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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중국전 (1)



“스트라잌 아웃! 게임 세트!”

주심이 평소보다 큰 동작으로 게임 종료를 선언했다.

“으아악!”

마지막 공을 받은 민수가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마운드로 달려 나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준혁을 포옹하며 방방 뛰었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으하하하!”

준혁도 크게 웃으며 함께 기뻐했다.

최종 투구 수 68개.

대한민국 선수들과 준혁이 결국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와와!”

“최고다! 이겼다!”

그라운드에서 수비를 보던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들었고, 덕아웃에 있던 이들도 크게 환호성을 외치며 그라운드로 뛰어나왔다.

비록 예선 리그의 한 경기일 뿐이지만,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는 특별함에 모두가 더욱 흥분하며 기뻐했다.

[대단합니다, 남준혁 선수! 이런 국제 대회에서 퍼펙트게임이 나오다니요. 정말 대단합니다!]

[네! 우리 남준혁 선수가 그걸 해냈어요! 장합니다, 장해요! 정말 고생했어요!]

[기뻐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정말 잘 싸운 우리의 어린 태극 전사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중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

“여보, 해냈어! 준혁이가 해냈어요!”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순간, 일권이 미래를 껴안으며 소리 질렀다.

미래도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오며 기쁨의 순간을 만끽했다.

“남일권! 우리 아들이 해낸 거 맞지? 그지?”

“응, 그렇다니까 여보! 우리 아들이 퍼펙트게임을 만들었어! 으하하!”

“역시 우리 아들이야!”

미래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준혁의 이름을 되뇌었다.

언제나 몸이 약해 노심초사하던 아들이지만, 이제 더 이상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순간이 무사히 감동적으로 끝나면 일권이 아니었다.

“여, 여보, 그만 울어요. 지금 자기… 점점 판다가 되고 있어.”

눈 밑으로 흘러내리는 검은 눈물에 일권이 호들갑을 떨었다.

“됐어! 지금 그게 중요해? 꼭 중요할 때 초를 치지, 남일권!”

“아냐, 아냐! 괜찮아! 그래도 예쁜 판다니까 괜찮아!”

일권은 미래가 눈을 뒤집을 때면 알아서 찌그러졌다.

오랜 학습으로 굳어진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 응원단의 다른 학부모들도 서로 축하해 주며 대한민국의 승리를 마음껏 즐겼다.

이 흥분이 쉽사리 가실 것 같지가 않은 분위기였다.



한편, 아직 승리의 감동에 빠져 있는 덕아웃으로 카메라맨과 리포터가 들어왔다.

일단 감독에게 다가간 리포터가 마이크를 내밀며 말을 꺼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아, 예. 감사합니다.”

“먼저 오늘의 승리를 축하드리고요, 어찌 보면 최대의 난적이라고 불리던 대만을 이겼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먼저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승리는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 주신 여러분과 열심히 뛰어준 우리 선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여세를 몰아 미국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늘 승리도 좋았지만, 특히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것에 많은 분들이 충격과 더불어 기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게임의 백미는 대만의 4번 타자를 잡은 장면 같은데, 감독님의 볼 배합에 대한 지시가 있었나요?”

“그 부분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뜻대로 진행이 되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아주 잘해 줘서 퍼펙트게임이 가능했고, 모두가 팀으로 하나가 됐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하고요, 오늘의 수훈 선수인 남준혁 선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마침 저기에 있네요. 남준혁 선수!”

“네?”

짐을 챙기고 있던 준혁은 갑자기 리포터가 자신을 부르자 놀란 표정으로 돌아봤다.

물론 인터뷰를 짐작한 터라 어느 정도 연기가 들어가기는 했다.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던 준혁이 순진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오늘 퍼펙트게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 누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어, 부모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몸이 약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 걱정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호호, 이제는 그 누구도 준혁 선수의 몸이 약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오늘 시합에서 제일 어려웠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리포터의 질문에 준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왕웨이펑을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장 감성적이 된 것은 마지막 타자를 잡기 직전이었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힘든 6회였는데요, 공을 계속 던지라고 허락해 주신 감독님과 제게 야구를 가르쳐 준 사부 생각에 힘을 냈었습니다.”

