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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택을 마친 흥신소 사장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직원이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얼굴.”

“네?”

“얼굴 좀 가까이 와 봐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미는 얼굴.

슥슥―

“이게 지금 뭐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손에 든 사인펜.



[저는 양아치입니다.]

[010―XXXX―XXXX]



사인펜을 들고 녀석의 이마를 메모지 삼아 내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찾으면 거울 보고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

“이게 무슨…….”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녀석이 거울로 향했다.

“이런… 씨…….”

“대가리 또 안 돌아갈까 봐 말해 주는 건데, 딴짓하지 말고 여기 틀어박혀 오양호 위치 찾을 때까지 일하라는 거야.”

“그럼 종이에 적으면 될 거 아니요!”

“잘 들어. 내가 여길 나가서 3일 안에 연락이 안 오면 나는 태호 삼촌이나 검사장을 찾아갈 거야. 그렇게 되면 누군가에게 아주 큰일이 생기겠지?”

번쩍.

“찾았습니다!”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리던 직원이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휴∼”

그 모습을 본 사장 녀석은 물티슈를 꺼내 이마를 빡빡 문지르며 직원에게 메모지를 건네받았다.

“오양호가 있는 위치입니다.”

직원에게 건네받은 메모지가 다시 나한테 향한다.

“왜요? 이것도 이마에 적어서 보여드릴까요?!”

아까 내 행동이 기분 나빴는지 자기 이마를 톡톡 치며 비꼬았다.

“됐고. 내 앞에 데리고 온다 하지 않았나?”

“그놈 살인자에 조선족 조폭입니다. 불법체류에 신분도 없고요. 거기 들어갔다가는 통나무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알아서 하시든가. 어차피 죽을 거면 몸속 장기라도 지키렵니다.”



***



맞아.

우리 동네에 꽤 규모가 있는 차이나타운이 있었지.

곧 대대적인 재개발로 인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질 곳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No Korean Entry]

대문짝만한 팻말.

“참, 주객전도가 따로 없네.”

그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조선족들은 폐쇄성이 강하고 오양호 같은 몇몇 부적응자들과 이런 팻말이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이미지를 더 깎아 내렸다.

조선족 모두가 오양호 같은 것은 아니고, 모두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당시에 주변 어른들은 이곳을 출입하지 말라 당부했고 나 또한 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경찰들까지도 차이나타운 근처만을 순찰할 뿐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내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주 위험한 곳으로 숨어 버렸네.”

돈을 받은 흥신소 사장은 차이나타운 속에 오양호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위조 여권과 약간의 생활비를 포함해서 말이다.

“목줄 없는 짐승 새끼가 이 안에 있다는 말인데…….”

오양호는 조선족 조폭이었고, 대한민국에서 세력을 꽤 만들었지만 쫓기는 몸이었다.

그 탓에 익숙한 동네를 떠나 이 지역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들어가려면 몸에 갑옷이라도 둘러야겠네.”

강한 놈보다 무서운 놈?

포기한 놈이다.

포기한 놈보다 더 무서운 놈?

바로 미쳐 날뛰는데 통제조차 할 수 없는 놈.

도시 전체를 비교하면 크기는 얼마 안 되지만 오양호는 분명 저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고, 그 생태계 안에서 통제 없이 미쳐 날뛰고 있을 것이다.

“일단은 갑옷부터 구하러 가 볼까.”



***



차이나타운이 일종의 던전이라 치자.

오양호라는 보스 몬스터가 있고, 그를 따르는 작은 몬스터들이 있다.

그런 던전을 맨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같이 들어갈 동료를 구하거나 좋은 갑옷과 좋은 무기를 장착해야 하고, 그런 것들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좋은 저택에서 나올 확률이 높았다.

띵동!

― 안녕하세요. 성훈이 친구 한치우라고 합니다.

띡.

다소 클래식한 전자음을 내며 높은 대문이 열렸다.

“어? 치우야! 어쩐 일이야?”

