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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르르르…….
우직, 우지직.
호랑이를 닮은 야수는 샤벨 타이거처럼 두 개의 긴 송곳니로 정장남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그러자 뇌수가 터지고 눈동자가 튀어 나왔다. 걸쭉한 뇌가 캐러멜처럼 바닥에 떨어지려는 걸 야수는 후르릅 빨아들여 삼켰다.
그 처참한 광경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침에 먹은 걸 모조리 게워냈다.
“도, 도망가. 도망쳐!”
“살려줘!”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우리들은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야수는 도망치는 사람들을 먹이로 인지한 건지, 펄쩍 뛰어 사람 얼굴만 한 발로 파마남의 등을 후려쳤다.
고작 한 방이었다. 그 가벼운 몸짓에 파마남의 등은 ‘ㄱ’자로 꺾이며 즉사했다.
야수는 이미 숨이 끊어진 파마남을 놔두고 다른 목표물을 향해 돌진했다.
슥―
나와 다은 누나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야수.
우리 두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터라 당장 야수의 신경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오, 오빠!”
“도망쳐! 어서 가! 으아아아악!”
여동생을 밀어낸 중학생 오빠가 야수에게 팔을 물렸다. 야수는 그대로 고개를 치켜들어 흔들었고, 중학생 오빠의 몸은 인형처럼 힘없이 뒤흔들리더니, 이내 팔이 뚜둑, 찢겨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르르르르르.
“아, 아아아…….”
여동생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침뿐 아니라 아랫도리까지 적시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며 도망가라 외친 오빠의 말이 무색하게 그녀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야수는 겁에 질린 여동생을 흘깃 보더니, 주저 없이 한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소녀의 눈은 완전히 공포에 물들어 그저 멍하니 야수의 앞발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콰직!
일체의 자비도 없이 내려친 야수의 앞발에 무게와 힘을 버티지 못하고 소녀의 내장이 터져 나왔다.
나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이 모든 게 꿈이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꺅!”
“어, 어차피 넌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시간이나 벌어!”
그런 와중에 다은 누나가 앞으로 넘어지고, 피어싱사내가 비굴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는 게 보였다.
덕분에 정지한 사고 속에서도 그가 다은 누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은 누나의 비명을 들었는지, 소녀의 시체를 파먹다 말고 번쩍 고개를 들어 이쪽을 노려보는 야수.
느닷없이 치타처럼 꼬리를 붕붕 흔들며 내달려오는 모습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은 누나를 덮어 눌렀다.
그런 뒤,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야수는 우리를 펄쩍 뛰어넘더니, 저 멀리 도망가는 피어싱사내를 덮쳤다.
“크아아악! 놔! 이거 놔! 빌어먹을! 어째서 나야! 어째서 나냐고!”
어깨를 물린 피어싱사내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 지르며 바동거리자, 야수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척추가 부러진 건지, 피어싱사내의 몸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도망…가.”
그때, 내 아래에 깔려 있던 다은 누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가라고! 어서!”
내가 말을 듣지 않자, 다은 누나는 나를 강하게 밀쳤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눈빛만큼은 더없이 결연했다.
“아니에요, 누나. 같이, 같이 도망가요!”
“알잖아, 나 뛰지 못하는 거!”
거의 윽박에 가까운 목소리로 반박하는 다은 누나.
그녀는 마치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나, 나 실은 너 같은 남동생이 있어. 그래서, 그래서 놔둘 수가 없어. 가… 가, 제발. 어서 가라니까!”
“다은 누나…….”
“가―!”
다은 누나가 나를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도망가야 하네! 어서!”
그는 다름 아닌 대머리 아저씨였다. 그분은 나를 우악스런 힘으로 일으켜 세우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잡아끌었다.
“잠깐, 기다… 크윽!”
나도 알고 있다, 다은 누나는 도망갈 수 없다는 거.
내가 구해줄 수도 없고, 그대로 같이 있으면 그냥 개죽음이 될 뿐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못내 마음에 걸려 나는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다은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우려와 달리, 원망하거니 체념 어린 얼굴이 아니었다.
