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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난 세란이의 조언대로 일단 절벽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세란이는 가르벤 대륙이 어떤 곳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곳은 판타지에서나 나오는 엘프, 드워프, 오크, 페어리 등 이종족이 존재하며, 몇몇은 국가를 건설해 살아간다고 했다.
그밖에 인간은 중세 시대처럼 왕과 귀족, 평민, 노예가 존재하고, 영주가 가신(家臣)에게 봉토를 내려주고 그 대신에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봉건제도를 취하고 있단다.
그런데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오러라는 검기와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오러는 검에 빛을 방출하는 것이라는데, 그걸 사용하면 검으로 바위도 자를 수 있다나?
그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마법은 더욱 황당무계했다.
‘손으로 불을 만들어? 번개를 흩뿌리고, 홍수를 일으킨다고? 그거 정말 만화 같은 얘기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렇다는 거야. 실상 그런 천재지변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바이그란츠란 자밖에 없어. 뭐, 그 사람이 특별한 거지.]
‘바이그란츠?’
[존셀의 스승이자 현자란 칭호와 함께 유일하게 진정한 마법사라고 불리는 자야.]
‘존셀! 그 이름 알아! 가르벤 연대기에 나오는 주인공격 영웅이라며?’
[어? 잘 아네?]
‘언뜻 들었거든. 흠, 바이그란츠는 주인공의 스승이구나. 강할 만하겠네.’
[강한 영웅은 바이그란츠뿐만이 아냐. 그밖에도 수많은 영웅들이 나와. 마치 신화 속 얘기처럼. 그 장대하고 커다한 세계관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영웅들의 일대기 때문에 팬들을 많이 보유한 소설이야. 내가 말한 바이그란츠는 그 소설에 나오는 대영웅 중 한 명일 뿐이지.]
‘뭔가 되게 장황하네. 그런 세계에서도 존셀은 주인공격이라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속된말로 무지막지하다고나 할까. 존셀은 업적만 해도 대충 나열하자면 혼자서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몰아낸 일도 있고, 냉전시대의 종막을 이끌어낸 일이나, 드래곤을 무찌른 일, 전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가던 마왕 뷔릭츠를 격살한 일도 있어. 그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따지면 한 시간은 족히 설명해야 할걸?]
‘으아… 그래서 중학생 남매는 존셀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거구나.’
어디 신화나 전설에서 등장할 법한 얘기가 술술 나오자 절로 입이 늘어졌다.
‘그럼 역시 나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존셀을 찾아야 하는 건가?’
[아니, 그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야.]
놀랍게도 세란이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응? 잠시 이해가 안 가 걸음을 멈췄다. 모자란 내가 생각해도 존셀에게 가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은데, 갑자기 그래선 안 된다고 하니 의문이 든 것이었다.
‘왜? 존셀은 강하다며? 그럼 곁에 있으면 좋은 거 아냐?’
[그야 그렇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오빠뿐일까?]
‘아…….’
그 말에 순간 머리에 번개가 친 것처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눈치챘어? 거긴 오빠만이 아니라 999명의 다른 사람들도 있어. 아마 못해도 그중 반 이상은 존셀을 노리고 있을걸?]
‘그야말로 모두의 맛집이라는 소리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가 존셀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면 노려볼 만도 했겠지만… 실상 마차를 타도 몇 달이 걸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능성이 희박하지. 도중에 또 황소만 한 몬스터와 맞닥뜨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그! 러! 니! 까! 오빠는 글로리아야! 그 사람을 잡아야 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될 만큼 다신 없는 행운이라고!]
‘너, 아까도 신나 하며 그 말을 한 거 같은데… 저기, 난 사실 그 사람 좀 싫은데. 성격이 나랑 안 맞는다고 할까…….’
[배부른 소리 마! 그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설령 마왕이라 할지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그건 좀 너무 나간 거 아냐? 뭐, 일단 알겠어. 노력은 해볼게. 그래서 절벽에 다 왔는데, 이제 어쩔까?’
