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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쳐 날뛰는 놈을 사 달라면 모를까 잡아 달라는 건 내 전문이 아닌데.”

“환불은 좀 곤란한데요.”

포스트잇을 넣은 방영호의 포켓을 바라보며 말했다.

톡톡.

포스트잇을 넣은 포켓을 손바닥으로 톡톡 치는 방영호.

“아무리 작물이라지만, 이미 내 주머니에 집어넣은 걸 환불해 달라는 건 도리가 아니지.”

휙휙.

방영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높은 책장들을 살폈다.

“혹시, 그놈을 잡는 과정도 이번 거래에 포함되는 건가?”

“아니요. 결과만 받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책장을 발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 방영호가 넓은 서재의 어느 한 책장으로 향했다.

스윽.

빼곡한 책장에서 꺼내지는 하나의 수첩.

스르륵.

“어디 보자.”

무언가를 찾는 듯 보이지만, 크게 관심이 기울여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난 그놈이라는 결과만 받으면 되니까.

“민 사장님 요즘 뭐 하세요? 하하, 고마워요. 그때 봅시다. 그럼.”

방영호가 직접 가져다주건 방영호의 통화 속 누군가가 대신 가져다주건 간에 말이다.

“미안한데 치우야, 3일만 줄 수 있을까?”

“네.”

슬며시 자리를 뜨려 했지만, 방영호의 눈빛이 나를 붙잡는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게 고민이네. 말을 할까 말까.”

“말씀하세요. 회장님 눈빛 때문에 엉덩이가 무겁네요.”

“미쳐 날뛰는 놈을 왜 잡으려는 거지?”

“정확한 질문은 잡아서 어떻게 하려고 하냐? 이거죠?”

피식.

방영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되팔 겁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죠. 사 간 사람 마음이니까요.”

“중간 마진을 챙기겠다?”

“그것보단…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려고요.”

방영호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싸움은 잘 못합니다만.”

“이상해… 아무리 봐도.”

“무슨 말씀이신지.”

“분명 껍데기는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내용물은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 같달까?”

나도 모르게 방영호의 눈빛을 피했고, 또 움찔거렸다.

“어라? 치우가 당황하는 모습을 다 보네.”

“그러니까 그만 찍으시죠. 그러다 도끼병 걸리겠습니다.”

“하하하, 미안하구나. 네가 고등학생이라는 게 더 말이 안 돼서 말이야.”

스윽.

지금 내 상황을 들킬 일은 없겠지만, 더 있다고 좋을 일도 없을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3일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쾅!

치우가 나가자 방영호가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간간이 보이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네, 회장님.

“뭐 나온 거 있습니까?”

― 국정원 라인까지 돌려봤는데도 없습니다.

“후, 일단 사생아는 아니라는 거지…….”

― 네? 잘 못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계속 지켜보세요.”



***



3일이 지나 다시 방영호의 서재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두 발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흔치 않은 성이라 설마 했지만, 통화 속 민 사장이 나와 이렇게 가까운 사람인줄은 몰랐다.

“어?”

눈을 비빌수록 더 흐려진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더 선명해져 눈물이 맺혀서 그런가 보다.

“이분한테 자세히 얘기해 봐, 치우야. 미쳐 날뛰는 그놈이 누군지.”

이런…….

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데 어떻게 얘기를 꺼낼까.

“뭐여∼ 쟈 왜 우는 거여?”

왜 방영호와의 인연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지?

술을 좋아하던 민태호는 술자리를 핑계 삼아 자신의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물론 아무한테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되면 출생사부터 살아온 인생 전부를 서사시처럼 읊어 댔다.

더군다나 방영호는 스쳐지나 보내기에는 꽤 큰 인물이었고, 민태호는 방영호의 서재가 처음이 아닌 듯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

특히나 나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말하던 민태호인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내 몸은 민태호에게로 향한다.

방영호와 민태호가 구면인 사실도.

과거로 돌아온 사실도.

지금은 민태호가 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분명 지금 내 행동이 이상해 보일 거라는 사실도.

그런 모든 사실을 뒤로 한 채, 눈물을 보이며 민태호를 끌어 앉았다.

와락.

“보고 싶었어요…….”

“시방 이게 뭔…….”

내 귀에는 너무나 익숙한 민태호의 사투리가 조금 더 가까이 들려왔다.

“워메, 당황스럽구마잉.”

팔팔하던 30대 민태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다.

내 기억 속 민태호와의 첫 만남은 앞으로 몇 년 후 교도소이니까.