단지…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입꼬리만 겨우 움직여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로 날렵하게 뛰어드는 야수.
나는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시선을 거뒀다.
“정신 차려! 어서 달리게!”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일깨우듯 팔을 꽉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피멍이 들 정도였다.
그래,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죽는다. 지금은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야!
한 번 죽을 뻔한 경험이 있어서 그럴까.
독하게 마음을 가다듬자, 머리에 쏠린 피도, 손발의 떨림도 금방 잦아들었다.
후, 그럼 이제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남은 건 대머리 아저씨와 나 하나뿐이었다.
제길, 역시 방법은 그것밖에 없겠어.
“아저씨, 제 말 잘 들으세요!”
내 외침에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야수를 돌아보며 급히 말했다.
“저희가 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제가 셋을 셀 테니, 좌우로 나눠져서 달려요! 제가 왼쪽, 아저씨가 오른쪽입니다!”
“그, 그럼 둘 중 하나는 죽…….”
대머리 아저씨가 당황해하며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의미로 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기에.
그래, 내가 생각해 낸 작전은 둘 중 하나는 살 수 있는 작전이었다. 물론 그것도 ‘운이 좋으면’이란 조건이 붙긴 하겠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저런 무지막지한 놈을 이길 수단이 없는데. 그렇다면 운명에 맡기더라도 둘 중 하나는 살아남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저 야수가 저한테 달려들면 아저씬 재빨리 나무를 타세요. 보통 고양잇과 동물은 나무를 잘 타지만, 저런 덩치라면 쉽지 않을 거예요. 죄송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난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젠장, 나는 언제나 이 모양이다. 희생을 감수하며 도망치는 것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다니. 정말이지, 어릴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알겠네.”
대머리 아저씨는 공포에 젖어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임에도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야수는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억지로 두려움을 삼키며 절규하듯 외쳤다.
“갑니다! 하나! 두울…….”
솔직히 나는 야수가 나를 향해 쫓아오지 않기를 내심 바랐다.
그래, 실은 살고 싶다. 빌어먹을, 그게 나란 인간이다.
“세엣―!”
마지막 구령과 함께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었다. 미친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마 대머리 아저씨도 나처럼 오른쪽 방향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자, 어느 쪽이냐. 네놈이 쫓아갈 사람은!
난 결의에 찬 눈으로 야수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어떤 선택이 나를 기다릴지라도 후회하지 않겠노라며. 단지 운명이 나를 저버린다면, 동생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는 정도뿐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난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야수가 내게로 와서 그런 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오른쪽으로 달려가리라 여긴 대머리 아저씨가 야수에게 정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아저씨이―!”
대머리 아저씨는 조금 전 다은 누나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자네는 살게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 처음 본 인연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고작 나 같은 걸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단 말인가. 나는, 나는 그저 나만을 생각하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야수의 입에 머리가 통째로 씹히는 대머리 아저씨를 뒤로한 채 난 마구 뛰었다.
눈앞이 흐려져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저 아버지를 피해 2층 창문에서 떨어져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빌어먹게 무력하던 나는…….
여전히 무력했다.
“크윽, 하아, 하아…….”
수풀에 쓸려 생긴 상처가 아리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때문에 난 죽어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내 작전은 허점이 있었다. 나야 어찌어찌 나무에 오를 수 있겠지만, 다소 몸집이 있는 대머리 아저씨는 야수를 피할 만큼 그럴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에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그뿐만이 아니다.
나무를 잘 타지 못하리라 여긴 그놈은 생각보다 날렵했다.
나는 살아남으려는 일념으로 어찌어찌 나무를 타 올랐는데, 야수는 긴 발톱과 유연한 몸을 이용해 가볍게 날 쫓아왔다.
그땐 정말이지, 그대로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 상황에서 어찌 용기가 생겼는지, 나뭇가지를 꺾어 녀석의 눈동자에 쑤셔 박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그놈의 배 속에서 소화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크허어어어어엉!
저 멀리서 성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에라도 나를 씹어 삼키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성난 포효를 발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도살하던 그놈이 지금 나 하나 잡지 못해 쩔쩔맨다?