친구의 방문에 버선발로 나온 성훈이.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이유.

내 친구가 성훈이 하나 듯, 성훈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성적인 탓에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다만, 돈 많고, 공부 잘하는 탓에 아무도 건들지 못한 것일 뿐.

어쨌건, 미안하구나.

지금 내게 필요한 동료는 고등학생 친구가 아니라서 말이야.

“아버지 계셔?”

“응.”



― 황의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마당을 지나 집안에 들어서자 텔레비전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방영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곳에서 좋은 무기와 갑옷이 나올 확률을 높여 줬다.

“치우 왔어요. 아빠 보러 온 것 같아요.”

“그래. 아빠 치우랑 잠깐 얘기 좀 할게.”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나를 반기는 상황에 성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치우구나,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었는데.”

방영호가 좋은 아버지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방영호의 어깨에는 가족과 수천 명의 직원, 또 직원들의 가족들이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어깨에 이고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방영호가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게 방해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지켜오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던 상황을 내가 막아 줬으니,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보이는 것이 이해가 갔다.

문제는 미소의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 성훈이가 아니라 나라는 것이지만.

“치우야 서재에 가서 얘기하자꾸나.”

방영호는 서재로 올라가 버렸고, 나는 뒤따라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왠지 모를 서운함을 내비치는 성훈이의 얼굴.

친구와 아버지가 자신을 뒷전 시 하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성훈아.”

“응?”

“내가 불행한 니 미래 바꿨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몰라도 되고, 나중에 어른 되면 나한테 비싼 술 한번 사.”

성훈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 내 행동에 서운해 하지 마.

어떻게 보면 방영호의 미소는 너를 위한 거니까.

방영호의 어깨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은 너일 테니까.

조금은 풀어진 성훈이의 표정을 뒤로 한 채 서재로 올라갔다.

넓은 서재에 퍼지는 은은한 커피 향.

“그때 보니 커피 취향이 나랑 같더구나.”

처음 이 서재를 방문했을 때 방영호가 나에게 내준 것은 등기필증이었고, 지금은 내 취향을 고려한 커피다.

모두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지만 뜻이 다르다.

값어치로 따지자면 등기필증이 훨씬 더 높겠지만, 방영호가 쓰는 마음은 등기필증보다 커피 한 잔이 훨씬 더 많으니까 말이다.

“벌써 설레는구나. 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거래는 마음에 드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내 입장에서는 거래라기보다 도박이었거든. 고등학생의 말을 믿고 전부를 움직이는 걸 투자라고 할 순 없지.”

홀짝.

은은한 커피 향을 뿜는 커피 잔이 방영호 코에 가까워졌다.

입이 커피 잔에 가려졌지만, 방영호의 은은한 미소는 숨겨지지 않았다.

“거래는 득과 실이 공존하지만, 도박은 달라. 둘 중 하나거든. 그리고 나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하하하.”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에게는 머릿속의 미래가 시간의 흐름대로 나타나는 것일 뿐인데 방영호의 시간은 꽤 불안했을 테니 말이다.

“웃는 걸 보니 이미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해할 걸 알고 말씀하셨겠죠. 보통의 고등학생에게 할 말씀은 아니니까요.”

“하하하, 네가 내 머릿속에서 놀고 있구나.”

방영호가 내 웃음의 의미를 파악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여튼 나는 도박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 포장하는 걸 아주 싫어해. 남들보다 앞서가고 남들이 쉴 때 일을 한다면 리턴은 키우고, 리스크는 줄 일 수 있으니까. 도박은 노력하지 않은 자들이 바라는 희망일 뿐이지.”

스윽.

방영호가 테이블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쪽으로 밀어냈다.

투명 케이스에 들어 있는 통장과 도장.

“이번 줄기세포 투자에도 그런 신념을 대입했고, 남들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믿었지.”

“신념을 깨 버리신 거네요?”

“맞아. 신념을 깨고 너에게 모든 것을 배팅했지. 그래서 모두를 지킬 수 있었고.”

