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



탁!

“꼬봉 새끼가 감 잃었네!”

뭘까?

분명 이마 한가운데 총을 맞았는데, 너무나 생생한 이 느낌은.

이승에서의 죄가 많아 저승에서 벌을 받는 것일까?

“담배 사 왔냐?”

그렇지 않고서야 열여덟 그 끔찍하던 기억이 어쩜 이리 생생하단 말인가.

끔찍하던 기억 속 악마들이 내 뒤통수를 때리는 고통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실룩거리는 내 입꼬리는 어떡하지?

이 상황이 현실이란 걸 느낄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만약 신이 내 이승의 업적을 문제 삼아 지옥 같던 삶을 되풀이하는 벌을 준 것이라면, 나는 그 벌을 곱게 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제게 준 것은 벌이 아닙니다.

제 분노와 후회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일 뿐.

제게 지옥 같은 삶과 그것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그 삶을 되풀이하는 벌을 주신 것.

그걸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명선호]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훗날 내 손에 죽게 될 녀석의 명찰을 바라보았다.

물론 또다시 죽일 생각은 없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는 내 머릿속에 든 게 너무 많으니 말이다.

“너 원래 이렇게 좆만 했냐?”

“뭐?”

분명 시선은 내 눈보다 높은 곳에 있었지만, 열여덟 살 고등학생인 녀석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명선호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너. 원래. 그렇게. 좆만. 했냐고.”

또박또박 또렷이 말하자 소란스럽던 교실의 분위기가 명선호와 나에게 집중되었다.

끓는점이 낮은 열여덟 살짜리 고등학생의 다음 행동?

불 보듯 빤했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쳐 가지고!”

그저 펄펄 끓는 것이다.

칼을 든 주먹을 보다가 맨주먹을 보니 긴장감조차 없었다.

퍽!

“피지컬이 안 되니까 힘이 안 들어가네.”

“너…….”

몸이 작아서인지 미쳐 날뛰는 녀석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하기는 쉬웠지만, 덜 여문 근육 때문에 녀석의 배에 꽃은 내 주먹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서지 마. 더 처 맞기 싫으면.”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어도 명선호의 무릎을 바닥에 꿇릴 정도는 충분했고, 모두의 머릿속 각인되어 있던 한치우의 이미지를 바꾸기에도 충분하였다.

사실, 꼬여 버린 내 인생의 시작은 이 녀석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 녀석이 확실하다.

비록 억눌린 분노로 인해 녀석을 죽인 것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당한 일과 이 녀석이 행한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치우, 이 개새끼야!”

내심 녀석의 이런 행동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주먹을 쓰지 않겠다는 민태호와의 약속을 기껏 열여덟 살 고등학생 때문에 어기는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퍽! 퍽! 퍽!

“치우야, 그만해!”

끓어올랐던 녀석의 혈기는 식어 버린 채 바닥에 축 늘어졌고, 차가움을 유지하려 하던 나는 어느새 끓어올라 있었다.

“하아… 하아…….”

몸은 뇌가 지배한다.

50㎏도 안 나가는 내가 90㎏가 넘는 명선호를 때려 눕혀 버렸다.

“그만해, 치우야. 저놈 기절했어.”

내 흥분을 멈추게 한 건 꼬봉 한치우에 유일한 친구였던 성훈이였다.

넉넉한 집안에 공부도 잘하는 주제에 착하기까지 하던 녀석.

그리고 과거 나에게 날아오던 명선호의 주먹을 막아준 유일한 녀석.

상황이 바뀌어 지금은 명선호를 향한 내 주먹을 막아 새웠지만, 나를 위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상상 속에도 없던 상황이 현실로 일어난 탓에 교실 안 모두는 입을 벌린 채 주먹을 쥐고 있는 나와 축 늘어져 있는 명선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내 한마디는 모두의 눈빛에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고마워, 성훈아.”

“응?”

“죽일 것 같았거든.”