[다 왔어? 그럼 그 절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그럼 구름다리가 하나 보일 거야.]
또 걸어야 한다는 말에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란이와 텔레파시가 연결되며 조금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여전히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으으, 배고파서 더는 못 걷겠어.’
[조금만 참아. 나도 그것 때문에 서두르라고 하는 거야. 구름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있거든.]
‘정말?’
순간, 없던 기운이 샘솟았다. 조금만 버티면 먹을 걸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에.
대체 어디에 힘이 남아 있던 건지, 거의 달리다시피 절벽가를 걸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세란이가 말한 구름다리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보인다, 구름다리.’
[잘했어! 다행히 잘 찾아갔네!]
세란이는 마치 자신 일처럼 반색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당분간 몬스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다리 너머로 다져진 길이 보이지?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가 찾던 마을이 있어.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는데…….]
‘문제?’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보채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어차피 설명해 줄 거라 믿고 있으니까.
[으음, 이것부터 설명해야겠네. 그 마을은 영주의 폭정을 버티지 못하고 몰래 산속에 터를 마련한 화전민 마을이야. 그 마을 사람들은 글로리아가 온 날, 전부 죽게 돼.]
“뭐, 뭐?”
너무 놀라 텔레파시가 아니라 육성으로 말하고 말았다.
나는 다급히 텔레파시로 다시 말했다.
‘죽다니, 설마 그녀가?’
[아니. 글로리아가 죽인 건 아니야. 그날 밤 우연히 고블린 무리가 화전민 마을을 급습해서 벌어지는 일이지.]
‘어? 아아, 그래서 고블린 사건?’
[맞아. 우연히 그 마을에서 숙박하던 글로리아가 무려 천 마리 정도 되는 고블린 무리를 몰살시켜. 안타깝게도 그녀는 혼자뿐이라 한 팔을 잃고 마을 사람도 구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업적은 대단하기에 스노우 변경백에게 인정받아 그의 가신으로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돼. 그녀에게 있어선 스노우 변경백령의 불꽃의 잔상, 외팔이 검사라 불리게 되는 운명적인 사건이야.]
‘그래서 외팔이…라는 거였구나.’
나는 왜 세란이가 그녀를 외팔이라고 말한 건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오빠는 고블린 무리가 습격하기 전에 마을을 빠져나가야 해. 그 사실을 넌지시 글로리아에게 알려줘서 빚을 지게 하는 건 덤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나는 동생의 현명함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말고 순간 멈칫했다.
‘잠깐. 그 말은 설마… 마을 사람들은 그냥 죽도록 놔두자는 말이야?’
[응.]
세란이의 짧은 대답은 차가움이 뚝뚝 묻어 나올 만큼 냉정했고,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체스 말 중 폰을 쉽게 던져 버리는 것처럼.
‘세, 세란아.’
[왜? 그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 없잖아. 괜히 끼어들었다간 오빠만 위험해질 뿐이야.]
‘하지만…….’
[그리고 그들을 구해준다 한들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비합리적인 짓을 왜 사서 해?]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그저 합리적이고 말고의 문제로 치부하는 동생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내 심정을 이해한 것인지, 세란이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나는 오빠만 무사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릴 때 사건 이후, 말문을 닫아버릴 만큼 감정을 차단하고 오로지 나만을 의지해 온 동생. 어쩌면 세란이를 그렇게 만든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내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불안한 어조로 나를 부르는 세란이.
나는 앙다문 입을 무겁게 떼었다.
‘있잖아, 세란아. 나는 아까 글로리아라는 여성한테 어린아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할 용기도 없는 짐승이란 말을 들었어.’
[…뭐?]
‘그 말을 듣고 다짐했어. 이제 도망만 다니는 건 그만두겠다고.’
