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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차치홍 기자]



시선은 방영호 회장의 휴대폰으로 향하고, 귀에는 차치홍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보를 하나 할까 합니다.”

― 실례지만 어디시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일단 제 얘기부터 들으시죠.”

제보는 출처가 중요하다.

믿을 만한 곳에서 나왔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제보의 신뢰성을 가리니까 말이다.

다만, 제보가 흥미로울 때는 기자들조차 그 사실을 잊기도 하지만…….

― 아니 그게 무슨…….

“방 회장님의 아들이 납치되었다가 구출되었습니다.”

― 네?! 성훈산업 방영호 회장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목소리가 다급해지는 걸 보니 차치홍 기자 역시 여느 기자들과 마찬가지였다.

“네. 방영호 회장님의 아들 방성훈이 지금…….”

톡톡.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옆에 있던 민태호의 두꺼운 팔뚝을 쳤다.

“삼촌 어디 병원이에요?”

‘중앙 병원.’

조용히 속삭이자 민태호가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입모양으로 대답했다.

“지금 구출되어 중앙 병원에 있습니다.”

― 일단 감사합니다. 찾아가 보겠습니다.

“네.”

탁.

내 휴대폰의 폴더가 닫힌 지 5초도 되지 않아 방영호 회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 회장님!

“사정이 있어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 어?

목소리가 멀어지다가 가까워진 걸 보니, 혹시나 해서 통화 기록을 확인해 본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휴대폰에는 선명히 찍힌 방영호 회장의 이름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믿음이 안 가시면 방 회장님한테 먼저 찾아가 보시던지요. 집 주소는…….”

― 아니요. 방영호 회장님의 휴대폰을 가질 사람은 몇 안 되죠. 그걸로 됐습니다. 지금 바로 가 보겠습니다.

탁.

전화가 끊기자 어깨를 주무르던 민태호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휴∼ 꼬맹이 니 하는짓 보니께 또 머리 아픈 일 만들고 있고만.”

“하하하,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잖아요.”

“뭘 익숙해진다는 겨?”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나는 민태호의 머리가 되어 다른 조직들을 하나씩 집어삼켜 왔다.

덕분에 서울연합파는 SY라는 기업이 될 수 있었고.

지금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다.

민태호의 주먹과 나의 머리가 합쳐지는 순간 세상에 두려울 것은 없으니까.

“제 머리 돌아가는 소리요.”

“내 머리도 안 돌아가는디 뭔 헛소리여. 그리고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어찌 나것냐!”

“거참, 그냥 좋게 알아들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앞으로 삼촌한테 제가 필요할 거라는 소리니까.”

“그건 모르겄고 꼬맹이 니랑 있으면 스펙터클한 일이 계속 생기는 것은 확실헌 거 같다.”

드르릉.

민태호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한다.

“그려. 그래서 어디로 가?”

그런 일이 피곤하지만, 영 싫기만 하지는 않은 듯 민태호의 표정이 밝았다.

“스펙터클한 일이 생기는 곳으로요.”



***



잔잔한 재즈 음악이 귀를 간지럽히는 어느 바에 두 남성이 앉아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축하는 무슨.”

“이번 작전만 끝나면 클럽에 들어가시게 되는 겁니까?”

“아마도?”

대표라 불리는 남자는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지만, 내심 기분이 좋은지 연신 입꼬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쪼르륵―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비어 있는 대표 잔에 술을 따르는 검은 정장의 남자가 말했다.

“내가 우리 김 실장을 잊을 수가 있나.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월요일 날 마무리 잘하고.”

“네, 대표님!”

“크으! 달다 달어.”

하지만 두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잔에 채워진 술이 축하주가 곧 쓰디쓴 독주가 될 것이라는 걸.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두 사람에게 헐레벌떡 뛰어온 부하 직원이 크게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곧장 자신의 대표에게 신문을 들이밀었다.



“뭔데 이리 호들갑이야.”

“이거, 이거 먼저 보시죠!”



[성훈산업 방영호 회장 아들 납치!]

