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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치우 군?

“갑작스레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라.”

― 말해보게나

“휴대폰 위치 추적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번호는…….”

― 바로 연락 주지.

강철호 검사장에게 다시 연락이 온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재개발 예정 지역 근처.]



“택시!”

버스를 지나쳐 보낸 나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강철호가 알려 준 주소지로 향하였다.

“아저씨, 죄송한데 빨리 좀 가 주세요. 친구가 위험해서요.”

“이 사람아 신호가 바뀌어야 가지.”

얼마 되지 않는 거리와 얼마 나오지 않을 택시 요금 때문인지는 몰라도 룸미러를 통해 비친 택시 기사의 눈빛은 귀찮은 듯 보였다.

“그리고 친구가 위험하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학생인 네가 빨리 간다고 뭐 달라지니?”

“신고? 해야죠, 신고.”

룸미러를 통해 택시 기사를 노려보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검사장님.”

흠칫.

이제 알게 되겠지.

네가 빨리 가야 상황이 달라진다는 걸.

― 그래, 치우 군. 위치 보냈는데 확인했나?

“네. 그리고 죄송하지만 그 위치로 경찰들 좀 보내 주십시오. 친구가 위험한 것 같아서요.”

― 알았네.

부우우웅!

그와 동시에 큰 엔진 소리를 내며 택시의 속도가 빨라졌다.

검사장과의 통화가 느릿느릿하던 택시의 부스터가 되어 주었다.

“신고도 했으니 빨리 가야지.”

귀찮던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를 보며 택시 기사가 눈웃음을 쳤다.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대단한 집 아드님이신가 보네 검사장이랑 통화를 다 하고. 하하하.”

능숙한 운전 실력에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이런저런 잡담을 건네 보지만, 단 한마디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성훈이 생각밖에 나지 않았고,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응? 뭐?”

“아닙니다. 얼마나 걸리죠?”

“2분! 2분이면 도착해.”



끼익―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재개발 예정 지역.

판자촌 곳곳에는 빨간 페인트로 철거라는 글씨를 칠해 놓았고, 깨진 나무판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런 곳을 올 리가 없는 애인데.”

착하지만 겁이 많고, 내성적이던 성훈이.

그런 아이가 제 발로 여기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들어가 보자.”

경계를 처 놓은 테이프 너머, 판자촌 안쪽으로 향했다.

“성훈아! 성훈아!”

크게 불러보지만, 내 부름에 답하는 것은 휑한 바람 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분명 성훈이가 나에게 마지막 신호를 보낸 곳.

다시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어?”

[도와줘 치우야!]

모든 게 꺼져 버린 곳에서 빛나고 있는 휴대폰 하나.

무언가에 밟혀 깨져 버렸지만, 성훈이의 마지막이 담겨 있는 문구가 보였다.

“뭐야, 이거…….”

흩어진 먼지와 깨진 유리 조각들.

마지막까지 저항한 성훈이의 흔적.

“겁도 없네.”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업의 도련님을 납치해?

아니지.

오히려 그게 이유가 된 건가?

“무슨 일인데 윤 서장이 직접 출동 지시를 해?”

“강 검사장한테서 내려온 오더래.”

“참, 경찰이 검찰 꼬봉도 아니고.”

멀리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누가 있는데? 학생, 여기서 뭐해?!”

“어! 잠깐만 이 학생…….”

“아는 애야?”

깨진 성훈이의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경찰관들.

둘 중 한 명은 강철호 집 앞에서 오양호의 지문을 채취해 가던 경찰관이었다.

“어. 그때 오양호 봤다고 말한 현장에 있던 학생이야.”

“아∼ 이상하다고 한 그 학생?”

“맞아.”

눈빛 속에 의심을 가득 채우고 나를 바라보는 경찰관.

“여기서 뭐하는 거야? 너 때문이지? 강 검사장 오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잘 오셨네요.”

스윽.

깨진 성훈이의 휴대폰을 경찰관들에게 건넸다.

“친구가 납치된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도와 달라는 문자에 달려왔는데 친구는 없고 이것만 있네요.”

경찰관 손에 들려 있는 깨진 휴대폰을 톡톡 치며 말했다.

“너한테 장난친 거겠지.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남자 고등학생을 누가 납치해.”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은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 나와 구면인 경찰관은 깨진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닙니다.”

“하하하, 평범하지 않은 고등학생도 있어?”

꿈과 희망이 아닌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자신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아이니까.

“방성훈. 성훈산업 방영호 회장님의 외아들입니다.”

그저 장난이라 생각하던 경찰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특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불이익이 생기더라도 단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럼 목적이 돈이네.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해야겠지?”

“어, 그래야지.”

깨진 휴대폰을 보며 대화하는 두 경찰관.

돈?

분명한 건 내 머릿속에 있는 회귀 전 사건 중에서 성훈이가 납치된 기억은 없었다.

그럼 이건 분명 내가 바꾼 미래의 나비효과이다.

오양호?

아니.

그놈은 침을 질질 흘리며 치료감호소에 갇혀 있다.

그리고 사실 오양호와 관련된 쪽은 성훈이보다 내가 더 가깝다.

잠깐.

“설마…….”

“설마 뭐?”

내가 바꾼 미래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

어차피 밝혀질 진실이었지만, 나 때문에 조금 빨리 밝혀진 진실.