솔직히 나는 이곳이 현실인지 책 속의 만들어진 세상인지 여전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그래픽같이 비현실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죄의식이 덜할 텐데, 진짜 사람 사는 세상 같기에 내 양심이 자꾸만 가슴 언저리를 쿡쿡 찔렀다.
게다가 더 이상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리 약하고 무력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하면, 그때는 정말 그녀가 말한 대로 짐승 같은 놈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세란아, 미안. 역시 난 화전민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그들뿐만이 아냐. 글로리아라는 여성도, 그리고… 너도.’
[윽!]
‘너도’라는 말에 울컥한 듯 쥐어짜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보!]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소리가 텔레파시로 전해져 왔다. 정말 많이 화난 듯 동생의 흥분한 감정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보! 정말 바보야! 오빠는 바보 천치야!]
난 동생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다. 세란이은 격정에 못 이겨 흐느끼더니, 겨우 진정하고 나서 다시 말했다.
[…알아. 오빠가 정상이고, 내가 이기적이란 거.]
‘세란아.’
[하지만 그게 나인걸.]
난 입을 다물었다.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다리가 성치 않아 항상 억압당한 기분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던 것이다.
[알았어. 나도 오빠를 구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니까. 응, 좋아. 오빠가 정 원한다면 한 번 해보자.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어?’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꺼내고 말았다.
그런 내 반응에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세란이는 작게 웃었다.
한참 후, 세란이의 작전을 들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하, 하하… 생각해 보니 잊고 있었다. 동생은 둘도 없는 천재라는 걸. 비록 편치 않은 몸 때문에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책을 읽으며 쌓은 지식이 있다. 또한 그걸 활용할 만한 지혜가 있다. 그런 동생의 능력을 이제야 깨닫다니.
정말 동생의 말마따나 나는 바보였다. 혼자서 모든 고민을 떠안을 필요가 없었는데.
난 자신감 있게 앞으로 발을 디뎠다.
이제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없다. 왜냐면…….
나에겐 세란이가 있으니까.
난 세란이의 조언대로 일단 절벽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세란이는 가르벤 대륙이 어떤 곳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곳은 판타지에서나 나오는 엘프, 드워프, 오크, 페어리 등 이종족이 존재하며, 몇몇은 국가를 건설해 살아간다고 했다.
그밖에 인간은 중세 시대처럼 왕과 귀족, 평민, 노예가 존재하고, 영주가 가신(家臣)에게 봉토를 내려주고 그 대신에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봉건제도를 취하고 있단다.
그런데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오러라는 검기와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오러는 검에 빛을 방출하는 것이라는데, 그걸 사용하면 검으로 바위도 자를 수 있다나?
그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마법은 더욱 황당무계했다.
‘손으로 불을 만들어? 번개를 흩뿌리고, 홍수를 일으킨다고? 그거 정말 만화 같은 얘기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렇다는 거야. 실상 그런 천재지변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바이그란츠란 자밖에 없어. 뭐, 그 사람이 특별한 거지.]
‘바이그란츠?’
[존셀의 스승이자 현자란 칭호와 함께 유일하게 진정한 마법사라고 불리는 자야.]
‘존셀! 그 이름 알아! 가르벤 연대기에 나오는 주인공격 영웅이라며?’
[어? 잘 아네?]
‘언뜻 들었거든. 흠, 바이그란츠는 주인공의 스승이구나. 강할 만하겠네.’
[강한 영웅은 바이그란츠뿐만이 아냐. 그밖에도 수많은 영웅들이 나와. 마치 신화 속 얘기처럼. 그 장대하고 커다한 세계관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영웅들의 일대기 때문에 팬들을 많이 보유한 소설이야. 내가 말한 바이그란츠는 그 소설에 나오는 대영웅 중 한 명일 뿐이지.]