그 이유는 지금 내가 내리막길만을 선택해 뛰고 있기 때문.
다소 짧은 앞다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의 몸을 보고 혹시나 싶어 내리막길을 선택했는데, 기적처럼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보통 곰처럼 앞다리가 짧은 동물은 오르막길은 쉽게 올라도 내리막길은 쉽게 내달리지 못한다. 몸체가 앞으로 쏠려 뒹굴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아까의 내 공격으로 눈동자가 하나 없다. 균형도 잡기 힘든 판국에 시야도 좁아졌으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헉, 헉… 제기랄!”
하지만 그런 행운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도착해 버린 것이다.
역시 무작정 아래로 내려간다는 생각은 이러한 변수 때문에 위험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옆으로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
크허어어어어어어엉!
그 순간, 내 등 뒤로 야수가 굴러 떨어지듯 내려왔다.
이, 이렇게나 빨리?
자세히 살펴보니 놈도 무리한 건지, 몸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평소라면 진즉 포기하거나 조심하며 날 쫓았겠지만, 아무래도 녀석의 눈을 찌른 게 화근이 되어 더욱 광포해진 것 같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꿈틀거리는 녀석의 등 근육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일격을 당한 경험 때문인지, 놈은 경계만 할 뿐, 쉽사리 다가오거나 하진 않았다.
난 녀석과 눈을 마주한 채 조심스레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일단 몸을 움직여 낭떠러지에서 벗어날 순 있었지만, 옆으로 달리면 쉽게 따라잡힐 것이다. 그렇다고 오르막길로 오르는 건 더 생각도 못할 일.
난 녀석을 경계한 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살아날 방법,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크아아아아앙!
아주 잠깐 방심한 그때, 녀석은 야생의 감으로 나의 반응을 살피다 그대로 뛰어올랐다. 소만 한 덩치가 펄쩍 뛰어오르니 태양이 전부 가려질 정도였다.
죽는다!
난 진정 그렇게 느꼈다.
그르르르…….
우직, 우지직.
호랑이를 닮은 야수는 샤벨 타이거처럼 두 개의 긴 송곳니로 정장남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그러자 뇌수가 터지고 눈동자가 튀어 나왔다. 걸쭉한 뇌가 캐러멜처럼 바닥에 떨어지려는 걸 야수는 후르릅 빨아들여 삼켰다.
그 처참한 광경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침에 먹은 걸 모조리 게워냈다.
“도, 도망가. 도망쳐!”
“살려줘!”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우리들은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야수는 도망치는 사람들을 먹이로 인지한 건지, 펄쩍 뛰어 사람 얼굴만 한 발로 파마남의 등을 후려쳤다.
고작 한 방이었다. 그 가벼운 몸짓에 파마남의 등은 ‘ㄱ’자로 꺾이며 즉사했다.
야수는 이미 숨이 끊어진 파마남을 놔두고 다른 목표물을 향해 돌진했다.
슥―
나와 다은 누나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야수.
우리 두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터라 당장 야수의 신경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오, 오빠!”
“도망쳐! 어서 가! 으아아아악!”
여동생을 밀어낸 중학생 오빠가 야수에게 팔을 물렸다. 야수는 그대로 고개를 치켜들어 흔들었고, 중학생 오빠의 몸은 인형처럼 힘없이 뒤흔들리더니, 이내 팔이 뚜둑, 찢겨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르르르르르.
“아, 아아아…….”
여동생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침뿐 아니라 아랫도리까지 적시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며 도망가라 외친 오빠의 말이 무색하게 그녀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야수는 겁에 질린 여동생을 흘깃 보더니, 주저 없이 한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소녀의 눈은 완전히 공포에 물들어 그저 멍하니 야수의 앞발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콰직!
일체의 자비도 없이 내려친 야수의 앞발에 무게와 힘을 버티지 못하고 소녀의 내장이 터져 나왔다.
나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이 모든 게 꿈이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꺅!”
“어, 어차피 넌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시간이나 벌어!”
