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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쿵쾅쿵쾅.

“워메, 지랄 발광을 하네. 아야∼ 차 좀 험하게 몰아 봐라.”

“네, 형님!”

민태호를 따라 뒷자리에 앉은 탓인지 트렁크에 있는 오양호의 간절함이 절로 느껴졌다.

“근디 이놈은 어따 버려 줄까?”

“강철호 검사장 집 앞이요.”

끼익―

“죄송합니다, 형님.”

“아녀, 니도 놀랐겄제.”

S자를 그리며 달리던 차량이 내 말 한마디에 스키드 마크를 남겼다.

“시방 저놈 몸에 칼 구멍 난 건 알고 있제?”

“당연히 알죠. 저도 같이 봤잖습니까.”

“근디 그 칼 구멍을 낸 우리가 평검사도, 부장 검사도 아닌 검사장한테 갖다 주겠다는 것도 맞고?”

“네, 맞습니다.”

“나가 말이여 깡으로 먹고사는 깡패이지만서도 후달릴 때가 있는 겨.”

강철호 검사장.

검찰의 엘리트 라인인 특수부와 공안부가 아닌 강력부 출신으로는 드물게 검사장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몸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민태호가 이리 겁을 먹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990년.

건달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막내 생활을 시작한 20대 민태호에게 충격을 안겨 준 사건.

10.13 특별 선언.

끓어오르는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덩치를 앞세워 으스대던 철없는 20대 민태호의 생각은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아무도 건들 수 없을 거라 생각하던 자신의 형님들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검사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고, 조롱당하며 뺨을 맞으면서도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나가 강철호 그 양반만 보면 아직도 오줌을 지리는디…….”

범죄와의 전쟁 당시에 서울 지역의 지휘봉을 잡던 게 서부 지검 강력부 부장인 강철호였고, 그에 의해 서울의 조직들은 단번에 공중분해 돼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뿔뿔이 흩어진 건달들을 모아 민태호가 만든 조직이 바로 서울연합파였다.

“걱정 마세요. 벌이 아닌 상을 내릴 거니까.”

“시방 뭔 소리여 그게.”

“저놈이 유린한 아이가 강철호 검사장의 딸입니다.”

“뭣이여? 아이고…….”

휙.

민태호가 트렁크 쪽을 돌아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차라리 내가 죽여뿔 걸… 그게 저놈한테는 더 나을지도 모르는디.”

조금 전 급정거를 한 탓에 정신을 잃은 건지, 아니면 우리의 대화가 트렁크 속으로 흘러들어 간 건지 어느새 오양호의 발광이 멈춰 있었다.

“아야∼ 이제 조용히 가자.”

“네, 형님!”

차선을 넘나들던 차량은 안정을 되찾았고, 흔들거리던 가로등 불빛들은 차량의 길잡이가 되어 줬다.

새벽의 한적한 고속도로.

고요한 차 안과 창밖에 비추는 공허한 도로는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강철호 서울 서부 지검장.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조폭들의 저승사자라는 타이틀에 올라타 탄탄대로를 달려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거기에 딸의 사건 이후 여론의 동정까지 받게 되어 기수가 높은 중앙 지검장을 제치고 차기 검찰총장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인물로 꼽혔다.

그런 엄청난 사람이자, 곧 2,000에 달하는 검사들을 거느리게 될 강철호의 집 대문을 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누가?

바로 오양호가.

“다 왔습니다, 형님.”

고위 공무원이라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넓은 저택과 높은 담벼락은 강철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워메∼ 집이 완전 궁궐이구만.”

“검사 사위를 얻고 싶은 사람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죠.”

순간적으로 죽기 전 담당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이내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 버렸다.

그들은 이제 나의 인연이 아닌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트렁크의 문을 열었다.

탁―

“아따, 이놈 뒤진 건 아니것제?”

짐짝 마냥 트렁크에서 쏟아진 오양호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형님.”

지금껏 기사 노릇한 덩치가 오양호의 목에 손을 갖다 대더니 대답했다.

“그려. 아무리 지 딸을 죽인 놈이라 해도 시체로 갖다주면 우리한테 허탈함을 풀 수도 있으니께 칼 구멍에 반창꼬라도 붙여 놔라.”

민태호의 말에 덩치가 오양호의 출혈 부위에 청 테이프를 칭칭 감는다.

“워메, 얼마나 지랄 발광을 했으면 트렁크가 피바다여. 아야∼ 이따 세차해야것다.”

탁.

