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화



내 고등학교 생활은 매우 무미건조했다.

그 흔한 또래 친구조차 한 명 없어 대화를 나누거나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사람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등교하고, 마찬가지로 조용히 하교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 머리 하나 제대로 다듬지 못할 만큼 가난한 거지꼴 행세로 다니기 때문도 있겠고, TV에 크게 보도된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일 수도.

너무 많아 뭐 하나 콕 집어 말할 수 없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거의 왕따나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그래도 맞고 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지금의 생활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겐 꼭 이루어야 할 목표이자 꿈이 있으니까.

[오빠, 학교 끝났어?]

오늘도 여지없이 혼자서 하교하던 중에 기다렸다는 듯이 동생, 세란이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그래, 지금 끝났어. 너는 별일 없고?’

[나야 뭐, 항상 똑같지. 종일 집에 있는데.]

세란이는 조금 무료하다는 투로 텔레파시를 전했다.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나와 세란이는 서로 텔레파시가 가능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아버지를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린 이후부터 생긴 능력이었다. 아마도 정신적인 충격이거나 2층에서 떨어진 결과로 뇌가 이상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염동력이나 공간 이동 등 다른 초능력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텔레파시조차도 세란이하고만 가능할 뿐, 다른 사람과는 전혀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엄밀히 따지면 이건 텔레파시가 아니라 그냥 동생과 내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봐야 했다. 어쩌면 생명이 경각에 달했을 때, 서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가 마음을 이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오컬트적이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항상 세란이와 대화하며 지내기에 왕따 같은 학교생활도 딱히 따분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오빠, 빨리 와.]

‘왜? 그렇게 내가 보고 싶어?’

[그것도 그렇지만… 숙모가 왔어.]

‘아…….’

살짝 다급하면서도 간절한 목소리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숙부에게 거둬져 함께 살고 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충격이 너무 커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나 무척 까칠한 태도를 보였다.

숙부 또한 우릴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며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고 할까.

숙부는 그런 우릴 가엽게 여겼지만, 문제는 숙모였다.

단단히 눈 밖에 나버렸는지, 잔소리에 매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양호한 편이었다. 다루기 쉬운 남자인데다 두 다리도 멀쩡했으니까.

하나 세란이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 없는 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대소변에 옷도 저 혼자 쉬이 갈아입지 못하고, 씻는 것도… 심지어 침대에 눕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런 걸 숙모가 퍽이나 수발해 주겠는가.

당연히 무리다.

그러다 보니 숙모도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유독 세란이에게 잔소리와 매질이 심했고, 한창 사춘기에 들어선 동생은 그런 수모와 고난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세란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와 텔레파시를 할 때 빼곤 책 속의 세상으로만 도피하며 현실과 벽을 만들어 버린 건.

그날부터 세란이의 손에서는 항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숙모가 책을 빼앗으려 들면 풍이라도 온 것처럼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숙모는 게거품 무는 동생을 보고 덜컥 겁이 났는지 그다음부턴 책을 빼앗거나 하진 않았지만… 서로 간의 골은 파일 대로 파인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숙모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집에 왔단다. 아무래도 오늘은 가게를 일찍 접으신 모양이다.

‘알았어, 기다려. 금방 갈게.’

나는 텔레파시를 끊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불쌍한 내 동생. 적어도 다리가 멀쩡했다면 나처럼 밖에라도 나와 숙모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방에 있어야 한다는 건 정말 매일이 지옥 같겠지.

그런 고초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오래전부터 세란이를 데리고 숙부 집에서 나올 생각을 품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어디든 좋으니 동생과 함께 독립할 생각인 것이다.

그것이 내 간절한 소망이자 목표이며, 꿈이었다.

“거기, 소년.”

한창 바삐 걸어가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 바라보니 마치 중세 시대 수도승처럼 검정색 일색의 허름한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후드를 푹 눌러쓴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며, 성별이 가늠되지 않을 만큼 목소리도 쉬어 있어 뭔가 신비스런 분위기가 절로 풍겨졌다.

“이것을 가져가게.”

그 사람은 대뜸 로브 안주머니에서 큼지막한 책 한 권을 내게 내밀었다.

“네?”

당연히 전혀 이해가 안 돼 책과 그 사람을 번갈아 보고만 있자, 그 또는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내 가슴팍에 책을 내밀어 억지로 쥐여 주었다.

묵직함과 함께 책 특유의 종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슬쩍 들여다보니 가죽으로 된 양장본 겉표지에 커다란 제목이 날림체로 쓰여 있었다.



가르벤 연대기.



이 책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모두 10권으로 완결된 책인데, 동생이 세 번이나 정독할 정도로 무척 좋아했던지라 나 역시 제목 정도는 알고 있는 도서였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저기요, 이걸 왜 제게…….”

“그대의 운명이 바뀔 수 있기를.”

그 사람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읊조리더니, 이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골목 어귀로 들어가 버렸다.

“저기요! 잠깐만요!”

뒤늦게 당황한 내가 뒤따라갔지만, 어째선지 그 사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이거참, 무슨 일인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책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어두컴컴한 골목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오빠, 아직 멀었어?]

‘아, 미안! 거의 다 왔어.’

한참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동생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집을 향해 달렸다.

솔직히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책은 버리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동생이 워낙 좋아하던 책인지라 선물해 주면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그냥 들고 가게 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알지 못했다, 이 선택이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아휴, 냄새! 침대고 뭐고 죄다 엉망이네! 기저귀 갈 때 되면 말하라니까 왜 말을 안 해! 정말 이렇게 숙모를 고생시킬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숙모의 고함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나는 신발을 내던지다시피 벗곤 세란이의 방으로 달렸다.

“숙모!”