[방영호 회장 아들인 방성훈 군이 의문의 남성들에게 납치되었다가 극적으로 구출…….]



덜덜덜.

남자가 전한 석간신문을 보며 대표는 온몸을 떨었다.

“게다가 사무실도 털렸습니다.”

“사무실이?!”

“네! 아까 가보니 웬 조폭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씨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박 실장은?”

“모르겠습니다. 박 실장뿐만 아니라 박 실장 식구들까지 전부 행방불명입니다.”

지잉∼

바로 그때, 대표의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TOM]



휴대폰을 꺼낸 대표는 화면에 띄워진 이름을 보고 크게 침을 삼켰다.

별것 없어 보이는 이름이지만, 지금 대표에게는 지옥의 사신과도 같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 두 번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저도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 클럽 내부에서 자네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아.

“제가 어찌 해서든 원금이라도 회수하겠습니다! 제발 믿어 주…….”

― 그래야 할 거야.

절박한 목소리로 내뱉은 대표의 변명을 싹둑 잘라낸 전화가 이내 뚝 하고 끊겨 버렸다.

“대표님… 도망가야 합니다. 사무실이 털린 거면 여기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멍청한 소리!”

“하, 하지만…….”

갑작스런 고함에 놀란 김 실장이 더듬거리며 다시 한번 말을 해 보려 하지만, 대표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시금 입술을 열었다.

“일단 원금이라도 건져야 돼. 조폭한테 잡히면 죽을 만큼 고통스럽겠지만 클럽이 움직이면 우린 그냥 죽는 거야.”

최악보다는 차악?

둘 다 좋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아직 여길 안 쳐들어온 거 보면 박 실장이 우리 위치를 말하지 않은 거 같아. 아니면 말하기도 전에 죽었던가.”

“그럼 어떻게…….”

“일단 월요일까지 숨어 있다가 성일 바이오 물량 털고 최대한 원금을 건진다. 그러고 나서 밀항을 하든 살려달라고 빌든 선택해야지.”

덜덜덜 다리를 떨며 빈 잔을 바라보는 미래 인베스트먼트 대표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했다.

‘씨발, 좆 됐네.’



***



중앙 병원 꼭대기 VIP 병실에 다가가자 방영호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아들 괜찮은 겁니까?”

“머리에 찢어진 상처와 약간의 타박상 빼고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요?”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뇌가 쉬는 것일 뿐입니다. VIP 병동 의사들 모두가 캐어할 테니 걱정 마시죠.”

“부탁 좀 드립니다.”

“의식 돌아오면 정신과 상담 스케줄도 잡아 놓겠습니다.”

“고마워요, 강 원장.”

“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계세요. 그럼 이만.”

드르륵.

굳이 내 손으로 문을 열지 않아도 성훈이의 병실 문이 열렸다.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야. 병문안은 나중에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병원장 강필모]



강필모 병원장은 문 앞에 선 채 나를 보며 말했다.

아마 친한 친구의 병문안이라 생각해서 그러는 듯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아들 친구이기도 하지만 제 손님이기도 하니까요.”

힐끔.

뒤에서 들려오는 방영호 회장 목소리에 강필모 병원장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막고 있던 문 앞을 열어 줬다.

“뇌는 쉬고 있어도 귀는 열려 있으니 웬만하면 나가서 대화하시죠, 회장님.”

문 앞에서 물러난 강필모 병원장이 멀리서 뒤따라오던 민태호를 보고는 평범한 병문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한 말이었다.

“알겠소 강 원장.”

강필모 병원장이 떠나고 방영호는 누워 있는 아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조용히 바라봤다.

“민 사장 식구한테 얘기 들었어요. 고마워요. 내 아들 구해 줘서.”

“아녀라. 요 꼬맹이가 불러서 갔는디요, 뭐.”

방회장의 감사가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민태호가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내 아들 옆에 좀 있어 줘요. 난 치우랑 잠시 얘기 좀 하고 올 테니.”

“예, 걱정 마셔라.”

