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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도시 24화
2. 서울, 광화문 (23)
“과장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예쁘게 찍겠습니다. 그리고 원래 여자 연예인들 몸매는 다 CG로 보정합니다. 보시는 것보다 더 슬림하고 청순하게 촬영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붉어진 얼굴에 안도감을 내비치며 강보미 과장의 높았던 어조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강보미 과장의 입에서 조금은 속상하고 억울한 듯 원망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아니, 원래 브랜드 맡으시는 해웅 차장님은 안 보이시죠, 국장님도 어디 갔는지 보이시지 않죠, 솔직히 속상하다니까요. 물론, 이세민 차장님도 잘해 주시지만, 그래도 우리 브랜드는 그동안 해 보시지 않아서 잘 모르시잖아요. 다른 대기업 브랜드 때문에 우리 브랜드에 소홀해지신 것 같아 솔직히 섭섭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출시 전부터 과장님하고 1년여를 머리 맞대고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브랜드라 저도 제 자식 같은 마음으로 얼마나 아끼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과장님도 과정에서 저희에게 서운하신 게 있겠지만, 저도 그런 말 들으니 조금은 섭섭합니다.”
해웅이 강보미 과장의 눈을 쳐다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항상 장난을 떨던 해웅의 말투와 눈빛이 단단하면서도 결연해 보이자, 속에 쌓여 있던 서운함이 조금은 풀렸다. 그래도 다른 광고주 업무에 차출되어 라일락 브랜드 업무가 다른 팀으로 인수인계되었다고 들었을 때 섭섭했던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아예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몇 달만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 회사 들어와서 처음 맡았던 브랜드 아닙니까. 과장님이 우리 회사 버리지만 않으시면 전 평생 모시고 갑니다.”
해웅이 심지가 굳은 어조로 재차 안심시키자, 그제야 강보미 과장의 얼굴에서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처음 해웅을 보았을 때만 해도 강보미 과장은 광고 경력이 짧은 해웅이 이 일을 잘해 낼 수 있을지 못 미더웠었지만, 워낙 일도 열심히 하는 데다가 부탁하는 장표들의 결과물도 마음에 쏙 들었다. 솔직히 업계에서 그만큼 논리가 탄탄한 기획 장표는 보기 드물었다. 스타일보다는 통계와 논리로 구조를 쌓아 가는 해웅의 기획서는 말장난 치는 광고장이들의 장표랑 다르게 정통적이었다.
바람둥이로 유명하다는 사생활에 대한 추문도 간혹 제 귀에 들려왔지만, 일만 잘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기획서만큼은 컨설팅을 거쳐 온 굵직한 올드 스쿨 유형인 데다, 보통 광고 기획자들은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국한된 근시야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대기업에서 영업을 하고 본인 사업도 했던지라 시장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 게다가 브랜드의 사소한 일까지 잘 챙기고, 촬영 현장에서도 싹싹하게 잘하면서 영상 촬영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니 강보미 과장이 해웅을 신뢰하는 것도 당연했다. 해웅의 부재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보미 과장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나, 서해웅 차장님만 믿어요.”
“감사합니다. 라일락, 대박 나도록 정말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그가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이자, 속상했던 기분이 한결 풀린 듯, 강보미 과장이 해웅의 팔을 가볍게 때리며,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어머머, 유부녀 돼서 이렇게 남자한테 윙크 받아 보기도 처음이네. 왜 설레게 하고 그래. 나 애 둘 딸린 유부년데.”
“제가 그럴 재주만 있다면야 영광이죠. 이번 광고도 과장님 만족스럽게 뽑아내겠습니다.”
완전히 기분이 좋아진 강보미 과장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웅과 강보미 과장을 바라보던 윤원희 대리는 투덜거리며 케이터링으로 마련된,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아침, 점심도 못 먹고 새벽부터 제작팀, 촬영팀이랑 하루 종일 파주 촬영장에 붙박고 있었건만, 강보미 과장은 윤원희 대리와 이현민 차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전 내내 촬영장에서 불만이 터지기 직전인 얼굴로 좌불안석이더니 결국 여자 아이돌이 촬영하기 위해 옷을 바꿔 입고 나온 모습을 보고 폭발해 버렸다. ‘서해웅 차장 어디 있어요? 나, 서해웅 차장 없으면 촬영 안 해’라고 히스테리에 가까운 신경질을 부리는 강보미 과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윤원희 대리가 점심 식사 중이던 해웅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같은 여자로서 출산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업무에 투입된 강보미 과장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윤원희 대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의 서해웅 차장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쳤다.
