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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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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처럼 구부정하게 선 가로수가 행인들을 굽어본다. 새파랗게 차가운 하늘 아래 우수수 잎을 떨군 활엽수들. 어쩐지 가엾은 기분이 들어 갑작스런 감상에 빠진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성미 급한 뒷차가 그새 빵빵 경적을 울려 댄다.

나는 조금 허둥대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습관처럼 켜 둔 라디오에서 조그맣게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부터 마음껏 네 꿈을 펼쳐 봐. 밝은 음색의 성우들이 낯선 대학교명을 힘차게 외쳤다. 수능 치르려면 아직 며칠 남았건만 벌써부터 신입생 유치 경쟁들인가. 대학에 갈 아이들은 자꾸 줄어드는데 캠퍼스는 꾸역꾸역 늘어나니 입시철 앞두고 담당 부서 마음이 조급하기도 할 것이다. 내 전공인 철학처럼 인기 없는 학과라면 통폐합의 수모도 각오해야 할 테고.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어디 쉽나. 나는 입 속으로 중얼대며 오른쪽으로 차선을 옮겼다.

사직동 집에서 학교까지는 자동차로 십오 분 거리다. 내가 일하는 학교와 남편이 일하는 병원에서 공평하게 중간지점인 그곳에 나는 사 년째 살고 있다.

남편의 전공인 흉부외과는 환자 많고 일손 모자라기로 이름난 과목이라 그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교수 소리 들을 경력인 지금까지도 당직은 물론 급하게 수술방이 비기라도 하면 비번에도 뛰쳐나가기 일쑤니까. 그는 산 사람의 가슴을 열고 심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삼십 대를 통째 보냈다. 밤낮없이 기계처럼 일하고 연구했다. 의학이든 철학이든 그 어떤 일이든,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이다.

방 세 개짜리 사직동 아파트는 이제 내 소유가 되었다. 펀드매니저를 고용해 불려 놓은 남편 명의의 금융자산도 분할이 가능하다고 변호사는 조언했지만 나는 저쪽 변호사가 보낸 재산분할 내역에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동의했다. 아파트는 결혼할 때 남편이 마련해 온 것이니 나로서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위자료는 도리어 내 쪽에서 지불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합의 과정 내도록 우리는 대단히 신사적이고 교양 넘치는 이혼 예정 커플이었다. 귀책사유를 놓고 악을 쓰지도, 파탄의 책임은 상대에게 있노라 목청껏 하소연하지도, 면접교섭권과 양육비를 두고 닦달하지도 않는 점잖은 부부를 이혼 전문 변호사는 틈만 나면 슬쩍 추켜세웠다. 합의이혼이라도 보통은 양육권 때문에 힘들어지거든요.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걸 대단한 선견지명인 양 강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애매한 미소만 돌려주었다.

남편과 내가 처음부터, 이른바 딩크족에 가담하기로 합의한 건 아니다. 적극적으로 피임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된 이유는 실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아이보다 논문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고 남편에게는 아이를 만들 시간이 태부족했다. 우리는 각자의 빠듯한 세상을 살며 가끔씩 위로하듯 서로를 쓰다듬었지만, 상당한 의무감으로 몸을 맞댈 때조차도 매번 알맹이 없이 버석거렸다. 이미 소진되어 깡마른 껍데기처럼.

자동차가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을 메고 이어폰을 낀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방향대로 걷고 있다. 나는 좁은 도로를 건너는 학생 무리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차를 몰아 연구실로 향했다.

올해부터 배정받은 연구실은 작지만 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 넉넉한 일조량조차도 시아버지 덕을 봤다는 말들이 나왔단 것을 나도 물론 알고 있었다. 철학과에 조교수를 둔 게 수십 년 만에 처음인 데다 정년트랙으로 여자를 임용한 것은 개교 이래 최초라니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기 딱 좋긴 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는 임용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자부할 수 있었지만, 임용 심사를 한 건 내가 아니므로 시부의 영향력이 전혀 없었다고는 나도 사실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증거 없는 부채감 때문에 간신히 쟁취한 교수 자리를 내놓아야 하나. 더 이상 국립대 학장의 며느리가 아니니 정교수 될 기대는 접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자진해 다른 학교로 옮겨 결백과 실력을 증명할까. 또다시 그렇게 치사한 생각들에 빠져 복도를 걷다가, 나는 내 연구실 앞을 기웃대던 학생 하나를 발견했다.

“어, 선생님 나오셨네요.”

눈이 마주치자 안도하듯 웃는 얼굴은 낯이 익었다. 일 학년 학부생이라는 걸 상기하자 자연스레 이름이 떠올랐다. 김석준. 이름도 외모도 평범하지만 매번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 존재감이 특출한 남학생.

“오늘 강의 없으셔서 안 나오시나 했어요.”

“수업이 없어도 할 일은 많죠. 나 기다리고 있던 거지? 시간 잘 맞았네.”

열쇠를 꺼내 연구실 문을 열고 앞장서 들어갔다.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핸드백과 코트를 옷걸이에 거는 동안 뒤따라 들어온 학생이 조심스레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아, 선생님, 오늘 생신 축하드립니다.”