트렁크를 바라보던 민태호가 담배를 물며 말하자, 오양호를 칭칭 감아놓은 덩치가 고개를 한차례 숙이고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꼬마 클라이언트, 우린 할일 다했으니 이제 간다잉.”

“잠깐만요, 삼촌.”

뒤돌아 차에 올라타는 민태호의 팔을 붙잡았다.

“이참에 사면권 하나 만들어 놓으시지 그래요.”

“워메∼ 이거 진짜 학생 맞는 겨?”

비록 민태호는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이정표를 향해 가는 배에 올라타 있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배를 움직일 노 정도는 쥐어 주는 것이 좋을 터였다.

“내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디, 내는 강철호 면상만 봐도 살이 떨린다.”

“강철호는 삼촌한테도 저한테도 든든한 뒷배가 돼 줄 사람입니다.”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여. 강 지검장 매수하려고 돈 건네다 잡혀간 건달들이 수십이여.”

“걱정 마세요. 저희한테는 강철호를 매수할 훌륭한 뇌물이 있으니까.”

곁눈질로 오양호를 살피고 궁궐 같은 저택의 높은 대문으로 향했다.

내 시선을 따라가던 민태호가 고개를 흔들더니 창문이 열려 있는 차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형님. 시키실 일 있으십니꺼?”

“그런 건 아니고… 아야, 니가 보기엔 저놈이 고등학생 맞는 거 같어?”

“지는 모르겠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똑똑해 보이는 놈들은 관심이 없어서…….”

“근께, 분명 애나 어른이나 대가리 쓰는 놈들은 우리랑 안 섞이는 법인디, 저놈은 어린 것은 둘째 치고 우리보다 우리 세계를 더 잘 아는 것 같단 말이여.”

띵동∼

덩치와 민태호의 꿍얼댐을 뒤로 한 채 초인종을 눌렀다.

― 누구세요?

“강철호 검사장님을 뵈러 온 한치우라고 합니다.”

연륜이 느껴지는 여자 목소리에 답을 하자, 초인종 너머로 집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윽고.

― 누구라고? 한치우?

“네, 검사장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우리 회사 사람인가? 어려 보이는데…….

“아직은 아닙니다.”

― 아직은?

얼마 안 있어 나도 당신처럼 법복을 입게 될 테니 ‘아직은’이 맞는 말이었다.

― 어쨌든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 여기는 잡상인이 함부로 초인종을 누를 곳이 아닌데 이만 가 보…….

“보시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 내가 요즘 기분이 썩 좋지 않으니 괜히 건드려서 낭패 보지 말고 인내해 줄 때 그냥 가지 그래?

초인종 너머의 목소리였지만, 분노와 슬픔 등 그리 좋지 않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제가 보여드릴 게 바로 그와 관련된 겁니다. 검사장님을 지옥으로 빠트린 놈이요.”

― 뭐?!

탁탁탁!

마당의 돌계단을 밟으며 내려오는 강철호의 모습이 대문의 빗살 사이로 보였다.

덥수룩한 수염과 하얗게 변해 버린 머리.

분노와 슬픔이 공존하는 눈빛.

딸을 잃은 슬픔과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분노.

그리고 매일 저녁 꿈속에서 듣게 될 딸의 원망이 검사장의 외모에 묻어나는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한치우라고 합니다.”

“워메, 결국 일을 내는구만…….”

한달음에 뛰쳐나온 강철호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윽고 상황 파악이 된 그는 눈을 날카롭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 뭐야?”

“이놈입니다. 검사장님을 지옥에 빠트린 놈이.”

이미 정신을 잃고 청 테이프에 칭칭 감겨 쓰러져 있는 오양호를 가리켰다.

“이놈이라고? 내 딸을 죽인 놈이?”

“네, 맞습니다.”

강철호는 피 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는 오양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꼬라지를 보니까 힘들게 잡아온 것 같은데 유통 과정 좀 설명해 보지? 아니면 원산지를 설명해 보던가.”

톡.

강철호가 쓰러져 있던 오양호를 발로 톡하고 밀자 녀석에 배가 하늘로 향했다.

피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큼지막한 문신이 드러났다.

문신을 보자 강철호는 멀리 떨어져 가만히 있던 민태호에게 시선을 돌린다.

“잠깐만 저거 민태호 아니야? 서울연합파 깡패 새끼.”

“어… 인사드리겄습니다, 검사님. 옛날에∼ 한 번 인사드렸는디…….”