또다시 말이야.

딩동∼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



수업 종이 울렸지만, 당연히 나는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사실 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단순히 학습을 위해서라면 나에게는 시간 낭비일 뿐이니까.

“왜 그랬니?”

“왜 그랬다뇨?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학생주임.

팔에 걸린 완장을 보니, 그간 잊고 지내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 선호가 자꾸… 괴롭힙니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저도 그러고 싶은데…….’

‘바쁘니까 나중에 올래? 선생님이 선호 불러서 얘기해 볼게.’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완장을 달고 있는 학생주임이었다.

물론 상황을 완벽히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 둘이 악수하고 이제 사이좋게 지내.’

그저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길 바랐다.

하지만 학생주임은 완장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뿐이었다.



“미안했다, 치우야.”



당시 학생주임의 말에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명선호.

명선호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고, 학생주임은 그 모습을 보며 귀찮은 일을 해결한 듯 또다시 우리를 방치했다.

“그래. 선호가 너 괴롭히던 거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야.”

“추억? 지금 추억이라 그랬습니까?”

“그래, 추억.”

뜨득!

학생주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고 있던 교복 셔츠를 찢어 버렸다.

“이것도 추억입니까?”

“뭐하는 짓이야!”

갈비뼈가 훤히 보일 정도로 마른 몸.

곳곳에 보이는 피멍 자국.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몸에는 피멍 자국이 사라진 날이 없었다.

“제 추억 속에는 온통 이런 상처와 당신 같은 무능한 스승뿐이었습니다.”

“…다 싸우면서 크는 거다.”

“싸우면서 크는 건 조폭 아니면 양아치밖에 없는 겁니다. 조폭은 칼빵이 나면 자랑이라도 하지, 그저 힘없는 학생은 이 상처가 가슴에 남아 평생을 괴로운 기억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만약 당신이 조금만 더 지혜로운 스승이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안했겠죠.”

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쪽이 더 가까울 것이다.

내 말에 지금껏 자신이 해 오던 행동의 죄책감이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심지어 교복 셔츠를 찢은 채 선생에게 대들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그 어떤 교사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들은 딱 이만큼만 썩었을 뿐이다.

그간 봐온 조폭과 그들을 후원하던 스폰서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다.

그런데…….

내 삶은, 과거는, 학창 시절은, 왜 이리 뒤죽박죽 꼬였던 걸까?

“선호 병원비 내주고 합의해. 내일까지 부모님 모셔오고.”

“그래요. 그리고 저는 오늘 바로 명선호와 그 무리를 경찰에 고발할 겁니다.”

“다친 건 선호다. 너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이미지 좋은 고등학교를 꽤 떠들썩하게 할 수는 있죠. 곧 학폭위가 열릴 것이고 지금껏 제가 당하던 모든 게 낱낱이 드러날 겁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구나. 학폭위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가리는 위원회다. 지금 가해자는 너고. 가해자 신고로 학폭위가 열릴 것 같아?”

“또한!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릴 겁니다. 전교를 넘어 전국 1등인 수재 학생이 괴롭힘을 못 이겨 가해 학생을 폭행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전국 1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모든 기자가 저를 취재하려 들 겁니다. 왜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니까요. 그리고 전국 1등이라는 수식어는 든든한 제 보호막이 될 거고요.”

일진이 모범생을 패면 욕을 하지만, 모범생이 일진을 패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는다.

“보호막에 막혀 제가 명선호를 폭행한 사실은 정당해집니다. 언론은 제 앞에 서서 폭력을 방치한 학교와 학생주임인 선생님, 그리고 제 폭력의 이유를 만든 명선호를 물어뜯겠죠.”

내 말에 앞으로의 일이 상상이 되었는지, 학생주임의 눈빛이 변했다.

“치우야… 선생님 생각이 짧았다.”

찢어진 교복 셔츠를 여며 주고 두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숙이지만, 내 눈에는 가증스럽게만 보일 뿐이었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이미 늦었습니다.”

