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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도시 20화

2. 서울, 광화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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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어진 메리어트계의 호텔은 내부에서 서울 중심부를 감상할 수 있어 일찌감치 광화문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고색창연한 금빛 건물 내부는 바닥에서 천정까지 통 유리창으로 마감되어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실내가 펼쳐졌는데, 통창 너머 광화문에서부터 경복궁에까지 이르는 풍광이 절경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김현식 국장이 예약한 레스토랑 ‘매화’가 나타났다. ‘매화’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쓰리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일본 유학파 쉐프 제임스 장이 야심차게 선보이는 일식과 한식의 퓨전식 퀴진 요리가 특히 인기였다.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입구는 명상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무 빗살로 가려진 벽은 바깥으로는 서울 중심부가 토해 내는 소음을 단절하고, 백색 가시광선만을 내부로 허용하여 수도자의 침실처럼 적요했다. 무두질로 다져진 듯한 먹색 현무암과 은은한 연둣빛 난이 고요한 명승에 미적 온기를 보탰다.

“여기 정말 끝내주는데요.”

크리스는 이마에 흐트러진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흥분에 들뜬 얼굴로 내부를 감상했다. 어지간히 좋은 곳은 다 가 봐서 감흥이 없을 법도 한데, 그는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지배인이 미리 예약해 둔 자리로 해웅과 일행을 안내했다. 도착하기 전에 미리 주문 해둔 덕에 자리에 앉자마자 코스 순서대로 요리들이 빠르게 준비되었다. 연어 타다키와 크리스피 문어, 참치 피자를 시작으로 구운 관자와 한국식 마늘, 메로구이와 초밥 플래터, 토반 한우 안심과 감자 퓨레로 구성된 비즈니스 런치가 순서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요새 초밥을 즐기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여름철이고 하니 꺼리는 분도 계실 것 같아 스테이크도 주문했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함께 먹는 게 한국인들 음식 문화입니다. 자, 드시죠.”

김현식 국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해웅은 배가 고팠던지라 연어 타다키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해웅의 옆에 앉은 크리스는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떠들어 댔던 것에 비하면 젓가락질하는 폼이 영 서툴렀다. 정식으로 젓가락 사용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저런 자세로 과연 그동안 어떻게 아시아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결국 김현식 국장이 연어 타다키를 접시에 올려 주었고 지배인에게 따로 포크를 요청했다. 그러나 진땀을 빼면서도 크리스는 젓가락질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 이게 왜 이렇게 잘 안 될까요. 아직까지도 서툰 걸 보면 젓가락질 잘하기는 영 그른 것 같습니다.”

반면 시제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젓가락질에 능숙했다. 정식으로 배운 것처럼 우아하고 날렵하게 젓가락을 사용해 타다키를 먹어 치우고 메로구이의 살을 발라냈다.

“메로구이의 단맛을 좋아하지만, 전 예전에 먹어 본 한국식 고등어구이의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맛이었습니다. 일본 음식이 간장 베이스로 단맛을 조려 낸다면, 한국 음식은 재료의 풍미에 거칠고 원초적인 짭조름한 맛을 이끌어 내는 것 같습니다. 그 가공되지 않은 투박한 짠맛에서 본연의 바다 냄새가 느껴진다고 하면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번 그 맛에 중독되면 한국식 해산물 요리만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우리 이사님, 잘생기신 데다 이렇게 해박하기까지 하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김현식 국장이 요리를 먹다 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댔다.

놀고 있네.

해웅은 헛웃음을 참으며 빈정거렸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무슨 음식 하나를 가지고 저렇게 미사여구까지 써 가며 예술 작품을 비평하는 것처럼 썰을 풀어 대는지 우스웠다. 앞에서는 아시아 음식의 우수성을 높이 사며 칭찬하기 바쁘지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게 음흉한 백인들 속성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해웅은 비틀린 속내를 억누르고는 말없이 제 앞에 놓인 음식에 열중하는 척했다.

