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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차이나타운 골목이 빽빽하게 채워지고, 빽빽하게 채워진 덩치들을 방패삼아 차이나타운에 들어섰다.

“어디까지 따라올려는 겨? 밖에서 기다리면 예쁘게 포장해서 가져다줄라 캤는데.”

시커먼 덩치들로 막힌 차이나타운 골목.

그 끝줄 민태호의 옆으로 향하자 민태호가 묻는다.

“포장 과정을 보면 믿음이 더 가니까요.”

거리를 행군하며 오양호에게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고요해진다.

검은 양복을 맞춰 입은 조폭들.

이들은 분명 음지에 있어야 할 악(惡)이다.

수많은 악(惡)이 양지로 나와 거리를 활보하니, 주변의 선(善)들은 상점 안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근다.

그리고…….

음지의 악(惡)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차이나타운에 숨어 살던 또 다른 악(惡)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겠지.

“꼬맹이가 보기엔 꽤 충격적일 터인디…….”

“하하, 삼촌 패션이 더 충격적이에요.”

워낙 민태호가 옷을 못 입는 것도 있었지만, 2020년의 시선을 가지고 2004년의 민태호의 패션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워메∼ 이 꼬맹이 싸지지 없는 것 보소.”

오랜만이다.

어린 클라이언트도 고등학생도 아닌, SY 법무 이사 한치우에게 보이던 시선과 말투.

민태호의 시선에는 그저 고등학생인 나이지만, 민태호와의 인연이 조금 빨라졌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아니지.

오히려 다행이다.

민태호가 성원파 때문에 교도소에 갈 일도.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던 민태호가 후회하며 눈을 감는 일도.

그 모든 걸 내가 막을 수 있으니까.

“조폭이 꽃무늬가 뭐야 꽃무늬가…….”

“꼬맹이 니가 몰라서 그라는데 이게 말이여 내가 패션을 너∼무 앞서가서 그러는 겨.”

“얼마나 앞서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앞으로 15년 동안은 삼촌 패션 유행할 일 없어요.”

“내는 니 같은 조카 둔 적 없다. 말 그만 시키그라.”

하하하.

뾰로통하게 삐진 민태호를 보니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전신에 문신을 두르고 남산만 한 등치를 가진 민태호는 유독 아이들에게만큼은 약했다.

지난 시간 자신의 아들에게 한 후회와 반성을 아이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는 것이다.

스윽.

고요해진 차이나타운 거리에 인기척이 느껴지자 민태호는 본능적으로 나를 자신의 뒤쪽으로 잡아당겼다.

“니들 뭐이가?”

사시미부터 과도까지.

날이 서고 끝이 뾰족한 물건들을 수집이라도 해온 듯 조선족 조폭들이 골목길 어귀에서 기어 나와 무리를 이뤘다.

“형님.”

끄덕.

조선족 조폭 무리와 대치하고 있던 덩치들 중 한 명이 뒤돌아보자 민태호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줬다.

스릉―

민태호의 신호에 수십 명의 덩치들이 양복 주머니에서 일제히 칼을 꺼내 든다.

수십 개의 칼끝에 반사되는 달빛.

달빛이 묻어 있던 칼끝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핏빛이 묻게 될 것이다.

“중국 야들은 대가리 수가 많아서 그른가. 연장 종류도 천지삐깔이네잉. 위험한께 뒤로 가 있그라.”

“잠깐만요.”

덩치 무리를 뚫고 앞으로 나가려 하자 민태호가 내 팔을 붙잡았다.

“뭣 하는 거여 시방.”

“걱정 마세요. 저도 제 몸 하나 지킬 능력은 됩니다.”

“워메∼ 참말로 이상한 꼬맹이네. 시골 야들은 원래 이렇게 겁이 없는 겨?”

“서울 토박이면서 이상한 사투리 쓰는 삼촌이 더 이상해요.”

달빛이 묻은 아름다운 칼끝에 굳이 핏빛을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속닥속닥.

무리를 뚫고 앞으로 나가자 뒤에 있던 민태호가 한 덩치에게 속삭인다.

아마 나를 지키라는 명령을 하겠지.

