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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웃차, 이게 전부요.”
웰던이 오물과 송진이 담긴 나무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척 보아도 꽤 묵은 건지 손에 닿기만 해도 썩을 듯한 냄새를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것들을 울타리에 바르는 것만으로 고블린을 무찌를 수 있겠수?”
일단 시키는 대로 따르긴 하지만, 그래도 영 미심쩍은지 웰던은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딱 한 명, 글로리아만이 영 관심 없다는 듯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잘 들으세요. 고블린들은 보통 사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에겐 그저 오물에 불과하지만, 그놈들에겐 고약한 독으로 느껴지겠죠. 그러니 이것을 나무 울타리에 바르는 거예요.”
“오오오, 그럼 고블린들이 울타리로 다가오지 못하겠군요!”
“살았다! 살 수 있어!”
마을 주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난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방을 전부 막아버리는 건 자살행위와 다를 게 없어요. 보세요, 저들은 산에서 생활하는 데 무척 익숙한 몬스터입니다. 며칠은 먹지 않아도 상관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고립된 채 점점 체력을 소모하겠죠. 그런 상황에서 울타리에 바른 오물이 말라 냄새가 사라지면 어찌 되겠어요?”
“허어, 오히려 우리가 체력이 떨어졌을 때 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겠군.”
“그럴 수가…….”
“이보게, 그럼 아무 소용도 없는 게 아닌가!”
내 이야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지금껏 쭉 뒷짐 진 채 듣고만 있던 촌장이 기어코 끼어들었다.
나는 그런 반응들을 이미 예상하였기에 씩 웃어 보이며 의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서 울타리에 전부 바르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단 한 곳, 저 입구 부근엔 오물을 바르지 말아야 해요.”
난 손가락으로 마을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모두들 의문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긴, 나도 처음 세란이에게서 들었을 땐 잘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런 반응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무 울타리에 오물을 바르는 건 다른 곳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입구에 오물이 없다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놈들은 입구로만 들이닥치겠죠. 그렇게 하면…….”
“그렇군. 그럼 방어할 곳이 입구로 한정되니, 그만큼 전력을 집중할 수 있다는 건가.”
지금껏 나무에 기댄 채 자는 것처럼 보인 글로리아가 끼어들었다.
놀라서 새삼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세란이가 전부 설명해 줄 때까지 잘 몰랐는데 바로 의도를 알아내다니, 그녀도 제법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재미있는 작전이구나. 하지만 정면으로 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텐데, 검도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네. 무리인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내가 똑바로 그녀를 가리키자 글로리아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었다.
“나의 무엇을 믿고 그리 자신하지?”
“전 당신이 혼자서 고블린을 전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아니까요.”
애초에 책에서도 글로리아는 혼자서 고블린 천 마리를 전부 격파했다고 동생은 말했다. 무슨 방법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그 많은 고블린들에게 포위당해도 전부 무찔러 버린다는 뜻. 그런 그녀를 믿지 못하면 누굴 믿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다르게 해석한 건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달콤한 말로 나를 꾈 속셈인가? 흥, 이미 선언한 이상 나는 일단 너를 따를 것이다. 그러니 괜히 비위 맞추는 말은 집어치워라.”
“그런 게 아닌데…….”
“됐고, 그럼 송진은 무엇 때문에 준비했지?”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화제를 휙 돌려 버리기에 어쩔 수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끈적거리는 송진을 바르면 울타리를 타고 넘어오는 데 방해가 될 겁니다…라는 건 사실 부수적인 이유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쯤에서 세란이의 작전을 전부 설명해야 함을 느낀 나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었다.
“잘 보세요.”
난 나뭇가지를 가지고 바닥에 큰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작은 원을 또 하나 그렸다. 그러자 모두들 내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 큰 원이 울타리라고 칩시다. 그럼 그 안에 있는 작은 원은 뭘까요?”
“그야 당연히 우리들이지 뭐겠수.”
웰던이 성급하게 대답하기에 나는 그를 보며 씩 웃어주었다.
“아닙니다. 이것은 고블린들입니다.”
“엉?”
“어허?”
“그게 무슨…….”
웰던은 물론이고, 촌장과 글로리아까지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해합니다. 이해하고말고요. 저도 처음 그 계획을 들었을 땐 똑같았으니까요.
“잘 들으세요. 우리는 농성전을 벌이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행하는 모든 일은 포위전을 위한 포석입니다.”
나는 동생이 일러준 작전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며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더니, 점차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내 설명이 전부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를 돌아보더니, 한꺼번에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런 방법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야…….”
당연히 처음 들어본 이야기겠지. 동생이 즉석으로 만든 작전이니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글로리아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호쾌하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하! 그런가! 그렇구나! 과연, 재미있어! 하하하하하! 짐승이나 도적인 줄 알았는데, 전부 아니었구나! 좋다, 그런 기발한 작전을 따르지 않으면 검사로서 명예를 저버리는 일. 명령을 내려라, 군사. 나는 너의 검이 되겠다.”
