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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나무에 세 구의 시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이 일 때마다 흔들리는 모습은 매우 기괴한 것이었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무 밑동 근처에 동그랗게 모여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시체들은… 나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임에 틀림없다.’

석후는 시체를 보자마자 자신이 황지에서 죽인 세 복면인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분명 그들의 목숨을 끊어 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와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석후는 세 복면인에게 상체에 권격으로 관통상 내고, 갈비뼈를 부러뜨려 폐를 찔러 죽도록 하였다. 마지막 한명은 천정혈에 지법을 출수하여 동맥을 끊어 냈다.

시체들에는 석후가 펼친 무공에 의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주요 상흔의 주변으로 다른 기운들에 의해서 새로이 생겨난 상처들이 있었다.

자신이 그들을 상대하였기에 새로운 상흔을 알아본 거 지, 새로이 만들어 진 상처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어떤 고수가 본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무공에 당한 상처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였다.

시체들이 내걸린 나무 기둥에는 하나의 방이 붙어 있었다.



무림 동도들에게 소림의 문인이 본 련의 제자들을 해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본 련 제자들의 시체를 낙양 근처에 풍장(風葬)한다. 이들의 상흔을 한 치의 빠짐도 없이 눈에 담아 소림의 만행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사흘 뒤까지도 소림에서 어떠한 결백도 증명하지 못한다면, 본 련은 백년지약을 어긴 중원무림의 모든 문파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정사대전의 서막을 알리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암월련주(暗月連主).



‘정사대전… 이것이 그들이 노린 대탐(大貪)이란 말인가?’

“암월련이 제자들의 시신까지 남 앞에 보인다는 것은 소림의 제자가 한 짓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일세.”

석후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앞 열에 서 있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어떤 무공으로 인해 발생한 상처인지는 모르지만, 암월련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에는 그들이 소림의 만행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이네.”

“다른 건 몰라도 천정혈에 상처를 입고 죽은 시체는 소림의 대력금강지(大力金剛指)에 격중된 것이 확실하네. 일전에 호남에 들러 형산과 소림의 일대 제자들의 비무를 견식할 기회가 있었다네. 그때 형산의 일대제자가 소림의 대력금강지에 격중되어 비슷한 상처가 난 것을 똑똑히 기억하네.”

세 시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부분의 중인들은 소림의 제자가 흉수라는 것을 사실시하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모두 비켜서시오!”

소림 문하로 보이는 사내가 날렵한 경공을 펼쳐 다가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순식간에 군중이 모여 있는 곳에 도달한 그 사내는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나무 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군중들을 양옆으로 밀어내어 길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온 길을 뒤돌아보며 합장을 한 채 섰다.

석후와 현풍이 그 사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보자, 그곳에서는 소림과 개방의 인물들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걸이에서 다급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표정에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여유로움까지 느껴졌다.

나무 지척에 도달한 그들의 인원은 소림 제자 육 인에 개방도 삼 인으로, 총 구 인이었다.

개방도 중에는 우재도 있었다.

그는 의뢰를 위해 타지로 나가 있는데, 석후에게는 의뢰와 관련한 연통 하나 없더니 소길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시체들을 내려라.”

위엄있는 목소리로 소림의 한 인물이 말했다.

그는 하얗게 변색되어 노년임을 알려 주는 눈썹만큼이나 높은 배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소림의 제자들은 그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나무 위에 올라 시체를 매달고 있는 줄을 끊었다.

털썩, 털썩, 털썩.

세 구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들은 시체를 들고 다시 길을 떠났다.

‘우재가 나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낙양을 떠난 뒤로 아무런 연통이 없더니, 언제 다시 이곳으로 들어와 있던 것일까?’

석후가 의문에 가득 차 걸음을 옮기는 우재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석후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의뢰와 관련하여 무슨 말이라도 전해 줄 것이라 생각한 석후의 예상과는 다르게, 우재는 살짝 미소만을 보인 채 소림의 제자들과 뒤섞여 낙양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낙양에 도착하는 즉시 우재를 찾아가 보아야겠군…….’



석후와 현풍이 돌아온 육개에서는 다른 이들이 둘의 몰골을 보자,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창고에 들어가 있던 대석이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밖으로 나오자, 석후와 현풍이 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육부(肉部) 배달을 위해 낙성루에 들렀을 때, 그곳에 도적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스승님.”

“해서?”

“그래서… 급히 달아나는 바람에 고기를 챙겨 오지 못하고, 잔금 또한 받아 오지 못했습니다.”

창고에서 막 나와서인지 대석에게서는 차디찬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다치지는 아니하였느냐?”

엄하게 혼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현풍이 대석의 따듯한 말에 놀라 고개를 잠시 들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네, 스승님…….”

“그럼 되었다. 애초에 낙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손해 볼 위험이 있는 일이었다.”

효율적인 도축을 선호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손해 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자신의 스승이기에 분명 석후와 자신을 엄하게 혼낼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현풍이었다.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이번 일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순간, 긴장이 풀려 현풍의 다리가 축 늘어지자, 그 모습을 본 대석이 말했다.

“쯧… 고생했을 터인데, 둘은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석은 다시 창고로 들어갔다.

“현풍 형님 걱정만큼 대석님이 엄격하시지는 않구려.”

긴장이 풀려 몸을 제대로 못가누고 있는 현풍을 부축해 주며 석후가 말했다.