“니들 뭐이냐고!”

오양호다.

파란 수의에 빨간 명찰을 달고 나이가 먹은 오양호의 모습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 걱정했다.

하나 십 년 전 오양호는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어이, 오양호. 당신만 순순히 잡혀 주면 다른 사람들은 몸에 칼 구멍 생길 일 없을 것 같은데.”

“이 아새끼는 또 뭐이가?”

어린 여자아이를 유린한 살인자의 눈빛.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지금도 교도소에서도 말이다.

“그냥 순순히 이리 오지?”

“하하하, 니가 거 대장이가?”

오양호의 웃음에 옆에 있던 조선족 조폭들도 실소를 보인다.

웃기긴 하지.

예전 서울연합파의 한치우였으면 덩치들 앞에 서 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겠지만, 지금 덩치들 앞에 서 있는 건 고등학생 한치우이니까.

“아니. 그런데 그걸 다행으로 알아.”

“뭐?”

“여기 대장이 네가 한 짓 알면 너 죽어.”

같은 조폭한테도 이유 없이는 절대로 주먹을 쓰지 않는 민태호가 유일하게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상대가 있다.

아동 성폭행범.

교정 본부에서는 민태호가 복역 중인 교도소에 아동 성폭행범을 수감시키지 않았다.

민태호가 수감 중인 교도소에 아동 성폭행 범을 수감시켰다가는 매일 저녁 피떡이 되고, 운이 나빠 가석방이라도 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으니.

“하하하, 아새끼 느그 대장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느그 대장도 좋아하지 않겠니? 어리고 싱싱한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 있겠니.”

절레절레.

“후…….”

땅바닥을 보며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넌 치료가 필요해. 침 좀 놔줄게.”

“아새끼 뭐라 중얼거리네.”

“뭐, 칼침 몇 방 놓고 데려간다고 큰 문제는 없겠지.”

뒤 돌아 다시 민태호에게 향했다.

“저, 삼촌.”

“워메∼ 징그럽게 왜 귀때기에 대고 속삭이는 겨.”

“오양호 저놈, 어린아이 성폭행하고 살해한 살인범이에요.”

삼.

이.

일…….

“이런 씨불! 개 샹노무 쉐끼! 개 좆같은… 배때지를 열어 장기를 전국 팔도로 보내 버리고…….”

이것 또한 오랜만이다.

쉬지 않고 몇 분 동안이나 뱉어 대는 민태호의 쌍욕이.

“야!”

이성을 잃어버린 민태호의 부름에 달려오는 덩치.

“네, 형님!”

민태호의 눈빛에 겁을 잔뜩 먹은 덩치가 몸을 바르르 떨며 대답한다.

“저 개 샹노무 쉐키 잡아다 내 앞에 갖고 와. 시방 당장.”

“네, 형님!”

톡톡.

무리로 돌아간 덩치가 톡톡 치며 신호를 주자 모두가 칼자루를 움켜잡았다.

“와아아아아!”

검은 양복을 맞춰 입은 검은 악(惡)들이 또 다른 악(惡)인 조선족 조폭들을 뒤덮는다.

서울연합파.

서울을 접수하고 전국에 영향력을 끼치는 대한민국 최대의 조직.

웬만한 조폭들은 민태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아직 앳되지만, 덩치들 중 낯이 익은 얼굴들이 보이는 걸 보니 서울연합파 중에서도 민태호의 최측근들이다.

얼마 전 드디어 서울을 접수한 서울연합파의 핵심 멤버.

일상이 칼부림이던 멤버들이 모였으니 결과는 빤하디 빤하다.

쓰러져 있는 조선족 조폭들.

그 위를 검게 덮고 있는 서울연합파.

위치는 다르지만 쓰러져 있던 조선족 조폭들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콘크리트 바닥마저 검게 변해 버렸다.

“사, 살려주…….”

피 칠갑을 한 채 애원하는 오양호의 목소리는 희미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오양호의 무릎을 꿇리고 양팔을 포박한 채 한 덩치가 민태호에게 물었다.

“어디 조용한데 만들어서 묶어 놔. 저 새끼도 느껴봐야지. 짐승한테 유린당하는 기분이 어떤지.”

