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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쌍살인랑과의 전투 후, 그들의 시체를 포함한 모든 흔적을 지워 낸 석후는 쉴 새 없이 아흐레를 이동하고 나서야 낙양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남 초입에서부터 번화한 마을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 석후였으나, 낙양에 들어서자마자 지난 마을들은 이곳 비하면 손색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이나 낙양은 타 지역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발달한 도시였다.

모든 길목들은 드넓게 만들어져 있고, 각 건물들의 전각은 두 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게 지어지고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소년기를 산속에서만 보낸 석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낙양 중심가의 대로(大路)를 걸으며 번화한 풍경에 한껏 빠져 있던 석후에게 밥 내음이 흘러 들어왔다.

‘회음현을 벗어난 이후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이 없는 것 같군…….’

사냥꾼의 아이들이 복면인들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피신하기까지 갖가지 일에 휘말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이 오래된 석후였다.

쉴 새 없이 이동하며 말린 고기만을 먹던 석후가 낙양에서 가장 큰 주루라는 낙양루(洛陽樓)에서 흘러나오는 밥 내음에 이끌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석후가 삼 층에 위치한 창가 자리에 앉게 되자, 창밖으로 낙양 땅의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왔다.

곳곳을 열심히 살펴보고 있던 중, 석후의 눈에 거지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렇게 번화한 마을에도 굶주린 자들은 반드시 있구나.’

번화한 지역이라 해서 모두가 부유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치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한 대로변에 대놓고 거지들이 누워있는 모순된 모습이 석후에게는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니다, 낙양의 다른 곳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대로변에 대놓고 거지들이 누워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저곳이 개방의 본거지일까?’

“정말이라니까 그러네! 왜 자네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는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분명 자네가 잘못 들은 이야기일 것 일세.”

낙양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해 온 목적을 상기하며 개방의 본거지를 물색하던 석후의 귀로 옆 식탁에 자리하고 앉은 남성 무리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래, 자네 말대로 암월련이라는 흑도 방파가 신생(新生)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제 막 생겨난 곳이 구대문파 중 한 곳을 건드렸다고? 제아무리 멍청한 집단이라도 그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지 않겠는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그런데 실제로 사천으로 출도한 소림의 제자들이 변(變)을 당했다고 하네. 요 근래 낙양 내에서도 소림 제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분명 이번 변고와 연관이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네!”

‘흑도니, 정도니 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확실히 신생 방파가 구대문파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다니, 믿지를 못하겠군.’

저자에서 왕왕 들을 수 있는 뜬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 석후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마친 석후는 낙양루에서 봐둔, 거지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낙양의 곳곳을 살펴본 석후는 단 한 곳만을 제외하고는 많은 인원의 거지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소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석후는 많은 수의 거지들이 모여 있던 곳이 분명 개방의 본거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움직였다.

거지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 도착한 석후는 낙양루에서는 보이지 않던 곳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빼곡하게 누워있는 거지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략 사십 명에서 오십 명 쯤 되어 보이는 거지가 구걸을 위한 바가지를 머리맡에 두고는 아무렇게나 퍼질러져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석후는 그늘이 드리워진 구석에 드러누워 잠에 빠진 거지 한 명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말 좀 물어 봅시다.”

죽은 것 같이 미동도 없는 거지에게 석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으나, 그에게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보시오, 눈을 좀 떠 보시오!”

석후가 그의 몸을 살짝 흔들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커진 목소리에 주변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다른 거지들 몇몇이 눈을 떴다.

석후는 끝내 눈을 뜨지 않는 거지에게서 걸음을 돌려 잠에서 깬 몇몇의 거지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혹시 개방도가 맞소?”

석후의 큰 목소리에도 잠에서 깨지 않던 거지가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입을 열었다.

“왜 자꾸 거렁뱅이들의 단잠을 방해하는 거요?”

눈을 감고 있는 거지에게 시선을 돌린 석후가 재차 물었다.

“개방도가 맞소? 반드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러오.”

