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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양아치 패거리들이 국밥집 앞을 둘러싸고 있었다.

내 등장에 선봉에 서 있던 녀석이 뒤로 물러나지만, 자신보다 뒤에 있던 다른 녀석에 의해 막힌다.

톡.

“왜 그러세요, 형님?”

“으, 응? 아, 아니야…….”

그리고 깨닫겠지.

지금 자신의 뒤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양아치들이 있다고.

“수금 방해한 게 너였어?”

그러니 그때와는 다르게 말이 짧아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녀석도 나도 구면이다.

이 녀석이 바로 오양호를 찾아 준 흥신소의 사장이니까.

“수금이 아니라 협박이지.”

“어린놈의 새끼가 민태호 형님 이름 앞세워서 협박이나 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시골 고삐리가 서울에 그런 대단한 조폭을 알 리가 없잖아? 그리고 뭐? 검사장한테 말을 해? 번호는 알고? 까는 소리하고 있네.”

자신의 뒤를 지켜 주는 패거리들과 손에 들고 있는 야구 배트가 돌아가지 않던 머리를 돌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머리가 돌아봤자 무엇하리.

이제 내 협박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 되어 버렸는데.

끼익―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걸 들은 민태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워, 진짜 크긴 크네.”

민태호를 본 녀석의 첫마디였다.

그 말은 즉, 녀석도 민태호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내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이 덩치가 큰 체육 선생님 정도로만 보일뿐.

“아야∼ 니 내 아나?”

“내가 널 어떻게 알아?!”

“분명 들었는디야. 니가 내 이름을 말허는 것을.”

“……?”

민태호의 말에 흥신소 사장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급하게 머리를 돌리다 보면.

“아…….”

언젠가 뉴스에서 본 민태호의 실루엣이 생각날 것이다.

땡그랑.

그렇게 머릿속 실루엣과 눈앞에 실루엣이 겹쳐지자, 손에 들고 있던 야구 배트가 맥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혼자 한겨울인 것처럼 흥신소 사장이 벌벌 떨어 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옆에 있던 직원이 흥신소 사장을 불러 보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민태호로 가득 차 있는데 다른 말이 들어올 턱이 있나.

“괜찮으세요, 형님?”

휙휙!

아무리 불러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장을 직원이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형니이이임!”



그러자 이번엔 직원들이 뭔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당사자인 민태호도 어처구니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동상인디… 치우야 니가 아는 사람이냐?”

“아∼ 이 사람이 삼촌을…….”

꽈악.

흥신소 사장이 무릎으로 바닥을 기며 다가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제발… 제발…….’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보기 거북할 정도였다.

아아, 마음 약해지게 이 아저씨 왜이래.

“하하, 아니에요”

그래.

굳이 민태호에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려. 밥이나 먹자고. 요놈 보니께 이미 무릎으로 청소하고 있는 것 같은디.”

우리는 그대로 다시 가게로 들어갔지만, 흥신소 사장은 민태호의 마지막 말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들어가며 슬쩍 보니 도망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참, 사장님.”

“…….”

“도망치려면 한국을 뜨는 게 나을 거예요. 알겠죠?”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씩 웃어주며 민태호를 따라 가게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탁.

익숙한 맛을 담고 있는 뚝배기가 상에 올려지고, 모락모락 김을 피웠다.

“고마워요. 치우 삼촌 분.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뜨거워도 잘 먹으니께 걱정 마셔라.”

민태호는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국밥에 넣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하하,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응? 못 들었는디 뭐라 했노?”

“아무 것도 아니에요. 삼촌 잘 드신다고요.”

“거, 내가 국밥 하나는 진짜 맛있게 먹제. 고건 고렇고, 사내 자슥이 목소리가 그게 뭐여. 크게 좀 말해라, 자슥아.”

다시금 뚝배기에 코를 박고 국밥을 퍼먹는 민태호를 보며 나는 국밥집 밖에서 어질러진 집기들을 정리하고 있는 패거리를 보았다.

‘그냥 문득 옛날 생각이 났어요.’