그런 와중에 다은 누나가 앞으로 넘어지고, 피어싱사내가 비굴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는 게 보였다.
덕분에 정지한 사고 속에서도 그가 다은 누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은 누나의 비명을 들었는지, 소녀의 시체를 파먹다 말고 번쩍 고개를 들어 이쪽을 노려보는 야수.
느닷없이 치타처럼 꼬리를 붕붕 흔들며 내달려오는 모습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은 누나를 덮어 눌렀다.
그런 뒤,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야수는 우리를 펄쩍 뛰어넘더니, 저 멀리 도망가는 피어싱사내를 덮쳤다.
“크아아악! 놔! 이거 놔! 빌어먹을! 어째서 나야! 어째서 나냐고!”
어깨를 물린 피어싱사내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 지르며 바동거리자, 야수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척추가 부러진 건지, 피어싱사내의 몸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도망…가.”
그때, 내 아래에 깔려 있던 다은 누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가라고! 어서!”
내가 말을 듣지 않자, 다은 누나는 나를 강하게 밀쳤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눈빛만큼은 더없이 결연했다.
“아니에요, 누나. 같이, 같이 도망가요!”
“알잖아, 나 뛰지 못하는 거!”
거의 윽박에 가까운 목소리로 반박하는 다은 누나.
그녀는 마치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나, 나 실은 너 같은 남동생이 있어. 그래서, 그래서 놔둘 수가 없어. 가… 가, 제발. 어서 가라니까!”
“다은 누나…….”
“가―!”
다은 누나가 나를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도망가야 하네! 어서!”
그는 다름 아닌 대머리 아저씨였다. 그분은 나를 우악스런 힘으로 일으켜 세우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잡아끌었다.
“잠깐, 기다… 크윽!”
나도 알고 있다, 다은 누나는 도망갈 수 없다는 거.
내가 구해줄 수도 없고, 그대로 같이 있으면 그냥 개죽음이 될 뿐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못내 마음에 걸려 나는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다은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우려와 달리, 원망하거니 체념 어린 얼굴이 아니었다.
단지…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입꼬리만 겨우 움직여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로 날렵하게 뛰어드는 야수.
나는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시선을 거뒀다.
“정신 차려! 어서 달리게!”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일깨우듯 팔을 꽉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피멍이 들 정도였다.
그래,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죽는다. 지금은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야!
한 번 죽을 뻔한 경험이 있어서 그럴까.
독하게 마음을 가다듬자, 머리에 쏠린 피도, 손발의 떨림도 금방 잦아들었다.
후, 그럼 이제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남은 건 대머리 아저씨와 나 하나뿐이었다.
제길, 역시 방법은 그것밖에 없겠어.
“아저씨, 제 말 잘 들으세요!”
내 외침에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야수를 돌아보며 급히 말했다.
“저희가 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제가 셋을 셀 테니, 좌우로 나눠져서 달려요! 제가 왼쪽, 아저씨가 오른쪽입니다!”
“그, 그럼 둘 중 하나는 죽…….”
대머리 아저씨가 당황해하며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의미로 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기에.
그래, 내가 생각해 낸 작전은 둘 중 하나는 살 수 있는 작전이었다. 물론 그것도 ‘운이 좋으면’이란 조건이 붙긴 하겠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저런 무지막지한 놈을 이길 수단이 없는데. 그렇다면 운명에 맡기더라도 둘 중 하나는 살아남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저 야수가 저한테 달려들면 아저씬 재빨리 나무를 타세요. 보통 고양잇과 동물은 나무를 잘 타지만, 저런 덩치라면 쉽지 않을 거예요. 죄송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난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젠장, 나는 언제나 이 모양이다. 희생을 감수하며 도망치는 것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다니. 정말이지, 어릴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알겠네.”
대머리 아저씨는 공포에 젖어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임에도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야수는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억지로 두려움을 삼키며 절규하듯 외쳤다.
“갑니다! 하나! 두울…….”
솔직히 나는 야수가 나를 향해 쫓아오지 않기를 내심 바랐다.
