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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육개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정신없이 흘러갔다.
인시경 생물(生物) 상태의 소가 도착하면, 멱을 따서 거꾸로 매달아 피를 빼 두었다.
빙굴(氷窟)과 같은 창고에 거꾸로 매달아 둔 소의 피가 모두 빠지면, 묘시경 도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루치의 소들을 모두 도축하고 나면, 배달 업무가 남아 있었다.
육개에 고기를 예약해둔 가게들이 개시 준비를 마치기 전까지는 무조건 도축된 소를 가져다주어야만 하기에 진시까지는 모든 배달을 마쳐야 했다.
석후가 육개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어느덧 삼 개월 하고도 열흘이 지나 있고, 우재에게서는 여전히 어떠한 연통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같은 일정을 반복하던 석후는 대석의 첫째 제자인 현풍(玄風)을 따라 도축을 모두 마친 소들을 배달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향루(美香樓)가 이처럼 장사가 잘 되던 적이 있었나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네요?”
미향루는 낙양루에 이어 낙양에서 두 번째로 큰 주루였다.
하지만 낙양루에 비하여 음식의 맛이 손색이 있다는 평이 주를 이루어, 이처럼 많은 중인들이 몰려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삼 개월 동안 미향루 앞을 지나며 처음 보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 진 석후가 현풍에게 묻자 그 또한 궁금해 하는 눈으로 중인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 또한 미향루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현풍과 석후는 아직 배달해야 할 곳이 두 곳이나 더 남은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수레를 끌며 중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현풍과 석후가 도착해서 중인들을 살펴보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미향루 입구에 설치된 계판(啓版) 앞이었다.
그곳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 어떠한 방이 붙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보시오. 대체 무슨 방이 붙었기에, 이리도 많은 사람이 계판 앞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이오?”
현풍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앞을 가리며 서 있는 거한에게 물었다.
“나는 까막눈이라 글을 읽을 줄 모르오. 다만,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소림의 제자 한 명이 다른 방파의 사람 수십 명을 상대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군.”
“소림의 제자가 수십 명을 죽였다구요? 그것이 사실이랍니까?”
현풍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거한에게 재차 물었다.
“아, 글쎄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계판에 붙은 방을 읽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더이다.”
현풍과 거한의 대화를 듣던 석후는 수레를 잠시 내려놓은 뒤, 인파를 헤치고 계판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계판 앞에 선 석후에 눈에 들어온 것은 웅장한 필체로 수놓아진 거대한 방이었다.
신원 미상의 소림 제자가 본련의 영지에 침입하여, 제자 오 인 및 사십에 달하는 수하를 해(害)하였기에 본 방을 붙여 고한다. 본련의 제자 오 인중 삼 인은 소림의 금강권(金剛拳), 현공권(玄空拳), 당랑조(螳螂爪)에 격중당해 각각 상반신에 관통상을, 하복부에 치명상을, 천정혈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나머지 오 인 중 이 인은 살인 후, 도주하는 소림 제자를 추적하던 중 대력금강슬(大力金剛膝)과 대력금강지(大力金剛指)에 격중당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 외 사십 명에 달하는 수하들은 시신이 심히 훼손되어 그들 중 어느 누구의 시체도 온전하다 할 수 없다. 이에 본련은 백 년간 유지해 오던 정사(正邪) 간의 지약을 소림이 어겼음을 천명하며, 그 책임을 직접 물을 것이다.
암월련주(暗月連主).
암월련이라는 흑도 무리가 써 붙인 방을 순식간에 읽어 낸 석후는 세 가지의 의문이 생겨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로 소림의 무공에 의해서 살인을 당한 것을 암월련주는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로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인가, 셋째로 소림의 제자 중 암월련주의 제자 다섯과 그들의 수하 사십 여명을 아무렇지 않게 해할 수 있는 살인광(殺人狂)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이었다.
그 속에서 석후는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암월련이 주장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소림의 입장은 몹시 난처해 졌다는 것이다.
암월련이 사실이라 주장하는 것들에 있어서 소림은 자신들의 제자가 방에 적힌 내용과 같이 살인을 하였든, 하지 않았든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어떤 일에 있어서 사실 여부를 떠나 고해진 내용에 반박하기 위한 결백 증명은 어려운 법이었다.