방에 도착해 보니 가장 먼저 역한 냄새와 함께 대변으로 얼룩진 침대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손바닥으로 세란이의 어깨를 치며 타박하는 숙모와,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세란이의 모습도.

“어쩜, 엉덩이 짓무른 것 봐! 이걸 참는다고 해결돼? 엉덩이 들어! 벗게!”

“숙모, 그만두세요.”

“뭐 하는 거야! 어서 엉덩이 들라니까!”

“숙모, 그만두시라고요!”

“여보!”

보다 못해 달려들려던 찰나, 내 뒤에서 숙부가 일갈하듯 소리쳤다.

그제야 들은 척도 않던 숙모는 거칠게 다루던 손길을 멈췄다.

“당신이 여긴 왜… 일은 어쩌고?”

“당신이 오늘 쉰다기에 나도 반차 냈어.”

“뭐? 고작 나 쉰다고? 아주 극성이네, 극성이야. 누가 보면 내가 얘를 잡아먹는 줄 알겠네.”

“그만해. 가여운 아이야.”

“내가 뭘 어쨌다고!”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병이라고 그러잖아. 이해해 줘야지.”

“세상천지에 그런 병이 어딨어! 보나마나 고집부리는 거라니까!”

“여보.”

“하아, 알았다고! 세란이 너! 다음에도 아무 말 안 하고 싸지르면 정말 혼쭐날 줄 알아! 알았어? 내가 못 살아, 정말.”

결국 포기했는지 숙모는 대변으로 얼룩진 시트를 들고 성큼성큼 방을 나갔다.

“미안하구나.”

그렇게 숙모가 사라지자 숙부는 살짝 고개 숙여 사과한 후, 숙모의 뒤를 따라갔다.

비로소 주변이 조용해지며 안식이 찾아왔다.

그때까지도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던 나는 잠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침대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괜찮아?”

[으우…….]

슬쩍 말을 걸기 무섭게 기다렸다 듯이 울먹이는 세란이.

불쌍한 내 동생. 앞가림조차 못하는 자신이 싫을 텐데도, 그런 마음을 속 시원하게 토로하지도 못하니 얼마나 괴로울까.

“괜찮아, 괜찮으니까…….”

나는 한동안 세란이를 감싸 안고 등을 다독여 주었다.

[이제… 괜찮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물을 닦으며 나를 밀어내는 세란이.

아무래도 하반신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는 자신 꼴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어차피 내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목욕도 시켜주는 사이인데,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아, 맞다! 너, 이 책 좋아하지?”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란 걸 떠올린 나는 짐짓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책?]

묵직한 가죽 양장본을 가방에서 꺼내 들자, 세란이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오직 나에게만 보여주는, 저 풍부한 감정이 담긴 얼굴.

너무도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빠 같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세란이는 늘 집에만 있어 머리도 부석거리고 얼굴도 조금 수척하지만, 이따금씩 이런 어여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천상 예쁜 소녀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제대로 꾸미면 분명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절로 따라붙겠지.

[이건… 어라? 가르벤 연대기네? 우와! 이거 한정판이잖아? 이걸 오빠가 어찌?]

“몰라. 누가 주더라고.”

[에이, 거짓말. 이거 천 권 한정판인데 누가 오빠에게 막 주겠어?]

“그러게나 말이다.”

난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내 모습이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였는지, 세란이는 잠시 나를 흘겨보다 못 이긴 척 넘어가 주었다.

[가르벤 연대기라… 되게 오랜만이네. 한창 빠졌을 땐 몇 번이나 읽었는데.]

“그랬지. 근데 이게 그렇게 재밌나?”

[그럼.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한정판으로 재판되는 걸 보면 말 다 했지. 허구로 만든 중세 시대 영웅들의 일대기를 담은 작품인데, 삼국지 같은 느낌이라서 무척 재밌게 읽었어. 잘됐다. 이참에 다시 읽어볼까?]

“그전에 바지부터 입어.”

내가 책을 빼앗으며 말하자, 세란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역시 착해서 고분고분 침대 옆 서랍 안에 있는 바지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척추 마비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잘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나는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문득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내려다보았다.

최근에 천 권 한정판으로 나온 것치곤 상당히 빛바랜 가죽 표지.

열 권짜리 책을 한 권에 엮어놓다 보니 두께가 상당해 마치 사전 같다.

그래서일까, 뭔가 오래된 서적 같아 중후한 멋도 느껴졌다.

절로 소장하고 싶어지는 책이랄까?

흠, 가르벤 연대기라…….

살짝 흥미가 동해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이런 한정판은 가장 첫머리에 작가의 서문 같은 게 필시 있을 거라 생각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펼친 것이었다.

그 가벼운 행동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엇!”

[꺅! 뭐야!]

책장을 펼친 그 순간, 마치 가둬져 있던 것처럼 흘러나온 빛이 책 전체에서 뿜어졌다.

그 새하얀 빛은 섬광탄처럼 방 안을 전부 감싸 버릴 정도였는데,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어 허우적거리며 책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근처에 있어야 할 책이 아무리 더듬어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니, 책뿐만이 아니라 침대조차도. 마치 허공을 허우적거리듯 말이다.

뭐, 뭐지? 나는 지금도 침대에 앉아 있는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왜 손가락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지?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빛 너머의 바닥을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내 손은 확실히 책을 잡고 있었다. 문제는 책 자체가 블랙홀처럼 내 손을 통과시키고 있었다는 것.

“뭐… 우아아아아아아악!”

[오, 오빠!]

갑자기 몰아닥친 강력한 흡입력에 몸 전체가 책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이건… 위험하다!

직감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게 아니라 세란이를 뒤로 밀치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균형을 잃고 완전히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끝도 없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난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 Game St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