“아, 감독님과 사부님. 호호, 감독님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부님이라는 분도 많은 도움이 되었나 보군요.”

“아니요. 게임을 늦게 끝내면 아마 화냈을 거예요. 그래서 더 열심히 던졌습니다.”

물론 그 이유가 격투기 시청 때문이라고까지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준혁이었다.

리포터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지시를 받고 다시 준혁에게 질문했다.

“자,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앞으로의 다짐을 말씀해 주세요.”

“어… 앞으로 더욱 열심히 경기해서 꼭 미국에 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네. 지금까지 오늘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의 덕아웃에서 민지현 리포터였습니다.”

지금의 승리로 대한민국은 대회 3연승을 거두며 결승 리그에 한발 더 가까워졌다.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인 준혁은 결승전이 되어야 등판이 가능하지만, 다른 투수들도 잘 던지고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남은 예선 두 경기의 상대는 필리핀과 괌이고, 두 팀 모두 대한민국에 크게 위협이 되는 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흥분한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



“아휴~ 말도 마라, 준혁아. 네 엄마 눈이 완전 까매져서…….”

“엄마가 그랬어? 하하, 판다 엄마네?”

“그러고서는 나보고 선글라스 구해 오라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마침 차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뭐, 엄마가 그런 부분이 있긴 하지.”

쾅!

들고 온 찌개를 거칠게 식탁 위에 내려놓은 미래가 의자를 앉으며 시시덕대는 일권과 준혁에게 일침을 놓았다.

“우리 남편님이 요새 아주 살 만하신가 봐요? 에너지가 주체가 안 돼서 그렇게 덤비시는 거지요?”

“아, 아니. 여보, 그게 아니라…….”

“준혁이, 너도 공 더 던질 수 있겠네. 힘들어도 입은 살아 있다, 그거냐?”

“엄마, 왜 나한테까지 불똥이…….”

“두 부자가 아주 똑같아.”

미래가 토라진 듯 고개를 팩 돌리자, 일권과 준혁의 고개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이 은근 귀여웠지만, 미래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됐으니까, 얼른 먹자. 쫄지들 말고. 어쨌든 둘 다 오늘 고생했어요.”

“…네.”

“응. 아니, 네.”

미래의 눈치를 살핀 일권이 숟가락으로 찌개를 한 번 떠먹더니, 과장되게 소리를 질렀다.

“아, 맛있네. 역시 우리 여보 음식 솜씨가 최고라니까.”

“맞아! 우리 엄마 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닥치시고요.”

“…네.”

“준혁아, 그럼 이제 3일간은 시합 못 나가는 거니?”

“아니. 그건 아니고, 투수만 못 하는 거야. 타자로는 출전해.”

“차라리 이참에 좀 쉬었으면 좋은데.”

“아니야, 엄마. 엔트리에 들어가면 무조건 한 타석은 출전해야 해.”

“그래? 하여간 리틀 야구 규칙은 너무 어렵다니까.”

미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하자 일권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새 공부까지 한다니까. 아, 준혁아. 그런데 이번 대회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응?”

“보니까 8월이 지나면 리틀 야구는 더 이상 못 하잖아. 그럼 다시 주니어 부로 올라가는 거야?”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을 안 해 봤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 내가 알아보니까 주니어 부에서는 제대로 경험을 쌓기 힘들 것 같던데. 취미로만 한다면 모를까.”

“음…….”

대답을 못하고 고민하는 준혁의 모습에 미래가 화제를 돌렸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자. 아직 준혁이도 더 고민해야 하고, 우리도 더 고민해 봐야지.”

“응, 엄마. 알았어.”

“그래. 다가올 미래보다 우리 앞의 미래가 더 중요한 거지. 그렇죠, 미래 씨?”

“그리고 당신에게 앞으로의 미래는 없을 거다, 남일권.”

“윽!”

어쭙잖은 말장난에 바로 응징을 내리는 미래였다.

사실 미래는 준혁이 온전히 야구에만 몰두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만약 준혁이 선수를 지향한다면, 과연 잘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 것이다.

물론 준혁에게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들어줄 생각이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래, 다가올 미래는 미래의 미래에게 맡기고, 지금의 미래는 그냥 현재만 생각하자. 응? 이게 뭐야!’