‘뭔가 되게 장황하네. 그런 세계에서도 존셀은 주인공격이라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속된말로 무지막지하다고나 할까. 존셀은 업적만 해도 대충 나열하자면 혼자서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몰아낸 일도 있고, 냉전시대의 종막을 이끌어낸 일이나, 드래곤을 무찌른 일, 전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가던 마왕 뷔릭츠를 격살한 일도 있어. 그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따지면 한 시간은 족히 설명해야 할걸?]
‘으아… 그래서 중학생 남매는 존셀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거구나.’
어디 신화나 전설에서 등장할 법한 얘기가 술술 나오자 절로 입이 늘어졌다.
‘그럼 역시 나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존셀을 찾아야 하는 건가?’
[아니, 그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야.]
놀랍게도 세란이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응? 잠시 이해가 안 가 걸음을 멈췄다. 모자란 내가 생각해도 존셀에게 가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은데, 갑자기 그래선 안 된다고 하니 의문이 든 것이었다.
‘왜? 존셀은 강하다며? 그럼 곁에 있으면 좋은 거 아냐?’
[그야 그렇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오빠뿐일까?]
‘아…….’
그 말에 순간 머리에 번개가 친 것처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눈치챘어? 거긴 오빠만이 아니라 999명의 다른 사람들도 있어. 아마 못해도 그중 반 이상은 존셀을 노리고 있을걸?]
‘그야말로 모두의 맛집이라는 소리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가 존셀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면 노려볼 만도 했겠지만… 실상 마차를 타도 몇 달이 걸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능성이 희박하지. 도중에 또 황소만 한 몬스터와 맞닥뜨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그! 러! 니! 까! 오빠는 글로리아야! 그 사람을 잡아야 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될 만큼 다신 없는 행운이라고!]
‘너, 아까도 신나 하며 그 말을 한 거 같은데… 저기, 난 사실 그 사람 좀 싫은데. 성격이 나랑 안 맞는다고 할까…….’
[배부른 소리 마! 그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설령 마왕이라 할지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그건 좀 너무 나간 거 아냐? 뭐, 일단 알겠어. 노력은 해볼게. 그래서 절벽에 다 왔는데, 이제 어쩔까?’
[다 왔어? 그럼 그 절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그럼 구름다리가 하나 보일 거야.]
또 걸어야 한다는 말에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란이와 텔레파시가 연결되며 조금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여전히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터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으으, 배고파서 더는 못 걷겠어.’
[조금만 참아. 나도 그것 때문에 서두르라고 하는 거야. 구름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있거든.]
‘정말?’
순간, 없던 기운이 샘솟았다. 조금만 버티면 먹을 걸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에.
대체 어디에 힘이 남아 있던 건지, 거의 달리다시피 절벽가를 걸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세란이가 말한 구름다리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보인다, 구름다리.’
[잘했어! 다행히 잘 찾아갔네!]
세란이는 마치 자신 일처럼 반색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당분간 몬스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다리 너머로 다져진 길이 보이지? 그 길을 따라가면 우리가 찾던 마을이 있어.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는데…….]
‘문제?’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보채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어차피 설명해 줄 거라 믿고 있으니까.
[으음, 이것부터 설명해야겠네. 그 마을은 영주의 폭정을 버티지 못하고 몰래 산속에 터를 마련한 화전민 마을이야. 그 마을 사람들은 글로리아가 온 날, 전부 죽게 돼.]
“뭐, 뭐?”
너무 놀라 텔레파시가 아니라 육성으로 말하고 말았다.
나는 다급히 텔레파시로 다시 말했다.
‘죽다니, 설마 그녀가?’
[아니. 글로리아가 죽인 건 아니야. 그날 밤 우연히 고블린 무리가 화전민 마을을 급습해서 벌어지는 일이지.]
‘어? 아아, 그래서 고블린 사건?’
