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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도시 10화
2. 서울, 광화문 (9)
“차장님, 시네 아트에서 상영 중인 영화 괜찮던데 보셨어요? <프란시스 하>라고 제작1팀 김필서 카피가 추천했는데 재밌던데요.”
“노아 바움백 감독 영화?”
“아, 아시네요. 보셨어요?”
“하도 주변에서 떠드니 들어는 봤지. 제작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해? 저번에 현 CD는 레퍼런스로 가져오던데.”
“요새 뉴욕에서 제일 힙 하다잖아요.”
그놈의 힙, 힙. 어디든 힙 하다는 말을 갖다 붙이면 마법처럼 광고업계 사람들은 열광했다.
“얄팍해 보이던데.”
“얄팍하다니요! 제2의 우디 앨런이라고 뉴욕 인디영화계 흔드는 감독 작품인걸요.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위트 있게 보여 주던데요. 몰입감 있고 지나치게 마이너하지도 않고요. 90년대의 청춘 스케치의 힙스터 버전이랄까요.”
윤원희 대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검색했다. 빨간 네일아트가 장식된 손가락이 종달새처럼 핸드폰 자판 위를 날아다녔다. 네이버 검색창에 뜬 영화 소개란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는 윤원희 대리에게서 평소 보이지 않는 진지함마저 느껴졌다. 해웅은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꺼내다 윤원희 대리의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로즈 골드 빛 링을 발견했다.
“윤 대리, 남친 생겼어?”
“어머. 언제 생겼는데 지금 물어보세요. 이거 백일 반진데.”
“까르띠에 러브 링? 꽤 비쌌을 텐데. 남자 친구가 돈 좀 있나 봐?”
“백일 반지로 맞췄었죠. 사실 얼마 전에 크게 다투고 연락 없이 흐지부지 헤어졌는데, 반지가 예뻐서 끼고 다니고 있어요.”
“남자 친구가 있었는지도 몰랐네. 아니, 말했던가?”
“남친 생기자마자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어요. 차장님 저한테 관심 없으시잖아요.”
윤원희 대리의 새초롬한 대꾸에 해웅은 어색함을 무마하려 애교를 부리듯이 슬며시 웃었다. 그런 해웅을 보고서 윤원희 대리는 입을 삐죽이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마침 좋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악!!”
해웅이 손가락 사이에 끼웠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화들짝 놀란 제 스스로가 민망했는지 해웅이 몸을 굽혀 담배를 줍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네.”
“저 몰래 임신하셨어요?”
“나 몰래 남친 사귄 윤원희 대리만 할까?”
윤원희 대리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한껏 예쁘게 꾸민 단아한 스타일의 여성의 사진을 크게 확대하더니 신이 나서 해웅에게 보여 주었다.
“어때요? 소개팅해 드릴까요? 이 친구, 키도 크고 예뻐요. 170센티가 넘나 아마? 그래서 키 큰 남자를 찾는데 쉽지 않대요. 차장님 키가 대략 180센티 중반이시죠?”
“마지막으로 쟀을 때가 185센티였지, 아마.”
“차장님이 오케이 하시면 바로 해 드릴게요.”
“하하하. 고민 좀 해 보고.”
해웅은 에둘러 거절을 표현했다. 윤원희 대리는 해웅이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사실을 떠올렸다. 회사 사람들은 해웅이 연애를 하고 있는 사실보다 연애를 하고 있지 않는 기간에 주목했다. 그의 일상에서 여자 친구가 없는 기간은 매우 드물었고, 해웅이 헤어졌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의 앞에 물어다 놓으려는 소개팅이 줄을 이었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이 잘생긴 얼굴과 큰 키, 좋은 학벌을 두루 갖춘 30대 남자를 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긴, 차장님은 소개팅 안 해도 여자 친구가 끊이질 않았죠.”
“사실, 당분간 연애할 생각이 안 들어. 지금이 딱 좋거든.”
“차장님. 헤어진 지 얼마나 되셨죠?”
“6개월 전인가. 한 달 남짓 사귀다 끝나 버려서 사귀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네.”
“음, 차장님이 보시기엔 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연애는 끊임없이 하는 것 같은데요.”
“뭐…….”
