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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겁을 잔뜩 먹은 눈으로 석후를 흘깃거리다 땅바닥에 달라붙어 움찔거리고 있는 일관을 바라보았다.

석후와 눈이 마주치자, 악귀라도 대면한 듯 경기를 일으키며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끌고 바닥을 기는 일관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석후는 두 다리의 뼈가 으스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사내를 질질 끌고 가더니, 백 년은 족히 살았을 법한 거대한 나무가 있는 곳 앞에 멈추어 섰다.

축 늘어진 채로 석후의 손에 의해서 질질 끌려가는 일관의 모습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또는 돼지처럼 보였다.

석후는 거대한 나무에 일관의 등을 기대게 하고 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묵이와 영이를 구해 내기 위해 황지에서 죽인 인물들이 암월련의 인물들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왜 그것을 소림의 제자가 했다고 방을 붙인 것인지를 알아내어야 한다.’

석후는 이제 그의 입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어릴 적 분야에 관계없이 다양한 서책을 본 석후는 고문과 형벌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머릿속에 고책비록(拷策秘錄)이라는 서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무릇 입이 무거운 자의 입을 열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도 즉답할 수 있을 만한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처음이다. 우선 입을 열도록 만든다면, 첫걸음마를 뗀 아이가 계속 걷고자 하는 것처럼 입을 열게 될 것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일관은 간단한 대답에도 입을 열지 않기로 결심한 것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석후는 기다리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달달 떨리고 있는 그의 오른쪽 손목 한가운데에 지법을 출수하여 뚫어 버렸다.

“끅…….”

외마디 신음과 동시에 뚫린 구멍에서 흐르는 선혈이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다시 물은 석후의 질문에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석후는 이번에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번엔 사내의 반대쪽 손목에 지법을 출수했다.

일관은 이미 마음을 독하게 먹고, 엄청난 고통에도 신음을 눌러 참았다.

‘항상 서책이 옳은 것은 아니로군. 가벼운 질문에도 쉽게 입을 열지 않다니…….’

이후 석후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팔과 어깨에 몇 개의 구멍을 더 뚫어 버렸을 뿐이다.

어떠한 신음도 내지 않던 사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암월련의 말단에 불과한 내가 아는 정보는 없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비장하게 말한 그는 눈까지 감아 버렸다.

고통과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면서도 눈을 감아 버리는 그의 행동에 석후의 표정이 더욱 무섭게 변하였다.

“정보 따위는 이제 나도 필요 없다. 네놈이 고통에 신음하며 최대한 오래 버티다 죽도록 해 주겠다.”

석후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어 검붉은 선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그의 손목과 어깨에 고루 바르더니, 천으로 상처를 감아 지혈하였다.

“출혈로 쉽게 죽어 버리면 곤란하지.”

지혈을 마친 석후는 뼈가 잔뜩 뭉개져 흐물거리는 일관의 오른쪽 무릎을 향해 자신의 발을 가져갔다.

“너무 쉽게 기절하지는 않으면 좋겠구나.”

말을 마친 석후는 그대로 일관의 오른쪽 무릎을 눌렀다.

우두둑―

단순히 발로 누르는 행동이지만, 이미 부러져 있던 일관의 무릎 뼈가 가루가 되어 으스러졌다.

“끄아아아악!”

석후는 무릎에서 멈추지 않았다.

무릎 뼈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발로 짓누르던 석후는 바로 아래 정강이를 밟기 시작했다.

“아아악! 그만! 그만하시오!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하겠소! 그러니까 제발…….”

사내가 눈물과 콧물, 그리고 땀이 범벅인 얼굴로 애원하였다.

일관의 애원에 석후는 발을 떼었다.

“너희가 써 붙인 방을 보았다. 그 방에 적힌 인물들은 내가 죽인 자들이냐?”

“마… 맞소. 당신이 황지에서 죽인 자들과 추격하다 죽은 쌍살인랑이오.”

“왜 내가 저지른 살행을 소림의 제자로 뒤바꾸어 방을 써 붙인 것이냐?”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우리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오.”

일관의 대답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한번 저은 석후가 다시 발을 들어 정강이에 가져가려고 하자, 그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저… 정말 나는 소림의 제자가 한 짓으로 방을 붙인 이유를 모르오. 난 암월련 소속일 뿐이지, 련주의 제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소. 단지 이번 계략의 명칭이 소실대탐(小失大貪)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오.”

‘소실대탐?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닌 소실대탐이란 말인가…….’

석후가 꽤나 오랜 시간 흐르도록 별다른 질문 없이 상념에 빠져 있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것은 전부 다 말한 듯 하오만…….”

“방에 적힌 내용에 제자와 수하를 나누어 적어 두었다. 너는 암월련의 소속일 뿐이라고 하니, 관과 그의 무리들은 수하가 되는 것이냐?”

“그렇소… 련주의 제자들은 모두 복면을 착용하고 있소.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하거나 자신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전투를 나설 때가 아니라면, 모두 복면을 착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

‘복면인들이 련주의 제자라는 것이군.’