내 참, 대놓고 노인네 취급하네. 코웃음을 치며 투덜거리자 학생이 넉살 좋게 웃는다.

“어쨌든 고마워. 근데 내 생일 축하해 주러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테고.”

“질문이 있어서요.”

“질문. 좋지.”

입구 가까이 놓인 원형 테이블 쪽을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다. 질문이 생기면 언제든 내 방으로 오면 됩니다. 강의를 마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되풀이한 덕인지 이렇게 찾아오는 학부생이 종종 있었다. 선생은 학생으로부터 더 많은 것들을 배우므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뭐가 궁금한데?”

“에로스의 해석이요.”

에로스라.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제 생각엔, 그리스 철학자들이 에로스를 사랑으로 정의한 것 자체가 잘못된 출발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오른쪽 눈썹을 슬쩍 움직였다. 흥미로운 대상 앞에서 나오는 습관이다. 눈을 들어 저만치 떨어져 앉은 학생에게 시선을 주었다. 깔끔하게 다듬은 머리칼이며 계절에 비해 가벼운 옷차림. 그에게는 온통 젊음의 생기와 열기가 묻어 있다.

“플라톤한테 도전하는 거네.”

“선생님께서 늘 선배들을 의심하라고 하셨잖아요.”

“좋아. 향연에서 제시한 에로스의 근원이 뭐였지?”

“‘결핍’입니다. 원하는 대상을 가지지 못한 상태요. 그래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생기는 거고요.”

“그렇지. 내가 갖지 못한 대상과 결합하려는 욕구가 에로스야.”

“그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는 거고요.”

“그래. 에로스의 대상이 반드시 인간인 건 아니지. 남녀 관계에 국한된 건 더더욱 아니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니까.”

“그렇다면 에로스는 ‘사랑’이 아니라, ‘갈망’으로 정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아가톤에게 했던 논박 기억해?”

“갈망은 결핍을 전제로 한다는 거요?”

“응. 소크라테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소유하지 못한 것만을 갈망할 수 있어. 맞아?”

“맞습니다.”

“그렇다면 결핍됐던 것을 소유하는 순간 더 이상 갈망하지 않겠지?”

“네.”

“만약 에로스를 갈망으로 정의한다면, 갈망이 충족됨과 동시에 에로스는 소멸한다는 논리가 가능한가?”

“그렇죠. 그래서 사랑이 변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내 눈을 직시하는 청년과 잠시 시선을 맞댔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눈이었다. 문득 입 안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

“내가 볼 때 김석준 씨가 의심하는 건 에로스의 정의가 아니라 사랑 자체인 것 같은데.”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에로스가 사랑으로 정의되는지 전 이해가 안 돼요. 사랑의 근원이 결핍이고, 우리가 결핍된 것만 갈망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 대상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갈망이 사랑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논리구나.”

“저는 그렇게밖에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좋아.”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사랑과 갈망의 관계를 논증해 봐. 에로스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에 유의해서.”

“레포트로요?”

“논문이면 더 좋고.”

“예?”

적당한 답을 주는 대신 더 나은 답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선생질하는 이들의 단골 수법이다. 그러나 똘똘한 녀석이니 아마 간파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모범 답안은 나도 갖고 있지 않으며 나 또한 무척이나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써 오면 이번 학기 내 과목은 만점 줄게. 기말 페이퍼 대체해서.”

“알겠습니다.”

그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꾸벅 허리를 굽힌 학생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고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냈다. 기대할게. 흘리듯 말을 던지자 멋쩍게 웃는 소리와 함께 연구실 문이 닫히고, 아늑한 공간에 나는 다시 홀로 남았다.

노트북을 부팅시키며 창밖을 바라본다. 불길처럼 풍성하던 단풍잎들이 불과 이 주 만에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십일월. 일기예보에서는 몇 년 만에 수능 한파가 닥친다며 벌써부터 호들갑이다. 시간이 유수 같네. 나는 생신을 맞은 노인네답게 고풍스레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수험생이었던 해에도 수능 날은 혹독하게 추웠다. 시험장 교문을 통과하며 하얗게 뿜어내던 입김. 코트 주머니 속 손난로에서 풍기던 쇳가루 냄새. 그 냄새가 밴 채 펜을 쥔 내 왼손의 모양까지 또렷이 기억난다. 부자유한 십 대의 끝. 자유와 행복을 향한 마지막 관문이라 굳게 믿었던 열아홉의 나.

‘우리가 결핍된 것만 갈망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 대상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시절 나는 어른의 삶을 갈망했다. 법적 성년이 곧 어른인 줄 알았던 나는 이미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었다. 달콤한 자유와 자립에 대한, 어른의 환상을 향한 열렬한 짝사랑이었다.

‘그래서 사랑이 변하는 거 아닙니까?’

대학 사 년을 마치고 나자 짝사랑은 거짓말처럼 끝나 버렸다. 나는 어른이 되길 갈구하기는커녕 그들의 찌든 세상을 경멸했다. 어른의 삶이란 자욱한 안개 속에서 끝없는 평형대 위를 걸어가는 행위였다. 목적과 희망은 고사하고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세계.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그 세계엔 정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입시라는 선명한 체계에 평생 길들여진 나는 모범 답안도 정답 해설도 없는 진짜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