스윽.

방영호가 꺼내 놓은 통장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거래는 이미 끝난 거 같은데요. 회장님이 보내 주신 전셋집을 무사히 받았으니까요.”

“이건 너에게 배팅한 당첨금이 아니야. 내 신념을 깨 준 대가지.”

스윽.

통장을 다시 방영호 쪽으로 밀어냈다.

“그 대가 돈 말고 다음 거래에 얹어 주시죠.”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머니 점포 하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의 액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 통장을 받는 순간, 방영호와의 다음 거래는 없다.

방영호는 나에게 있어 아주 훌륭한 거래처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미래의 정보들을 가장 훌륭한 값에 사 줄 그런 거래처.

자신의 신념을 깨준 대가?

그래.

그런 대가라 생각하며 저 통장 위에 덥석 손을 올려도 되겠지.

하지만 저 통장이 나한테 넘어오는 순간, 방영호는 내 손에 있는 통장에 언제든지 입출금을 하려 들 터.

그렇게 되면 내가 팔 정보들의 값은 내가 아니라 방영호가 정하게 되겠지.

“다음 거래?”

“네. 회장님이 괜찮으시다면 한 번 더 거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꽤 괜찮은 거래를요.”

스윽.

반으로 접힌 작은 포스트잇 하나를 방영호에게 건넸다.

내가 팔 미래의 정보를 말이다.

“동현 바이오…?”

성훈산업이 줄기세포에 투자하려 하던 건 단순히 투자 수익을 바라서가 아니었다.

성훈산업은 의료기기를 제작하는 기업이었고, 줄기세포는 바이오산업의 혁신이라 떠들어 댔다.

그런 혁신에 투자할 기회를 잡았으니, 방영호 회장이 얼마나 설렜을지는 불 보듯 빤했다.

물론 줄기세포는 거짓이었지만.

“성훈산업은 투자 철회로 사내 잉여금이 넘쳐 나는 상태이고, 회장님은 또다시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내 머릿속에서 노는 것도 모자라 내 머릿속을 읽고 있구나.”

“동현 바이오는 내년에 새로운 PDE5 억제제를 개발합니다.”

“PDE5면… 비아그라?”

“비아그라의 일종이죠. 다만, 국내 개발 PDE5 억제제 중 가장 부작용 케이스가 적으며 효과 또한 가장 좋습니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내년에 오를 주식 리스트 중 가장 첫 번째 줄은 동현 바이오라는 뜻이죠.”

대답이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내년에 신약 개발 발표가 난다면 지금쯤 임상시험을 하고 있을 텐데… 혹시 치우 네가 시험에 참여했느냐? 만약 그렇다면 이건 받을 수 없어. 치우 너는 내부 기밀을 유출한 것이고, 나는 그 유출된 정보로 투자를 한 것이니까.”

“보통 그런 중요한 신약의 피실험자를 고등학생으로 뽑지 않죠. 그리고 그게 범죄라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고요.”

크게 한숨을 내쉬는 방영호.

“그리고 아쉽지만 이번엔 증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증거를 만들려면 동현 바이오의 신약 개발 자료가 유출되었다는 또 다른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말이다.

“제가 제시한 거래 대금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치우 네 입에서 나왔다는 걸 증거로 믿어 보마.”

만약 방영호와의 만남이 처음이고 똑같이 이런 거래 대금을 제시한다면 고등학생의 소설이라며 웃어넘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미 깨질 수 없는 신뢰가 생겨 버렸으니 말이다.

“대신 출처가 없는 장물이니 싸게 팔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나를 갖고 노는구나.”

이미 머릿속이 정리된 듯 ‘진짜’ 웃음을 보이는 방영호였다.

“그래. 이건 받고 내가 너한테 뭘 내어 주면 될까?”

방영호가 포스트잇을 접어 자신의 포켓에 집어넣었고,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씩 입꼬리를 올리며 입술을 뗐다.

“차이나타운에서 미쳐 날뛰는 놈 하나만 잡아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