[맞아. 우연히 그 마을에서 숙박하던 글로리아가 무려 천 마리 정도 되는 고블린 무리를 몰살시켜. 안타깝게도 그녀는 혼자뿐이라 한 팔을 잃고 마을 사람도 구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업적은 대단하기에 스노우 변경백에게 인정받아 그의 가신으로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돼. 그녀에게 있어선 스노우 변경백령의 불꽃의 잔상, 외팔이 검사라 불리게 되는 운명적인 사건이야.]
‘그래서 외팔이…라는 거였구나.’
나는 왜 세란이가 그녀를 외팔이라고 말한 건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오빠는 고블린 무리가 습격하기 전에 마을을 빠져나가야 해. 그 사실을 넌지시 글로리아에게 알려줘서 빚을 지게 하는 건 덤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나는 동생의 현명함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말고 순간 멈칫했다.
‘잠깐. 그 말은 설마… 마을 사람들은 그냥 죽도록 놔두자는 말이야?’
[응.]
세란이의 짧은 대답은 차가움이 뚝뚝 묻어 나올 만큼 냉정했고,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체스 말 중 폰을 쉽게 던져 버리는 것처럼.
‘세, 세란아.’
[왜? 그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 없잖아. 괜히 끼어들었다간 오빠만 위험해질 뿐이야.]
‘하지만…….’
[그리고 그들을 구해준다 한들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비합리적인 짓을 왜 사서 해?]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그저 합리적이고 말고의 문제로 치부하는 동생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내 심정을 이해한 것인지, 세란이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나는 오빠만 무사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릴 때 사건 이후, 말문을 닫아버릴 만큼 감정을 차단하고 오로지 나만을 의지해 온 동생. 어쩌면 세란이를 그렇게 만든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내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자 불안한 어조로 나를 부르는 세란이.
나는 앙다문 입을 무겁게 떼었다.
‘있잖아, 세란아. 나는 아까 글로리아라는 여성한테 어린아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할 용기도 없는 짐승이란 말을 들었어.’
[…뭐?]
‘그 말을 듣고 다짐했어. 이제 도망만 다니는 건 그만두겠다고.’
솔직히 나는 이곳이 현실인지 책 속의 만들어진 세상인지 여전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그래픽같이 비현실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죄의식이 덜할 텐데, 진짜 사람 사는 세상 같기에 내 양심이 자꾸만 가슴 언저리를 쿡쿡 찔렀다.
게다가 더 이상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리 약하고 무력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하면, 그때는 정말 그녀가 말한 대로 짐승 같은 놈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세란아, 미안. 역시 난 화전민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그들뿐만이 아냐. 글로리아라는 여성도, 그리고… 너도.’
[윽!]
‘너도’라는 말에 울컥한 듯 쥐어짜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보!]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소리가 텔레파시로 전해져 왔다. 정말 많이 화난 듯 동생의 흥분한 감정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보! 정말 바보야! 오빠는 바보 천치야!]
난 동생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다. 세란이은 격정에 못 이겨 흐느끼더니, 겨우 진정하고 나서 다시 말했다.
[…알아. 오빠가 정상이고, 내가 이기적이란 거.]
‘세란아.’
[하지만 그게 나인걸.]
난 입을 다물었다.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다리가 성치 않아 항상 억압당한 기분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던 것이다.
[알았어. 나도 오빠를 구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니까. 응, 좋아. 오빠가 정 원한다면 한 번 해보자.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어?’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꺼내고 말았다.
그런 내 반응에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세란이는 작게 웃었다.
한참 후, 세란이의 작전을 들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하, 하하… 생각해 보니 잊고 있었다. 동생은 둘도 없는 천재라는 걸. 비록 편치 않은 몸 때문에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책을 읽으며 쌓은 지식이 있다. 또한 그걸 활용할 만한 지혜가 있다. 그런 동생의 능력을 이제야 깨닫다니.
정말 동생의 말마따나 나는 바보였다. 혼자서 모든 고민을 떠안을 필요가 없었는데.
난 자신감 있게 앞으로 발을 디뎠다.
이제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없다. 왜냐면…….
나에겐 세란이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