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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실 처음부터 현상수배범을 잡자는 계획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정보가 미래를 알고 있는 내 머리에 대입되면 아드레날린을 뿜어냈다.

주식을 할까?

앞으로 어떤 종목이 오를지 대충은 알고 있는데.

‘밑천이 없지.’

사실 밑천이 있다 해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큰 틀만 알고 있지 현재 시점에서 내일 어떤 종목이 오를지는 자세히 모른다.

‘이건 나중에 써먹고.’

아! 복권을 사면 되지 않을까?

꽤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번호를 모르잖아.’

과거로 돌아올 걸 대비해 매주 복권 번호를 외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나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나는 학생이었고 꽤 많은 정보가 미성년자라는 단어에 튕겨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중 머릿속에 ‘팍!’ 하고 꽂히는 단어 하나가 보였다.

[현상수배범 명단.]

법복을 입기로 한 나에게 꽤 훌륭한 꼬리표가 돼 줄 단어.

아무런 밑천 없이 점포를 계약할 돈을 마련해 줄 단어.

현상수배범 명단 중 낯익은 몇 명은 차후에 흉악 범죄를 저질러 잡히게 된다.

내 목적이 정의롭다고 자부할 수는 없었다.

내게는 복수와 정의 등의 여러 이정표가 있고, 그 끝이 아름답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나 사전에 범죄를 막을 수 있고 가장 정의롭게 돈을 벌 방법이라 생각한다.

법복을 입기 전에 범죄자를 잡아 볼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고.

성공하면 입게 될 법복에 몇 개의 훈장이 달려 있을 것이었다.

‘일단 이놈부터.’

모니터 속 수배범의 몽타주 중 가장 먼저 X를 친 녀석은 현직 검사장의 딸을 납치 성폭행한 후 살인까지 저질러 언론을 꽤 시끄럽게 한 놈이었다.

경찰이 건 현상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피해자의 아버지는 검사장이며 외할아버지는 송암 그룹의 회장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어쩌면 이놈이 검사가 되기 전 아주 괜찮은 뒷배를 만들게 해 줄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 경찰이 건 현상금보다 훨씬 더 많은 현상금이 생기지 않을까?



***



집에서 나와 둑방 길을 걷다 보면 작은 시장 하나를 볼 수 있다.

하굣길 시장 앞을 지나지 않으려 먼 길을 돌아 집으로 향하곤 했다.

한겨울 시장통에 쭈그리고 앉아 야채를 파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습이 보기 싫은 건 똑같다.

다만, 그때는 창피함이 싫은 나를 위해서였고, 지금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를 위한 희생을 감수하는 어머니를 위해서이다.

‘엄마, 학교에서 들었는데 앞으로 며칠간 불법 노점 단속한대요.’

‘응? 학교에서 그런 것도 말하니?’

‘선생님들이 얘기하는 거 우연히 들었어요.’

다소 어설픈 거짓말이었지만, 어머니는 며칠간 노점을 쉬기로 결정하셨다.

평소 같으면 야채 보따리를 옮겨가며 단속을 피해 노점에 나가시겠지만, 막막하던 집 문제가 해결되었고 용돈을 달라며 떼를 쓰던 아들의 변화가 조금 편한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아따! 아줌마 다 퍼주면 나는 풀 뜯어 먹고 살까?”

시장에 들어서자 주변 소리와 냄새가 아주 엿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아침에 달라고 했잖아! 여기 쪽팔려서 오기 싫단 말이야!”

“미안해… 엄마가 아침에는 돈이 없어서…….”



당시에 철없는 아들의 손에 쥐여 줄 돈이 없던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시장에 나갔다.

한겨울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쭈그려 앉아 목청이 터지도록 외친 끝에 주머니에 채워 넣은 푼돈.



“엄마가 집에 밥해 놨으니까 가서 먹어.”

“됐어! 짜증나!”



모진 말을 내뱉고 시장을 뛰쳐나왔다.

빨리 가서 돈을 바쳐야 한 대라도 덜 맞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풀었으니.

“내가 병신 같은 새끼지…….”

퍽!

“한심한 새끼…….”

퍽!