화가 머리끝까지 나야 나오는 민태호의 표준어.

민태호는 오양호를 끝까지 노려보며 차이나타운을 떠났다.

톡톡.

“이놈들 불법체류라 어차피 경찰서도 병원도 못 가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여기 상황은 방 회장님이 정리해 주신다니까. 대충 마무리 짓고 오양호는 성훈산업이 소유한 폐 창고로 데려가세요.”

쓰러져 있는 조선족 조폭을 발로 톡톡 차며 덩치들에게 말했다.

“네! 아니, 어… 그래.”

칼에 찔려 피가 솟구치는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내 모습이 당황스러운지 대답을 더듬었다.

톡톡.

“그리고 너희 나중에 또 짐승 새끼 보호해 주거나 나쁜 짓할 거면 꼭! 경찰한테 잡혀라. 또 나한테 잡히면 그땐 칼 구멍 한두 개로 안 끝날 테니까.”



***



“잡아!”

오양호가 묶여 있다.

그를 노려보며 손도끼를 집고 있는 민태호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오, 오, 오지 마!”

아무리 소리쳐봐야 소용없단 걸 알고 있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이성을 잃은 민태호를 막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삼촌.”

“놔. 클라이언트 네 돈 안 받을 테니까.”

도끼를 들고 있던 손을 꽉 잡았다.

“제발 그 정도만 하세요.”

팍!

“아!”

온 힘을 다해 팔을 잡고 있었지만, 한 번의 휘두름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민윤호!”

민태호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말.

“아무리 저놈이 죽일 놈이라고 해도 삼촌 손에 피 묻히는 거 원치 않을 겁니다.”

“너… 내 아들 이름 어떻게 알았어?”

“방 회장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삼촌한테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고, 희귀병에 걸려 하늘에 별이 되었다고.”

이성을 잃은 민태호를 바로 잡는 법은 이성이 빠져나간 자리에 아들에 대한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다.

“그만하세요. 하늘에서 아들이 보고 있을 겁니다.”

부르르.

기억이 주입되자 몸이 반응하는 듯 민태호의 몸이 떨려온다.

“이런… 니미!”

탕.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손도끼.

그 소리를 듣고 몸에 힘이 풀린 나머지, 나 또한 손도끼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워메, 오랜만에 필름 끊겨 부렸네. 꼬맹이 괜찮은 겨?”

“던져 놓고 괜찮냐고 하면 답니까?”

“미안혀… 나가 저런 놈들만 보면 필름이 끊겨 버려서…….”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민태호가 의자에 앉아 물었다.

“어째? 저 썩을 놈을 탁송해 줄까, 아니면 여기 두고 우리는 이만 물러가 불까? 아니면 나한테 맡겨도 되고.”

“잠시만 대기.”

“아따, 아무리 그래도 말끝은 끊어 먹지 말고… 내가 어른인디…….”

얼추 상황이 정리되고 오양호가 묶여 있는 의자로 향했다.

“쫄지 마. 네가 죽인 아이가 느꼈을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바지를 적신 오줌의 지린내와 온몸에 두른 피비린내가 섞여 코끝을 찌른다.

“살…려…….”

“흠… 너를 어디로 보내야 될까.”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원하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경찰일까.

아니면 검사장일까.

전자는 공식적으로 유명해질 기회와 약간의 현상금이고.

후자는 비공식적으로 검사장이라는 뒷배와 많은 양의 현상금일 것이고.

명예냐. 권력이냐. 둘 중 하나인데…….

“어디로 갈래 너?”

“네? 여기서 내보내 주시라요… 제발 부탁드리갔…….”

피를 많이 흘려 기운이 딸리는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너도 무시했잖아. 살려 달라, 보내 달라, 하지 말라는 간절한 외침을 말이야. 대신 죽이지는 않을 게.”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해. 앞으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그래.

난 도저히 네가 교도소에서 삼시 세끼 다 처먹고 편히 자는 걸 못 볼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필요한 건 비공식적인 것에서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번쩍.

“어∼ 그려 꼬맹이 말혀.”

오양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들자 뒤에서 민태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촘, 이놈 탁송 좀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