“스승님의 속을 누가 온전히 알 수 있겠느냐. 이 정도에서 이번 일이 마무리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당분간은 더 열심히 일을 하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고되게 일을 해야 할 터이니,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쉬거라.”

말을 마친 현풍이 방에 들어가서 눕자, 석후는 걸음을 옮겨 육개 밖으로 나섰다.

그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개방이었다.

‘우재가 낙양에 들어왔음에도 의뢰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없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하구나.’

석후는 자신의 의뢰가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기에 휴식도 취하지 않고 개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개방의 대문 앞에는 오늘도 거지들이 누워 있었다.

석후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실어 개방의 대문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맡긴 의뢰의 진행 상황을 들으러 왔소!”

주변 공기를 울리는 석후의 목소리에 거지 여럿이 눈을 번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에게 의뢰를 맡겼소?”

거지 중 한 명이 석후에게 물었다.

“청효(靑梟) 우재요.”

“잠시 기다리고 계시오.”

석후의 대답을 들은 거지가 부리나케 대문을 열고 본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약 일각 즈음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거지는 다시 본단 밖으로 나왔다.

“청효께서 의뢰는 모두 해결하였으니, 내일 묘시(05시∼07시)경 연통을 보낸다고 하셨소. 그것에 적힌 장소로 의뢰의 잔금을 가지고 나오라 전해 달라 하셨소.”

“지금 의뢰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였소?”

두 눈이 커진 석후가 들뜬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렇소, 청효께선 당신의 의뢰가 해결되었다고 하셨소.”

‘드디어… 복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구나! 소길에서 그가 나를 보고 미소 짓던 것은 의뢰를 해결했기 때문인가 보군.’

의뢰를 맡겼음에도 세 달이 넘도록 연락이 없기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석후는 이내, 답답함이 해소됨과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던 석후가 가벼운 걸음을 옮겨 육개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새까만 어둠이 몰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시(23시∼1시)경, 육개 내에 마련된 침소에서 한 인영이 방을 나섰다.

그는 현풍이었다.

후가 육개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본 현풍은 휴식을 취하기 전에 다시 자신의 방을 나서 스승인 대석을 찾아갔다.

현풍이 오늘 벌어진 일의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자 대석이 말했다.

“개방에 찾아가 우재에게 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거라.”

육개를 낙양 최고의 푸줏간으로 만들기까지 대석의 완벽주의적 성격과 냉정함이 큰 역할을 해 왔다.

오늘 현풍의 이야기대로라면, 후라는 존재 때문에 육개가 손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석후는 도축 실력이 뛰어나고 육개에 필요한 인재임이 분명하지만, 대석의 성격은 같은 실수로 인한 손해를 두 번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 번의 실수는 실수로서 끝날 수 있지만,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은 실수가 아닌 실책으로 여기는 대석이었다.

그는 과거의 정체가 불분명한 석후로 인해 더 이상의 실책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현풍은 스승의 뜻을 따라 어둠에 몸을 묻고, 개방을 향하게 된 것이었다.

스승이 연통을 미리 보내 둔 덕분에 현풍은 쉽게 개방의 본단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늘 밤은 나를 찾는 손님이 유독 많구려.”

“낙양 내의 소란으로 많이 바쁠 걸 알면서도 찾아올 수밖에 없어 유감이오.”

현재 개방은 소림이 맞이한 사건 해결을 위한 협조 때문에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현풍이 가벼운 사과를 하였다.

“대석님께서 보내신 서찰은 이미 받아 보았소. 무엇 때문에 후라는 자의 과거를 궁금해하는지도 대충 알 것 같소만…….”

“오늘 낙양 밖 낙성루에서 있던 일을 알고 있소?”

현풍의 말에 피식 웃은 우재가 대답하였다.

“개방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마시오. 당신들을 공격한 그자들은 암월련의 수하들이었소. 그리고 당신은 자신이 어찌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소만?”

“후가 그들을 유인하여 나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소. 후는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순진하시구려. 그자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유인한 것이 아니오. 반대로 그들을 죽이기 위해 유인한 것이지.”

우재의 말에 깜짝 놀란 현풍이 재차 물었다.

“후가 그들을 모두 죽였단 말이오?”

“그렇소. 낙성루에 있던 암월련의 수하들은 총 열여덟 명인데, 쫓기는 와중에도 엽전을 던져 네 명을 죽였더군.”

“엽전으로 사람을 죽였단 말이오?”

“그렇소. 두 명은 당신과 함께 도망칠 때 죽이고, 나머지는 당신을 따라가던 이들에게 던져 죽인 것 같소.”

우재는 자신에게 따라붙던 두 명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던 것이 석후가 그들을 죽였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둘의 거리는 많이 벌어져 있고, 그 먼 거리에서 석후가 자신에게 따라붙는 둘을 어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납득하지 못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열네 명은 모두 잔인한 수법에 목숨을 잃었소. 특히 한 명은 몸통에 양팔이 붙어 있지 않았는데, 고문을 마친 뒤 치료까지 해 준 모양이더군. 그자는 결국 늑대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지만…….”

“무엇 때문에 고문을 했단 말이오?”

“이 정도의 이야기만 듣더라도 점점 후라는 사내에 대해 궁금증이 고조되지 않소? 나 또한 일전에 그에게 매우 큰 흥미를 느꼈소. 지금 그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할 것은 이해하지만, 내일까지는 기다리시오. 내일 묘시(5∼7시)경이면 속 시원히 알게 될 터이니.”

말을 마친 우재의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가 더욱 가늘어지며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