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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지역 예선 (4)



이어 타석에 들어선 세 번째 타자.

생각해 둔 작전이 무산되어서인지 이후 별다른 작전은 없어 보였다.

힘과 힘의 맞대결.

준혁은 다시 한번 투심 패스트볼로 1루수 앞 땅볼을 유도해 손쉽게 아웃을 추가했다.

현재까지의 투구 수는 여섯 개.

투구 수를 무시해도 좋다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흐름이 좋았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점은… 투구 폼을 바꾼다는 것이 몸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나 어린 나이일수록 위험하거든요.]

공수 교대가 이루어지는 동안 해설자가 준혁의 투구 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렇습니까? 하하, 저는 그냥 기발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런 걱정은 못 했네요.]

[아마 감독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선수의 생각이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각오를 다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리틀 야구의 취지는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입니다.]

[아~ 많은 뜻이 담겨 있는 말이군요. 어쨌든 대한민국의 선전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덕아웃에서는 수비를 마친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잘했다, 얘들아! 이대로 공격도 화끈하게 가 보자!”

코치들이 격려를 쏟아 내며 아이들을 반겼다.

1번 타자가 장비를 착용하며 나갈 준비를 할 때, 감독이 들어오는 준혁을 보며 말했다.

“준혁아, 정말 대단하더구나.”

“네.”

“오버와 언더, 두 가지 폼을 다 던질 수 있는 거야?”

준혁이 팀을 옮기면서 감독에게 보여 준 투구는 오버핸드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감독은 준혁이 다른 폼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네. 사이드암하고 쓰리쿼터도 가능해요.”

“흠, 좋긴 하지만 위험한데…….”

“네? 왜요?”

“부상의 위험이 좀 있을 것 같아서. 특히나 지금 너의 나이라면 몸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할 텐데, 분명 몸에 무리가 갈 거다.”

감독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다른 아이들과 차이라면 이공자의 존재 유무이지만, 그것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준혁아, 이렇게 하자. 일단 폼은 오버핸드로만 던져. 그것으로도 충분하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준혁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의 몸을 걱정해 주는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 그리고 안타 한두 개 정도는 맞아도 되니까, 마음 편하게 던져. 아까도 대응을 잘하긴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알았지?”

“네.”

“와아!”

그때, 경기장을 울리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1번 타자가 간단하게 안타를 치고 1루에 진출한 것이다.

3번 타자인 준혁이 대기 타석에 들어가려 하자, 감독이 팔 보호대를 왼팔에 감아 주며 말했다.

“이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안 다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 나가 봐.”

준혁이 배트를 들자 다른 아이들도 한마디씩 응원을 건넸다.

“오늘도 홈런이야! 알았지?”

“준혁아, 잘해! 파이팅!”

좋다.

내 몸을 걱정해 주는 감독님도 좋고, 응원해 주는 아이들도 좋고.

준혁은 새삼 기분이 좋아졌다.

단체 운동의 묘미. 그것도 보통 대회가 아닌, 세계로 갈 수 있는 대회다.

준혁은 몸 안에서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히죽 웃으며 대기 타석에 들어서서 상대 투수의 공을 바라봤다.

‘좋아. 잘 던지기는 하지만, 저 정도면 충분해.’

상대인 대만 팀의 에이스도 굉장히 빠른 공을 자랑하지만,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 팀의 공격을 바라보니…….

깡!

2번 타자가 친 공이 1루 쪽 베이스로 굴러갔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공.

1루수가 달려와 재빠르게 공을 잡았지만, 투수의 베이스 커버가 늦었다.

결국 1루수는 빠르게 타자를 터치하고 2루로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공과 비슷한 속도로 뛰어오던 타자가 순간 걸음을 멈춰 버렸다.

대만 1루수는 어쩔 수 없이 타자에게 뛰어가 터치를 한 후에 안타깝게 2루를 보았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달려간 1루 주자는 2루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다.

공을 던지지 말라고 신호하는 대만의 2루수.

자칫 병살이 될 뻔한 공이 타자의 센스 덕분에 원 아웃으로 넘어갔다.

[참 야구 잘하네요, 우리 선수들.]

[그렇습니다. 병살의 위기를 넘긴 대한민국. 이제 3번 타자 남준혁 선수가 들어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방망이가 뜨거운 선수니까 이번 타석도 기대해 보시죠.]

준혁은 적당히 긴장한 채로 타석에 들어섰다.

1사 주자 2루.

안타 하나면 선취점 획득이 가능하다.

준혁이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투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쥔 손에서 적당히 힘을 뺀 채 두 다리는 굳건하게 타석 박스에 자리를 잡았다.