사람들의 대화가 의미 없이 부유했다. 어느새 해웅은 대화에 참여하기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제 건너편에 앉은 남자를 주시했다. 매끄러운 테이블 매너와 교양 있는 말투로 상대를 존중하는 사교술이 인상적이었다. 회의실에서 오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제게 불쾌하게 굴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김현식 국장이나 류민주 대리의 말에 경청하는가 하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끌어와 대화를 풍성하게 이끌었다. 게다가 미리 공부해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의 풍미와 조리법을 구별하는 것을 보면 아시아 요리에 상당히 조예가 깊어 보였고 생선살을 정갈하게 발라 먹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와인과 고급 요리에 대한 기본 상식, 세련된 테이블 매너와 같은 것들은 사실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필수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웅은 음식에 집중하는 시늉을 하며 계속 시제를 관찰했다. 해산물을 꽤나 좋아하는지 시제의 젓가락은 초밥 플래터 쪽으로 자주 향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투명한 광어 살을 입에 넣고 굴리며 보석을 맛보듯 음미하더니 연이어 젓가락은 농어와 방어, 다랑어, 연어를 향했다. 화이트 와인으로 중간중간 입가심을 하며 생선 고유의 맛을 즐기는 입술은 미식가적 욕망으로 반질거렸다. 회의실에서 시종일관 무미건조해 보이던 얼굴이 미식의 즐거움으로 다채롭게 채색되었다. 건조하고 무례한 사내라는 첫인상과는 사뭇 다른 발견이었다.

남자는 큰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작고 앙증맞은 초밥들을 새 모이처럼 조금씩 음미하며 귀중한 것을 대하듯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맛을 감상했다. 해웅은 그를 둘러싼 시간만이 유독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처음 회의실에서 무례하게 굴었을 때에도 느릿하게 말하며 말 사이에 여유를 가지던 태도가 독특했다. 어쩌면 자연에 둘러싸여 느린 삶을 영유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제의 빈 잔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 주면서 김현식 국장이 한우 접시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이사님, 이것도 드셔 보시죠. 최상급 한우 채끝을 참숯으로 구웠는데 외국에서 오신 손님들이 한우를 한번 맛보면 다른 고기는 먹을 수 없다고 할 정도랍니다.”

김현식 국장의 극진한 어투에 해웅은 피식 새는 웃음을 흘렸다. 눈꼬리가 가늘어지며 김현식 국장이 노려보았다. 조용하게 달싹이는 입술이 해웅에게 무언의 경고를 내렸다.

‘더 고개를 바짝 조아리고 서역에서 온 사신들을 극진히 모시라는 거겠지.’

해웅은 젓가락으로 먹음직스럽게 구운 한우 스테이크를 집어 들어 올렸다.

“제가 이걸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데 이사님과 크리스 덕분에 오늘 굉장한 것을 맛볼 수 있어 영광입니다. 김현식 국장님 말씀대로 이게 보통 고기가 아닙니다. 저희 같은 서민들은 평소 접할 수 없는 진귀한 요리죠. 프랑스에 트러플과 달팽이 요리가 있다면 한국에선 한우 요리가 있습니다. 다들 꼭 드셔 보시기를 바랍니다.”

비아냥거리는 해웅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김현식 국장이 눈을 흘겼다.

“고기가 아주 입에 녹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스테이크가 질기지 않고 부드러울 수 있죠? 한국은 고기를 다루는 수준이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먹은 스테이크는 비할 바가 못 되는군요.”

크리스는 제 앞에 놓인 한우 스테이크를 놀랄 만한 속도로 먹어 치우고 있었다. 음식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양을 조절하는 시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문득 해웅은 육식과 사회학이 정말 구체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식이 상징하는 약탈과 지배, 힘의 논리는 서양 제국주의 문화와 백인 남성 중심 사회의 근본을 이루었다. 엄청난 속도로 고기를 먹어 치우는 왕성한 식욕의 이면에는 약탈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국장님. 시제랑 크리스가 이번 주말에는 서울 구경을 하고 싶다는데, 어디 추천해 주실 만한 데가 있을까요? 저는 그런 쪽으로는 영 젬병이라서요.”

류민주 대리가 다랑어 초밥을 입에 오물거리며 중요한 일을 상기시키듯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식 국장은 해웅을 슬쩍 흘겨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대리님은 그런 걱정 마십시오. 여기 서 차장이 유흥 전문 아닙니까. 소싯적에 강남 일대에서 이 양반 모르던 사람이 없습니다. 알아서 잘 가이드 해 줄 겁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