“어휴, 정말 강보미 과장님 같은 광고주 때문에 내가 광고질 못해 먹겠다. 아니 너무하신 거 아니야? 아무리 주 담당이 서해웅 차장님이라지만…… 정말 서러워서 어디 이 판에 붙어먹겠나.”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광고주 입장에서는 캠페인 성과 하나로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래도 신뢰하는 담당자가 곁에 있는 편이 아무래도 안심되죠.”
“우린 뭐 담당자 아닌가요. 서해웅 차장님만 너무 편애하니깐 일할 맛이 안 나서 그렇죠. 아, 솔직히 서해웅 차장님 실력도 좋지만 얼굴도 잘생기니깐 저렇게 사랑받는 거 아니겠어요? 더러운 세상…….”
“에이, 대리님도 예쁘시잖아요.”
이세민 차장이 속도 좋은 소리를 한다. 윤원희 대리는 우당탕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뭐야~’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코뿔소같이 콧김을 내뿜으며 김현식 국장이 뒤늦게 촬영장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해웅이 어디 있어?”
“서해웅 차장님, 강보미 과장님이랑 같이 있어요.”
긴 촬영이 지루한지 강보미 과장도 현장을 해웅에게 맡기고서는 커피와 케이터링으로 마련된 샌드위치를 싸 들고 대기실로 사라졌다. 강보미 과장 옆에서 내내 의전하고 있던 해웅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김현식 국장이 콧김을 내뿜으며 다가와서는 그의 팔목을 낚아챘다.
“또 뭡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컨테이너 건물 촬영 장소 밖으로 해웅을 끌고 간 김현식 국장은 야외에 마련된 간이식 재떨이 스탠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서는, 그제야 해웅의 팔을 놔주었다. 우악스러운 손동작으로 주머니 뒤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모습이 어딘가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숨을 고르며 담뱃불을 붙이는 김현식 국장의 미간과 콧등이 신경질적으로 찌푸려졌다. 하마처럼 울퉁불퉁 크고 단단한 얼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일그러진 것이, 딱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씨발, 이거 잘못하면 너랑 나 좆되게 생겼어, 지금.”
“무슨 일이십니까?”
김현식 국장이 내민 담뱃갑에서 한 개비 받아 입에 물며 해웅이 무심하게 묻자, 국장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무슨 일? 야, 지금 진지해. 상황이 아주 좆같다고.”
성격 좋고 느긋한 김현식 국장의 거친 욕지거리에도 해웅은 태연했다.
“사장님한테 안 좋은 일이라도 들었어요?”
“너는 결혼도 안 했지, 나는 애가 셋이야. 어이구, 씨발. 이거 잘못하면 콘벤투스에서 이용만 당하고 낙동강 오리알 되게 생겼어. 오늘 콘벤투스 마케팅 본사에서 S 광고 기획 탑 매니지먼트급과 직접 접촉했다는 얘기가 들렸어. 워낙 윗선끼리 접촉한 거라 콘벤투스 마케팅팀도 모를 가능성이 커. 이게 단순히 접촉이든 아니든 사실이라면 하반기 광고 물량에 대한 비딩이 들어갈 수 있고 지금 컨설팅 제언 자체도 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그게 말이 됩니까? 어디서 들었습니까?”
태연하게 담배를 입에 물던 해웅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뚱딴지 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김현식 국장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했다.
“어디서 들으면? 네가 뒷조사라도 하게?”
“저도 S 광고 기획에 친구 있습니다. 제가 확실히 알아보죠.”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VIP끼리 오간 얘기야. 이건 사장님이 극비리에 알게 된 정보야. 우리 같은 실무선에서 알아 온 게 아니라고.”
전에 없이 무서운 목소리로 해웅의 말을 자르며 김현식 국장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고혈압 약을 달고 사는 그가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느꼈는지, 비틀거리며 해웅의 팔을 꽉 잡았다. 해웅은 다리가 풀린 제 상사를 부축해 화단 쪽으로 데리고 갔다.