반성이 아닌 교사라는 직업과 학생주임이라는 완장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니까.

“잠깐만! 치우야!”

쾅!



***



학교를 나왔다.

아직 수업이 더 남았지만, 교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돌아가시기 전의 어머니 모습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집으로 향하는 길.

늦가을 선선한 바람.

선선한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바닷가의 비린내.

추수가 끝나 볏짚을 태우는 냄새까지도.

모든 게 선명했다.

찢어진 교복 셔츠를 여민 채 한참을 걷자 오래된 빌라 하나가 보였다.

뒤에는 산과 논이 있고 앞에는 바닷가가 보이는 집.

풍수 지리적으로 완벽한 집은 이제 곧 재개발이 된다.

좋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나와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이사를 위한 푼돈일 뿐이었다.

어렵게 구한 전셋집을 나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는 시장통에서 밤낮으로 일하셨고, 나는 도움은 못 줄망정 어머니의 주머니를 털어 명선호와 그의 무리에게 갖다 바쳤다.



― 아! 짜증나 이게 뭐냐고!



문 앞에 서자 과거의 내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분명 나를 괴롭힌 건 어머니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모든 원망은 어머니에게 향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말이다.

덜컥!

녹이 슨 철문이 열리자 따뜻함이 느껴졌다.

“엄마…….”

“치우 왔니?”

“…네.”

“아직 학교 수업 시간 아니야?”

20년 만이다.

불러본 것도, 마주한 것도.

“죄송했어요…….”

물음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눈물을 쏟으며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오늘 아침에 나간 아들의 행동이 낯설 법도 한데 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여줬다.

“뭐가∼ 우리 치우 무슨 일 있니?”

“아니요. 없어요…….”

내가 박은 가슴에 못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사신 어머니.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를 오셨다.

그리고 어느 날 면회자에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을 때 교도관은 작은 종이 하나를 전달해 주었다.

[귀휴 허가서]

과로의 영양실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항상 가득하던 내 영치금.

나는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장례식장이 떠나가도록 목 놓아 울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

어머니의 가슴에 박은 못들이 전부 내 가슴에 박혀 버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제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지금도 행복해 엄마는. 우리 치우한테 해 준 것도 없는데 공부도 잘하지, 건강하지…….”

어머니의 나이 마흔다섯 살.

열여덟로 돌아오기 전 내 나이.

어머니란 이름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하였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티셔츠와 아름다운 얼굴에 비해 너무나 거칠어진 손.

“약속할게요. 앞으로 웃으실 일만 가득할 걸.”

“호호호, 어른 다됐네, 우리 치우.”



***



어머니가 차려 주신 집밥을 배불리 먹고 낡은 데스크톱 앞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짜던 중이었다.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치우 어머님?”

“네. 맞는데 누구세요?”

“서원고 교감입니다. 치우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들어오세요.”

교감이라는 말을 듣자 방문의 목적도 이유도 전부 알 수 있었다.

“아이고∼ 우리 치우. 나 알지? 교감 선생님이야.”

“네.”

학생주임의 보고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겨우 몇 시간 만에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치우야, 밖에서 얘기할까?”

나와 교감의 대화에 어머니의 눈빛에 걱정이 생긴다.

“별일 아닙니다, 어머님. 치우가 공부를 워낙 잘하기도 하고, 우리 학교 자랑이라 입시 문제도 상담할 겸해서요.”

“아∼ 네네.”

어머니는 그제야 웃으며 나를 배웅했다.

탓!

밖으로 나오자 교감이 자신의 차 문을 열어줬다.

“고맙습니다.”

내 기억 속에서 교감은 흐릿했다.

마주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의 행동을 보면 좋은 사람 같았다.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대한 점.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잘 둘러대고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점.

“그래, 치우야.”

“네, 선생님.”

그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럴 자격이 있는 것 같다는 착각 때문에.

“얼마 주면 조용히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