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0)



끼익―

이제 곧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설 재개발 예정 지구 안에서 추격전이 펼쳐질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그래서 더욱더 다행인 일.

“워메! 빠이프!”

덜컥!

문제는 민태호가 쫓아온다는 사실에 미쳐 날뛰고 있는 박 실장을 빨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놈이 도시로 나가기 전에 말이다.

“꽉 잡으세요!”

조수석을 보며 말하자 큰 덩치를 잔뜩 웅크린 채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민태호가 보인다.

“하하하, 이미 잡고 있네요, 삼촌.”

부우우우우웅!

녀석을 잡기 위해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다행인 건 액셀을 꾹 밟은 내 간절함을 모두 받아 줄 수 있을 만큼 민태호의 차가 성능이 좋다는 것이다.

“아따, 이 꼬맹이만 만나면 생명의 위협이 느껴진단께!”

“삼촌, 이 차 얼마에요?”

“식은땀 나 죽겄는디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겨?”

“보험은 되죠?”

박 실장이 타고 있는 차 뒷 범퍼와 민태호의 차 보닛이 가까워질 때쯤 물었다.

“보험은 있어도 무면허는 보험 처리가 안 되는 거 모르냐… 시방 설마?!”

나와 앞 유리를 번갈아 보는 민태호.

꽈악.

“도시로 나가면 잡기 더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시방 같이 죽자는 거여?”

무언가를 결심한 내 눈빛을 본 민태호가 손잡이를 더욱더 꽉 움켜잡으며 말한다.

“생명보험도 있을 거 아니에요.”

“깡패가 무슨 보험이여!”

내 말에 민태호가 흥분한 듯 고함을 질러댔다.

“그럼 안 죽을 정도로만 박을게요.”

“워메! 그게 문제가 아니잖어!”

끼익― 쾅!

충격과 함께 에어백이 활짝 펼쳐지고…….

이내 모래판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두 차량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멈추었다.

“으… 삼촌 괜찮으세요?”

“사주에 이상한 놈 하나 앵겨 붙는다 카더니…….”

팔다리도 멀쩡히 움직이고, 몸에서 피나는 곳이 없는 걸 보니 크게 이상은 없는 듯했다.

민태호도 마찬가지이고.

삐걱.

아귀가 어긋나 버린 문을 열고 내리자, 멈춰 버린 앞 차에서 박 실장이 힘겹게 내린다.

“씨발! 오지 마!”

그래도 아직은 반항할 힘이 남았는지 박 실장이 칼을 꺼내들며 외쳤다.

“아야∼ 곱게 칼 버려라잉. 니도 다쳤을 건디 객기 부리다 어디 뽀사지지 말고.”

“좆 까! 내가 민태호 당신을 몰라? 여기서 죽나, 당신한테 끌려가서 죽나 똑같아!”

“나가 예전처럼 무대뽀가 아녀∼”

나를 옆으로 밀치고 박 실장이란 녀석에게 민태호 서서히 다가갔다.

“오지 말라고!”

턱!

흥분해 달려오는 박 실장을 업어치자, 하늘을 가른 칼과 박 실장이 모래판에 턱 하고 꽂혔다.

“아따, 이놈이나 저놈이나 왜케 피곤하게 하는 겨.”

민태호는 박 실장과 나를 바라보며 귀찮은 듯 말했다.

“저는 왜요?”

“그걸 몰라서 물어?”

“네. 모르니까 아까 그 건물로 가기나 하죠.”

“그려. 아이고 삭신이야.”

내 말에 그가 허리를 두어 번 치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야, 나 좀 델러 와야쓰겄다.”



***



다시 미래 인베스트먼트 건물로 오자 모든 상황은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회사원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미래 인베스트먼트 직원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고, 민태호의 식구들은 뒤에서 칼로 녀석들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칼 거두고 조용한데 묶어 놔라잉. 지랄해 싸도 웬만하면 칼침은 놓지 말고.”

“네, 형님!”

휙.

큰 소리로 말하는 자신의 식구에게 민태호가 손짓으로 대답했다.

그런 민태호의 모습과 질질 끌려오는 박 실장이 보니, 꿀려 있는 녀석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반항만 하지 않으면 민태호 성격상 다치게는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놈은 어찌할까요?”

우리를 데리러 온 식구 한 명이 박 실장의 뒷목을 잡으며 물었다.

