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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석후는 우재에게 의뢰를 마치고 나와서는 낙양의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자신이 개방에게 맡긴 의뢰를 기다리며 지내게 될 낙양의 지리를 익히느라 애쓴 것이었다.
혹시라도 낙양으로 숨어든 석후를 복면인들이 찾아내게 된다면, 이곳의 지형지물을 머릿속에 외우고 있는 것이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이 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자정 시간이 되기 전, 낙양의 외곽으로 이동하여 늘 해오던 운기조식을 하였다. 지친 몸을 달래는 동시에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태극연단비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심득을 얻고자 함이었다.
두 시진쯤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석후는 다시 낙양 땅의 중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낙양루 근처에 도착하여 대로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석후는 머릿속으로 낙양 내 지리를 그려보는 것을 수십 번 하였고, 완벽히 외우는 것을 끝마치고 나서야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하루는 일찍 시작 되는 것 같았다.
인시(3시∼5시)부터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더니, 묘시(5시∼7시)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業)에 맞는 복장을 갖추어 입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활력이 느껴지는 도시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석후의 마음이 들끓기 시작하였다.
복수라는 업이 있고, 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목표를 찾아내기 위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석후는 기다림에 지쳐 복수라는 자신의 업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지난날의 참상을 회상하고 또 회상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칼날을 갈아대고 있었다.
“화창한 아침부터 누구라도 죽일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구려?”
우재였다.
“낯선 곳이라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여 그런 것 같소.”
석후가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대답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재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석후의 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개방에 의뢰를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이오. 편한 잠자리가 제공되며, 일도 할 수 있는 곳을 이렇게 쉽게 물색해 주지 않소?”
“대신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소?”
석후의 노골적인 언사에 잠시 말문이 막힌 우재가 대화 주제를 전환하였다.
“당신이 어디에서 지내게 될지 궁금하지 않소?”
“하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지만, 당신네 본단과는 거리가 가까웠으면 좋겠소.”
“그것 참 다행이로군. 당신은 우리 본단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푸줏간에서 일하게 될 것이오. 낙양에서 육개(肉開)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오. 주인장이 어찌나 아량이 넓은지, 우리 개방에도 도축하고 남은 고기를 어김없이 나누어 준다오.”
“유명한 만큼 일이 많을 것 같구려.”
“일이 많아야 숙식을 해결해 준 것에 대한 의뢰비를 받아 낼 수 있지 않겠소? 우리 개방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밑지는 장사는 죽기보다 싫어 한다오.”
석후와 우재가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어느새 그들은 육개(肉開)라는 현판이 걸린 푸줏간에 도착하였다.
우재가 육개의 출입문을 열어젖힌 순간, 석후의 코로 비릿한 혈향(血香)이 진하게 풍겨 왔다.
육개는 명성에 비해 매우 조그만 크기의 푸줏간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공간에 일곱 명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각자가 소 한 마리씩을 도축하고 있는데, 바닥에는 소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즐비해 있었다.
육개로 들어서자 일곱 명의 시선이 잠시간 우재와 석후를 향하다가 그들은 그 둘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도축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어떠한 안내도 받지 않음에도, 우재는 앞장서서 석후를 이끌고 왼쪽 구석에서 도축 중인 한 노인에게로 걸어갔다.
노인의 머리는 온통 백발에 눈썹마저 희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나, 육체만은 웬만한 젊은이의 육체 보다 월등히 건강해 보였다.
얼굴을 떼어 놓고 몸만 바라본다면, 누가 보아도 매우 건강한 젊은이가 지닐 법한 근육질이었던 것이다.
“어르신, 이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어 데리고 왔습니다.”
우재는 몹시 공손한 표정과 어투로 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삼 일, 일주일, 이 개월 하고 하루. 자네가 지금까지 데려왔던 세 놈들이 여기서 버틴 기간일세. 이번 놈은 얼마나 갈 것 같은가?”
노인은 우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도축을 하며 싸늘하게 얘기했다.
우재는 그런 노인의 반응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노인을 향해 석후가 입을 열었다.