그래, 실은 살고 싶다. 빌어먹을, 그게 나란 인간이다.
“세엣―!”
마지막 구령과 함께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었다. 미친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마 대머리 아저씨도 나처럼 오른쪽 방향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자, 어느 쪽이냐. 네놈이 쫓아갈 사람은!
난 결의에 찬 눈으로 야수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어떤 선택이 나를 기다릴지라도 후회하지 않겠노라며. 단지 운명이 나를 저버린다면, 동생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는 정도뿐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난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야수가 내게로 와서 그런 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오른쪽으로 달려가리라 여긴 대머리 아저씨가 야수에게 정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아저씨이―!”
대머리 아저씨는 조금 전 다은 누나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자네는 살게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 처음 본 인연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고작 나 같은 걸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단 말인가. 나는, 나는 그저 나만을 생각하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야수의 입에 머리가 통째로 씹히는 대머리 아저씨를 뒤로한 채 난 마구 뛰었다.
눈앞이 흐려져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저 아버지를 피해 2층 창문에서 떨어져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빌어먹게 무력하던 나는…….
여전히 무력했다.
“크윽, 하아, 하아…….”
수풀에 쓸려 생긴 상처가 아리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때문에 난 죽어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내 작전은 허점이 있었다. 나야 어찌어찌 나무에 오를 수 있겠지만, 다소 몸집이 있는 대머리 아저씨는 야수를 피할 만큼 그럴 수가 없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에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그뿐만이 아니다.
나무를 잘 타지 못하리라 여긴 그놈은 생각보다 날렵했다.
나는 살아남으려는 일념으로 어찌어찌 나무를 타 올랐는데, 야수는 긴 발톱과 유연한 몸을 이용해 가볍게 날 쫓아왔다.
그땐 정말이지, 그대로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 상황에서 어찌 용기가 생겼는지, 나뭇가지를 꺾어 녀석의 눈동자에 쑤셔 박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그놈의 배 속에서 소화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크허어어어어엉!
저 멀리서 성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에라도 나를 씹어 삼키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성난 포효를 발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도살하던 그놈이 지금 나 하나 잡지 못해 쩔쩔맨다?
그 이유는 지금 내가 내리막길만을 선택해 뛰고 있기 때문.
다소 짧은 앞다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의 몸을 보고 혹시나 싶어 내리막길을 선택했는데, 기적처럼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보통 곰처럼 앞다리가 짧은 동물은 오르막길은 쉽게 올라도 내리막길은 쉽게 내달리지 못한다. 몸체가 앞으로 쏠려 뒹굴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아까의 내 공격으로 눈동자가 하나 없다. 균형도 잡기 힘든 판국에 시야도 좁아졌으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헉, 헉… 제기랄!”
하지만 그런 행운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도착해 버린 것이다.
역시 무작정 아래로 내려간다는 생각은 이러한 변수 때문에 위험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옆으로 돌아가서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
크허어어어어어어엉!
그 순간, 내 등 뒤로 야수가 굴러 떨어지듯 내려왔다.
이, 이렇게나 빨리?
자세히 살펴보니 놈도 무리한 건지, 몸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평소라면 진즉 포기하거나 조심하며 날 쫓았겠지만, 아무래도 녀석의 눈을 찌른 게 화근이 되어 더욱 광포해진 것 같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꿈틀거리는 녀석의 등 근육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일격을 당한 경험 때문인지, 놈은 경계만 할 뿐, 쉽사리 다가오거나 하진 않았다.
난 녀석과 눈을 마주한 채 조심스레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일단 몸을 움직여 낭떠러지에서 벗어날 순 있었지만, 옆으로 달리면 쉽게 따라잡힐 것이다. 그렇다고 오르막길로 오르는 건 더 생각도 못할 일.
난 녀석을 경계한 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살아날 방법,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크아아아아앙!
아주 잠깐 방심한 그때, 녀석은 야생의 감으로 나의 반응을 살피다 그대로 뛰어올랐다. 소만 한 덩치가 펄쩍 뛰어오르니 태양이 전부 가려질 정도였다.
죽는다!
난 진정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