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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뭐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매복입니다! 숲속에서 화살이 날아왔습니다!”

“뭐라? 고작 100명 남짓한 수로 매복이라고? 이것들이 우리를 얕봐도 한참 얕보았구나! 화살이 날아온 곳을 추적하라! 포위해 말살하는 거다!”

“예!”

게런의 명령에 병사들은 숲을 헤치고 들어가 매복병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적을 발견했다는 피리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단장님, 이상합니다. 바닥에 장난감 무기만 널브러져 있을 뿐, 아무리 찾아봐도 매복병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거냐? 그럼 추적자를 보내면 될 일 아닌가.”

“그게 이상합니다. 추적에 능한 병사를 시켜 흔적을 찾아보고 있지만, 발자국조차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언뜻 봐도 족히 수십 명이 쏜 듯한데 발자국도 찾을 수 없다니! 그럼 하늘로 날아가기라도 했다는 거냐!”

“그, 그건 저도 잘…….”

“으으으, 됐다! 무기를 버리고 갔으니 회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차라리 잘됐다. 기괴한 활을 역으로 이용해 주마.”

“저기, 그게…….”

“또 뭐냐?”

“그 활을 저희가 이용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습니다.”

“뭐야?”

“회수하며 제가 잠깐 살펴봤는데 대부분이 망가져 있고, 그나마 멀쩡한 것도 한두 번 정도 사용하면 박살 날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일회성으로 만들어진 조잡한 활이었던 것이라 사료됩니다.”

“허? 그건 마치 이날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믿기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어, 그 무슨 해괴한. 농민들 중에 메스트 같은 군사라도 있다는 말이…….”

게런은 어이없다는 듯 말하던 도중, 한 인물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항복해서 평생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나, 반항해서 효수되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는 쪽에 운명을 걸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항복하라는 말에 대차게 반박해 오던 청년.

‘그때 나를 농락한 그놈이 설마……?’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던 게런은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그깟 어린놈이 뭘 할 수 있겠느냐면서.

“역시 지나친 생각이겠지. 들어라! 놈들은 적은 수로 매복까지 운용했으니, 이젠 안심해도 될 터! 더 이상 매복은 불가능할 테니, 무시하고 전진한다!”

게런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이번에도 틀리고 말았다.

“으악!”

“또 매복이다!”

“제길! 끝이 없잖아! 얼마나 많은 병사를 매복시켜 둔 거야!”

한 시간 간격으로 숲속에서 쏘아지는 화살 세례에 병사들은 기가 질렸고, 세 번째에 이르자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스트야, 고스트라고!”

“여긴 저주받은 산인 게 틀림없어!”

“이대로 있다간 다 죽을 거야!”

사기가 떨어져 한시라도 빨리 하산하길 바라는 자들이 늘어만 갔다. 기사들이 어르고 달랬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도 매복병을 찾지 못했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대체 뭐냐! 고작 100명이다! 그 적은 수로 어찌 곳곳에 매복을 준비할 수 있느냔 말이다! 심지어 흔적도 찾을 수 없다니. 정말 고스트라도 된단 말인가!”

게런조차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요소마다 매복병을 배치해 공격하는 행위는 100명 남짓한 수로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한 무리가 매복 장소를 매번 옮겨가며 재차 공격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발자국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한데 단 한 번도 흔적조차 못 봤다고 하니, 게런으로선 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단장님, 찾았습니다! 놈들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수색 중인 기사 한 명이 급히 소리쳤다. 그 외침에 혼란으로 일그러진 게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그렇지! 고스트일 리가 있겠느냐! 어디냐! 어디로 도망갔더냐!”

“발자국은 전부 언덕을 넘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숫자를 헤아려 보니,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입니다!”

“언덕을 넘어 북쪽이라고? 화전민 마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 아닌가. 그럼 우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빙 돌아서 가겠다는 생각인가? 하, 하하하! 과연 머리가 텅 빈 놈들이 생각할 법한 수로구나! 전군을 매복으로 사용했으니 필시 마을은 비어 있을 터! 지금이 호기다! 무리를 해서라도 진군을 서둘러라! 먼저 마을을 점령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서둘러라! 목표가 코앞이다!”

게런의 명령에 기사들은 병사들을 보채며 진군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곧 장애물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단장님, 통나무로 길이 막혀 있습니다!”

“뭐? 통나무라고? 이것들이 우리가 남긴 도끼를 가지고 비겁한 수를. 길을 뚫는 데 얼마나 걸리겠느냐?”

“빼곡히 쌓아둔 터라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쯧, 단단히 틀어막은 모양이로군. 이런 곳에서 시간을 끌게 할 속셈인가? 아아, 그렇구나. 알았다! 이는 매복한 놈들을 추스르기 위한 시간벌이다! 그럼 그렇지. 필시 무리하게 매복을 운용한 게야. 그렇다면 굳이 이 길을 택할 이유가 없다! 우회하라!”

“하지만 단장님, 여기서 우회하는 길은 험준한 협곡밖에 없습니다. 혹여나 그곳에 매복이 있을 경우엔…….”

“흥! 우리가 그리로 갈 줄 어찌 알고 매복하겠느냐. 혹여 매복해 있다 한들 조금 전 습격에 대부분 인원을 운용했을 테니, 많아봐야 열 명 남짓일 거다. 그만한 수라면 가려운 정도지. 무시하고 가도 상관없지 않겠느냐.”