“안으로 데리고 가요.”

끄덕끄덕.

물음에 내가 답하자 민태호의 눈치를 보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주었다.

“우리도 싸게 들어가자잉. 힘들어 죽겄다.”

“업어치기 한 번 했다고 엄살은.”

내 말에 민태호가 눈을 부릅뜨며 삿대질을 했는데, 엄청나게 억울해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러지?

“마! 니가 운전을 어떻게 했는데!”

“아∼”

‘난 또 뭐라고.’

뒷말까지 꺼냈다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나는 긍정의 표시로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아따, 그게 지금 수긍이라고 하는 겨?! 대충 끄덕이지 말고 니 죄를 인정허라니까! 마! 내 말 안 들리노!”

나는 민태호의 말을 들으며, 이 근본 없는 사투리는 도대체 몇 개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멈추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아야! 마! 서 보랑께!”

미래 인베스트먼트 내부로 들어오자 꽤 그럴 듯하게 꾸며 놓은 사무실이 보였다.

내 눈에는 구식이었지만, 컴퓨터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사무용 집기들은 뽀득뽀득할 정도로 깨끗했다.

“이야∼ 우리 민구, 주머니에 칼 차고 사무실에서 컴퓨터 만지는 거여? 어울리지 않게스리.”

“어떻게 아는 놈이에요?”

“옛날에 내 밑에 있던 동상이여.”

컴퓨터는 잘 만질 줄도 모르는 녀석들이 태반일 것이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청소밖에 없으니 집기들이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한 것이다.

“후∼ 꼬맹이, 뒷일은 니가 알아서 할 거제?”

“네. 좀 쉬세요.”

“그려. 죽겄다잉.”

박 실장이 의자에 묶이는 모습을 본 민태호가 소파에 털석하고 앉으며 말했다.

톡톡.

묶여 있는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차자 녀석이 나를 노려본다.

“지금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니까 한 번에 대답해.”

“하하,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네까짓 게 폭발하면.”

잘 알고 있다.

지금 내 눈앞에 묶여 있는 녀석은 주머니에 칼을 차고 있던 조폭이라는 것을.

그래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서는 비웃음밖에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스윽.

녀석이 떨군 칼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성훈이 납치 지시한 게 누구야?”

“…….”

나를 노려보는 녀석에 눈동자 속에 내가 비쳤지만, 곧 은빛 칼날에 의해 가려지고 말았다.

“민구야, 쉽게 입 여는 것이 좋을 거여. 그 꼬맹이 보통 아이다.”

턱.

민태호의 말을 증며해 주려 칼날을 녀석의 볼때기에 가져다 댔다.

사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손에 칼을 쥔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나는 칼이 아닌 머리로 다른 조직들과 전쟁을 했으니까.

물론 그게 더 편하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이게 더 나은 선택이라 믿는다.

머릿속 피 칠갑을 한 성훈이의 모습이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니까 말이다.

“회사원 흉내 계속하고 싶으면 빨리 말해. 얼굴에 칼빵 나면 영업하기 힘들 텐데?”

녀석의 떨림이 칼날을 타고 칼자루에 전해진다.

“워메∼ 우리 민구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잉. 나보다 더 무서운 놈이랑께.”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걸 보기 싫은지 민태호는 연신 일부로 깐족거렸다.

“그게… 말 못해. 말하면 난 죽을 거야.”

“그래…….”

휙!

볼때기에 대고 있던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말 못하는 입에서 죽여 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해 줄게.”

내가 들고 있는 칼이 녀석의 몸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턱.

“아따, 법복 입을 몸에 피 튀면 안 되지.”

내가 아는 민태호는 나를 말릴 게 분명했으니까.

내 손을 잡은 민태호 때문에 녀석의 눈꺼풀 앞에서 칼날이 멈추었다.

“민구야∼ 니 내 알제? 속 시원히 말하믄 이 민태호가! 이름 석 자 걸고 니 지켜 줄라니까 몸에 구멍 뚫리지 말고 그냥 싸게 말혀라.”

눈앞에 보이는 뾰족한 깔 끝과 귀에 들려오는 민태호의 달콤한 말이 녀석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입니까? 이 박민구, 형님 이름 석 자 걸고 지켜 주시는 거?”

“그려.”