마주 앉아 밥 먹기 전에는 꼭 한바탕할 일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국밥에 깍두기를 넣어 먹는 습관이 말이다.

“아야∼ 먼지 안 들어오게 살살해라잉.”

“네, 형님!”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바쁘게 청소하는 흥신소 사장은 크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들이 왜 청소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궁시렁거리는 직원들을 본 흥신소 사장이 얼굴을 구겼다.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다들 집합!”

굼뜬 직원들을 불러 모은 흥신소 사장이 복화술로 덩치 큰 체육 선생의 정체를 알려주자.

“흐익!”

그제야 모두가 일심동체로 어질러진 국밥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으∼ 워메, 서울 가서도 생각나겠구마잉.”

“서울에도 맛있는 국밥집 많은데요, 뭘.”

“여서 있던 일이 이 뚝배기 안에 다 담겨 있는 것이여. 그라고 싸가지는 없어도 꼬맹이 니랑도 꽤 정이 들어 부렷고.”

“걱정 마세요. 얼마 안 있어 저도 서울로 올라갈 테니까.”

“아, 맞다. 니 검사 될 거라 켔지?”

“네.”

“그라믄 나랑은 엮일 일 없을 것 같은디. 꼬맹이 니가 검사가 된 다음에는 마주앉아 국밥 먹을 일이 조사실밖에 더 있겄냐.”

아니.

그렇지 않다.

이미 세상을 한 번 겪어 보지 않았는가.

가슴엔 정의라는 갑옷, 손에는 기소권이라는 무기.

그런 것들로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도, 내 분노를 삭여 줄 복수도 불가능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뭣이?”

“삼촌과 조사실이 아닌 평범한 국밥집에서 마주앉아 국밥을 먹는 일이요.”

“검사랑 조폭은 섞이면 안 되는 것이여, 인마.”

“그런데 대한민국은 섞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섞여 있잖아요.”

정치와 경제.

정의와 비리.

돈과 권력.

“그래서 섞이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쩝… 이 얼라 또 이상한 말 해대 싸네.”

이쑤시개로 이를 후벼 파고 있던 민태호가 행동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시방 니가 검사가 되면 나를 꼬봉처럼 부려 먹겠다는 거여?”

“아니요. 동료가 돼 같이 싸우자는 거죠.”

긁적긁적.

“검사가 뭔 싸움을 혀?”

이해가 안 되는 듯 민태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민태호도 곧 깨닫게 될 거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에는 법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이상에는 주먹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같은 배에 올라탔고, 같은 이정표를 향해 노를 젓고 있다는 것까지.

그리고 내가 검사가 되어 마주 앉아 국밥을 먹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법으로, 삼촌은 주먹으로.’



***



내 손에 체육복을 남긴 민태호는 서울로 향했다.

“금방 볼 텐데 뭐.”

민태호의 땀이 묻어 있는 체육복을 보며 혼자 속삭였고, 나는 다시 시장으로 향했다.

“쌀쌀하네.”

민태호가 입었던 체육복을 걸치고 시장 속을 걸어가자 상인들의 눈빛이 나와 체육복으로 모였다.

“이야∼ 아까 그 삼촌 덕분에 고놈들 당분간 시장 상인들 못 괴롭히겠네.”

당분간?

아니.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못할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온 이유니까.

“치우야∼ 이리 와서 떡볶이 좀 먹고 가.”

“하하하, 아니에요. 가 봐야 될 곳이 있어서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훗날을 생각해 동네 시장 상인들의 민심을 얻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건드려 놓는 바람에 화풀이가 시장 상인들한테로 돌아간다면, 민심은커녕 나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뿌리를 확실히 뽑아놔야지.

때마침 어머니의 채소 가게 점포도 생각났고.



[오케이 흥신소] [오케이 일수]



비어져 있는 1층 점포를 바라보며 흥신소 계단을 올랐다.

끼익―

낡은 철문이 열리자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있는 흥신소 직원들과 사장이 보였다.

“그거 했다고 유난은. 그니까 멀쩡한 가게를 왜 때려 부셔요.”

삐걱.

“아이고∼ 우리 민태호 형님 조카 분 오셨습니까?”

