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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움직임이 점점 멎어가며 곧 숨이 끊길 정도가 되어서야 석후는 현벽을 그의 동료들이 쓰러져 있는 곳을 향해 집어던졌다.

“허억… 허억…….”

바닥에 쓰러진 채 넘어가기 직전이던 현벽이 숨을 몰아쉬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치고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더군.”

“개자식, 더 욕보이지 말고 그냥 죽여라!”

현벽의 말에 석후가 피식 웃었다.

“죽여 달라 애원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살고자 버둥거렸소?”

“그, 그건…….”

현벽이 석후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대답을 망설였다.

“당신이 소속된 곳에서 벗어나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으려 노력해 보시오. 현유가 당신보다 강한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것에 따라 더 솔직하게 행동함에 있소.”

“시끄럽다! 내 마음에는 오직 소림만이 자리하고 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크게 외친 현벽이 남은 진기를 모두 끌어올려 석후에게 뛰어들었다.

“정말이지 미련한 자로군.”

석후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뛰어드는 현벽을 슬쩍 피하고, 양손의 손바닥을 펴내어 좌우 갈비뼈에 일장씩 출수하였다.

“크악!”

이미 기혈을 뒤틀렸음에도 무리하여 움직인 현벽이 참고 있던 핏물을 내뱉으며 복부를 감싸 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다섯의 승려가 석후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

“가만두지 않겠다!”

곤을 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적수공권으로 달려드는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석후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갈비뼈를 모조리 부수기로 결정하였는지, 현벽과 같은 위치에 장법을 꽂아 넣었다.

마지막 한 명의 상체에 장법을 출수하려는 그때, 뒤에서 한 인영이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며 소리를 질렀다.

“멈춰라!”

해오였다.

해오는 석후가 자신이 십 년간 각고를 들여 고안한 육인나한진을 파훼할 때부터 냉정을 잃었는데, 직접 길러 낸 후인들까지 모두 불구로 만들 것처럼 보이자 더는 참지 못하고 개입하였다.

해오는 현 소림 내에서 역근경에 있어서 최고의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익힌 역근경은 기혈의 체내 운행을 통해 근골을 개조시키는 소림의 절학이었다.

다양한 진과 내력 운용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의 장기는 내가기공(內家氣功)이 아닌 외문무공(外門武功)이었다.

대나이신법(大挪移身法)이 절정에 달한 해오의 경신술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했다. 순식간에 석후의 지척에 도달한 해오는 거침없이 자신의 절기를 출수하기 시작하였다.

해오는 석후를 자신의 일 장 앞에 두고 적성환두(摘星換斗)를 펼쳐 내었다.

적성환두는 해오의 오른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른 무릎을 가슴팍 높이까지 치켜올리더니 크게 앞으로 내디뎠는데, 다섯 치가 넘도록 땅이 깊이 패어 있었다.

자신의 오른발과 지면과의 충격으로 생겨난 반발력을 이용하여 해오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석후에게 뛰어들며 동시에 모든 기운을 상체로 이동시켰다.

해오는 양손을 곱게 편 채 석후를 향해 휘두르는데 순간, 석후의 안면 지척에서 주먹으로 쥐어지며 양쪽 눈을 노리고 찔러 갔다.

손을 편 채로 휘두르는 것이 공기의 저항을 줄여 속도를 한층 더 빠르게 하고, 타격 지점에서 주먹을 쥐어서 순간적으로 큰 힘이 모이도록 의도한 해오였다.

하반신의 모든 힘을 상반신으로 이동시키고, 양손을 쫙 편 채로 펼쳐진 적성환두의 쾌속함은 두 눈으로 쫓을 수 없었으며, 주변의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소음을 동반하였다.

해오의 손에서 펼쳐진 적성환두는 하늘의 별을 뽑아 북두칠성의 위치를 바꾼다는 광오한 명칭에 어울리는 초식이었던 것이다.

해표와 해주, 그리고 우재를 제외한 나머지 중인들의 눈에는 해오가 펼친 초식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해오가 양손을 앞으로 뻗은 채 석후에게 안겨 드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양손을 교차시켜 휘둘렀음에도, 권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해오의 양손이 뻗어 있는 것처럼 잔상이 남았기 때문이다.

해오의 공세 밖에서 지켜보는 중인들의 눈에 잔상이 남을 정도의 속도를 석후는 자신의 지척에서 경험하는 중이었다.

석후는 자신을 향하는 해오의 양손이 어디를 노리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지척에 달한 해오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기감(氣感)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체내의 기운을 모든 부위로 얇게 퍼뜨려 기운이 와해되는 방향을 찾아내야 한다.’

해오가 손에 단도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예리한 무언가가 석후가 퍼뜨린 기들을 찢는 동시에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석후의 두 눈을 향해 날아왔다.

‘오른쪽이 먼저다!’