성훈산업에 투자 철회와 언론 발표로 인해 희대의 사기꾼이 되어 버린 인물.

황희석 박사다.

방영호에 대한 그의 분노가 성훈이한테 향한 것이다.

“황희석 박사 소재 파악해서 신변 확보하세요.”

“줄기세포의 그 황 박사?”

“네.”

“그 사람은 왜?”

“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 친구를 납치한 게.”

나 때문에 납치된 성훈이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지금의 한치우에게 꼭 필요한 사람.

이 모든 것이 성훈이를 반드시 구해야 하는 이유다.

내가 검사가 될 때쯤 성훈이는 성훈산업을 움직일 힘을 갖게 될 것이고, 내 이정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성훈이는 학창 시절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해 준 유일한 친구였다.

“아무리 사기꾼이여도 박사고 집안도 잘사는데 그런 사람이 왜 부잣집 도련님을 납치해.”

비록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황희석 박사는 여전히 회사를 운영 중이며 잘나가는 집안이 그의 구속을 막아 주었다.

거기에 홀려 버린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황희석 박사의 논문이 조작이 아닌 사실이라 믿고 있을 정도니.

“부잣집 도련님이라서가 아니라, 방영호 회장님의 아들이여서 납치된 겁니다.”

시간이 없다.

목적 없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함이라면, 지금 성훈이는 지옥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여기 현장 보존하시고 과학 수사대에 수사 협력 요청하세요. 반항을 했으니 흔적이 남았을 겁니다.”

“그래. 아니, 그런데 아까부터 네가 뭔데 우리한테 자꾸 수사 지시를 하는 거야? 학생 따위가.”

경찰관들 눈에는 마흔다섯 살의 내 본 모습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것이다.

겉모습이 영락없는 학생이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려 줘도 그저 건방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잘 들으세요. 이 사건은 황희석 박사를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하는 인지 수사입니다. 그러니 모든 포커스를 황희석 박사에게 맞추고 방성훈을 찾는 겁니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고, 황희석 박사를 용의 선상에 놓고 인지 수사를 한다고 하면 네 친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비록 사기꾼이라고 해도 유명 논문을 작성해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다.

만약 그런 커리어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줄기세포 논문에 홀릴 일도 없었을 테니까.

거기에 빵빵한 집안이 보호해 주고 있기까지 하니.

“그래서 더 어려운 겁니다.”

“더 어렵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어 전 국민을 속인 사람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내 말을 이해해 보려 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듯 다시 되묻는다.

“황희석 박사만 찾는다면 해결되는 일 아닌가?”

“쉽게 찾을 겁니다.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을 테니까요.”

“설마,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납치를 한 범인인데.”

“휴…….”

경찰관의 말의 한숨이 나왔다.

벌써부터 티가 나지 않는가.

찾는 경찰보다 숨긴 황희석 박사의 머리가 더 좋다는 것이.

“그래서요? 다짜고짜 찾아가서 당신이 범인이니 순순히 잡히라고 말이라도 하실 겁니까? 영장은 무슨 명목으로 받으실 건데요?”

“그건…….”

“아니면 예전처럼 잡아서 자백할 때까지 고문이라도 하시게요?”

그러라 해도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이유 없는 고문을 당하기엔 너무 똑똑하고, 그의 억울함을 알아줄 사람이 많으니까.

“크흠…….”

경찰은 정곡이 찔리니 헛기침을 터트려 댔다.

“뭐가 어찌 됐건! 이제부터 경찰이 할 일이니 너는 돌아가서 공부나 해!”

“그렇지 않아도 가 보려던 참입니다.”

여기서는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를 것 같지 않으니까.

“인지 수사는 기본적으로 검사의 수사권이 발동되어야 하고, 지시 아래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즉, 여려분이나 저나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얘기죠.”

휙.

경찰관이 들고 있던 성훈이의 휴대폰을 재빨리 빼앗았다.

“이건 제 친구 휴대폰이니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증거품을 네가 왜 가져가?”

“무슨 사건의 증거품이요? 신고한 적이 없는데. 여려분들은 신고로 출동한 게 아니라 서장님의 지시로 움직이신 거잖아요.”

꽈악.

휴대폰을 쥐고 있던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제가 더 빨리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속마음을 삼키고 뒤돌아 판자촌을 나가는 나를 경찰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쟤 뭐야? 고등학생 맞아?”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경찰관들의 사담이 멀어질 때쯤 재개발 지역 입구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는 택시 기사가 보였다.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허허벌판에서 택시 잡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하하하, 나도 왠지 네가 다시 탈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아무것도 없는 재개발 지역을 나갈 방법은 택시밖에 없었고, 그 사실을 기사도 알고 있었기에 기다린 것이다.

탁!

“휴…….”

택시 문이 닫히고 조수석에 올라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뭔 일 있었어? 무슨 학생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셔? 어라? 경찰도 왔네.”

자신의 택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는 경찰차를 보며 말하는 택시 기사였다.

“그래, 어디로 갈까?”

“그러게요. 어디로 가야 될까요.”

“응?”

가장 먼저 성훈이의 소식이 전해질 방영호 회장의 집?

아니면, 성훈이를 찾기 위한 강철호 검사장의 집?

그것도 아니면 원초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조폭 두목 민태호?

고민은 짧았고, 이내 마음을 정한 나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