해웅이 말없이 웃으며 담뱃불을 껐다. 본의 아니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 것 같아 쑥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해웅은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공유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야기를 들어 주는 편이었지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해웅의 연애사는 대체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주식, 경제, 업무와 같은 이야깃거리가 고갈될 즈음 곁들어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누가 그러던데. 여자들이 보기엔 딱 나쁜 남자라고.”
해웅이 실없이 대꾸하며 윤원희 대리의 질문을 슬쩍 비껴 나갔다. 다행히 해웅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윤원희 대리가 까르르 웃으며 물개박수를 쳤다.
“맞아, 맞아. 딱 봐도 마음고생 시킬 스타일이야. 전 차장님 같은 스타일이랑은 절대 연애 못해요. 말 짧지. 일할 때 보면 완전 까칠하지. 무심하게 상처 주는 말은 또 얼마나 잘하고. 그런데 얼굴 반반해서 인물값 하느라 여자들은 끊이지 않지…….”
“농담으로 한 소린데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오는걸 보니 평소에 정말 그렇게 생각했나 본데? 서운하게시리.”
해웅이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던지고서는 바닥에 두었던 짐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다 무슨 짓궂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윤원희 대리를 흘깃 쳐다보고서는 별안간 상체를 숙여 그녀의 얼굴 앞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돌발 행동에 놀란 윤원희 대리가 뒤로 주춤하자, 해웅의 얼굴에는 겸연쩍은 속내를 감춘 대신 한없이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내가 나쁜 남자같이 보여, 정말?”
윤원희 대리가 짜증이 난 나머지 해웅의 얼굴을 퍽 소리 나게 밀쳐 냈다.
“끼 부리지 말아요. 나한텐 안 통해요.”
피식 웃고 마는 해웅이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으로 걸어갔다. 윤원희 대리가 그의 뒤를 쫓으며 심술궂은 말투로 덧붙였다.
“딱 봐도 남한테 무신경한 데다 여자가 끊이지 않는 차장님을 어떻게 감당해요. 그리고 남자들은 얼굴값 하더라고요.”
“언제는 소개팅해 준다더니, 이젠 깎아내리는 거야?”
“흥, 알 게 뭐람. 지금같이 행동해 놓고서 좋은 말 듣고 싶어서요? 어디서 끼를 부려요. 저한테는 안 통해요. 전 제 말 잘 듣고 순종적인 남자가 좋아요. 제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순진한 곰 같은 스타일이요. 그리고…….”
“그리고?”
저만치 멀리서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던 해웅이 한쪽 눈썹을 찡그린 얼굴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끝을 흐린 말투 뒤에 또 무슨 비난을 할지 조금은 궁금한 표정이었다. 윤원희 대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전 옷 잘 입는 남자가 좋아요.”
“와, 그건 진짜 좀 상처다. 내가 옷을 그렇게 못 입어?”
해웅이 정말이냐는 듯 재차 물어 왔다. 오늘도 패션 감각이라고는 영 제로인 옷차림으로 PT에 참석해 놓고서는 뻔뻔하게도 자기 정도면 평균이라고 자신하는 남자의 전신을 윤원희 대리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쭉 훑었다. 이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차장님이 얼굴도 못생기고 일도 못했으면 우리 회사에서 진작 잘렸을 거예요. 사장님이 사원들 스타일에 얼마나 신경 쓰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광고업계 사람인데, 차장님은 좀 심각해요.”
윤원희 대리의 냉정한 평가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해웅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맞아. 윤원희 대리 말이 백 프로 맞아. 그래서 남자는 얼굴이야.”
“와, 자기 입으로 저런 말 하는 것 좀 봐. 녹음해서 팀에다 뿌리고 싶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해웅의 손끝에 반응하여 택시 한 대가 속도를 줄이며 그들 앞에 멈추었다.
한 걸음 앞서 문을 열어 주자 윤원희 대리가 치마 끝을 잡고 조심스레 차에 올라탔다. 김현식 국장의 몫까지 더해져 제법 부피를 차지하는 오디오 장비와 노트북 가방을 뒤 트렁크에 싣고 해웅도 차에 올라탔다. ‘을지로요’라고 윤원희 대리가 짧게 말하자, 택시 기사가 에어컨 온도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가에 늘어선 이팝나무에 숨어 날카롭게 울어 대는 매미 소리에 공명하듯 해웅의 이마에 덥고 습한 땀이 몽글몽글 흘렀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지독한 더위였다.