그때의 나를 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얼마나 세게 쳤는지 입안에서 피 비린 맛이 났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랐다.

이제 어머니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쭈그려 앉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시장 안을 돌아보며 비어 있는 점포를 확인했다.

비어 있다 해도 지금 당장 점포를 계약할 돈은 없었다.

다만, 아주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계획이 크게 빗나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을 찾은 이유는 단순히 점포를 둘러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케이 흥신소] [오케이 일수]



점포를 둘러보다 시장 입구 반대쪽 길 끝에 다다르자 낡은 건물 이 층에 두 개의 간판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상호를 보면 알겠지만, 간판만 두 개일 뿐 사무실은 하나다.

사무실 안에는 껄렁거리는 동네 조폭들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며 카드를 치고 있을 것이다.

여기를 찾아온 이유?

나는 목격자들의 토대로 만들어진 몽타주 속 범인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름과 살아온 인생까지.

오양호.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 놈은 더 이상 수배범이 아닌 살인범으로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으니까.

오양호가 앞으로 10년이나 더 자유로울 수 있던 이유는 신분 때문이다.

밀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불법체류자이자 조선족 조폭.

경찰서에 달려가 놈의 정보를 알려 줄 수도 있지만, 경찰서 컴퓨터에는 놈의 이름도 지문도, 그 어떤 정보도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의 오양호의 행적을 모르니 경찰은 장난을 의심하며 내가 설명해 준 오양호의 몽타주를 새롭게 그릴 것이고, 몽타주가 조금 더 정확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저 낡은 건물 속 컴퓨터는 조금 다르다.

합법적이지 않은 정보들이 저장될 수 있으니까.

과거 교도소 복역 시절, 살인을 저질렀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오양호는 나와 같은 교소도에 수감 되었고, 우연히 그를 도와준 한 남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니 검사장 딸내미 죽였다는 저 양반 알지? 내가 그때 당시에 흥신소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오양호 저 양반이 찾아와서 지가 대단한 사람 딸내미를 죽였다고 천만 원을 주면서 자기를 좀 도와 달라 더라고.”



그런 정보들이 저장되어 있으니 당연히 놈을 찾는 속도는 저 낡은 건물 속 컴퓨터가 더 빠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이 아닌 내 손에 잡혀야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생각을 정리하고 칠이 다 벗겨진 손잡이를 잡았다.

끼익―

아귀가 맞지 않는 녹슨 철문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리자 갇혀 있던 담배 연기가 빠져나왔다.

“어서 오…….”

꽃무늬에 쫙 달라붙는 티셔츠.

얼마나 빨빨거리며 양아치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지 보기 싫을 정도로 앙상한 몸.

유니폼이라도 되는 듯 모두가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옹기종기 모여 카드를 치고 있었다.

“뭐여? 학생 아니여?”

시장 상인들을 꼬드겨 사채를 쓰게 해 불법 고리를 받아먹고, 심부름센터를 가장해 온갖 추잡한 짓은 다하고 다니는 양아치들.

겉모습은 조폭을 따라 하려고 하지만 녀석들은 그저 양아치일 뿐이었다.

선과 악,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쓰레기들.

“사람 좀 찾고 싶은데.”

“꼬마야∼ 사람을 찾으려면 경찰서를 가야지. 여기서 찾으려면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 오던가, 아니면 엄마를 줘도 되고.”

“하하하하하하! 아따, 형님. 애한테 말이 심하요.”

쓰레기들한테 인간 대접을 해 줄 필요는 없었다.

“하여튼 좋은 말로 하면 안 들어 처먹는다니까. 귓구멍이 양아치라 못 듣는 건가?”

오양호라는 더러운 짐승을 잡기 위해서 쓰레기를 만져야 할뿐.

내 말에 나를 조롱하며 카드를 치던 녀석들의 행동이 멈췄다.

“꼬마야, 지금 죽고 싶다 그런 거여?”

“하하하.”

분명 겁을 주려고 한 말일 텐데 내 눈에는 헛웃음이 나오는 코미디였다.

“얼씨구? 쪼개 버리네. 아나, 꼬마한테 주먹 쓰기 싫은데.”

“너희 나 모르지?”