드르륵.

성훈이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가 전부 가려질 만큼 큰 덩치를 자랑하는 민태호의 뒷모습이 미닫이문으로 가려졌다.

민태호가 병실 안에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성훈이를 다시 데려가지 못하겠지.

“옥상 가서 얘기하지.”

옥상에 도착한 방영호는 가장 먼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앞에서 한 대 펴도 되겠나? 성훈이한테는 비밀로 해 주고.”

“괜찮습니다. 비밀 지켜 드리겠습니다.”

“휴… 이걸 15년 만에 무는구나.”

답답함을 한숨으로 쏟아 내기에는 부족한지 연신 담배 연기를 섞어 내쉬는 방영호 회장이었다.

“고맙네. 아들을 구해 줘서.”

“아닙니다. 회장님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제 친구이기 때문에 구한 겁니다.”

“고마운 건 마음에 담아 두겠다만, 별개로 치우 너에게 화를 내야 할 것 같구나.”

방영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머릿속에 전부 그려졌다.

“제보 네가 한 거지?”

다행히도 내 머릿속에 스케치해 놓은 그림은 틀리지 않았고, 그 탓에 미리 색칠해 둔 완성품을 곧장 꺼낼 수 있었다.

“네, 맞습니다.”

“이번 일은 경솔했다. 치우 네 덕분에 아들 하나 지키지 못하는 회장이란 소리를 듣게 생겼구나.”

아니.

그것보다 자신의 아들을 납치한 놈들을 직접 손 댈 수 없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놈들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화살은 방영호 회장에게 날아갈 테니 말이다.

“제보하는 것이 회장님에게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알려야 했으니까요.”

“그들이 누구지?”

“성훈이를 구한 일이 회장님한테는 다행이지만, 놈들한테는 자기 목숨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습니다.”

“녀석들 뒤에 누가 있다는 소리인가?”

250억이라는 비자금을 아무렇지 않게 품을 수 있는 인물.

혹은 인물들.

“네. 그러니 굳이 회장님 손에 피를 묻히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분노에 떨리고 있는 내 손은 어떻게 진정시키지?”

스윽.

담배를 쥐고 있던 방영호 회장 손에 작은 쪽지 하나를 쥐어 줬다.

“복수보다는 합의금을 받는 쪽이 어떠십니까?”

“합의금?”

방영호가 내가 건넨 쪽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합의금으로 괜찮은 제약 공장 하나 받으시죠.”

스윽.

“성일 바이오?”

“네.”

놈들은 주가조작의 타깃으로 저평가된 성일 바이오를 이용하려 했다.

그래야 성훈산업의 투자 소식이 들려도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여기는 놈들이 매수하라고 하던 곳이 아니었나?”

“네, 맞습니다.”

그러니 주가조작이라는 단어만 뺀다면 꽤 괜찮은 기업이라는 말이다.

규모는 작지만 일당백 연구진들이 있고, 꽤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공장까지 있으니까.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미래 지식들의 도면을 넣는다면 꽤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나중에 혹시 빵빵한 주머니가 필요할 수도 있고.

“지금 내 아들 납치한 놈들 입에 밥을 넣어 주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요. 놈들 입에 독약을 넣자는 말입니다.”

“독약?”

“일요일에 지금까지 있던 모든 사실을 언론에 제보할 겁니다. 성일 바이오 대표가 미래 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짜고 주가조작을 하려 한 사실과 성훈이를 납치한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그런 공시가 뜨면 놈들이 가진 엄청난 양의 성일 바이오 주식은 수직으로 하락할 것이다.

“성일 바이오 대표는 구속될 것이고 바닥까지 떨어진 놈들의 주식을 회장님이 전부 받으시면 됩니다.”

“참… 도대체 몇 수 앞을 보고 있는 거냐. 네 녀석은?”

답답함이 조금은 해결된 탓인지 연신 줄담배를 태우던 방영호의 손이 더 이상 담뱃갑으로 향하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꽤 괜찮은 합의금이라 생각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