온몸을 비꼬며 말을 더듬는 민태호.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강철호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금 깡패 새끼 한 놈 작업하고 나한테 던지기 하는 거냐? 너는 민태호 꼬봉이고?”

콕콕.

검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찌르며 강철호가 말했다.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감히 나를 가지고 장난을 쳐? 나한테 내 딸 죽인 범인이라고 던져 놓으면 내가 덥석 물 줄 알았어?”

“원산지는 조선족 건달이고, 유통 과정이 순탄치 않은 건 반항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정체가 뭐냐고! 좋아. 백 번 양보해서 이놈이 내 딸을 죽인 놈이라 치자.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내 앞에 가져온 저의가 뭐야?!”

“나중에 제게 딸이 생기고, 제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범인을 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기 싫을 겁니다. 왜냐면 제 손으로 직접 벌하고 싶을 테니까요. 특히나 검사장님처럼 그럴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성을 내던 강철호가 내 말에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검사장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이, 민태호!”

아무리 떠들어 봤자 강철호의 시선은 민태호에게 향하고 있었다.

“어린애 시켜서 말 전하게 하지 말고 이리 오지?”

“저… 검사님… 지가 시킨 게 아니라 꼬맹이가 지를 시킨 겁니더.”

“이것들이 진짜 장난하나.”

위이이잉―

멀리서 터지는 경광등이 가까워졌다.

성북동 고급 주택 단지인 탓에 잠깐의 소란에도 경찰차가 몰려왔다.

“당신들 뭐야!”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권총을 꺼내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나 서부지검장 강철호입니다. 내가 정리할 테니 그냥 가시죠.”

“신분증 보여주시죠.”

“그냥 가라고 한밤중에 윤 서장한테 전화하기 싫으니까.”

서로의 눈치를 보던 경찰관들이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고, 강철호가 이어 말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 뒤쪽으로 가 있어요.”

그의 말에 주변이 다시 고요해졌다.

뜨득!

그제야 나는 쓰러져 있던 오양호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 강철호에게 건넸다.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실 텐데, 잘 됐네요.”

“하… 각오는 돼 있겠지?”

“물론입니다.”

휙휙.

강철호의 손짓에 멀리 있던 경찰관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이 머리카락이랑 쓰러져 있는 요놈 지문 채취해서 국과수에 가져다주세요.”

“네, 검사장님!”

경찰관이 다시금 뒤돌아가자 강철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 윤박사. 밤에 미안해. 아직 퇴근 안 했으면 내가 보낸 거 내 딸 몸에서 나왔다는 용의자 DNA랑 비교해 봐.”

딸각.

전화를 끊은 강철호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잘 들어. 이게 장난이면 앞으로 꽤 오랫동안 빛 보기가 힘들 거야.”

“장난이 아니면요?”

“그 반대겠지. 앞으로 빛만 보면서 살게 해 줄게.”

강철호가 나와 민태호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깡패 새끼든, 정체 모를 어린아이든 간에.”

휙.

강철호의 손짓에 남은 경찰관이 빠르게 달려왔다.

“네, 검사장님!”

“지구대에 전화해서 몇 명만 이쪽으로 보내라하고 내 지시 있기 전까지 이 사람들 여기 잡아 놔요.”

“네, 알겠습니다!”

강철호는 휙 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경찰관들과 우리는 어색한 대치를 이어 갔다.

“앉아도 되죠? 다리가 아파서.”

“대신 자리에서 이동하지 마세요.”

기다림이 긴장되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민태호일 뿐.

“아이고야, 괜히 이상한 꼬맹이랑 얽혀서 핵교 가게 생겼네.”

“‘핵’교 갈 나이는 지났죠.”

웃으며 민태호에게 농담을 건넸다.

“후달려 죽것는디 장난치지 말어라잉.”

“후달리긴. 건달 두목이라는 사람이.”

강철호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오양호가 차기 검찰총장의 집 대문을 열어 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들어오지.”

그 말에 민태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뭣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겨…….”

대문을 연 강철호가 경찰관들에게 눈빛을 보내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들이 길을 터 줬다.

그때,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이 나서 오양호를 가리켰다.

“검사장님, 이 사람은 병원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복귀하세요. 저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도…….”

“하… 자꾸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강철호의 표정이 굳은 걸 눈치챈 경찰관들이 서둘러 경찰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모두 떠난 걸 확인하고서야 오양호라는 열쇠를 민태호와 나누어 들고 넓은 강철호의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들어가요,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