이제 소림은 정사 간의 백년지약(百年之約)을 깨뜨린 것에 대한 결백을 암월련에게 뿐만 아니라, 정파 동도에게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무림이란 참으로 미묘한 균형으로 맞추어져 있구나. 백 년을 유지해 오던 평화가 단 한 명의 인물에 의해서 깨어지다니…….’
석후는 상념에 빠진 채 점점 늘어나는 군중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방을 읽어 보았는가? 무엇이라 적혀있던가?”
현풍은 육부를 다루며 다져진 체격에도 불구하고, 힘에 부쳐 도저히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지 못하여 석후에게 묻고 있었다.
“거한에게 들은 내용과 비슷합니다. 다만, 암월련이라는 집단에서 소림이 자신의 제자들을 살인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나 봅니다.”
“당연히 증거가 있으니 구대문파 중 하나인 소림을 대상으로 방을 붙였겠지.”
“게다가 제자들이 어떤 무공에 당한건지, 소상히 적힌 것으로 보아 그들의 주장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이고 아니고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저 큰 화로 번져서 우리에게까지 화마가 덮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현풍과 석후는 각자의 상념으로 무거워진 몸에 수레를 이끌고 다시 배달을 떠났다.
“알아보았느냐?”
“네, 사형. 사천으로 함께 출도하여 있던 제자는 총 네 명이옵니다. 삼대 제자인 혜자 배분의 혜우, 혜두 형제와 이대 제자인 현자 배분의 현도, 현부입니다.”
“그 녀석들 중 행적이 의심되는 녀석이 있더냐?”
“암월련의 본거지인 사천 이남까지 이동한 제자는 네 명중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천에서 돌아올 때, 현도만이 개인적인 사유로 섬서성까지 동행을 거절하고 하남 근처에서 합류하였다 합니다.”
“출도하여 있는 놈이 무슨 개인적인 사유가 있더냐?”
“현도의 말로는 청성과 종남에 있는 친우들과의 연회에 반드시 들르기로 약조를 해두어서, 하루 정도 이탈한 후 다시 합류한 것이라 합니다. 현도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종남과 청성에 제자들을 보내 놓았습니다.”
“저들이 거짓으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라면 무엇을 노린 것이겠느냐?”
“신생한 약소 방파의 입장이라면… 세력을 넓히기에 거대 방파의 명성을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방을 붙인 이후 암월련이라는 방파의 존재 자체도 모르던 사람들이 단번에 그곳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더불어 이런 일을 벌임으로써, 우리 소림과 전면전도 피하지 않을 만큼 저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보인 것입니다. 본인들의 저력을 무림인들에게 공고히 함으로써 암월련에 입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네 말은 그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냐?”
“저들이 거짓으로 이러한 일을 계획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입니다. 사실 이번 일로 인하여 우리와 암월련과 전면전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들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게 될 테니, 정말로 싸움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사료됩니다.”
“내가 방장에 오르기 전이라면… 사파 놈들과의 백년지약 따위는 생각지 않고 소림의 명성을 실추시킨 암월련을 무림에서 지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전면전을 벌였다가는 소림뿐만이 아닌 정파 무림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킨 문파의 수장으로 역사에 새겨지게 되겠구나.”
“제자가 한 짓이 아니라면 그들의 수하를 죽인 인물을 찾아내어 결백을 증명하면 될 일입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해종 사형.”
“주어진 시일이 길지는 않을 것 같구나 해표야.”
중원 각지에 암월련의 방이 붙어 소림사의 명예가 실추된지 삼 일이 지났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당장이라도 정사 대전과 같은 큰 사건이 벌어질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삼 일이 흐른 지금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라면 소림사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禁)해 졌다는 것과 소림의 제자들과 개방의 거지들이 함께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석후의 생활에도 별반 다른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중원 무림에 큰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는 시국임에도, 육개는 새로이 계약을 맺게 된 가게가 점점 늘어 도축하는 소의 양과 배달해야 하는 지역이 추가적으로 생겨났다.
석후의 생활에 있어서 유일한 변화라면 더욱 바빠진 것이 전부였다.