2. 서울, 광화문 (23)
“과장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예쁘게 찍겠습니다. 그리고 원래 여자 연예인들 몸매는 다 CG로 보정합니다. 보시는 것보다 더 슬림하고 청순하게 촬영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붉어진 얼굴에 안도감을 내비치며 강보미 과장의 높았던 어조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강보미 과장의 입에서 조금은 속상하고 억울한 듯 원망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아니, 원래 브랜드 맡으시는 해웅 차장님은 안 보이시죠, 국장님도 어디 갔는지 보이시지 않죠, 솔직히 속상하다니까요. 물론, 이세민 차장님도 잘해 주시지만, 그래도 우리 브랜드는 그동안 해 보시지 않아서 잘 모르시잖아요. 다른 대기업 브랜드 때문에 우리 브랜드에 소홀해지신 것 같아 솔직히 섭섭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출시 전부터 과장님하고 1년여를 머리 맞대고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브랜드라 저도 제 자식 같은 마음으로 얼마나 아끼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과장님도 과정에서 저희에게 서운하신 게 있겠지만, 저도 그런 말 들으니 조금은 섭섭합니다.”
해웅이 강보미 과장의 눈을 쳐다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항상 장난을 떨던 해웅의 말투와 눈빛이 단단하면서도 결연해 보이자, 속에 쌓여 있던 서운함이 조금은 풀렸다. 그래도 다른 광고주 업무에 차출되어 라일락 브랜드 업무가 다른 팀으로 인수인계되었다고 들었을 때 섭섭했던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아예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몇 달만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 회사 들어와서 처음 맡았던 브랜드 아닙니까. 과장님이 우리 회사 버리지만 않으시면 전 평생 모시고 갑니다.”
해웅이 심지가 굳은 어조로 재차 안심시키자, 그제야 강보미 과장의 얼굴에서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처음 해웅을 보았을 때만 해도 강보미 과장은 광고 경력이 짧은 해웅이 이 일을 잘해 낼 수 있을지 못 미더웠었지만, 워낙 일도 열심히 하는 데다가 부탁하는 장표들의 결과물도 마음에 쏙 들었다. 솔직히 업계에서 그만큼 논리가 탄탄한 기획 장표는 보기 드물었다. 스타일보다는 통계와 논리로 구조를 쌓아 가는 해웅의 기획서는 말장난 치는 광고장이들의 장표랑 다르게 정통적이었다.
바람둥이로 유명하다는 사생활에 대한 추문도 간혹 제 귀에 들려왔지만, 일만 잘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기획서만큼은 컨설팅을 거쳐 온 굵직한 올드 스쿨 유형인 데다, 보통 광고 기획자들은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국한된 근시야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대기업에서 영업을 하고 본인 사업도 했던지라 시장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 게다가 브랜드의 사소한 일까지 잘 챙기고, 촬영 현장에서도 싹싹하게 잘하면서 영상 촬영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니 강보미 과장이 해웅을 신뢰하는 것도 당연했다. 해웅의 부재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보미 과장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나, 서해웅 차장님만 믿어요.”
“감사합니다. 라일락, 대박 나도록 정말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그가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이자, 속상했던 기분이 한결 풀린 듯, 강보미 과장이 해웅의 팔을 가볍게 때리며, 몸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어머머, 유부녀 돼서 이렇게 남자한테 윙크 받아 보기도 처음이네. 왜 설레게 하고 그래. 나 애 둘 딸린 유부년데.”
“제가 그럴 재주만 있다면야 영광이죠. 이번 광고도 과장님 만족스럽게 뽑아내겠습니다.”
완전히 기분이 좋아진 강보미 과장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웅과 강보미 과장을 바라보던 윤원희 대리는 투덜거리며 케이터링으로 마련된,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아침, 점심도 못 먹고 새벽부터 제작팀, 촬영팀이랑 하루 종일 파주 촬영장에 붙박고 있었건만, 강보미 과장은 윤원희 대리와 이현민 차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전 내내 촬영장에서 불만이 터지기 직전인 얼굴로 좌불안석이더니 결국 여자 아이돌이 촬영하기 위해 옷을 바꿔 입고 나온 모습을 보고 폭발해 버렸다. ‘서해웅 차장 어디 있어요? 나, 서해웅 차장 없으면 촬영 안 해’라고 히스테리에 가까운 신경질을 부리는 강보미 과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윤원희 대리가 점심 식사 중이던 해웅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같은 여자로서 출산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업무에 투입된 강보미 과장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윤원희 대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녀의 서해웅 차장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쳤다.