글로리아가 나를 향해 군사라 지칭했다. 그 호탕한 모습에 나는 놀라서 입만 뻥긋거렸다.
“저기, 군사라뇨? 그 무슨…….”
“오오오옷! 군사! 그렇군요! 군사!”
“한 번 해봅시다, 군사님!”
“저희도 군사님만 믿겠소!”
나처럼 멍하니 글로리아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크게 환호하며 나를 군사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난감한 상황에 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군사는 내가 아니라 세란이인데…….
그래도 웃음이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내 동생이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내가 슬쩍 ‘다들 너보고 군사님이래’라고 말하자, 동생은 쑥스러운 건지 당황한 건지 어버버 하는 반응만 들려왔다.
“좋습니다! 벌써 달이 중천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죠! 우선 진흙도 필요해요! 미리 빠져나갈 탈출구도! 서두르셔야 해요!”
“오오, 그럼 난 진흙을 준비하겠수!”
“그전에 오물부터 울타리에 문지르자고!”
“모두 군사님의 말을 따르자! 시간이 없다! 오물을 옮겨!”
갑자기 다들 기백이 넘치는 얼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사기라는 걸까?
[이제 알 것 같아.]
‘응? 뭐가?’
[오빠는 유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유비? 그,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말하는 거야?’
[응, 그 유비. 유비 현덕.]
‘갑자기 그 위인은 왜?’
[솔직히 나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오빠는 보란 듯이 글로리아를 설득했잖아. 게다가 고작 반나절도 안 돼서 마을 사람들을 전부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그게 무엇 때문인가 쭉 생각하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어.]
‘에이, 그게 뭐야? 그래서 유비?’
[응, 오빠는 유비처럼 덕이 있는 사람이야.]
‘덕?’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말인지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나는 제갈량이 되는 수밖에 없겠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세란이는 저 혼자 납득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번엔 제갈량이냐? 그 위인은 또 왜?’
[사자성어에 수어지교(水魚之交)란 말이 있어.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관계를 나타낸 말이야. 삼국시대의 유비와 제갈량의 사이를 비유해 비롯된 말이지. 그 말처럼 나는 앞으로 오빠의 물이 될게. 그러니 마음껏 헤엄쳐 봐.]
‘헤엄쳐 보라니… 그럼 내가 물고기야?’
[응, 물고기. 가르벤 대륙을 마음껏 헤엄치는 물고기.]
세란이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목소리에 적잖은 흥분이 담겨 있었다.
뭔가 그런 모습이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것 같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날이 밝자, 드디어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멀리서부터 고약한 냄새를 맡은 건지,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래도 놈들은 올 것이다. 동생에게 들은 바로 그들은 집요한 면을 가지고 있다니까.
키에에에에에엑!
들창코에 드문드문 머리털이 나 있는 고블린. 신장은 성인 남성의 반 정도나 될까. 이빨도 누렇게 변색되어 보는 것만으로도 악취가 날 것 같은 외견이었다.
동생이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고블린은 작은 키임에도 그 점프력은 무척 뛰어나 무려 1미터나 뛰어오른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고블린을 상대할 땐 위아래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 말해주었다.
그럼 울타리도 훌쩍 뛰어넘어 오는 것 아닐까 걱정했지만, 독한 냄새를 극적으로 싫어해 다가오지도 못할뿐더러 2미터 정도의 나무 울타리라면 괜찮을 거라고 세란이가 말해주었다.
크릉크릉!
콧방울을 억지로 늘려놓은 것처럼 괴상망측한 들창코를 벌름거리는 녀석들. 그러다 악취에 기겁하며 뒤로 몸을 빼는 모습이 횃불 사이로 보였다. 역시나 오물 냄새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았다.
놈들은 마을 주위를 서성이다 비로소 오물이 묻지 않은 입구를 발견하고는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섣불리 다가오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야생적인 감으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겠지.
하지만 종국에는 별수 없을 것이다. 들어올 곳은 어찌 되었든 이곳밖에 없으니까.
가장 최악인 경우는 놈들이 너무 신중해서 냄새가 사라졌을 때까지 들어오지 않을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오물이 마를 때쯤 다시 바르고 기다리는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질 터였다.
어쩌면 녀석들이 먼저 포기하느냐, 오물이 먼저 떨어지느냐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다음 대책까지 마련하기 위함인지, 고블린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전해 달라는 동생의 말에 난 지금 고블린들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로선 그냥 놈들이 포기하고 물러나기만을 바랐다. 싸우는 건 무섭고,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에.
“오, 오, 온다!”
“옵니다, 군사님!”
젠장, 이번에도 내 바람은 역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웃차, 이게 전부요.”