“과연, 그렇군요. 역시 단장님이십니다! 전군! 방향을 돌려라! 빠르게 우회한다!”

부관이 크게 소리치자, 병사들은 일제히 방향을 돌렸다.

그렇게 게런이 이끄는 부대는 험준한 협곡으로 향했다.



***



[세란아, 정말 이리로 올까?]

[와. 분명히.]

어찌 그리도 확신하는지, 나는 이리도 조마조마한데.

나는 몸을 숙인 채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감 넘치는 동생의 호언장담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 나와 글로리아뿐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사람 전부가 협곡 위에 매복해 있는 상태였다. 그 수는 총 300명. 말 그대로 우리의 모든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어째서 우리가 이곳에 매복해 있느냐면, 세란이의 허허실실(虛虛實實)이란 책략 때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허허실실’이란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상대방이 헷갈리도록 하여 거짓으로 속인다는 뜻이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는 패잔병을 이끌고 허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제갈량이 지시한 매복으로 여러 번 낭패를 겪어. 결국 백만의 군사 중 살아남은 병사가 채 백 명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는데, 허창으로 이어진 마지막 두 갈래 길에서 고민에 빠지게 돼. 한쪽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다른 곳은 그냥 적막할 뿐이었어. 조조는 어떤 곳을 택할지 망설이다가 병법에 ‘실즉허지 허즉실지(實卽虛之 虛卽實之)’란 말을 떠올리며 일부러 연기 나는 곳으로 가게 돼. 그런 후에 매복하고 있던 관우를 만나게 되지. 사실 제갈량은 관우에게 이렇게 말했어.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 조조는 병법을 아는 인물이라 연기를 피우면 필시 우리가 계책을 펼친다고 생각하여 그곳으로 올 것이오’라고. 우리도 이 허허실실의 뜻을 받들어 총대장의 안일한 판단을 역이용해 협곡으로 끌어들일 거야. 그것이 우리의 작전이야.”



처음엔 그 얘기를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과연 허허실실의 전법을 매복 쇠뇌에 덧씌우는 걸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쇠뇌는 활과 달리 미리 화살을 장전해 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방아쇠에 줄을 연결한 뒤, 숲속에 매복한 한 명이 잡아당겨 쇠뇌를 발사시켰다.

그런 까닭에 실제 기습에 사용된 것은 전부 합쳐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지만, 상대는 매복병의 수를 파악할 수 없게 할 만큼 절묘한 계책이었다.

거기서 내가 왜 매복병의 수를 속이려는 건지 묻자, 세란이는 ‘마을이 텅 비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짧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어제 하루 동안 일부러 마을로 빙 돌아가는 발자국을 찍고, 대놓고 시간을 끌기 위한 계책임을 광고라도 하듯 통나무까지 잘라 길을 막아놓았다.

이 모든 일이 오직 한 가지 목적, 허허실실로 적을 속여 협곡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온다니까 그러네. 그래, 만에 하나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별수 없지, 마을로 돌아가서 수성하는 수밖에. 그래도 우리가 적보다는 더 빠르거든. 그러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아.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번 싸움이 좀 더 장기화된다는 것과 노예를 지킬 수 없다는 것 정도려나.]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도 전혀 개의치 않는 저 자신감을 보라. 아마도 마을로 돌아가 수성할 때의 작전도 다 생각해 놓았다는 거겠지. 하여간,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니까.

‘그런데 너는 아직도 저들이 노예를 데리고 왔을 거라고 확신하네?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분명 데리고 왔을 거야. 그 영지는 노예가 많으니까. 사용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넘치는데, 브렌터스 남작이 그 정도도 생각 못할 바보는 아냐. 으음, 아니…겠지?]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쩌라는 건지…….

“왔군.”

그때,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던 글로리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숲을 헤치고 웰던이 나타났다.

“군사님!”

“웰던, 무사했군요!”

“어휴, 추적해 오는 게 얼마나 빠른지, 하마터면 잡히는 줄 알았지 뭐유.”

겉보기엔 전혀 지친 티가 나지 않아 보이지만, 위험했노라며 호들갑을 떠는 웰던.

그는 쇠뇌 매복병으로 임명된 다섯 중 한 명이었는데, 산길을 돌아 제일 먼저 이곳에 도착한 모습만 보더라도 엄살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도 남겨놓은 쇠뇌들 덕에 한숨 돌렸수. 적 병사들이 부르코가 만든 조잡한 쇠뇌를 보물처럼 안고 가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어? 웰던 형씨, 그거 발사됩디까?”

“발사는 무슨. 조금만 줄을 당기니까 대번에 박살 나더만. 아무리 대충 만들어도 그렇지, 한 발을 못 견뎌?”

“하하하, 그럴 줄 알았구먼요. 그러게 손재주가 없다고 했는데…….”

부르코라 불린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움을 감췄다.

이번 매복에 사용된 쇠뇌는 요 며칠간 모두가 합심해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전문가가 아니기에 모양도 엉성하고 불량품이 대부분이지만, 어차피 일회성으로 만든 것이기에 딱 한 번 쓰고 버리기엔 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적들 어떻던가요?”

“아아, 군사님 말대로였수. 노예들을 한 무더기 끌고 왔더군. 그리고 통나무로 길이 막힌 걸 보고 우회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수. 조만간 협곡에 나타날 거유.”

그의 답변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누구에게? 당연히 세란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