“어휴, 정말 강보미 과장님 같은 광고주 때문에 내가 광고질 못해 먹겠다. 아니 너무하신 거 아니야? 아무리 주 담당이 서해웅 차장님이라지만…… 정말 서러워서 어디 이 판에 붙어먹겠나.”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광고주 입장에서는 캠페인 성과 하나로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래도 신뢰하는 담당자가 곁에 있는 편이 아무래도 안심되죠.”
“우린 뭐 담당자 아닌가요. 서해웅 차장님만 너무 편애하니깐 일할 맛이 안 나서 그렇죠. 아, 솔직히 서해웅 차장님 실력도 좋지만 얼굴도 잘생기니깐 저렇게 사랑받는 거 아니겠어요? 더러운 세상…….”
“에이, 대리님도 예쁘시잖아요.”
이세민 차장이 속도 좋은 소리를 한다. 윤원희 대리는 우당탕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뭐야~’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코뿔소같이 콧김을 내뿜으며 김현식 국장이 뒤늦게 촬영장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해웅이 어디 있어?”
“서해웅 차장님, 강보미 과장님이랑 같이 있어요.”
긴 촬영이 지루한지 강보미 과장도 현장을 해웅에게 맡기고서는 커피와 케이터링으로 마련된 샌드위치를 싸 들고 대기실로 사라졌다. 강보미 과장 옆에서 내내 의전하고 있던 해웅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김현식 국장이 콧김을 내뿜으며 다가와서는 그의 팔목을 낚아챘다.
“또 뭡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컨테이너 건물 촬영 장소 밖으로 해웅을 끌고 간 김현식 국장은 야외에 마련된 간이식 재떨이 스탠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서는, 그제야 해웅의 팔을 놔주었다. 우악스러운 손동작으로 주머니 뒤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모습이 어딘가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숨을 고르며 담뱃불을 붙이는 김현식 국장의 미간과 콧등이 신경질적으로 찌푸려졌다. 하마처럼 울퉁불퉁 크고 단단한 얼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일그러진 것이, 딱 골치 아픈 일이 발생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씨발, 이거 잘못하면 너랑 나 좆되게 생겼어, 지금.”
“무슨 일이십니까?”
김현식 국장이 내민 담뱃갑에서 한 개비 받아 입에 물며 해웅이 무심하게 묻자, 국장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무슨 일? 야, 지금 진지해. 상황이 아주 좆같다고.”
성격 좋고 느긋한 김현식 국장의 거친 욕지거리에도 해웅은 태연했다.
“사장님한테 안 좋은 일이라도 들었어요?”
“너는 결혼도 안 했지, 나는 애가 셋이야. 어이구, 씨발. 이거 잘못하면 콘벤투스에서 이용만 당하고 낙동강 오리알 되게 생겼어. 오늘 콘벤투스 마케팅 본사에서 S 광고 기획 탑 매니지먼트급과 직접 접촉했다는 얘기가 들렸어. 워낙 윗선끼리 접촉한 거라 콘벤투스 마케팅팀도 모를 가능성이 커. 이게 단순히 접촉이든 아니든 사실이라면 하반기 광고 물량에 대한 비딩이 들어갈 수 있고 지금 컨설팅 제언 자체도 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그게 말이 됩니까? 어디서 들었습니까?”
태연하게 담배를 입에 물던 해웅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뚱딴지 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김현식 국장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했다.
“어디서 들으면? 네가 뒷조사라도 하게?”
“저도 S 광고 기획에 친구 있습니다. 제가 확실히 알아보죠.”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VIP끼리 오간 얘기야. 이건 사장님이 극비리에 알게 된 정보야. 우리 같은 실무선에서 알아 온 게 아니라고.”
전에 없이 무서운 목소리로 해웅의 말을 자르며 김현식 국장은 검지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고혈압 약을 달고 사는 그가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느꼈는지, 비틀거리며 해웅의 팔을 꽉 잡았다. 해웅은 다리가 풀린 제 상사를 부축해 화단 쪽으로 데리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