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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해오가 석후를 향해 재차 뛰어들려 할 때, 해표가 해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주야, 곧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구나.]

[표 사형도 알고 계시지 않소? 해오 사형이 얼마나 끈질긴 사람인지를.]

[끈질긴 것만으로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해표는 석후의 쇄혼격으로 인해 해오가 네 걸음이나 물러나게 되자 매우 놀랐고, 그와 동시에 해오가 패배하게 될 것을 예견하였다.

해오는 석후의 쇄혼격에 격중당하기 직전의 다급한 상황에서 엄청난 양의 호신기(護身氣)를 끌어올려 양팔을 방비했다.

그럼에도 네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게 된 것은 석후가 펼친 쇄혼격의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호신기의 구결이 깨진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다시 말해 해오의 기혈이 뒤틀린 것을 방증하였다.

해표의 생각대로라면, 해오는 이미 기혈이 뒤틀린 상태에서 목숨을 내걸고 석후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해표는 그런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으나, 해오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소림과 해오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 해표 또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해오는 석후에게 적성환두를 출수할 때처럼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였다.

해오가 내디딘 땅은 처음 석후를 향해 접근할 때보다 얕게 파여 있었지만, 가공할 빠르기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없어 보이기에 도화원 내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의 움직임에서 큰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해오는 석후의 지척에 도달하였는데, 그 모습을 본 해표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폐목명심(閉目冥心)이라니… 사제, 자네는 정말로 죽으려 하는가.’

해오는 눈을 감은 채 석후에게 돌진하는데, 왼손과 오른손이 향하는 방향을 달리하여 합장을 하였다.

해오는 역근경의 절기 중 하나인 폐목명심의 구결을 운행하였다.

폐목명심은 기혈이 가닥가닥 끊어진 상태에서도 진신진력을 끌어올려 한 번에 쏟아 낼 수 있도록 해 주나, 한 번 시전하고 나면 그 뒤에는 단전이 깨어져 폐인이나 불구가 되는 파괴적인 구결이었다.

폐목명심으로 끊어진 기혈을 다시 붙여 체내의 모든 기력을 남김없이 끌어모은 해오는 연이어 만념집일(萬念集一)을 출수하였다.

만념집일은 초식 내에 허초 따위는 집어넣지 않고 모든 진력을 단 한 번의 출수에 집중하여 반드시 상대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경쾌함보다는 파괴력에 중점을 둔 수법이었다.

필사대적(必死大敵)을 맞이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동귀어진과 같은 방식의 수법인 만념집일이 해오의 손에서 펼쳐졌다.

엄청난 내력이 해오의 오른손 끝에서 피어올라 굉음을 내었다.

해오의 중단에서 손바닥이 하늘을 바라보며 펴져 있던 오른손이 석후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나가며 끝에 가선 손이 다시 쥐어졌다.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해오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네놈에게 패배하였지만, 우리 소림은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해오는 폐목명심에서 만념집일로 이루어지는 필살(必殺)의 초식을 펼침에도 석후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느끼기에 석후는 자신을 훨씬 상회하는 고수임이 분명하였고, 적어도 자신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면 뒤에 남은 해표와 해주가 석후와의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불살라 석후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형제들에게 뒤를 맡기려 하였다.

석후는 해오가 자신에게 재차 달려들 때 조금이나마 느려진 움직임에서 쇄혼격에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심장을 향해 뻗어 오는 해오의 주먹에서는 처음 펼친 초식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강력한 기운이 담겨 날아왔다.

작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석후였지만, 받아치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저 초식을 그대로 받아쳤다가는 분명 내상을 입게 될 것이다. 피해 내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를 가진 초식은 아니지만, 단순히 피하기만 해서는 초식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내력에 피해를 입을 것인데…….’

석후는 해오의 주먹이 자신의 심장 근처까지 다가옴에도 쉽사리 판단하지 못하였다.

아무런 방비도 못하고 해오의 만념집일에 격중당할 것 같은 순간, 석후의 몸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후는 해오의 주먹에 심장이 꿰뚫리기 직전에 발에 내력을 실어 땅을 거세게 찬 뒤, 공중에 몸을 띄웠다.

단순히 좌 또는 우로 피하기만 해서는 해오의 손에 가득한 경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오의 주먹은 석후의 잔상을 가르고 지나쳤지만, 여전히 해오의 주먹에는 엄청난 경력이 실려 있었다.

공중에 뜬 석후가 엄청난 속도로 해오를 향해 떨어지며 둥그렇게 말아 쥔 오른손을 내뻗었다.

지면을 향해 떨어지는 힘과 공중에서 허리를 회전시켜 반원으로 휘두르며 내뻗는 오른손의 힘이 더해져 해오의 오른 손목을 잡았다.

정확하게는 낚아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고는 그대로 지면으로 처박아 버렸다.

쾅!