그래도 확실한 건 지금 내 품에 있는 사람은 벼랑 끝에서 나를 잡아 주던 민태호였다.

“치우야?”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차.

가뜩이나 나를 이상하게 보는 방영호의 눈빛을 보고 서둘러 핑곗거리를 생각했다.

슬쩍.

“죄송합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와 너무 닮으셔서. 제가 잠시 어떻게 됐나 봅니다.”

눈물을 훔치고 커피 잔이 놓여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하하하,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아이구나.”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방영호의 머릿속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들어갔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방영호의 저 눈빛은 뭐지?

분명 눈빛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아따∼ 오늘 희한한 일 많이 겪어 뿌네. 나가 사람 잡아 달라는 부탁은 많이 받아 봤는디. 부탁한 사람이 방 회장님이 아니라, 요 꼬맹이란 말이제?”

“네, 처음 뵙겠습니다. 한치우라고 합니다.”

“그려 근디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줄 알겠어. 아차! 아무리 얼라여도 방 회장님 지인인디… 이렇게 막, 말을 까도 될런지…….”

“괜찮습니다.”

대답은 내가 했지만, 민태호는 방영호의 눈치를 살피고 방영호는 눈웃음을 보이며 허락했다.

“그려 아무리 얼라여도 나한테 일을 시키는 클라이언트인디 말부터 혀 봐.”

“동네 차이나타운 안에 조선족 조폭 놈이 하나 있습니다.”

“음…. 근께 지금 짱깨 조폭 놈을 잡아달라는 거제?”

“네, 맞습니다.”

“아이고… 머리 아프구먼. 차라리 죽여 달라하면 쉬울 턴디. 야무진놈 하나 보내서 몰래 작업하면 되니까. 근디 모가지 붙여서 잡아올라면 아 여럿 데리고 짱개 타운에서 전쟁을 해야 한다는 소리구만.”

시선을 방영호에게 돌리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꽤 비싸다는 것을 알린다.

“약속한 금액에 ‘공’ 하나 더 붙여드리겠습니다.”

얼마에 공을 붙인다는 거지?

뭐,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건 고마운디… 그 짱개 조폭놈 말이여.”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걱정 마시죠.”

“하하하! 이 얼라 사람을 꿰뚫어 보는구먼.”

잘 알고 있으니까.

민태호는 억만금을 줘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

상대가 같은 조폭이어도 돈과 함께 자신이 납득할 이유를 섞어 줘야 움직인다.

“그람 애들 준비 다 시키믄 연락드리겄습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밖으로 향하는 민태호의 옷깃을 붙잡았다.

“저…….”

“할 말 남았드나?”

“술, 적당히 드세요.”

“하하하, 나가 니 아부지랑 그렇게 닮았나?”

삼촌 간암으로 죽었잖아.

지금이야 들어먹지도 않을 말밖에 못하지만.

기다려.

내가 삼촌 죽게 안 놔둘 거니까.

“니가 그러니까 내도… 죽은 아들내미 생각나뿌네……. 그려 오늘 술 약속은 취소해야겄네.”

민태호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누구 뱃속에서 나왔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집 앞에 ‘민태호에게’라는 쪽지와 함께 버려져 있던 아들이.

조폭 노릇하면서 잘 챙기지 못한 탓에 병에 걸려 죽은 아들.

어쩌면 민태호가 조폭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계기가 아들의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삼촌 아들은 못 살려 내도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은 반드시 이루어줄게.

지금의 나는 살인범이라는 꼬리표가 없고 앞으로의 나는 세상을 바꿀 위치에 올라갈 테니까.

“민 사장에게 연락 오면 바로 연락해 주지.”

“저…….”

민태호가 떠나고 나 역시 커피 잔을 모두 비웠지만,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할 말 남았느냐?”

“네. 민 사장이라는 분과는 어떻게 아시는 거죠?”

“네가 보기엔 민 사장이 뭐 하는 사람 같은데?”

“조폭이요.”

“하하하, 그래 잘 아는구나. 저 사람은 주먹을 쓰는 사람이고 나는 펜대를 굴리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본론만 말했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말하려는 서론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면 펜대보다 주먹이 필요할 때가 있고, 혹은 주먹이 더 쉬운 일도 있어. 그럼 우리는 민 사장 같은 사람들에게 주먹을 돈을 주고 사지. 그들은 그런 우리를 스폰이라고 부르고.”

그러니까.

