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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정적 속에 들리는 거라곤 오직 작은 숨소리뿐. 그 흔한 새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콜록콜록!”

누군가가 긴장감을 버티지 못하고 기침 소리를 냈다. 그에 모두가 질책하는 눈초리로 돌아봤지만, 딱히 뭐라 성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괜한 소란을 피웠다간 모든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전부 나왔나요?”

“그렇다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탈출했네.”

혹여나 고블린들이 들을세라 숨죽여 묻자, 촌장도 마찬가지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진흙은요?”

“지시한 대로 전부 발랐네. 그런데 진흙은 대체 왜 바른 건가?”

“말했잖아요, 고블린은 냄새를 잘 맡는다고요. 오물 냄새 때문에 괜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사람 냄새를 맡게 되면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니 만약을 위한 거예요.”

덕분에 나 역시 전신에 진흙 팩을 한 상태였다. 촌장은 ‘역시 군사님!’이란 표정으로 나를 맹신하고 있어 절로 낯이 뜨거웠다.

“크흠, 그럼 상의한 대로 이제 슬슬 시작하죠.”

“하지만… 정말 괜찮겠나? 아직도 마을 안에는 검사님이…….”

“그녀라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벌써 고블린들이 반 이상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 알았네. 자자, 서두르지.”

촌장의 명령에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세란이가 설명해 준 작전에 대해 차근차근 곱씹어보았다.



“마을 입구에서 전투가 시작되면 혼란을 틈타 미리 만들어놓은 비밀 통로로 노인과 어린아이부터 대피시켜. 그런 뒤, 싸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수성전을 펼치는 척하는 거야.”

“척? 마을 안에서 막는 게 아냐? 너, 아깐 병법의 기본은 적에게는 불리하고, 아군에겐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는 것이라며? 그럼 역시 유리한 울타리 안에서 싸우는 게…….”

“나는 울타리 안에서 싸우는 게 유리한 지형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걸?”

“그, 그랬던가.”

“잘 들어, 오빠. 울타리 안에서 수성하는 건 한계가 있어. 아무리 잘 막아도 희생이 생기고 말 거야. 그렇다면 모두가 생존할 수 있을 만한 유리한 지형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

“유리한 지형을… 만든다?”

“손자병법 허실편에 이런 말이 있어. 적에게 유리한 곳을 불리하게 만들고, 아군에게 불리한 곳을 유리하게 만들어라! 마을에 둘러쳐진 울타리는 적군을 막는 방패로도 쓰이지만, 반대로 우리를 가두는 벽이기도 해. 이 불리한 점을 역으로 고블린에게 이용하는 거야.”

“손자… 뭐? 허실? 미안한데,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아유 참, 간단히 말해 고블린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여 가둬 버리는 작전이야.”

“뭐? 이 울타리를 이용해 놈들을 가두겠다고?”

“응. 처음 수성하는 척 방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고블린들은 사람들이 모두 마을 안에 있다고 착각할 거야. 그때, 글로리아를 이용해 고블린들의 시선을 돌리고 먼저 대피한 사람들을 따라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거야.”

“잠깐, 그럼 글로리아는 어쩌고!”

“그녀는 신경 안 써도 돼. 혼자서도 알아서 잘 빠져나갈 사람이니까. 애초에 혼자 고블린을 전부 상대한 사람인데 뭘 걱정하고 있어? 아무튼, 그다음이 중요해. 그렇게 전부 빠져나가면 바로…….”



“군사님, 준비됐수. 시작할깝쇼?”

웰던이 부싯돌을 든 채 바라보기에 난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직 그녀의 신호가 없어요. 조금만 기다…….”

삐이이이이이익!

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밤하늘 가득 울리는 피리 소리.

글로리아의 신호가 틀림없었다. 마을 사람들도 전부 들은 건지,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허리를 펴 몸을 세우며 번쩍 손을 들었다.

“붙이세요!”

내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마을 사람들은 울타리 아래 깔아놓은 짚더미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울타리는 물론이고, 짚에도 미리 송진을 처덕처덕 발라놓아서인지 순식간에 메케한 연기와 함께 불이 번져 나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들 불붙은 나무때기나 죽창을 마을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마을의 집은 대부분이 나무와 짚으로 만들어진데다 송진도 넉넉히 발라두었기에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란이가 떠올린 ‘가두리 화공 작전’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밤하늘이 새빨갛게 보일 정도로 불이 번지자, 노릿한 고기 냄새와 함께 고블린들의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정말 세란이의 작전대로 완벽하게 성공하고 말았다.

“저, 정말 성공이야! 군사님의 작전대로야!”

“빌어먹을 몬스터들! 다 타 죽어라!”

“더 태워 버려!”

“이거나 받아라!”

