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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도시 12화
2. 서울, 광화문 (11)
“에이, 차장님. 그런데 차장님 솔직히 크긴 하죠. 우리나라에서 185센티면 크긴 크지. 징그럽다까지는 오버지만. 근데 차장님 사는 데 불편하진 않으시죠?”
“이쪽 공기 맑고 좋은데?”
해웅의 농담에 윤원희 대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미없다는 듯 못마땅한 투로 고개를 흔들어 대더니 또 무슨 즐거운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윤원희 대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참, 참! 난 시제 에크만이 내 타입이더라. 크리스 뭐시기? 그 사람은 좀 어딘가 차가운 기운이 있고. 시제 에크만 이사 그 사람 완전 모델 같고 멋지던데. 그 뭐지……. 에버크롬비 앤 피치에 나오는 모델 같아요.”
시제가 일어섰을 때 케이터링 테이블 주변에 모여 있던 마케팅 여사원들이 환호를 지르던 풍경이 떠올랐다. 해웅이 ‘에이, 밥맛 떨어지네’라고 중얼거리며 포크를 홱 내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원희 대리가 두 손을 꼭 붙들고 기도하는 자세로 말을 이어 갔다.
“류민주 대리한테 들은 바로는 시제 에크만 이사가 예전에 모델 했다는 말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뉴욕에서 패션 디자인 전공한 이 과장님이 시제 에크만을 화보에서 본 적 있다고 했대요. 나름 그쪽 업계에선 유명한 모델이었나 봐요. 정확한 소문은 아니지만요. 아, 그리고 시제 에크만, 스탠퍼드 나왔대요. 와~ 심지어 대학마저 스탠퍼드. 너무 멋지지 않아요?”
“너무 사대주의 아닌가요? 스탠퍼드가 뭐 별거라고.”
이세민 차장이 저도 모르고 볼멘소리로 한마디 하다가, 윤원희 대리의 눈이 매섭게 가늘어지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솔직히 우리도 다 학벌 괜찮은 편이잖아요. 윤 대리님도 K대 출신이시고, 해웅 차장님은 Y대 출신이시고…….”
“뭐, 그냥 그렇단 거죠. 누가 뭐 스탠퍼드에 목숨 걸었다고 했나. 재미없게 반응이 왜 이래. 사람 무안하게시리.”
“그래서, 그 현재시제인지 과거시제인지 하는 놈은, 뭐 하는 자식이래?”
해웅은 곤궁에 처한 세민 차장을 흘깃 쳐다보고선 화제를 전환했다. 윤원희 대리는 이세민 차장이 저를 좋아하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불쌍한 이세민 차장. 저 자식은 왜 하필 저렇게 까다롭고 눈 높은 윤원희 대리를 좋아하는 건지. 쯧. 해웅은 속으로 혀를 차며 이세민 차장의 울 것처럼 빨개진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시제 에크만은 스웨디시 미국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콘벤투스 CEO 가문과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는 건 분명한데 소문이 확실치 않아요. 지금 콘벤투스 마케팅 내부에서도 시제 에크만 때문에 난리도 아니래요. 회의 끝나자마자 임명희 팀장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는데 첫날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임명희 팀장이 아주 기분이 상했나 봐요. 돌아가는 상황이 꿀 잼이라고 영업팀은 약간 고소해하는 분위기고요. 들리는 말로는, 마케팅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고 대대적인 분석에 들어간다는 말도 있고. 안 좋은 분위기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 가십 말고, 제대로 된 팩트는 없어? 누가 보면 여기 연예계인 줄 알겠네.”
해웅이 따끔하게 한마디 하자, 윤원희 대리가 발끈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저도 모르게 너무 광고주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 싶어 그녀는 슬쩍 해웅의 눈치를 보았다. 해웅은 공과 사가 분명한 편이었다. 사생활이 어쨌든 간에 회사에 있는 동안 해웅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누군가의 뒷얘기를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건 해웅이 착해서라기보단, 남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 컸다.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별 흥미가 없었고, 자기 일이 아니거나 돈 버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음, 그런데 차장님, 저희 이런 소문도 유심히 들어야 할 거예요. 콘벤투스 돌아가는 일에 사장님이 지금 완전 귀가 쫑긋하셔서, 작은 소문이라도 알고 계시는 편이 나중에 상황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광고업 생리에 빠삭한 윤원희 대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가십성 정보라 할지라도 모두 긁어모아 최대한 광고주 내부 사정을 파악해야 하는 기획팀 입장에서는 한 톨의 정보도 아쉬운 판국이었다. 윤원희 대리가 기분 상한 속내를 감추고 새침하게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에 해웅은 저가 말이 심했다 싶었다. 해웅은 손을 뻗어 메뉴판을 윤원희 대리 손에 쥐여 주었다.