“현풍 형님, 중원 무림이 시끌시끌하여 어수선한 이때에 우리는 왜 더 바빠진답니까?”
“나도 낙양 밖까지 우육을 배달 오는 것이 처음이라 낯설구나.”
“대석님께서 제게는 고기를 배달하는 거리가 길어 도축 이후 시간이 오래 지체될수록 고기의 질이 나빠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먼 거리의 주루까지 계약을 하신 걸까요?”
“낙양 밖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고 하셨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를 계약하는 곳이라면, 금액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클 터이니 쉽게 거절하지 못하셨겠지.”
“삼 개월 동안 돈을 쓰시는 것은 한 번도 보지를 못하였는데, 노년에 전귀(錢鬼)가 붙으셨나 보군요. 하하.”
현풍과 석후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동한지 두 시진 쯤 지날 무렵 낙양 외곽에 위치한 주루에 도착하였다.
현판에 적힌 글씨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낙성루(落星樓)’라는 것을 힘겹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고, 외관은 영업을 하지 않은지 오래된 것처럼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루 안에서 무공을 익힌 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으로 배달하는 것이 맞나요? 아무리 보아도 운영하지 않는 주루인 것 같은데…….”
석후가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루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하남 내에 낙양의 북동쪽에 위치한 낙성루는 이곳 외에는 없을 것일세.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우선 안에 들어가 보세나.”
석후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말을 마친 현풍이 곧장 주루의 가까이 가더니 대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쾅쾅쾅―
현풍의 큰 주먹에 의해 문짝이 흔들리며 을씨년스러운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철컥.
“누구요?”
냉막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는 주루를 관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인에게 적합한 흑의를 입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왼쪽 허리춤에 장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육개에서 고기를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경계하는 표정으로 현풍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중년인은 말을 듣자마자 경계심을 허물고 반겨 주었다.
“생각 보다 일찍 도착하셨구려. 고기는 어디에 있소? 어서 안으로 들여 주시오.”
사내의 말에 현풍은 고개를 돌려 석후를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육개에서의 하루는 언제나 정신없이 흘러갔다.
인시경 생물(生物) 상태의 소가 도착하면, 멱을 따서 거꾸로 매달아 피를 빼 두었다.
빙굴(氷窟)과 같은 창고에 거꾸로 매달아 둔 소의 피가 모두 빠지면, 묘시경 도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루치의 소들을 모두 도축하고 나면, 배달 업무가 남아 있었다.
육개에 고기를 예약해둔 가게들이 개시 준비를 마치기 전까지는 무조건 도축된 소를 가져다주어야만 하기에 진시까지는 모든 배달을 마쳐야 했다.
석후가 육개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어느덧 삼 개월 하고도 열흘이 지나 있고, 우재에게서는 여전히 어떠한 연통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같은 일정을 반복하던 석후는 대석의 첫째 제자인 현풍(玄風)을 따라 도축을 모두 마친 소들을 배달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향루(美香樓)가 이처럼 장사가 잘 되던 적이 있었나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네요?”
미향루는 낙양루에 이어 낙양에서 두 번째로 큰 주루였다.
하지만 낙양루에 비하여 음식의 맛이 손색이 있다는 평이 주를 이루어, 이처럼 많은 중인들이 몰려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삼 개월 동안 미향루 앞을 지나며 처음 보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 진 석후가 현풍에게 묻자 그 또한 궁금해 하는 눈으로 중인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 또한 미향루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현풍과 석후는 아직 배달해야 할 곳이 두 곳이나 더 남은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수레를 끌며 중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현풍과 석후가 도착해서 중인들을 살펴보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미향루 입구에 설치된 계판(啓版) 앞이었다.
그곳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 어떠한 방이 붙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보시오. 대체 무슨 방이 붙었기에, 이리도 많은 사람이 계판 앞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이오?”
현풍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앞을 가리며 서 있는 거한에게 물었다.
“나는 까막눈이라 글을 읽을 줄 모르오. 다만,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소림의 제자 한 명이 다른 방파의 사람 수십 명을 상대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군.”
“소림의 제자가 수십 명을 죽였다구요? 그것이 사실이랍니까?”