“우재가 나의 의뢰를 해결하여 가져오는 시기까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일주일 만에 의뢰를 해결한다면 일주일, 십년이 걸린다면 십년을 이곳에서 버티어 낼 수 있습니다.”
공손하지만 힘 있는 어조였다.
“요새 놈 치고는 제법 배포가 있구나.”
노인은 잠시 석후를 향해 시선을 두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위치한 문을 열어젖혔다.
노인이 문을 열자마자 그 안에서는 엄청난 냉기가 흘러나오는데, 무려 소 열 마리가 도축되지 않은 상태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귀하디귀한 얼음이 조그만 창고 벽에 가득 세워져 있어 갓 잡은 소들이 신선하게 유지되고 있고, 노인은 그중 가장 앞에 매달려 있는 소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적어도 팔십 관(300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 한 마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석후 앞으로 돌아왔다.
털썩―
찰캉―
짊어지고 온 소를 석후 앞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고는 자신이 쥐고 있던 도축용 칼마저 땅에 내려놓은 뒤 노인이 입을 열었다.
“도축해 보거라.”
노인이 짧게 뱉은 말에 우재가 다급히 말을 받았다.
“어르신, 아직 도축도 배우지 않은 사람한테 어찌······.”
“언제 도망갈지도 모르는 놈을 또다시 처음부터 가르치라는 얘기냐? 만약 이놈이 도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개방 놈들에게 고기를 단 한 근이라도 가져다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재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석후는 조용히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웠다.
그러고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칼을 역수로 쥐는 것이었다.
“호오······?”
노인이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감탄사를 냈을 때, 석후는 칼을 소에게 가져가고 있었다.
석후는 가죽을 먼저 박피하는 것이 아닌 소의 머리와 다리를 먼저 제거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과 우재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오던 자이기에 칼을 다루는 솜씨가 이토록 절묘한 것인가. 원래도 푸줏간에서 일을 해보았던 자인가? 아니면 혹시······.’
우재가 여러 가지 의문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석후는 이미 소의 머리와 다리를 제거한 상태였다.
노인은 노인대로 의문에 빠져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도축을 가르칠 때에는 머리를 제일 먼저 처리하고, 박피를 실시한 후에 우족(牛足)을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노인은 자신과 다른 순서로 도축을 하는 석후에게 의문점이 많음에도, 그의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이기에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박피를 끝마친 석후는 소의 몸통을 정확히 이 분할 하더니 내장을 모두 뽑아내고, 뼈에 붙은 우육(牛肉)이 낭비되는 것 하나 없도록 잘라 내었다.
‘도축하는 솜씨가 푸줏간에서 평생을 산 놈 같이 보이는군. 육개 내에서도 저 정도 솜씨를 가진 것은 나와 현풍이 놈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낭비되는 육고기가 없도록 매우 정확하게 도축을 하는 석후의 모습을 보며 노인은 내심 감탄하였다.
남은 고기들을 모두 해체를 한 뒤, 석후는 미리 잘라 둔 우족을 집어 들었다.
석후는 우족에 붙어 있는 발톱과 가죽을 섬세하게 하나하나 제거하더니, 뼈 채로 삼등분 해 버리는 것이었다.
석후가 몹시 두꺼운 우족을 뼈 채로 잘라 내는 것을 볼 때, 우재의 두 눈이 다시 한번 광채를 발하였다.
‘아까는 확신하지 못하였지만··· 분명 이 자는 무공을 익힌 것이다. 작은 단도의 날이 무뎌지지 않게 하면서도 두꺼운 우골(牛骨)을 썰어 점점 정체가 궁금해지는 자로군······.’
우재가 석후의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우족 따위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냐? 가죽을 따로 벗겨내기도 하고, 뼈 채로 나누기도 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우족을 드셔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걸 누가 먹는단 말이냐. 동네 개새끼들이나 먹는 것이지.”
석후의 질문에 노인이 답답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회음현의 사람들은 우족을 먹습니다. 단, 일반적으로 불에 익혀 먹는 것이 아닌, 등분하여 물에 넣고 끓여서 먹습니다. 회음현은 산지로 둘러싸여 사냥꾼이 많은데, 추운 겨울날 사냥을 나서기 전에 우족을 끓인 물에 소금 간을 하여 국을 내고, 갓 지은 밥을 조금 말아 넣어 먹으면 하루 종일 몸이 든든합니다.”