2. 서울, 광화문 (9)
“차장님, 시네 아트에서 상영 중인 영화 괜찮던데 보셨어요? <프란시스 하>라고 제작1팀 김필서 카피가 추천했는데 재밌던데요.”
“노아 바움백 감독 영화?”
“아, 아시네요. 보셨어요?”
“하도 주변에서 떠드니 들어는 봤지. 제작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해? 저번에 현 CD는 레퍼런스로 가져오던데.”
“요새 뉴욕에서 제일 힙 하다잖아요.”
그놈의 힙, 힙. 어디든 힙 하다는 말을 갖다 붙이면 마법처럼 광고업계 사람들은 열광했다.
“얄팍해 보이던데.”
“얄팍하다니요! 제2의 우디 앨런이라고 뉴욕 인디영화계 흔드는 감독 작품인걸요.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위트 있게 보여 주던데요. 몰입감 있고 지나치게 마이너하지도 않고요. 90년대의 청춘 스케치의 힙스터 버전이랄까요.”
윤원희 대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검색했다. 빨간 네일아트가 장식된 손가락이 종달새처럼 핸드폰 자판 위를 날아다녔다. 네이버 검색창에 뜬 영화 소개란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는 윤원희 대리에게서 평소 보이지 않는 진지함마저 느껴졌다. 해웅은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꺼내다 윤원희 대리의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로즈 골드 빛 링을 발견했다.
“윤 대리, 남친 생겼어?”
“어머. 언제 생겼는데 지금 물어보세요. 이거 백일 반진데.”
“까르띠에 러브 링? 꽤 비쌌을 텐데. 남자 친구가 돈 좀 있나 봐?”
“백일 반지로 맞췄었죠. 사실 얼마 전에 크게 다투고 연락 없이 흐지부지 헤어졌는데, 반지가 예뻐서 끼고 다니고 있어요.”
“남자 친구가 있었는지도 몰랐네. 아니, 말했던가?”
“남친 생기자마자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어요. 차장님 저한테 관심 없으시잖아요.”
윤원희 대리의 새초롬한 대꾸에 해웅은 어색함을 무마하려 애교를 부리듯이 슬며시 웃었다. 그런 해웅을 보고서 윤원희 대리는 입을 삐죽이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마침 좋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악!!”
해웅이 손가락 사이에 끼웠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화들짝 놀란 제 스스로가 민망했는지 해웅이 몸을 굽혀 담배를 줍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네.”
“저 몰래 임신하셨어요?”
“나 몰래 남친 사귄 윤원희 대리만 할까?”
윤원희 대리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한껏 예쁘게 꾸민 단아한 스타일의 여성의 사진을 크게 확대하더니 신이 나서 해웅에게 보여 주었다.
“어때요? 소개팅해 드릴까요? 이 친구, 키도 크고 예뻐요. 170센티가 넘나 아마? 그래서 키 큰 남자를 찾는데 쉽지 않대요. 차장님 키가 대략 180센티 중반이시죠?”
“마지막으로 쟀을 때가 185센티였지, 아마.”
“차장님이 오케이 하시면 바로 해 드릴게요.”
“하하하. 고민 좀 해 보고.”
해웅은 에둘러 거절을 표현했다. 윤원희 대리는 해웅이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사실을 떠올렸다. 회사 사람들은 해웅이 연애를 하고 있는 사실보다 연애를 하고 있지 않는 기간에 주목했다. 그의 일상에서 여자 친구가 없는 기간은 매우 드물었고, 해웅이 헤어졌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의 앞에 물어다 놓으려는 소개팅이 줄을 이었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이 잘생긴 얼굴과 큰 키, 좋은 학벌을 두루 갖춘 30대 남자를 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긴, 차장님은 소개팅 안 해도 여자 친구가 끊이질 않았죠.”
“사실, 당분간 연애할 생각이 안 들어. 지금이 딱 좋거든.”
“차장님. 헤어진 지 얼마나 되셨죠?”
“6개월 전인가. 한 달 남짓 사귀다 끝나 버려서 사귀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네.”
“음, 차장님이 보시기엔 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연애는 끊임없이 하는 것 같은데요.”
“뭐…….”