심상치 않은 준혁의 포스에 대만 팀 배터리는 고의사구를 선택했다.

[아, 고의사구를 선택한 대만 팀.]

[1루가 비어 있으니, 괜찮은 선택이네요.]

[하지만 리틀 야구에서 고의사구는 한 이닝에 한 번 가능하고, 한 선수에게 한 번만 가능합니다.]

[그 말씀대로라면 이제 다음 타석부터는 남준혁 선수를 거를 수 없게 됐어요. 1회의 작은 소나기를 잠시 피해 가는 대만 팀. 이번 선택의 결과가 궁금해지네요.]

현재 원 아웃에 주자는 1, 2루, 대한민국의 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대만의 에이스는 자신감을 가지고 힘차게 공을 던졌다.

“스트라잌!”

초구를 지켜본 타자가 방망이를 한 번 휘둘러 보고는 타격 자세를 취했다.

제2구.

강하게 뿌려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날아왔다.

타자의 방망이가 움직이는 그때, 공이 갑자기 타자의 몸 쪽으로 살짝 휘어 들어왔다.

깡!

알루미늄 배트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프로 선수의 공이라면 배트가 부러질 만한 궤적이었다.

배트의 손잡이 부분을 맞아 데구루루 구르는 공.

3루수가 힘차게 달려들어 글러브로 낚아채고는 베이스 커버에 들어간 2루수에게 힘차게 던졌다.

아무리 준혁이라도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공을 잡은 2루수가 다시 1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5―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

최악의 결과였다.

결국 대만의 고의사구 선택은 최선의 수가 되어 쓰리 아웃 체인지라는 답을 뽑아냈다.

[대만 선수들 깔끔하네요. 역시 이번 대회 우승 후보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어요.]

[네. 1회부터 엄청난 공방을 보여주는 양 팀 선수들입니다. 그럼 저희는 잠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덕아웃으로 들어온 한국 팀의 4번 타자는 팔꿈치 보호대를 의자에 던지며 씩씩댔다.

“아! 이게 뭐야! 내가 완전 망쳐 버렸잖아!”

“걱정 마. 내가 복수해 줄게.”

마운드로 나가려던 준혁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에 4번 타자도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래. 저놈들, 뭔가 얄미워. 하는 것도 그렇고. 다 죽여 버려!”

응? 죽여? 무공을 쓰기는 좀 그런데…….

그나저나 꼬마치고 말이 험하다.

아니, 오히려 이게 매력인가?

준혁도 그 기세에 동참하기로 했다.

“오케이. 내가 타석에 선 놈들 다 죽여 줄 테니까, 걱정 마.”

“좋아, 나도 한 손 거들지. 가자!”

“나도!”

“나도 합체다!”

두 소년의 다짐에 다른 아이들까지 합세하며 힘차게 그라운드로 달려 나갔다.

그걸 뒤에서 듣고 있던 감독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가 리틀 야구 감독을 끊을 수 없는 이유였다.

대만의 4번 타자 역시 만만치 않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홈런을 두 개나 때려 낸 강타자다.

‘오버핸드로 생각하지 않고 던진다.’

감독의 주문을 떠올린 준혁과 민수가 사인을 주고받았다.

펑!

“스트라잌!”

민수의 요구대로 바깥쪽을 꽉 채운 패스트볼은 대만의 4번 타자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좋아! 나이스 볼!”

기세가 오른 민수가 공을 돌려주며 소리를 질렀다.

다시 2구째에도 준혁은 힘차게 와인드업을 한 후, 공을 뿌렸다.

펑!

타자의 무릎 위를 파고드는 안쪽 스트라이크.

마지막 3구는 다시 패스트볼이다.

타자의 눈높이와 비슷하게 날아간 패스트볼은 방망이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스윙! 아웃!”

헛스윙을 한 대만의 4번 타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는지 몸의 중심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상당히 분하다는 표정으로 준혁을 노려본 타자가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나이스, 남준혁!”

“좋아!”

강타자의 삼진에 덕아웃과 수비를 보던 한국 팀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격려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

패스트 볼 세 개로 5번 타자를 잡아내고…….

이어지는 6번 타자 역시 간단히 삼구 삼진 처리를 해 버렸다.

[계속 번트를 시도하던 대만 선수, 쓰리 번트까지 시도합니다!]

[공에 밀렸어요. 심판의 파울 선언. 쓰리 번트 아웃!]

[아, 놀랍습니다. 이전에 언더핸드 투구 폼을 보여 준 남준혁 선수. 이번 회는 모든 것을 배제한 채 강속구만으로 대만을 상대합니다.]