석후의 자세한 대답에 노인이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물었다.
“우족으로 낸 국물 맛이 정말 먹을 만은 하더냐?”
“겨울철 주식으로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보양식이라 생각합니다.”
석후의 대답에 노인은 말없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재는 우재대로 석후의 대답 속에서 그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하였다.
‘회음이라··· 회음에 무가가 있던가? 공동파가 있기는 하지만 저 자는 도사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노인과 우재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자 석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육개에서 일을 해도 되는 것인가요?”
석후의 말에 혼자만의 생각에서 깨어난 노인이 재빨리 대답하였다.
“물론이지,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일을 시작해야하네.”
우재도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나 석후에게 말했다.
“이제 육개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소개를 해야겠지. 이곳의 주인이신 대석(大石) 어르신이오. 어르신께서 당신을 무어라 불러야 하겠소?”
의뢰인의 신상을 캐지 않는다는 개방의 철칙을 피해 우재가 꾀를 내었다.
석후가 우재에게 의뢰하면서 자신의 성명을 밝힐 필요는 없으나, 일을 하게 된 곳의 주인에게는 성명을 밝히는 것이 예의라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어르신께서는 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름만큼이나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대석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석후가 인사하였다.
“우재 녀석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람을 소개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오늘 저녁에는 환영 잔치를 열도록 하세나. 물론 그 전까지는 남은 소들의 도축을 하고, 주문이 들어와 있는 가게와 가문들에 배달까지 마쳐야하니 바쁜 하루가 될 것일세.”
대석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석후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들어가게나.”
우재는 대석에게 인사를 마치고 육개에서 나와 방금 들은 이름을 되뇌었다.
“후? 저 나이대의 고수 중에 그런 자는 들어본 적이 없건만··· 장건이라는 자를 찾다 보면, 저 자의 신상과도 자연스레 연결 될 것이다.”
우재는 후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한 채로 개방을 향해 걸음을 옮겨 갔다.
석후는 우재에게 의뢰를 마치고 나와서는 낙양의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자신이 개방에게 맡긴 의뢰를 기다리며 지내게 될 낙양의 지리를 익히느라 애쓴 것이었다.
혹시라도 낙양으로 숨어든 석후를 복면인들이 찾아내게 된다면, 이곳의 지형지물을 머릿속에 외우고 있는 것이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이 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자정 시간이 되기 전, 낙양의 외곽으로 이동하여 늘 해오던 운기조식을 하였다. 지친 몸을 달래는 동시에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태극연단비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심득을 얻고자 함이었다.
두 시진쯤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석후는 다시 낙양 땅의 중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낙양루 근처에 도착하여 대로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석후는 머릿속으로 낙양 내 지리를 그려보는 것을 수십 번 하였고, 완벽히 외우는 것을 끝마치고 나서야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하루는 일찍 시작 되는 것 같았다.
인시(3시∼5시)부터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더니, 묘시(5시∼7시)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業)에 맞는 복장을 갖추어 입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활력이 느껴지는 도시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석후의 마음이 들끓기 시작하였다.
복수라는 업이 있고, 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목표를 찾아내기 위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석후는 기다림에 지쳐 복수라는 자신의 업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지난날의 참상을 회상하고 또 회상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칼날을 갈아대고 있었다.
“화창한 아침부터 누구라도 죽일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구려?”
우재였다.
“낯선 곳이라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여 그런 것 같소.”
석후가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대답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재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석후의 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개방에 의뢰를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이오. 편한 잠자리가 제공되며, 일도 할 수 있는 곳을 이렇게 쉽게 물색해 주지 않소?”
“대신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소?”
석후의 노골적인 언사에 잠시 말문이 막힌 우재가 대화 주제를 전환하였다.
“당신이 어디에서 지내게 될지 궁금하지 않소?”
“하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지만, 당신네 본단과는 거리가 가까웠으면 좋겠소.”