엄청난 굉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흙먼지가 일어, 해오와 석후의 모습이 중인들에게서 사라졌다.

석후가 출수한 초식은 웅나어두(熊拏魚頭)였다.

곰이 냇가에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을 흉내 내어 만든 웅나어두는 상대방의 강력한 초식을 다른 방위로 흘리거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금나수법이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중인들은 둘의 모습이 흙먼지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자, 안력을 돋우어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였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흙먼지 속을 뚫고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석후였다.

그의 의복에는 흙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볼품없는 꼴을 면하지 못하였지만, 얼굴에 생겨난 피육(皮肉)의 상처가 전부였다.

“그는 죽었나……?”

해표가 흙먼지 속에서 벗어난 석후에게 물었다.

해표를 바라보던 석후가 고개를 저었다.

흙먼지가 옅어진 곳에서는 점차 해오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먹에 실려 있던 엄청난 경력에 의해 큰 원 모양의 흔적이 생겨난 흙바닥에서 해오가 꿈틀거렸다.

그의 오른팔은 완전히 부러졌는지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고, 오른손에 가득 실려 있던 경력이 지면과 부딪히며 생겨난 충격에 상체 전반의 뼈가 으스러져 연체동물처럼 바닥을 기었다.

단전이 파괴되어 온 혈맥이 끊어진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해오의 오공(五孔)에서는 검붉은 피가 끝없이 쏟아졌다.

해표가 자신의 뒤로 물러서 있던 현유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현유가 재빨리 움직여 해오에게 다가가 부축해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석후가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자, 해표가 그에게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배려해 주어 고맙네.”

해표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해주가 앞으로 나섰다.

“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오 사형이 이렇게까지 당하는 것은 처음 보는군. 그렇게나 지랄 맞은 성정의 해오 사형도 저런 꼴이 되고 나서는 조용해지는구만.”

해주의 말은 마치 해오를 비꼬는 듯했지만, 검집에서 검을 빼내는 그의 동작에서 피어오른 투기는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해주가 요대에서 빼 든 두 자루의 검은 장검도 아니고, 단검도 아닌 길이가 애매한 검이었다.

그것은 소태도(小太刀)였다.

해주가 소태도를 꺼내 들자, 우재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삼장로인 해주의 무공이 검술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나?’

개방의 지낭(智囊)이라 불리며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우재 역시 해주의 무공을 견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림 삼장로 중에 해표와 해오는 무림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또는 비무에 참석하여 명성을 널리 알렸지만, 해주는 소림 내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 중원의 많은 이들이 무공 실력을 궁금해 하였다.

우재 역시 그런 인물 중 한 명이고,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에 날카롭게 찢어진 두 눈이 반짝거렸다.

해주의 신법은 뭇 여성들이 산책하는 듯 하늘하늘거렸다.

경쾌한 것 같으면서도 느릿한 걸음걸이는 꽃밭을 노니는 것 같은 여성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고, 다양한 방위를 자유분방하게 헤집는 듯한 움직임은 산만하게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아낙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였다.

석후는 해주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눈으로 움직임을 보고 있음에도 해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해주가 펼치고 있는 기묘한 신법은 호분인신(虎奔人身)이라는 수법이었다.

호랑이가 사람으로부터 패주한다는 명칭의 호분인신은 본래 도주를 위해 만들어진 경쾌한 신법이었다.

하지만 해주는 호분인신의 경쾌함에 연대구품의 변화를 차용하여 공세를 취하기 위한 보법으로 변화시켰고, 그 결과 경쾌함과 수많은 변화가 뒤섞여 중복되지 않는 방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새로운 보법이 탄생한 것이었다.

본래 상대방이 접근하는 방위와 속도를 파악하고 그 움직임에서 펼칠 수 있는 무공이 무엇인지를 예상하여 대비하는 것이 방어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해주의 움직임은 지면의 모든 방위를 전부 밟기라도 하려는 듯했고, 속도 또한 제각각이어서 석후가 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해주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이 되지 않으니 석후의 입장에서는 먼저 해주에게 다가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어떤 방위로 접근할지 모르니 제대로 된 방비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날카로운 쇳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챙!

방위와 속도의 다채로운 변화 속에서 일순간 해주의 모습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해주는 순식간에 석후의 후방에 위치해 두 자루의 소태도를 휘둘렀다.

해주는 왼손의 소태도를 먼저 휘두른 뒤, 연이어 오른손의 소태도를 휘둘렀는데, 왼손에서 휘둘러진 소태도는 등을 보이고 있는 왼쪽 어깨를, 오른손에서 휘둘러진 소태도는 오른쪽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해주가 펼친 초식은 좌우편마(左右騙馬)라는 초식이었다.

후방에서 다가오는 과장된 소리의 첫 검격이 상대의 이목을 끌고, 그 소음 속에 실초를 숨겨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절초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