“뭐예요?”
“알았어. 삐지지 말고 예쁜 윤원희 대리가 먹고 싶은 걸로 후식도 잔뜩 시켜.”
“뭐야~”
“뭐긴 뭐야. 삐지지 말라는 거지.”
“와, 뒤끝 있다.”
해웅에게 저가 플레이 룸에서 삐지지 말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차장님은 직접 보니 어땠습니까? 저도 시제 에크만에 대해서는 좀 여러 가지 소문을 듣긴 했는데. 일하기 까다로울 거라고 마케팅팀에서 걱정하던데요. 그리고 이게, 아시아 지사가 폐쇄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서, 지금 내부적으로 좋은 분위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피 대리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해웅에게 말을 건넸다. 피 대리는 미국 토박이에 가까운 유학파 출신이었다. 해웅과 같은 대학교를 나오긴 했지만 Y대 국제학부에 합격해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한국어 한마디 쓰지 못했던 교포로, 사실상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에 가까운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기획1팀에서 가장 영어도 잘하고 밥보다는 베이글과 햄버거가 더 편한 검은 머리 외국인이나 다를 바 없음에도, 순박한 시골 청년의 생김새 탓에 촌놈이라고 놀림당하곤 했다.
피 대리가 콘벤투스 뉴욕 지사에 아는 지인이 있는 덕분에 해웅이 속한 기획팀은 콘벤투스 스웨덴 본사가 리오(LEEOT)에 브랜딩 컨설팅을 의뢰했고 결과에 따라 아시아 지사의 사업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정보를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 콘벤투스 한국 지사에서 김현식 국장을 통해 캠페인 분석 보고를 요청하자마자, 라이너스&매덥스는 바로 긴급 사태에 들어갔다. 라이너스&매덥스 사장이 긴급으로 콘벤투스 대표 이사와 전화를 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뒤늦게 접한 결과, 피 대리가 건너 들은 소문과 얼추 맞아 들어갔다. 워낙 비밀리에 진행된 사안이었는지 콘벤투스 한국 지사 내부에서도 밖으로 정보가 새지 않도록 쉬쉬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직접 보니 애새끼가 말하는 게 좀 싹수가 없던데.”
해웅이 간결하게 한마디 평을 하자, 토라져 있던 피 대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차장님…… 크크크.”
“왜, 걘 내 클라이언트 아니야. 난 광고주 욕한 적 없다.”
광고주 욕은 불문율이라더니, 해웅은 바로 선을 그으며 얼굴도, 말투도, 옷 스타일도 다 재수가 없다고 보탰다.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던데. 싹수없고 잘생긴 거, 어딘가 익숙한 묘사 같지 않아요? 흐흐흐, 이거, 이거, 사실상 동족 혐오 아닌가요?”
샐쭉하게 눈꼬리를 접으며 윤원희 대리가 빈정거렸다. 해웅은 졌다는 듯이 한 손을 제 가슴팍에 얹었다.
“동족 혐오? 솔직히 내가 더 잘생겼지.”
“어어, 본인이 싹수없는 거 알긴 아는구나.”
“그러는 윤 대리는 싹수없는 남자 별로라더니 시제 에크만인지 시답지 않은 애새끼인지는 왜 마음에 든다는 거야?”
“싹수를 넘어서는 비주얼에 감동해서요.”
윤원희 대리의 말에 이세민 차장이 풀 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잘생겼습니까?’라고 해웅에게 조용히 물었다. 잘생기긴 개뿔, 해웅은 코웃음을 쳤다. 몸만 커다래 가지고, 서양인 생김새가 다 그게 그거지. 뉴욕에 가면 그런 백인 남자는 길에 치이도록 많은데 뭐가 잘생겼다는 건지 해웅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윤 대리 눈이 좀 많이 낮네. 실망인데.”
점잖은 목소리로 해웅이 윤원희 대리의 취향에 타박을 놓았다. 파스타를 입에 문 채로 윤원희 대리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차장님이 왜 실망을 하세요. 웃기네.”
“내가 우리 윤 대리가 내 여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지.”
“아, 됐어요.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 꼰대질? 잘생긴 남자한테 눈길 가는 게 당연한 건데, 어쩌라고. 그리고 시제 에크만 이사님은 체격도 좋아서 야생 늑대 느낌 나고 좋던데요.”
“남자 보는 눈 좀 키워. 언제는 말 잘 듣고 곰 같은 남자가 좋다더니 갑자기 재수 애새끼인지 시제 애새끼인지 이름도 밥맛인 싹수가 잘생겼다고 끌리고 그래. 나쁜 남자 좋아하다가 인생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아아, 그래서 서 차장님 여자 친구분들이…….”