해웅이 말없이 웃으며 담뱃불을 껐다. 본의 아니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 것 같아 쑥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해웅은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공유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야기를 들어 주는 편이었지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해웅의 연애사는 대체로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주식, 경제, 업무와 같은 이야깃거리가 고갈될 즈음 곁들어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누가 그러던데. 여자들이 보기엔 딱 나쁜 남자라고.”
해웅이 실없이 대꾸하며 윤원희 대리의 질문을 슬쩍 비껴 나갔다. 다행히 해웅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윤원희 대리가 까르르 웃으며 물개박수를 쳤다.
“맞아, 맞아. 딱 봐도 마음고생 시킬 스타일이야. 전 차장님 같은 스타일이랑은 절대 연애 못해요. 말 짧지. 일할 때 보면 완전 까칠하지. 무심하게 상처 주는 말은 또 얼마나 잘하고. 그런데 얼굴 반반해서 인물값 하느라 여자들은 끊이지 않지…….”
“농담으로 한 소린데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오는걸 보니 평소에 정말 그렇게 생각했나 본데? 서운하게시리.”
해웅이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던지고서는 바닥에 두었던 짐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다 무슨 짓궂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윤원희 대리를 흘깃 쳐다보고서는 별안간 상체를 숙여 그녀의 얼굴 앞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돌발 행동에 놀란 윤원희 대리가 뒤로 주춤하자, 해웅의 얼굴에는 겸연쩍은 속내를 감춘 대신 한없이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내가 나쁜 남자같이 보여, 정말?”
윤원희 대리가 짜증이 난 나머지 해웅의 얼굴을 퍽 소리 나게 밀쳐 냈다.
“끼 부리지 말아요. 나한텐 안 통해요.”
피식 웃고 마는 해웅이 택시를 잡기 위해 대로변으로 걸어갔다. 윤원희 대리가 그의 뒤를 쫓으며 심술궂은 말투로 덧붙였다.
“딱 봐도 남한테 무신경한 데다 여자가 끊이지 않는 차장님을 어떻게 감당해요. 그리고 남자들은 얼굴값 하더라고요.”
“언제는 소개팅해 준다더니, 이젠 깎아내리는 거야?”
“흥, 알 게 뭐람. 지금같이 행동해 놓고서 좋은 말 듣고 싶어서요? 어디서 끼를 부려요. 저한테는 안 통해요. 전 제 말 잘 듣고 순종적인 남자가 좋아요. 제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순진한 곰 같은 스타일이요. 그리고…….”
“그리고?”
저만치 멀리서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던 해웅이 한쪽 눈썹을 찡그린 얼굴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끝을 흐린 말투 뒤에 또 무슨 비난을 할지 조금은 궁금한 표정이었다. 윤원희 대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전 옷 잘 입는 남자가 좋아요.”
“와, 그건 진짜 좀 상처다. 내가 옷을 그렇게 못 입어?”
해웅이 정말이냐는 듯 재차 물어 왔다. 오늘도 패션 감각이라고는 영 제로인 옷차림으로 PT에 참석해 놓고서는 뻔뻔하게도 자기 정도면 평균이라고 자신하는 남자의 전신을 윤원희 대리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쭉 훑었다. 이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차장님이 얼굴도 못생기고 일도 못했으면 우리 회사에서 진작 잘렸을 거예요. 사장님이 사원들 스타일에 얼마나 신경 쓰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광고업계 사람인데, 차장님은 좀 심각해요.”
윤원희 대리의 냉정한 평가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해웅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맞아. 윤원희 대리 말이 백 프로 맞아. 그래서 남자는 얼굴이야.”
“와, 자기 입으로 저런 말 하는 것 좀 봐. 녹음해서 팀에다 뿌리고 싶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해웅의 손끝에 반응하여 택시 한 대가 속도를 줄이며 그들 앞에 멈추었다.
한 걸음 앞서 문을 열어 주자 윤원희 대리가 치마 끝을 잡고 조심스레 차에 올라탔다. 김현식 국장의 몫까지 더해져 제법 부피를 차지하는 오디오 장비와 노트북 가방을 뒤 트렁크에 싣고 해웅도 차에 올라탔다. ‘을지로요’라고 윤원희 대리가 짧게 말하자, 택시 기사가 에어컨 온도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가에 늘어선 이팝나무에 숨어 날카롭게 울어 대는 매미 소리에 공명하듯 해웅의 이마에 덥고 습한 땀이 몽글몽글 흘렀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지독한 더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