내 등장에 의자에 앉아 있던 사장이 재빨리 일어나 옷을 주어 입었다.

“그냥 한치우라고 부르시죠.”

“아… 네, 치우님. 그나저나 여까진 또 어쩐 일로?”

“성함이?”

“저는 오케이 흥신소 사장, 박민호라고 합니다.”

박민호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그래요. 뭐 하나 물어보려고요.”

“네, 뭐든 말씀하세요.”

“이 건물 당신 거죠?”

“네… 조그맣긴 해도 열심히 모아 산 겁니다.”

“열심히 모은 건 아니지. 상인들한테 사채 뿌려 고리 챙기고, 흥신소 간판 달고서 온갖 불법적인 짓은 다해서 번 돈이지.”

시골 시장이 그렇듯 높고 깨끗한 건물은 아니지만, 1층에 채소 가게 정도는 할 수 있어 보였다.

“1층 점포 나한테 세 좀 놓죠. 어머니 채소 가게 좀 차려드리게.”

“거기가 2,000에 200인데…….”

나는 그 말에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1,500에 150…….”

“잠깐만요.”

스윽―

주머니에 고이 모셔 놓은 강철호 검사장의 명함을 꺼내 잘 보이도록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그때 말한 검사장님 직통 번호요.”

“…아, 그럼 1300에 130으로…….”

곧장 휴대폰을 꺼낸 나는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한치우 군,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 그랬는데 먼저 전화를 했군그래.

“네, 검사장님. 안녕하셨습니까?”

― 그래. 요즘은 지검도 나가고, 안녕도 하네. 덕분에 말이야. 그런데 먼저 연락을 한 이유는 뭔가?

“다름이 아니고 제가 현상금을 받고 싶습니다.”

― 현상금? 아∼ 물론 줘야지. 얼마면 되겠나?

“많이는 필요 없고 경찰이 건 현상금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 그래. 내가 준비해 주지. 받으러 올 텐가?

“아니요. 여기가…….”

톡톡.

스피커폰으로 함께 통화를 듣고 있던 박민호를 발로 톡톡 건드렸다.

“당신 계좌 번호 좀 불러 봐. 세가 얼마라고?”

“…300에 20만 주시면 됩니다…….”

힘없이 답한 박민호가 무릎을 꿇은 채 메모지에 계좌 번호를 적었다.

― 계좌 번호는 문자로 보내면 되네. 그런데 그때 말하는 거 보니까 돈에는 욕심이 없어 보이던데 무슨 일이 있는가?

“노점하시는 어머니에게 점포 하나 차려드리려고요.”

― 하하하, 효자네. 그래 나도 언제 한 번 들리게 주소도 같이 보내게.

“시장에 오케이 흥신소 일층입니다.”

― 흥신소? 흐음, 흥신소라…….

말을 끄는 걸 들어보니, 실적 킬러가 먹이를 문 거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든, 당분간 보류해 주십시오.”

― 허허허, 나는 아무 말도 안했네만. 뭐 어쨌든 치우 군 어머니가 장사하는데, 손 좀 쓰지 뭐. 그래도 또 신고가 들어오면 나도 봐줄 수가 없네. 대신 다른 곳에 내 직접 가게를 내 줄 테니 걱정 말고. 그럼 다음에 또 전화하지.

“네, 알겠습니다.”

딸깍.

무릎을 꿇고 있던 박민호는 어느새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

“150에 15만원만 주세요… 그 밑으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그리고 삼촌이랑 검사장님한테도 좀 좋게 말해 주시면…….”

시장 상인들을 괴롭히고 온갖 불법을 다 저지르면서도 시골 경찰들에게 뒷돈을 찔러주며 호위호식하던 박민호.

그가 이렇게 비굴해진 적이 있었을까?

“잘 들어요. 상인들을 괴롭히면 태호 삼촌이 찾아 올 거고, 불법을 저지르면 검사장님이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제 어머니가 1층에서 지켜볼 것이고요.”

법과 주먹을 동시에 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잘 좀 봐주십시요…….”

“그러니까 앞으로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