2. 서울, 광화문 (11)
“에이, 차장님. 그런데 차장님 솔직히 크긴 하죠. 우리나라에서 185센티면 크긴 크지. 징그럽다까지는 오버지만. 근데 차장님 사는 데 불편하진 않으시죠?”
“이쪽 공기 맑고 좋은데?”
해웅의 농담에 윤원희 대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미없다는 듯 못마땅한 투로 고개를 흔들어 대더니 또 무슨 즐거운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윤원희 대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참, 참! 난 시제 에크만이 내 타입이더라. 크리스 뭐시기? 그 사람은 좀 어딘가 차가운 기운이 있고. 시제 에크만 이사 그 사람 완전 모델 같고 멋지던데. 그 뭐지……. 에버크롬비 앤 피치에 나오는 모델 같아요.”
시제가 일어섰을 때 케이터링 테이블 주변에 모여 있던 마케팅 여사원들이 환호를 지르던 풍경이 떠올랐다. 해웅이 ‘에이, 밥맛 떨어지네’라고 중얼거리며 포크를 홱 내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원희 대리가 두 손을 꼭 붙들고 기도하는 자세로 말을 이어 갔다.
“류민주 대리한테 들은 바로는 시제 에크만 이사가 예전에 모델 했다는 말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뉴욕에서 패션 디자인 전공한 이 과장님이 시제 에크만을 화보에서 본 적 있다고 했대요. 나름 그쪽 업계에선 유명한 모델이었나 봐요. 정확한 소문은 아니지만요. 아, 그리고 시제 에크만, 스탠퍼드 나왔대요. 와~ 심지어 대학마저 스탠퍼드. 너무 멋지지 않아요?”
“너무 사대주의 아닌가요? 스탠퍼드가 뭐 별거라고.”
이세민 차장이 저도 모르고 볼멘소리로 한마디 하다가, 윤원희 대리의 눈이 매섭게 가늘어지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솔직히 우리도 다 학벌 괜찮은 편이잖아요. 윤 대리님도 K대 출신이시고, 해웅 차장님은 Y대 출신이시고…….”
“뭐, 그냥 그렇단 거죠. 누가 뭐 스탠퍼드에 목숨 걸었다고 했나. 재미없게 반응이 왜 이래. 사람 무안하게시리.”
“그래서, 그 현재시제인지 과거시제인지 하는 놈은, 뭐 하는 자식이래?”
해웅은 곤궁에 처한 세민 차장을 흘깃 쳐다보고선 화제를 전환했다. 윤원희 대리는 이세민 차장이 저를 좋아하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불쌍한 이세민 차장. 저 자식은 왜 하필 저렇게 까다롭고 눈 높은 윤원희 대리를 좋아하는 건지. 쯧. 해웅은 속으로 혀를 차며 이세민 차장의 울 것처럼 빨개진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시제 에크만은 스웨디시 미국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콘벤투스 CEO 가문과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는 건 분명한데 소문이 확실치 않아요. 지금 콘벤투스 마케팅 내부에서도 시제 에크만 때문에 난리도 아니래요. 회의 끝나자마자 임명희 팀장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는데 첫날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임명희 팀장이 아주 기분이 상했나 봐요. 돌아가는 상황이 꿀 잼이라고 영업팀은 약간 고소해하는 분위기고요. 들리는 말로는, 마케팅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고 대대적인 분석에 들어간다는 말도 있고. 안 좋은 분위기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 가십 말고, 제대로 된 팩트는 없어? 누가 보면 여기 연예계인 줄 알겠네.”
해웅이 따끔하게 한마디 하자, 윤원희 대리가 발끈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저도 모르게 너무 광고주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 싶어 그녀는 슬쩍 해웅의 눈치를 보았다. 해웅은 공과 사가 분명한 편이었다. 사생활이 어쨌든 간에 회사에 있는 동안 해웅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누군가의 뒷얘기를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건 해웅이 착해서라기보단, 남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 컸다.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별 흥미가 없었고, 자기 일이 아니거나 돈 버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음, 그런데 차장님, 저희 이런 소문도 유심히 들어야 할 거예요. 콘벤투스 돌아가는 일에 사장님이 지금 완전 귀가 쫑긋하셔서, 작은 소문이라도 알고 계시는 편이 나중에 상황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광고업 생리에 빠삭한 윤원희 대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가십성 정보라 할지라도 모두 긁어모아 최대한 광고주 내부 사정을 파악해야 하는 기획팀 입장에서는 한 톨의 정보도 아쉬운 판국이었다. 윤원희 대리가 기분 상한 속내를 감추고 새침하게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에 해웅은 저가 말이 심했다 싶었다. 해웅은 손을 뻗어 메뉴판을 윤원희 대리 손에 쥐여 주었다.