[네. 마치 마운드의 폭군 같네요.]

[대만 선수들,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이번 회, 공 아홉 개로 대만 타선을 요리한 남준혁 선수의 모습.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괜찮니, 준혁아? 힘들진 않아?”

덕아웃으로 들어온 준혁에게 털보 코치가 조심스레 상태를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에 준혁은 팔을 휘휘 돌리며 끄떡없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그럼 지금까지 열다섯 개를 던졌으니, 교체는 없을 거다. 일단 다음 팀들이 약체니, 조금만 더 던져 보자.”

“네, 코치님.”

현재 대회의 규정상 투구 수 20개까지는 연투가 가능하다.

40개까지는 하루의 휴식, 60개까지는 이틀의 휴식, 85개까지는 사흘의 휴식이 필수이며, 85개를 초과할 경우, 이번 대회에서는 더 이상 투구가 불가능했다.

얼핏 들으면 너무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장 6회 경기에 콜드 경기도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성장기인 아이들의 부상 방지였다.

그러니 주어진 한도 내에서의 운영은 코치진의 몫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뜻하게 대만의 공격을 돌려 세운 대한민국 선발팀의 2회 말 공격.

하지만 게임은 어느덧 투수전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주자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대만의 에이스도 특유의 테일링이 살아 있는 공으로 땅볼을 유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대한민국의 하위 타선으로서는 효과적으로 공략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 경기는 정말 대단한 투수전이네요. 대만 투수의 공이 꼭 리베라의 커터를 보는 것 같습니다.]

[네. 위험하다 싶을 때는 어김없이 땅볼을 이끌어 내고 있어요.]

[리틀 야구에서 투수전은 사실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경기는 정말 특별하네요.]

[자, 그럼 다시 7번 타자부터 이어지는 대만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



소파에 앉아서 준혁의 경기를 보고 있는 이공자는 쉬지 않고 연신 입을 놀려 댔다.

“잘하고 있네. 진즉에 그렇게 던졌어야지. 도대체 1회에는 무슨 짓을 한 거냐. 에잉~”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모습이지만, 이공자에게는 못마땅한 일이었다.

허리까지 굽히며 공을 던지다니.

비급을 수련할 때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꼭 땅을 굴러 몸을 피한다는 뇌려타곤의 수법을 보는 것만 같아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다행히 2회부터는 마음에 쏙 들게 던지기 시작해 3회에 들어서서도 또다시 패스트볼로만 상대를 공략하는 준혁이었다.

“그래. 어설프게 엉뚱한 짓 하지 말고, 그냥 들이받아 버려라.”

이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더니, 들고 있던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힘이 부족하면 수련을 더 하면 되는 것이고, 맞는다면 다시 때려 주면 되는 것이야. 피하지 말고 부딪혀라. 꼬맹이 주제에 겁먹지 말고.”

7번 타자에 이어 8번, 9번 타자도 삼진으로 잡아 버리는 준혁의 모습에 이공자가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다.

“좋구나. 빨리 끝나면 격투기 경기도 볼 수 있겠다. 4회면 끝나던가? 애들 경기라 짧아서 좋군.”

다른 나라 경기는 일체 보지 않고 오직 대한민국의 콜드 게임승만 봐 온 이공자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오늘 경기는 6회까지 갈 것 같았다.



***



피를 말리는 투수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게임은 어느덧 5회로 접어들었다.

4회의 공격에서도 준혁은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고의사구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공을 빼며 상대해 주지 않는 대만 팀 배터리의 모습에 준혁도, 한국의 선수단도, 한국의 응원단도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상대 투수도 준혁에 버금가는 괴물 투수라는 것이다.

5회 초, 대만의 공격은 4번 타자부터 이어졌다.

오늘 두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방망이를 크게 휘두른 후 준혁을 노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대만의 응원석에서도 타자의 이름이 크게 터져 나왔다.

“왕웨이펑! 왕웨이펑!”

“요란스럽네.”

준혁이 귓가에 들려오는 응원 소리를 의식하며 중얼거렸다.

그전까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 소리들이 귀에 거슬린다는 것은 준혁의 체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4회까지 던진 47구는 준혁이 실전에서 제일 많이 던진 투구 수였다.

물론 연습할 때 그보다 많이 던진 적은 있지만, 실제 시합의 피로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모자 밑으로 흘러나온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민수와 사인을 주고받을 때에도 왕웨이펑은 오직 준혁만을 노려보며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이번 승부가 오늘 시합의 분수령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힘을 내야 한다.

“좋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