웰던이 오물과 송진이 담긴 나무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척 보아도 꽤 묵은 건지 손에 닿기만 해도 썩을 듯한 냄새를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것들을 울타리에 바르는 것만으로 고블린을 무찌를 수 있겠수?”
일단 시키는 대로 따르긴 하지만, 그래도 영 미심쩍은지 웰던은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딱 한 명, 글로리아만이 영 관심 없다는 듯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잘 들으세요. 고블린들은 보통 사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에겐 그저 오물에 불과하지만, 그놈들에겐 고약한 독으로 느껴지겠죠. 그러니 이것을 나무 울타리에 바르는 거예요.”
“오오오, 그럼 고블린들이 울타리로 다가오지 못하겠군요!”
“살았다! 살 수 있어!”
마을 주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난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방을 전부 막아버리는 건 자살행위와 다를 게 없어요. 보세요, 저들은 산에서 생활하는 데 무척 익숙한 몬스터입니다. 며칠은 먹지 않아도 상관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고립된 채 점점 체력을 소모하겠죠. 그런 상황에서 울타리에 바른 오물이 말라 냄새가 사라지면 어찌 되겠어요?”
“허어, 오히려 우리가 체력이 떨어졌을 때 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겠군.”
“그럴 수가…….”
“이보게, 그럼 아무 소용도 없는 게 아닌가!”
내 이야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지금껏 쭉 뒷짐 진 채 듣고만 있던 촌장이 기어코 끼어들었다.
나는 그런 반응들을 이미 예상하였기에 씩 웃어 보이며 의연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서 울타리에 전부 바르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단 한 곳, 저 입구 부근엔 오물을 바르지 말아야 해요.”
난 손가락으로 마을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모두들 의문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긴, 나도 처음 세란이에게서 들었을 땐 잘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런 반응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무 울타리에 오물을 바르는 건 다른 곳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입구에 오물이 없다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놈들은 입구로만 들이닥치겠죠. 그렇게 하면…….”
“그렇군. 그럼 방어할 곳이 입구로 한정되니, 그만큼 전력을 집중할 수 있다는 건가.”
지금껏 나무에 기댄 채 자는 것처럼 보인 글로리아가 끼어들었다.
놀라서 새삼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세란이가 전부 설명해 줄 때까지 잘 몰랐는데 바로 의도를 알아내다니, 그녀도 제법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재미있는 작전이구나. 하지만 정면으로 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텐데, 검도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네. 무리인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내가 똑바로 그녀를 가리키자 글로리아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었다.
“나의 무엇을 믿고 그리 자신하지?”
“전 당신이 혼자서 고블린을 전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아니까요.”
애초에 책에서도 글로리아는 혼자서 고블린 천 마리를 전부 격파했다고 동생은 말했다. 무슨 방법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그 많은 고블린들에게 포위당해도 전부 무찔러 버린다는 뜻. 그런 그녀를 믿지 못하면 누굴 믿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다르게 해석한 건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달콤한 말로 나를 꾈 속셈인가? 흥, 이미 선언한 이상 나는 일단 너를 따를 것이다. 그러니 괜히 비위 맞추는 말은 집어치워라.”
“그런 게 아닌데…….”
“됐고, 그럼 송진은 무엇 때문에 준비했지?”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화제를 휙 돌려 버리기에 어쩔 수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끈적거리는 송진을 바르면 울타리를 타고 넘어오는 데 방해가 될 겁니다…라는 건 사실 부수적인 이유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쯤에서 세란이의 작전을 전부 설명해야 함을 느낀 나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었다.
“잘 보세요.”
난 나뭇가지를 가지고 바닥에 큰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작은 원을 또 하나 그렸다. 그러자 모두들 내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 큰 원이 울타리라고 칩시다. 그럼 그 안에 있는 작은 원은 뭘까요?”
“그야 당연히 우리들이지 뭐겠수.”
웰던이 성급하게 대답하기에 나는 그를 보며 씩 웃어주었다.
“아닙니다. 이것은 고블린들입니다.”
“엉?”
“어허?”
“그게 무슨…….”
웰던은 물론이고, 촌장과 글로리아까지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해합니다. 이해하고말고요. 저도 처음 그 계획을 들었을 땐 똑같았으니까요.
“잘 들으세요. 우리는 농성전을 벌이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행하는 모든 일은 포위전을 위한 포석입니다.”
나는 동생이 일러준 작전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며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더니, 점차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내 설명이 전부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를 돌아보더니, 한꺼번에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런 방법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야…….”
당연히 처음 들어본 이야기겠지. 동생이 즉석으로 만든 작전이니까.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글로리아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호쾌하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하! 그런가! 그렇구나! 과연, 재미있어! 하하하하하! 짐승이나 도적인 줄 알았는데, 전부 아니었구나! 좋다, 그런 기발한 작전을 따르지 않으면 검사로서 명예를 저버리는 일. 명령을 내려라, 군사. 나는 너의 검이 되겠다.”