“그것 참 다행이로군. 당신은 우리 본단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푸줏간에서 일하게 될 것이오. 낙양에서 육개(肉開)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오. 주인장이 어찌나 아량이 넓은지, 우리 개방에도 도축하고 남은 고기를 어김없이 나누어 준다오.”
“유명한 만큼 일이 많을 것 같구려.”
“일이 많아야 숙식을 해결해 준 것에 대한 의뢰비를 받아 낼 수 있지 않겠소? 우리 개방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밑지는 장사는 죽기보다 싫어 한다오.”
석후와 우재가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어느새 그들은 육개(肉開)라는 현판이 걸린 푸줏간에 도착하였다.
우재가 육개의 출입문을 열어젖힌 순간, 석후의 코로 비릿한 혈향(血香)이 진하게 풍겨 왔다.
육개는 명성에 비해 매우 조그만 크기의 푸줏간이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공간에 일곱 명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각자가 소 한 마리씩을 도축하고 있는데, 바닥에는 소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즐비해 있었다.
육개로 들어서자 일곱 명의 시선이 잠시간 우재와 석후를 향하다가 그들은 그 둘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도축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어떠한 안내도 받지 않음에도, 우재는 앞장서서 석후를 이끌고 왼쪽 구석에서 도축 중인 한 노인에게로 걸어갔다.
노인의 머리는 온통 백발에 눈썹마저 희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나, 육체만은 웬만한 젊은이의 육체 보다 월등히 건강해 보였다.
얼굴을 떼어 놓고 몸만 바라본다면, 누가 보아도 매우 건강한 젊은이가 지닐 법한 근육질이었던 것이다.
“어르신, 이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어 데리고 왔습니다.”
우재는 몹시 공손한 표정과 어투로 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삼 일, 일주일, 이 개월 하고 하루. 자네가 지금까지 데려왔던 세 놈들이 여기서 버틴 기간일세. 이번 놈은 얼마나 갈 것 같은가?”
노인은 우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도축을 하며 싸늘하게 얘기했다.
우재는 그런 노인의 반응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노인을 향해 석후가 입을 열었다.
“우재가 나의 의뢰를 해결하여 가져오는 시기까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일주일 만에 의뢰를 해결한다면 일주일, 십년이 걸린다면 십년을 이곳에서 버티어 낼 수 있습니다.”
공손하지만 힘 있는 어조였다.
“요새 놈 치고는 제법 배포가 있구나.”
노인은 잠시 석후를 향해 시선을 두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위치한 문을 열어젖혔다.
노인이 문을 열자마자 그 안에서는 엄청난 냉기가 흘러나오는데, 무려 소 열 마리가 도축되지 않은 상태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귀하디귀한 얼음이 조그만 창고 벽에 가득 세워져 있어 갓 잡은 소들이 신선하게 유지되고 있고, 노인은 그중 가장 앞에 매달려 있는 소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적어도 팔십 관(300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 한 마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석후 앞으로 돌아왔다.
털썩―
찰캉―
짊어지고 온 소를 석후 앞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고는 자신이 쥐고 있던 도축용 칼마저 땅에 내려놓은 뒤 노인이 입을 열었다.
“도축해 보거라.”
노인이 짧게 뱉은 말에 우재가 다급히 말을 받았다.
“어르신, 아직 도축도 배우지 않은 사람한테 어찌······.”
“언제 도망갈지도 모르는 놈을 또다시 처음부터 가르치라는 얘기냐? 만약 이놈이 도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개방 놈들에게 고기를 단 한 근이라도 가져다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재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석후는 조용히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웠다.
그러고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칼을 역수로 쥐는 것이었다.
“호오······?”
노인이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감탄사를 냈을 때, 석후는 칼을 소에게 가져가고 있었다.
석후는 가죽을 먼저 박피하는 것이 아닌 소의 머리와 다리를 먼저 제거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과 우재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오던 자이기에 칼을 다루는 솜씨가 이토록 절묘한 것인가. 원래도 푸줏간에서 일을 해보았던 자인가? 아니면 혹시······.’
우재가 여러 가지 의문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석후는 이미 소의 머리와 다리를 제거한 상태였다.