“뭐예요?”
“알았어. 삐지지 말고 예쁜 윤원희 대리가 먹고 싶은 걸로 후식도 잔뜩 시켜.”
“뭐야~”
“뭐긴 뭐야. 삐지지 말라는 거지.”
“와, 뒤끝 있다.”
해웅에게 저가 플레이 룸에서 삐지지 말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차장님은 직접 보니 어땠습니까? 저도 시제 에크만에 대해서는 좀 여러 가지 소문을 듣긴 했는데. 일하기 까다로울 거라고 마케팅팀에서 걱정하던데요. 그리고 이게, 아시아 지사가 폐쇄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서, 지금 내부적으로 좋은 분위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피 대리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해웅에게 말을 건넸다. 피 대리는 미국 토박이에 가까운 유학파 출신이었다. 해웅과 같은 대학교를 나오긴 했지만 Y대 국제학부에 합격해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한국어 한마디 쓰지 못했던 교포로, 사실상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에 가까운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기획1팀에서 가장 영어도 잘하고 밥보다는 베이글과 햄버거가 더 편한 검은 머리 외국인이나 다를 바 없음에도, 순박한 시골 청년의 생김새 탓에 촌놈이라고 놀림당하곤 했다.
피 대리가 콘벤투스 뉴욕 지사에 아는 지인이 있는 덕분에 해웅이 속한 기획팀은 콘벤투스 스웨덴 본사가 리오(LEEOT)에 브랜딩 컨설팅을 의뢰했고 결과에 따라 아시아 지사의 사업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정보를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 콘벤투스 한국 지사에서 김현식 국장을 통해 캠페인 분석 보고를 요청하자마자, 라이너스&매덥스는 바로 긴급 사태에 들어갔다. 라이너스&매덥스 사장이 긴급으로 콘벤투스 대표 이사와 전화를 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뒤늦게 접한 결과, 피 대리가 건너 들은 소문과 얼추 맞아 들어갔다. 워낙 비밀리에 진행된 사안이었는지 콘벤투스 한국 지사 내부에서도 밖으로 정보가 새지 않도록 쉬쉬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직접 보니 애새끼가 말하는 게 좀 싹수가 없던데.”
해웅이 간결하게 한마디 평을 하자, 토라져 있던 피 대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차장님…… 크크크.”
“왜, 걘 내 클라이언트 아니야. 난 광고주 욕한 적 없다.”
광고주 욕은 불문율이라더니, 해웅은 바로 선을 그으며 얼굴도, 말투도, 옷 스타일도 다 재수가 없다고 보탰다.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던데. 싹수없고 잘생긴 거, 어딘가 익숙한 묘사 같지 않아요? 흐흐흐, 이거, 이거, 사실상 동족 혐오 아닌가요?”
샐쭉하게 눈꼬리를 접으며 윤원희 대리가 빈정거렸다. 해웅은 졌다는 듯이 한 손을 제 가슴팍에 얹었다.
“동족 혐오? 솔직히 내가 더 잘생겼지.”
“어어, 본인이 싹수없는 거 알긴 아는구나.”
“그러는 윤 대리는 싹수없는 남자 별로라더니 시제 에크만인지 시답지 않은 애새끼인지는 왜 마음에 든다는 거야?”
“싹수를 넘어서는 비주얼에 감동해서요.”
윤원희 대리의 말에 이세민 차장이 풀 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잘생겼습니까?’라고 해웅에게 조용히 물었다. 잘생기긴 개뿔, 해웅은 코웃음을 쳤다. 몸만 커다래 가지고, 서양인 생김새가 다 그게 그거지. 뉴욕에 가면 그런 백인 남자는 길에 치이도록 많은데 뭐가 잘생겼다는 건지 해웅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윤 대리 눈이 좀 많이 낮네. 실망인데.”
점잖은 목소리로 해웅이 윤원희 대리의 취향에 타박을 놓았다. 파스타를 입에 문 채로 윤원희 대리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차장님이 왜 실망을 하세요. 웃기네.”
“내가 우리 윤 대리가 내 여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지.”
“아, 됐어요.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 꼰대질? 잘생긴 남자한테 눈길 가는 게 당연한 건데, 어쩌라고. 그리고 시제 에크만 이사님은 체격도 좋아서 야생 늑대 느낌 나고 좋던데요.”
“남자 보는 눈 좀 키워. 언제는 말 잘 듣고 곰 같은 남자가 좋다더니 갑자기 재수 애새끼인지 시제 애새끼인지 이름도 밥맛인 싹수가 잘생겼다고 끌리고 그래. 나쁜 남자 좋아하다가 인생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아아, 그래서 서 차장님 여자 친구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