“또라이 아니여? 갑자기 뭔 소리야. 니가 누군데?”

“모의고사 전국 1등.”

“얘 뭐라는 거여?”

톡톡.

책상 위에 있는 도청 장치와 말도 안 되는 이자율이 적혀 있는 대출 서류들을 건드렸다.

“너희보다 똑똑하니까 건들면 안 된다는 소리야.”

“그런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를 찍찍 해대는 거야.”

“그리고 사실… 주먹도 좀 쓸 줄 알아.”

처음 민태호를 따라 조폭이 되었을 가장 먼저 배운 게 뭐였겠는가.

쌈박질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세 녀석은 공통점이 있다.

“어린 노무 새끼가 어디서 주먹 좀 쓰나 본데 칼로 배때기 좀 쑤셔 줄까?”

주먹보다 입이 더 세며.

“꼬마야, 네가 서울연합파라고 알려나 모르겠네. 이 몸이 지금은 시골에 내려와 있지만 내가 한때 서울 연합파의 행동대장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허세로 둔갑시킨다.

스윽.

나는 느긋이 팔을 걷어 올리며 목을 풀었다.

“한번 볼까? 정말 너를 건드리면 안 되는지?”

“아이고, 애새끼들은 대가리가 덜 여물어서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니까.”

그 모습을 보자 마지막까지 앉아 있던 한 녀석이 테이블 위 재떨이를 손에 들고 다가온다.

“못 볼 걸?”

과거로 돌아오는 바람에 단단한 근육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밤마다 공원에 나가 다시 몸을 키웠다.

무엇보다 저 앙상하디 앙상한 팔에 문신을 둘렀다고 내가 위축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허세를 제외한다면 녀석들 피지컬이 나보다 더 낫다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건들 수가 없으니까.”

퍽!

녀석의 턱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쨍그랑!

“뭐야… 이거…….”

들고 있던 사람의 턱이 돌아가 힘을 잃어버리니 자연스레 재떨이가 떨어져 깨졌다.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남은 두 녀석의 더러운 몸에는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약함을 보호하기 위해 허세로 둔갑한 방어막과 앙상한 팔을 감추기 위해 두른 문신이 통하지 않는 대상에게는 너무나 순종적이라는 걸.

“덤빌 거 아니면 앉아요.”

“아! 네… 아니, 어…….”

“그리고 아까 뭐? 서울연합파? 내가 알기론 태호 삼촌이 당신 같은 사람을 식구로 받을 리가 없는데.”

게임 끝.

동네 양아치인 놈들에게는 민태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내게 덤빌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민태호 형님을 아시는 거예요? 아니, 알고 있어?”

“존대할 거면 존대하고, 반말할 거면 반말로 하지? 머저리 같으니까.”

“아… 네. 그럼 존대로 하겠습니다.”

“됐고.”

스윽.

그림을 잘 그리는 성훈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정확해진 오양호의 몽타주를 꺼내 놓았다.

“이놈 알지?”

“잘… 모르는데요?”

어쩜 이리 티가 날까.

“태호 삼촌한테 말해 줄까? 너희가 태호 삼촌 이름 팔아서 헛짓거리 하고 다닌다고?”

“아니요… 근디… 이놈을 왜 찾으시는지…….”

“잘 알잖아, 너도. 이놈을 왜 찾아야 하는지.”

“저는 잘…….”

“또 돌려 말하니까 못 알아듣네.”

머리가 딸리니 입을 못 놀리고, 살인범에게 받은 돈이 있으니 후일이 두려운 것이다.

“자, 이해하기 쉽게 말해 줄게.”

삐딱하게 기대고 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세 가지 선택이 있어. 첫 번째는 태호 삼촌 귀에 너희 이름이 들어가 어디 야산에 조용히 묻히는 거고, 두 번째는 너희가 돈을 받고 오양호를 숨겨 줬다는 사실이 피해자 아버지인 검사장에게 들어가 거시기가 안 설 때까지 감옥에서 썩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놈을 잡아다 내 앞에 데리고 오는 거야.”

내가 내준 문제는 객관식이었지만, 녀석의 머릿속은 주관식일 것이다.

“3번으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