“련주의 제자는 몇 명이나 되는 것이냐?”

잠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위로 올리던 사내가 뒤늦게 대답했다.

“어… 내가 알기로는 예순 명쯤 될 것이오. 나도 그들 모두는 본 적이 없고, 전해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소. 그들 육십 명은 련 내 각기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오. 그래서 그들을 직속으로 이끄는 자들의 명을 받으며 움직인다고 알고 있소.”

“련주의 제자들은 소속이 왜 나뉘어져 있는 것이냐?”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소. 다만, 련 내의 간부들이 그들에게 련주의 명을 직접 하달한다고 알고 있소. 우리는 단순히 명령을 이행할 뿐이오.듣기로는 련주는 제자들 또한 독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련의 간부들만 간간히 독대가 가능하다고 하오.”

“련주와 간부들의 정체는 무엇이냐?”

“련주의 제자들도 간부들의 정체를 모르거늘 어찌 우리 따위가 알 수 있겠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련주와 간부들은 엄청난 무공의 고수들이라는 것이오. 제자들마저 앞에서는 엄청난 위압감에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하더이다.”

석후는 꽤나 긴 시간 동안 일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느라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각(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석후가 일관의 가까이 다가갔다.

“왜… 왜 그러는 것이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았소?”

“난 네놈을 살려 둔다고 약속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석후는 일관에게 다가가 지혈해 둔 양팔을 몸통에서 떼어 버렸다.

“끄악!! 이 빌어먹을 자식아!!”

일관이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석후를 향해 욕지기를 내뱉었다.

“네놈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 냄새를 맡고 들짐승이 모여들 것이다. 짐승들에게 천천히 물어뜯기며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라.”

석후는 그 말을 끝으로 일관의 양팔을 들고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풍과 만나기로 한 화오곡으로 이동하는 석후의 머릿속에서는 소실대탐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소실대탐…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벌인 살행을 소림의 제자가 한 것으로 거짓말을 하여 그들이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일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대입해 보는 석후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상념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석후는 생각을 멈추고 현풍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석후는 한 시진(2시간)쯤 지나서야 화오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풍은 진즉에 도착한 건지, 나무 밑동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형님…….”

“무사했구나, 후야.”

현풍은 석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것이냐?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한 것이냐. 덕분에 살아남더라도 네가 죽으면 내 마음이 정말 편했겠느냐?”

현풍의 진심 어린 걱정에 석후가 살짝 미소 지었다.

“둘 다 살아남았으니 다행인 것 아니오.”

“그래… 어찌 되든 간에 살아남았으니 된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자들이 왜 갑자기 칼을 빼 든 것인지 도통 모르겠구나. 분명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간사한 도둑놈들이 대금을 지불하는 척 안심시키고 우리를 죽이려 했나 봅니다. 여기서 이렇게 떠들지 말고, 얼른 육개로 돌아가서 상황을 알려야지요.”

현풍의 말에 능청스레 대답한 석후가 그를 이끌고 육개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현풍은 아무 말 없이 따라 걸었으나 계속 주루에서 느낀 석후의 이상한 모습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분명 대평이라는 자는 대금을 지불하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은자 주머니까지 꺼낸 사람이 갑자기 후를 보고 칼을 빼 든 것이다. 주루 안에서 후의 표정도 이상하였고… 스승님께 따로 말씀을 드리는 편이 육개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구나.’

현풍은 후가 개방의 소개로 육개에 들어올 때, 뛰어난 도축꾼인 것 같아 속내로 매우 기뻐하였다.

하지만 같이 지내 본 후는 절대로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법이 없으며, 육개 내의 다른 이들과도 적정선 이상의 친분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현풍 자신은 석후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개중에는 의문스러운 구석이 많은 석후의 과거를 의심하는 자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 자들을 꾸지람하고 뒤에서 몰래 석후를 챙기던 현풍이었지만, 오늘과 같은 일을 당하고 나니 스승님께 의문스러운 사실을 고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었다.

현풍과 석후는 그들대로 각자 상념에 깊이 빠진 채 낙양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화오곡에서 걸음을 옮긴 지 반 시진 즈음 되었을 때, 그들은 낙양의 외곽 마을인 소길(小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곽임에도 낙양을 들어서는 길목과도 같은 마을이기에 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후야, 살기 위해 죽을 듯 뛰었더니 갈증이 무척이나 심하구나. 이곳에서 잠시 목이라도 축인 뒤에 다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형님 안색을 보아하니 조금이라도 쉬다가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긴 하오.”

많이 지쳤기 때문인지, 안색이 흙빛이 되어 있는 현풍을 배려하며 석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지친 걸음을 뒤로하고 소길에 들어서자, 평소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많은데… 어째서인지 마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이곳을 자주 오가던 현풍은 평소 느끼지 못한 마을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둘이 소길 내의 주루를 들르기 위해 마을 한복판을 지나고 있던 중, 현풍이 무언가를 보고는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기겁을 하였다.

“허억…….”

현풍의 시선이 멈추어 있는 곳에는 세 구의 시체가 나란히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