글로리아가 나를 향해 군사라 지칭했다. 그 호탕한 모습에 나는 놀라서 입만 뻥긋거렸다.
“저기, 군사라뇨? 그 무슨…….”
“오오오옷! 군사! 그렇군요! 군사!”
“한 번 해봅시다, 군사님!”
“저희도 군사님만 믿겠소!”
나처럼 멍하니 글로리아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크게 환호하며 나를 군사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난감한 상황에 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군사는 내가 아니라 세란이인데…….
그래도 웃음이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내 동생이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내가 슬쩍 ‘다들 너보고 군사님이래’라고 말하자, 동생은 쑥스러운 건지 당황한 건지 어버버 하는 반응만 들려왔다.
“좋습니다! 벌써 달이 중천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죠! 우선 진흙도 필요해요! 미리 빠져나갈 탈출구도! 서두르셔야 해요!”
“오오, 그럼 난 진흙을 준비하겠수!”
“그전에 오물부터 울타리에 문지르자고!”
“모두 군사님의 말을 따르자! 시간이 없다! 오물을 옮겨!”
갑자기 다들 기백이 넘치는 얼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사기라는 걸까?
[이제 알 것 같아.]
‘응? 뭐가?’
[오빠는 유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유비? 그,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말하는 거야?’
[응, 그 유비. 유비 현덕.]
‘갑자기 그 위인은 왜?’
[솔직히 나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오빠는 보란 듯이 글로리아를 설득했잖아. 게다가 고작 반나절도 안 돼서 마을 사람들을 전부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그게 무엇 때문인가 쭉 생각하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어.]
‘에이, 그게 뭐야? 그래서 유비?’
[응, 오빠는 유비처럼 덕이 있는 사람이야.]
‘덕?’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말인지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나는 제갈량이 되는 수밖에 없겠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세란이는 저 혼자 납득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번엔 제갈량이냐? 그 위인은 또 왜?’
[사자성어에 수어지교(水魚之交)란 말이 있어.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관계를 나타낸 말이야. 삼국시대의 유비와 제갈량의 사이를 비유해 비롯된 말이지. 그 말처럼 나는 앞으로 오빠의 물이 될게. 그러니 마음껏 헤엄쳐 봐.]
‘헤엄쳐 보라니… 그럼 내가 물고기야?’
[응, 물고기. 가르벤 대륙을 마음껏 헤엄치는 물고기.]
세란이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목소리에 적잖은 흥분이 담겨 있었다.
뭔가 그런 모습이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것 같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날이 밝자, 드디어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멀리서부터 고약한 냄새를 맡은 건지,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래도 놈들은 올 것이다. 동생에게 들은 바로 그들은 집요한 면을 가지고 있다니까.
키에에에에에엑!
들창코에 드문드문 머리털이 나 있는 고블린. 신장은 성인 남성의 반 정도나 될까. 이빨도 누렇게 변색되어 보는 것만으로도 악취가 날 것 같은 외견이었다.
동생이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고블린은 작은 키임에도 그 점프력은 무척 뛰어나 무려 1미터나 뛰어오른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고블린을 상대할 땐 위아래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 말해주었다.
그럼 울타리도 훌쩍 뛰어넘어 오는 것 아닐까 걱정했지만, 독한 냄새를 극적으로 싫어해 다가오지도 못할뿐더러 2미터 정도의 나무 울타리라면 괜찮을 거라고 세란이가 말해주었다.
크릉크릉!
콧방울을 억지로 늘려놓은 것처럼 괴상망측한 들창코를 벌름거리는 녀석들. 그러다 악취에 기겁하며 뒤로 몸을 빼는 모습이 횃불 사이로 보였다. 역시나 오물 냄새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았다.
놈들은 마을 주위를 서성이다 비로소 오물이 묻지 않은 입구를 발견하고는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섣불리 다가오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야생적인 감으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겠지.
하지만 종국에는 별수 없을 것이다. 들어올 곳은 어찌 되었든 이곳밖에 없으니까.
가장 최악인 경우는 놈들이 너무 신중해서 냄새가 사라졌을 때까지 들어오지 않을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오물이 마를 때쯤 다시 바르고 기다리는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질 터였다.
어쩌면 녀석들이 먼저 포기하느냐, 오물이 먼저 떨어지느냐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다음 대책까지 마련하기 위함인지, 고블린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전해 달라는 동생의 말에 난 지금 고블린들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로선 그냥 놈들이 포기하고 물러나기만을 바랐다. 싸우는 건 무섭고,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에.
“오, 오, 온다!”
“옵니다, 군사님!”
젠장, 이번에도 내 바람은 역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