모를 짐승의 소리와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우측에서 혼비백산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는 황급히 훈련병들을 뒤로 밀어내고 총구를 겨누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으, 으아아악!! 사, 살려 줘!!”
황급히 경계 절차를 거치려던 나는 언뜻 드러난 피투성이의 사내를 보고 얼어붙어 버렸다.
피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분명 보였다.
7중대 곽철 일병. 근무 교대를 마친 뒤, 우리 일행을 따라오던 녀석이다. 하지만 곽철과 함께 근무했을 7중대 훈련병 셋은 보이지 않았다.
곽철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초소 바로 앞까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비, 빌어먹을!”
놀란 내가 황급히 초소 밖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갑자기 곰처럼 거대한 몸집의 무언가가 곽철을 뒤에서 덮쳤다.
문제는 그렇게 거대한 네발짐승들이 넘어진 곽철에게 여럿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한 놈이 아니다.
“으, 으아아아아악!!”
이미 내 옆의 훈련병 셋은 바짝 얼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동물들에게 잡힌 곽철은 그대로 흙바닥에 엎어졌고, 손가락으로 처절하게 땅을 긁어 댔다.
발악하는 곽철의 모습과 그를 덮친 동물들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져 갔다.
이윽고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곽철의 버둥거림이 멈춘 것 같았다.
안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수준으로 두터워졌고, 당장 고작 몇 미터 앞에 있을 곽철과 정체 모를 짐승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끔찍한 소리만이 여전히 들려올 뿐.
꽈드드득―
콰직―
크르르―
지지직―
무언가 찢기고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울음.
그나마 아직까지 초소 안 세 훈련병의 얼굴은 식별이 가능했다.
초소라고 해 봤자 실외에 흙주머니들로 대강 쌓아 만든 진지 수준이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은 결코 아니다.
나는 몸을 최대한 낮춘 뒤, 얼어붙은 훈련병 셋에게 같은 동작을 취하도록 했다. 일단 진지 밖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바깥 경계가 문제가 아니라, 바깥에서 이쪽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 것이다.
나는 한껏 몸을 낮춘 뒤, 훈련병들을 보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정신 차려. 몸 더 낮추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
“부, 분대장님, 지금 저 소리가…….”
나도 듣고 있다.
무언가 찢어지고 뜯기는 소리, 그리고 짐승들의 낮은 울음소리.
안개에 완전히 가려지기 전에 본 장면만으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지만,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곽철이… 죽었다.
이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초소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하려는 생각은 일단 접었다. 이미 바로 몇 미터 앞에 정체 모를 식인 짐승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을 보았으니.
자칫하다간 나와 훈련병들까지 덩달아 먹이가 될 판이었다.
섣불리 초소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일단 보고가 먼저다.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초소 안쪽에 비치된 통신 기기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과거, 훈련소에서 멧돼지가 몇 차례 목격된 적은 있지만, 안개 속에서 보인 실루엣으로 보아 멧돼지는 아니다.
개, 늑대 혹은 다른 무언가.
아니, 대체 이 평화로운 논산에서 어떻게 갑자기 저런 짐승들이 나타나 날뛸 수 있지.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전역하는 날 새벽에.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