노인은 노인대로 의문에 빠져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도축을 가르칠 때에는 머리를 제일 먼저 처리하고, 박피를 실시한 후에 우족(牛足)을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노인은 자신과 다른 순서로 도축을 하는 석후에게 의문점이 많음에도, 그의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이기에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박피를 끝마친 석후는 소의 몸통을 정확히 이 분할 하더니 내장을 모두 뽑아내고, 뼈에 붙은 우육(牛肉)이 낭비되는 것 하나 없도록 잘라 내었다.
‘도축하는 솜씨가 푸줏간에서 평생을 산 놈 같이 보이는군. 육개 내에서도 저 정도 솜씨를 가진 것은 나와 현풍이 놈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낭비되는 육고기가 없도록 매우 정확하게 도축을 하는 석후의 모습을 보며 노인은 내심 감탄하였다.
남은 고기들을 모두 해체를 한 뒤, 석후는 미리 잘라 둔 우족을 집어 들었다.
석후는 우족에 붙어 있는 발톱과 가죽을 섬세하게 하나하나 제거하더니, 뼈 채로 삼등분 해 버리는 것이었다.
석후가 몹시 두꺼운 우족을 뼈 채로 잘라 내는 것을 볼 때, 우재의 두 눈이 다시 한번 광채를 발하였다.
‘아까는 확신하지 못하였지만··· 분명 이 자는 무공을 익힌 것이다. 작은 단도의 날이 무뎌지지 않게 하면서도 두꺼운 우골(牛骨)을 썰어 점점 정체가 궁금해지는 자로군······.’
우재가 석후의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우족 따위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냐? 가죽을 따로 벗겨내기도 하고, 뼈 채로 나누기도 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우족을 드셔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걸 누가 먹는단 말이냐. 동네 개새끼들이나 먹는 것이지.”
석후의 질문에 노인이 답답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회음현의 사람들은 우족을 먹습니다. 단, 일반적으로 불에 익혀 먹는 것이 아닌, 등분하여 물에 넣고 끓여서 먹습니다. 회음현은 산지로 둘러싸여 사냥꾼이 많은데, 추운 겨울날 사냥을 나서기 전에 우족을 끓인 물에 소금 간을 하여 국을 내고, 갓 지은 밥을 조금 말아 넣어 먹으면 하루 종일 몸이 든든합니다.”
석후의 자세한 대답에 노인이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물었다.
“우족으로 낸 국물 맛이 정말 먹을 만은 하더냐?”
“겨울철 주식으로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보양식이라 생각합니다.”
석후의 대답에 노인은 말없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우재는 우재대로 석후의 대답 속에서 그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하였다.
‘회음이라··· 회음에 무가가 있던가? 공동파가 있기는 하지만 저 자는 도사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노인과 우재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자 석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육개에서 일을 해도 되는 것인가요?”
석후의 말에 혼자만의 생각에서 깨어난 노인이 재빨리 대답하였다.
“물론이지,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일을 시작해야하네.”
우재도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나 석후에게 말했다.
“이제 육개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소개를 해야겠지. 이곳의 주인이신 대석(大石) 어르신이오. 어르신께서 당신을 무어라 불러야 하겠소?”
의뢰인의 신상을 캐지 않는다는 개방의 철칙을 피해 우재가 꾀를 내었다.
석후가 우재에게 의뢰하면서 자신의 성명을 밝힐 필요는 없으나, 일을 하게 된 곳의 주인에게는 성명을 밝히는 것이 예의라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어르신께서는 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름만큼이나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대석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석후가 인사하였다.
“우재 녀석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람을 소개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오늘 저녁에는 환영 잔치를 열도록 하세나. 물론 그 전까지는 남은 소들의 도축을 하고, 주문이 들어와 있는 가게와 가문들에 배달까지 마쳐야하니 바쁜 하루가 될 것일세.”
대석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석후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들어가게나.”
우재는 대석에게 인사를 마치고 육개에서 나와 방금 들은 이름을 되뇌었다.
“후? 저 나이대의 고수 중에 그런 자는 들어본 적이 없건만··· 장건이라는 자를 찾다 보면, 저 자의 신상과도 자연스레 연결 될 것이다.”
우재는 후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한 채로 개방을 향해 걸음을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