석후는 자신의 오른쪽 눈을 향해 해오의 왼손으로부터 발생한 기운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빠르게 고개를 왼쪽으로 한 번 돌렸다가, 해오의 오른손에서 발생한 예리한 기운이 느껴지자 급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해오의 양손이 석후의 안면을 스쳐 지나간 것은 그야말로 찰나였고, 그에 반응하여 고개를 양쪽으로 돌린 것도 촌초를 다투었다.

픽, 픽.

아주 작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피부가 갈라지는 소리였다.

석후는 해오의 적성환두를 완벽히 피해 내지 못했다.

촌초를 다투며 해오의 초식을 눈으로 쫓으려 낭비한 시간만큼 석후의 반응은 늦어졌고, 그것이 해오의 주먹이 석후의 양쪽 눈꼬리를 찢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툭, 툭.

석후의 양쪽 눈꼬리에서 발생한 출혈이 석후의 볼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 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석후가 피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해오는 해오대로 석후는 석후대로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해오는 자신의 제자뻘에 불과한 놈이 전력이 실린 초식을 피해 낼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석후는 자신의 안력(眼力)으로 파악하지 못할 속도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해오는 석후가 지금까지 상대한 인물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함을 가진 고수였다.

‘과연 소림의 장로라 이 말인가…….’

처음 겪어 보는 뛰어난 고수의 일격이 석후의 전의(戰意)를 들끓게 하였다.

눈가에서 시뻘건 선혈을 흘리며 해오를 향해 웃음 짓는 석후의 모습은 마치 흉신악살(凶神惡煞)을 연상케 하였다.

이번에는 석후가 먼저 움직였다.

자연으로부터 한 호흡을 체내로 흡수한 석후가 경신(輕身)한 움직임을 위해 대퇴부를 비롯한 하체 전반부로 내기를 빠르게 보냈다.

석후는 해오처럼 무릎을 높게 드는 동작도 없이 단순히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얼추 보기에도 해오의 것과 비슷한 만큼의 깊이로 땅이 파였다.

그러고 나서 석후의 신형이 사라졌다.

중인들이 보기에는 분명 석후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해오의 눈에도 석후의 움직임이 희끗하게만 보였을 뿐, 그의 신형이 온전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오는 무림에서 신법(身法)으로 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인물과 셀 수도 없을 만큼 대련한 경험이 있었다.

해오와 셀 수 없이 많은 대련을 한 이는 소림의 장문인이자 사형인 해종이었다.

해종이 해오와의 대련에서 즐겨 쓰던 수법은 연대구품(蓮臺九品)에 이은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였다.

해오가 겪은 해종의 연대구품은 소림의 절정 무공 중 하나로, 한 사람이 무려 아홉 명으로 보일 정도의 쾌속한 신법을 펼쳐 내어 상대로 하여금 무엇이 시전자의 본신(本身)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신법이었다.

해종을 무림 내 삼대 신법가로 만들어 준 연대구품을 실전으로 수없이 겪어 본 해오는 눈으로 잔상을 쫓기에도 어려운 석후의 엄청난 신법에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눈으로 상대를 쫓으려 한 석후의 대응과는 달리 해오는 두 눈을 감았다.

눈에 희끗하게나마 보이는 상대의 잔상이 오히려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있어서 방해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일깨운 해오는 석후가 자신에게 접근함으로써 변화하는 모든 것들을 파악하려 노력하였다.

해오가 눈을 감자, 잔잔한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석후의 의복에서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짧은 시간이 더 흐르자, 은은한 혈향이 해오의 정면에서 풍겨 왔다.

‘정면인가.’

얼굴에서 흘러내리던 혈향을 맡은 해오는 석후의 방위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정면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던 해오의 좌측 방위에서 공기가 일렁였다.

공기의 흐름이 일순간 변화하며 해오의 좌측 옆구리 한가운데를 제외한 모든 곳으로 공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좌측 옆구리다!’

눈을 뜬 해오가 좌측을 보자 자세를 잔뜩 낮춘 채 갈비뼈를 향해 오른쪽 어깨를 부딪쳐 오는 석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해오가 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석후의 어깨에 격중당하기 직전이기에, 몸을 움직여 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였다.

다급해진 해오는 내기를 잔뜩 끌어올린 양팔을 열십자로 만들어 좌측 갈비뼈 방향으로 내밀었다.

쾅!

“크윽…….”

석후의 어깨 공격을 양팔로 막아 낸 해오에게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석후와의 충돌로 네 걸음을 뒤로 물러나게 된 해오가 한껏 커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초식의 이름이 무엇이냐?”

놀란 눈으로 석후를 쳐다보던 해오가 물었다.

“쇄혼격(碎魂擊)이라 하오.”

석후는 해오와 맞서기 전까지는 자신이 체계화하여 수련한 무공을 출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고, 권을 내뻗고, 잡아 뜯는 움직임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오의 일격을 받아 본 석후는 그가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될 상대라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혼을 부순다라…….”

해오가 쇄혼격에 의해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양팔을 어루만지며 되뇌었다.

다시 자세를 바로 잡은 해오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네놈이 이번 초식을 버텨 낸다면 나의 패배를 시인하겠다!”

해오가 석후를 향해 외치며 다시 무릎을 높이 들어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