“상대가 누구든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알았다니께.”

서울에서 민태호의 이름값은 꽤 비싸다.

그런 민태호가 자신의 이름을 걸었으니 놈의 입이 열리는 것이다.

“원래 작전은 HH 코퍼레이션을 통해 300억이라는 자금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딸그락.

놈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자 민태호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칼을 빼앗아 땅에 떨궜다.

“나가 못 알아듣는 얘기할 것 같은디, 이제 꼬맹이 니가 들어라.”

톡톡.

그렇게 말한 민태호가 내 어깨를 치며 자리를 만들어 줬다.

그가 적당히 멀어진 걸 확인한 나는 얼굴을 녀석에게 들이밀며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실패한 거고?”

“맞아. 그래서 저평가 된 성일 바이오 주식을 새로운 작전 종목으로 선택한 거고 방 회장 아들을 납치해 성훈산업의 자금을 투과시키려 한 거야. 그래야 우리가 미리 사들인 주식의 가치가 올라가니까.”

“나도 주가조작이란 건 알고 있으니까 본론만 말해.”

“이번 작전에서는 250억을 목표로 잡았고, 우리 애들은 11%를 받기로 했어. 물론 납치는 우리가 했지만, 모든 걸 계획한 사람은 따로 있겠지.”

“그게 누군데?”

땅에 떨어진 칼을 바라보며 녀석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진짜야! 다만, 그 사람한테 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줄 사람은 알아.”

녀석의 말에 천천히 머리를 굴려 봤다.

거짓말은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250억이면 규모가 꽤 큰 작전이고, 건달 따위가 계획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누구야 그게?”

“미래 인베스트먼트 대표.”

“뭐?”

“여기는 주가조작을 위해 고른 투자 회사가 아니야.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지.”

한마디로 이곳은 주가조작을 통해 돈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었다.

“아무 도움 없이 이런 곳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대가리에 든 거 없는 나도 그건 아니라 생각하는데.”

나도 녀석과 같은 생각이다.

저평가 되어 있지만 성일 바이오는 꽤 규모가 있는 제약 회사였고, 그런 기업을 움직이는 것도 모자라 방영호 회장의 아들을 납치까지 한다?

작은 투자회사 대표의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작전이었다.

“정리하면 여기서 만들어진 돈을 대표가 다른 사람에게 배달한다는 건가?”

“아마도.”

200억이 넘는 불법적인 돈을 품을 수 있는 사람?

빤하다.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는 자리에 있거나, 혹은 200억 정도는 티도 안날 정도로 많은 때가 묻어 있는 사람이거나.

“그럼 일단은 배달원부터 잡아야겠네.”

스윽.

묶여 있는 녀석의 몸을 뒤적거려 휴대폰을 빼앗았다.

“뭐 하는 짓이야!”

“뭘 그렇게 놀래. 번호를 알아야 배달을 시키지.”



[미래 인베스트먼트 대표]



탁.

주소록에 있는 번호를 내 휴대폰에 옮기고, 박 실장의 휴대폰을 던져 버렸다.

“가요, 삼촌.”

“끝난겨?”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민태호가 박 실장을 바라본다.

“쟈는 어짜고?”

“내버려 두고 가죠.”

“형님! 지켜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박 실장이 소리치자 민태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켜 주는 거야. 내가 움직이면 누군가 너를 산 채로 묻으려 할 테니까.”

숙!

근처에 보이는 봉지를 집어 박민구 머리에 씌우며 입에 재갈을 물렸다.

“머… 하…눈 쥣이야… 움움… 우움움!”

“숨 끊기기 전에는 꺼내줄게 좀 자.”

퍽!

누가 시켰든 결국 성훈이를 납치한 범인은 이놈이다.

그 분노를 담아 봉지에 가린 얼굴로 주먹을 날려댔고 발광하던 녀석이 어느새 잠잠해졌다.

봉지에서 피가 흘러내려 적셔지는 옷.

묶인 몸과 입에 문 재갈.

“여기에 있으면서 내 친구한테 한 짓 잘 기억해.”

쾅.

나는 닫히는 문과 채워지는 자물쇠를 뒤로 한 채 차에 올라탔다.

“이제 어떡할 겨.”

민태호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고,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쩌긴요. 이제 심부름꾼을 잡아야죠.”

뚜르르르.

― 네, 차치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