현풍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거한에게 재차 물었다.
“아, 글쎄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계판에 붙은 방을 읽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더이다.”
현풍과 거한의 대화를 듣던 석후는 수레를 잠시 내려놓은 뒤, 인파를 헤치고 계판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계판 앞에 선 석후에 눈에 들어온 것은 웅장한 필체로 수놓아진 거대한 방이었다.
신원 미상의 소림 제자가 본련의 영지에 침입하여, 제자 오 인 및 사십에 달하는 수하를 해(害)하였기에 본 방을 붙여 고한다. 본련의 제자 오 인중 삼 인은 소림의 금강권(金剛拳), 현공권(玄空拳), 당랑조(螳螂爪)에 격중당해 각각 상반신에 관통상을, 하복부에 치명상을, 천정혈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나머지 오 인 중 이 인은 살인 후, 도주하는 소림 제자를 추적하던 중 대력금강슬(大力金剛膝)과 대력금강지(大力金剛指)에 격중당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 외 사십 명에 달하는 수하들은 시신이 심히 훼손되어 그들 중 어느 누구의 시체도 온전하다 할 수 없다. 이에 본련은 백 년간 유지해 오던 정사(正邪) 간의 지약을 소림이 어겼음을 천명하며, 그 책임을 직접 물을 것이다.
암월련주(暗月連主).
암월련이라는 흑도 무리가 써 붙인 방을 순식간에 읽어 낸 석후는 세 가지의 의문이 생겨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로 소림의 무공에 의해서 살인을 당한 것을 암월련주는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로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인가, 셋째로 소림의 제자 중 암월련주의 제자 다섯과 그들의 수하 사십 여명을 아무렇지 않게 해할 수 있는 살인광(殺人狂)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이었다.
그 속에서 석후는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암월련이 주장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소림의 입장은 몹시 난처해 졌다는 것이다.
암월련이 사실이라 주장하는 것들에 있어서 소림은 자신들의 제자가 방에 적힌 내용과 같이 살인을 하였든, 하지 않았든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어떤 일에 있어서 사실 여부를 떠나 고해진 내용에 반박하기 위한 결백 증명은 어려운 법이었다.
이제 소림은 정사 간의 백년지약(百年之約)을 깨뜨린 것에 대한 결백을 암월련에게 뿐만 아니라, 정파 동도에게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무림이란 참으로 미묘한 균형으로 맞추어져 있구나. 백 년을 유지해 오던 평화가 단 한 명의 인물에 의해서 깨어지다니…….’
석후는 상념에 빠진 채 점점 늘어나는 군중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방을 읽어 보았는가? 무엇이라 적혀있던가?”
현풍은 육부를 다루며 다져진 체격에도 불구하고, 힘에 부쳐 도저히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지 못하여 석후에게 묻고 있었다.
“거한에게 들은 내용과 비슷합니다. 다만, 암월련이라는 집단에서 소림이 자신의 제자들을 살인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나 봅니다.”
“당연히 증거가 있으니 구대문파 중 하나인 소림을 대상으로 방을 붙였겠지.”
“게다가 제자들이 어떤 무공에 당한건지, 소상히 적힌 것으로 보아 그들의 주장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이고 아니고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저 큰 화로 번져서 우리에게까지 화마가 덮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현풍과 석후는 각자의 상념으로 무거워진 몸에 수레를 이끌고 다시 배달을 떠났다.
“알아보았느냐?”
“네, 사형. 사천으로 함께 출도하여 있던 제자는 총 네 명이옵니다. 삼대 제자인 혜자 배분의 혜우, 혜두 형제와 이대 제자인 현자 배분의 현도, 현부입니다.”
“그 녀석들 중 행적이 의심되는 녀석이 있더냐?”
“암월련의 본거지인 사천 이남까지 이동한 제자는 네 명중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천에서 돌아올 때, 현도만이 개인적인 사유로 섬서성까지 동행을 거절하고 하남 근처에서 합류하였다 합니다.”
“출도하여 있는 놈이 무슨 개인적인 사유가 있더냐?”