사기가 올라 노인, 아이 가릴 것 없이 불붙은 짚이나 나무때기를 집어 던지니, 마을은 더욱 기세 좋게 타올랐다. 시뻘건 불길이 얼마나 강한지, 나무 울타리 너머로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진정하세요! 슬슬 뜨거움을 버티지 못한 고블린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려 할 겁니다! 촌장님, 입구는 잘 봉쇄했나요?”

“확실히 막아두었네!”

“그녀는요?”

“아, 아직 검사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네!”

그 말에 난 눈썹이 찌푸려졌다.

아직도? 그럼 설마 저 시뻘건 불길 속에 있다는 거야?

동생은 괜찮을 거라 말했지만,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온몸에 불이 붙어 괴로워하는 고블린들이 울타리를 넘으려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이미 예상한 바라 떨어져 내려오는 고블린을 죽창으로 찔러 죽였지만, 수가 점점 많아지자 그것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상대도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터라 반대로 수가 적은 우리 쪽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있음에도 차츰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은 어때?]

‘고블린들이 불타는 울타리를 타 넘기 시작했어. 제길, 지독한 놈들!’

[오빠, 그쯤이면 됐어. 이제 입구를 열어줘!]

‘뭐? 기껏 막았는데 다시 열라고?’

[위사필궐(圍師必闕)!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한쪽을 비워 적이 도망갈 틈을 마련해 주라는 말이 있어! 완전히 포위해 봐야 상대에겐 배수의 진만 될 뿐이야!]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동생을 믿기에 그대로 명령했다.

당연하겠지만 모두가 의문스런 얼굴이 되었다. 기껏 적을 포위해 몰살시킬 수 있는 찬스인데 스스로 입구를 열어줘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준다고? 누가 그런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맹신하게 된 내 명령인지라 순순히 입구를 열어주었다.

살길이 생기자 역시나 고블린들은 불지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미친 듯이 입구로 들이닥쳤다. 반쯤 불타 피부가 거뭇거뭇한 녀석도 있고, 온몸에 수포가 일어나 불어 터진 녀석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입구 옆에 서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발견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건지 본체만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기 바빴다.

“우리를… 공격하지 않아?”

울타리를 넘어온 녀석들은 죽기 살기로 마을 사람들을 공격했다. 팔이 잘리거나 배가 뚫려도 이를 딱딱거리며 물어뜯기 위해 바동거렸다. 그런 녀석들이 살길을 터주자 180도 돌변해 순한 양처럼 도망만 치다니. 어찌 이 상황이 이해되겠는가.

‘다들 그냥 도망가고 있어. 너… 이런 것까지 전부 예상했던 거야?’

[당연한 결과야. 이미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테니까. 물론 계속 입구를 봉쇄했다면 전멸시키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테지만, 우리의 목적은 생존하는 것이잖아?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고블린을 몰살시켜야 할 이유도 없고. 사실 시간만 좀 있었다면 고블린이 도망가는 길목에 미리 함정을 파두거나 전의를 상실한 녀석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전술도 해볼 법했겠지만… 뭐, 지금은 일단 쫓아내는 걸로 만족하자.]

난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얘는 대체 어디까지 전략을 생각해 둔 거란 말인가. 정말 내 동생은 천재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구, 군사님, 이, 이건 대체 무슨…….”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지, 다들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어리둥절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승리? 그래, 그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겼어요.”

“…네?”

“저희가 이겼다고요.”

“저희가… 진짜, 이긴 겁니까? 저, 정말 처, 천 마리의 고블린들을 상대로 하, 한 명도 죽지 않고 이, 이겼단 말씀입니까?”

듣고 보니 나도 새삼 놀라웠다. 전략전술만으로 단 한 명의 인명 손실도 없이 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를 무찌를 줄이야. 정말이지, 세란이는 대단하다.

그제야 피로가 몰려오며 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들고 있던 죽창도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후, 덥다. 긴장 때문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마음 같아선 시원하게 샤워라도 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응?”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멀뚱히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내 말이 믿기지 않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싸움은… 끝이라니까요. 뭐 해요? 무기는 이제 필요 없어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조금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게 효력이 있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하나둘 들고 있던 죽창을 떨어트렸다.

“이, 이겼어. 정말 이겼…어!”

“이, 이겼다! 이겼어!”

“으아아아아아아!”

“승리다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제야 마을 사람들도 나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대부분 온몸이 진흙투성이에다 연기 때문에 얼굴까지 거뭇거뭇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은 서로 엉망인 얼굴을 보고 웃을 정도의 여유를 찾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을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찬 상태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타 버린 집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건 집이 아니라 목숨이니까.

나 역시 맥이 탁 풀려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이런 일은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다. 멀리서 지휘한 것만으로도 이럴진대, 정면에서 그 많은 고블린을 홀로 맞서 싸운 그녀는 대체 어떤 심장을 가지고 있… 잠깐!

“촌장님, 그녀는요?”

“그, 그러고 보니 아직 나오지 않았네!”

졸린 듯 게슴츠레하던 내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