괜히 웃기지도 않은 말을 들은 탓에 자신까지 머릿속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미래가 일권을 째려봤다.

“어? 나? 왜?”

영문도 모른 채 눈으로 욕을 먹는 일권이었다.



***



준혁은 잠이 들자 다시 야구장에서 깨어났다.

그라운드 위에는 아무도 없고, 덕아웃 뒤의 문이 열려 있었다.

“또 휴게실에 계신가 보네.”

언젠가부터 이공자는 텔레비전에 푹 빠져 모든 스포츠를 시청할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격투기였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도 보여 주고 싶은데, 텔레비전에서는 1분 미리보기만 나오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공자도 이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아쉽지만 목적이 분명한 텔레비전인 것 같았다.

“제자 왔구나. 오늘 고생했고. 아, 인터뷰 잘 봤다.”

“네! 감사합니다, 싸부.”

“그나저나 다음부터는 콜드 게임으로 끝내도록 해라. 괜히 애들 상대로 질질 끌지 말고.”

“저도 애인데요, 사부. 그리고 저보다 작은 애들은 별로 없어요.”

“흠, 그렇긴 하네. 얼른 자라야겠다. 그래도 마사지를 꾸준히 받다 보면 키도 클 것이다.”

“와! 진짜예요?”

“그래. 분명히 효과가 있을 거다.”

“진정 위대한 사부님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준혁의 아부성 발언에 이공자의 콧대가 올라갔다.

“자, 어쨌든 대회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수련도 빼놓을 수는 없지.”

“네. 당연하죠, 싸부.”

“그래. 일단 수비 파트부터 마스터하자.”

“넵! 싸부!”

“그러니 넌 나가서 스트레칭부터 하고 있거라. 난 보던 것 마저 보고 나가마.”

“…….”



***



4일 차 시합의 상대는 필리핀이었다.

대한민국과 전력의 큰 차이가 있는 필리핀은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최종 스코어 11대 0, 4회 콜드승이었다.

준혁은 후반에 교체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게임이 조기 종료되면서 출전을 하지 못했다.

규칙상 모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야 했으나, 콜드 게임으로 일찍 끝날 경우에는 예외였다.

다음 날, 괌과의 5차전.

어제 하루 충분히 쉰 준혁은 3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였다.

그래서 총 2타석 2타수 2안타 1홈런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물론 팀 공격도 살아나 선발 전원이 안타를 기록하며 14대 2의 큰 점수 차를 내 4회 콜드로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그렇게 5일간의 예선 리그가 모두 끝났다.

A조는 5전 전승의 대한민국이 1위, 대만이 4승 1패로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B조 1위는 4승 1패의 홍콩, 2위는 3승 2패의 중국이었다.

그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과 중국, 그리고 홍콩과 대만이 준결승전에서 서로 맞붙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박빙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과 대만이 약간 우세하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물론 나이가 어린 선수들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확실한 것은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회 6일 차, 오전 10시.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 아직 투구 제한이 풀리지 않은 준혁은 1루수 겸 3번 타자로 출전하게 되었다.

“아들, 파이팅!”

오늘도 미래와 일권은 준혁을 응원하기 위해 화성 드림 파크에 도착해 있었다.

준혁을 열렬히 응원하던 미래가 갑자기 일권을 불렀다.

“그런데 남일권 씨.”

“네?”

“자기, 회사는 잘린 거야? 오늘 평일인데 출근 안 해도 돼?”

“아, 오후에 들어간다고 했어. 지금은 외근 중이고.”

“정말 괜찮은 거지? 그러다가 잘리거나 하는 건?”

“들키지만 않으면 돼. 걱정 마.”

미래가 영 미덥지 못하다는 눈짓으로 바라보자, 일권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하여간 날 못 미더워하는 사람은 여보밖에 없다니까. 자자, 게임 시작한다.”

“…그래, 알았어. 만약 잘리기라도 하면 가만 안 놔둘 줄 알아.”

찔끔한 일권이 애써 미래의 시선을 피하며 경기장으로 눈을 돌렸다.

드디어 중국의 선공으로 준결승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