“현도의 말로는 청성과 종남에 있는 친우들과의 연회에 반드시 들르기로 약조를 해두어서, 하루 정도 이탈한 후 다시 합류한 것이라 합니다. 현도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종남과 청성에 제자들을 보내 놓았습니다.”
“저들이 거짓으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라면 무엇을 노린 것이겠느냐?”
“신생한 약소 방파의 입장이라면… 세력을 넓히기에 거대 방파의 명성을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방을 붙인 이후 암월련이라는 방파의 존재 자체도 모르던 사람들이 단번에 그곳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더불어 이런 일을 벌임으로써, 우리 소림과 전면전도 피하지 않을 만큼 저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보인 것입니다. 본인들의 저력을 무림인들에게 공고히 함으로써 암월련에 입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네 말은 그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냐?”
“저들이 거짓으로 이러한 일을 계획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입니다. 사실 이번 일로 인하여 우리와 암월련과 전면전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들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게 될 테니, 정말로 싸움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사료됩니다.”
“내가 방장에 오르기 전이라면… 사파 놈들과의 백년지약 따위는 생각지 않고 소림의 명성을 실추시킨 암월련을 무림에서 지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전면전을 벌였다가는 소림뿐만이 아닌 정파 무림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킨 문파의 수장으로 역사에 새겨지게 되겠구나.”
“제자가 한 짓이 아니라면 그들의 수하를 죽인 인물을 찾아내어 결백을 증명하면 될 일입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해종 사형.”
“주어진 시일이 길지는 않을 것 같구나 해표야.”
중원 각지에 암월련의 방이 붙어 소림사의 명예가 실추된지 삼 일이 지났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당장이라도 정사 대전과 같은 큰 사건이 벌어질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삼 일이 흐른 지금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라면 소림사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禁)해 졌다는 것과 소림의 제자들과 개방의 거지들이 함께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석후의 생활에도 별반 다른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중원 무림에 큰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는 시국임에도, 육개는 새로이 계약을 맺게 된 가게가 점점 늘어 도축하는 소의 양과 배달해야 하는 지역이 추가적으로 생겨났다.
석후의 생활에 있어서 유일한 변화라면 더욱 바빠진 것이 전부였다.
“현풍 형님, 중원 무림이 시끌시끌하여 어수선한 이때에 우리는 왜 더 바빠진답니까?”
“나도 낙양 밖까지 우육을 배달 오는 것이 처음이라 낯설구나.”
“대석님께서 제게는 고기를 배달하는 거리가 길어 도축 이후 시간이 오래 지체될수록 고기의 질이 나빠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먼 거리의 주루까지 계약을 하신 걸까요?”
“낙양 밖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고 하셨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를 계약하는 곳이라면, 금액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클 터이니 쉽게 거절하지 못하셨겠지.”
“삼 개월 동안 돈을 쓰시는 것은 한 번도 보지를 못하였는데, 노년에 전귀(錢鬼)가 붙으셨나 보군요. 하하.”
현풍과 석후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동한지 두 시진 쯤 지날 무렵 낙양 외곽에 위치한 주루에 도착하였다.
현판에 적힌 글씨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 ‘낙성루(落星樓)’라는 것을 힘겹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고, 외관은 영업을 하지 않은지 오래된 것처럼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루 안에서 무공을 익힌 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으로 배달하는 것이 맞나요? 아무리 보아도 운영하지 않는 주루인 것 같은데…….”
석후가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루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하남 내에 낙양의 북동쪽에 위치한 낙성루는 이곳 외에는 없을 것일세.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우선 안에 들어가 보세나.”
석후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말을 마친 현풍이 곧장 주루의 가까이 가더니 대문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쾅쾅쾅―
현풍의 큰 주먹에 의해 문짝이 흔들리며 을씨년스러운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철컥.
“누구요?”
냉막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는 주루를 관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인에게 적합한 흑의를 입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왼쪽 허리춤에 장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육개에서 고기를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경계하는 표정으로 현풍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중년인은 말을 듣자마자 경계심을 허물고 반겨 주었다.
“생각 보다 일찍 도착하셨구려. 고기는 어디에 있소? 어서 안으로 들여 주시오.”
사내의 말에 현풍은 고개를 돌려 석후를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