민태호를 스폰하던 모든 사람을 알고 있는데 왜 방영호 당신은 내 기억에 없는 거냐고.

“주먹을 쓰는 사람은 민 사장님 말고도 많을 텐데요.”

“하하하, 내가 치우의 질문을 잘못 이해했구나. 그건 나도 아는데. 왜 하필 민 사장이냐? 이걸 묻고 싶은 거지?”

하하하.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아까 민 사장이 말했지 죽은 아들이 있다고.”

“네.”

“많이 아팠어. 희귀 병에 걸렸거든. 그리고 그때 마침 규모가 커진 성훈산업은 주먹이 필요했고…….”

방영호의 긴 얘기와 함께 서재의 계단을 반쯤 내려오고 나서야 모든 실마리가 맞추어졌다.

민태호는 오로지 돈 때문에 방영호를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성훈산업은 의료 기기와 약을 만드는 기업이었고, 여러모로 자신과 자기 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다 내려가자. 먼저 내려가 있던 민태호와 성훈이가 보였다.

“어? 아저씨 누구세요?”

“니가 방 회장님 아들인교?”

“네…….”

“아따∼ 귀엽게 생겼네.”

자기 아들이 떠올랐는지 1층에서 마주친 성훈이의 볼을 꼬집는 민태호였다.

아빠가 서울을 접수한 조폭이면 무엇하리.

정작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모르는데.

워낙 몸이 허약했던 아이가 매일매일 스트레스와 구타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니 죽을병에 걸리는 게 당연할지도…….

준비가 안 된 철없는 조폭 민태호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아들.

서울을 접수하고 여유가 좀 생겨 아들이라 인정하고 사랑을 주려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아빠… 원망 안 해요…….”



남자는 울지 않는다고 말하던 민태호는 병실이 떠나가라 울었을 것이다.

“내는 니 아부지랑 같이 일 하는 사람이여.”

“아, 안녕하세요. 방성훈이라고 합니다.”

“허허, 그려.”

생각해 보니…

내가 불행한 성훈이의 미래를 바꾸지 않았다면, 성훈산업은 또다시 부도가 났을 것이다.

몇 천 명의 직원들에게 임금을 체납하고, 몇 천억의 세금을 탈루한 방영호가 잡히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민태호.

방영호 가족의 도피를 도운 것은 바로 민태호였으리라.

누구보다 아들을 지키고 싶던 방영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숨겨 준 거구나.

쾅!

민태호가 나가고 계단 중간에 멈춰 있던 발걸음을 옮겼다.

“어? 치우 너도 있었어?”

“어. 학원 갔다 오는 거야?”

“응… 아! 그리고 그때 비싼 술 사달라고 했던 거 있잖아……. 그거 나중 말고 지금 줄 수 있어.”

“아따, 어떤 놈은 나한테 술 마시지 말라고 했는디. 그놈이 술을 마셔불라 하네.”

민태호는 그말을 남기고 키득거리며 밖으로 나갔고, 나는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하필 이 타이밍에…….’

“미, 미안해. 둘만 있을 때 말할 걸.”

성훈이가 울상인 채로 책가방에서 위스키가 담겨 있는 양주 박스 하나를 꺼내 나에게 넘겨줬다.

“그런데… 이거 치우 네가 먹는 건 아니지? 어머니 줄 거지?”

아이고… 이 눈치 없고 착해 빠진 녀석.

그걸 기억하고 가져온 거야?

“아니. 이건 너랑 먹을 거야.”

“우리 학생인데…….”

“그럼 내가 가지고 있다가 너도 어른 되면 그때 먹자.”

“응? 나도?”

“응, 너도.”

너도 언젠간 어른이 될 테니까.

네가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구나.



***



“야들아∼”

“네, 형님!”

[NO Korean Entey]

차이나타운 앞에 모여 있는 수많은 덩치들.

앞장선 민태호의 한마디에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잘 들어라잉. 얼라들이랑 아주매들. 그리고 노인들은 건들지 말고 연장차고 달려드는 놈들만 패는 거여. 알겄냐?”

“네, 형님!”

“요 얼라 클라이언트 부탁이 최대한 깨끗하게 잡아 오랬으니까 웬만하면 칼은 주지 말고. 되도록 소란피우지 말고 오양호 요 짱개놈만 잡아올 수 있도록.”

“네 형님! 알겠습니다!”

민태호 뒤에 있던 수많은 덩치들이 앞으로 몰리자 차이나타운 입구가 까맣게 변해 버렸다.

“자! 들어가 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