“개방이고 뭐고 간에 여기 있는 모두의 잠을 방해한다면, 거지들에게는 재물뿐만 아니라 참을성 또한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썩 꺼지시오.”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젓고 난 뒤 거지는 몸을 뒤척였다.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해준다면 은자를 지불하겠소.”

그 말에 거지의 눈이 번쩍 뜨여 석후를 훑어보더니,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나와 처지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데, 은자를 지니고 있기는 하오?”

심드렁한 말투로 말하는 의심이 가득한 거지에게 석후가 품에 소중히 갖고 있던 은자 두 냥을 꺼내어 짤랑거렸다.

그 소리에 눈을 뜬 거지는 석후가 품에서 꺼낸 주머니가 두터운 것을 포착하였다.

‘만약 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전부 은자라면……?’

거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다는 듯, 석후가 황급히 주머니를 등 뒤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

“개방의 본거지에 나를 데려다 준다면 은자 두 냥을 갖게 될 것이오.”

“대체 무엇 때문에 그곳에 가려는 것이오? 혹여… 입문하려는 것이오?”

거지의 질문에 석후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입문은 아니고, 의뢰를 하기 위해 방문하려는 것이오.”

“무슨 의뢰를 거지들에게 한단 말이오?”

“당신이 그것까지는 알 것이 없소. 그저 나를 개방에 데려다 주면, 은자 두 냥을 얻는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것이오.”

석후의 싸늘한 대답에 머쓱해진 거지가 먼지를 털며 천천히 일어났다.

“따라오시오.”

석후를 향해 짧게 말하고는 등을 돌린 거지가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거지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고작 백 보 정도 걸음을 옮기자 허름해 보이지만 고풍이 느껴지는 대청문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금 전에 있던 곳보다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인원의 거지들이 석후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차림은 밖에서 보던 거지들의 차림과 다를 바 없으나, 눈동자는 맑고 또렷하며, 개개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도 또한 범상치 않았다.

석후가 거지를 따라 걸으며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는 동안, 둘은 본거지 내 후미진 곳에 위치한 전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허름해 보이는 건물의 외양과는 달리, 내부는 잘 정돈 되어 있으면서도 고아(古雅)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전각의 주인은 틀림없이 기품이 넘치는 자일 것이다.’

전각의 주인이 누구일지 궁금해 하며 내부를 훑어보는 동안 석후를 데리고 온 거지가 중앙에 마련된 자리 앞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낡아 빠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곧은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본인은 개방의 삼결 제자 청효(靑梟) 우재라 하오. 의뢰할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시오.”

밖에서 보였던 게으르고 심드렁한 모습과는 달리 품위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돌연 변해 버린 거지의 모습에 석후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의뢰를 하러 왔다는 석후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우재가 재차 입을 열었다.

“의뢰할 내용을 말하시오.”

“장건이라는 이름의 사내를 찾고 있소. 얼굴의 세세한 특징은 알지 못하나 살인을 업으로 삼는 자일 가능성이 있으며, 대주라 불리는 직위의 상관을 보필하고 있는 자요.”

석후의 말에 한껏 인상을 찡그린 우재가 대답했다.

“겨우 그 정도의 정보로 사람을 찾아주는 집단이 있다면 나도 의뢰를 해보고 싶구려. 장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는 당장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만 해도 사십 명이 넘소. 그중, 절반의 인원은 당신 찾는 사람처럼 칼밥을 생업으로 삼는 자들이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려지는 스무 명 중에 대주라는 직위가 있는 단체에 속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소. 당신의 의뢰는 받지 못하겠으니, 개방 본단 안내 비용으로 약속한 은자 두 냥과 귀한 내 시간을 빼앗은 비용 은자 한 냥을 더 내고 이만 나가보시오.”

짤랑―

“약속한 은자 두 냥에, 오십 냥을 선금으로 두고 가겠소. 의뢰에 성공한다면 오십 냥을 더 지불할 터이니 의뢰를 맡아주시오.”

언뜻 보아도 무게가 느껴지는 주머니와 은자 두 냥을 우재의 책상에 내려놓으며 석후가 말했다.

우재는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은자가 가득한 주머니와 석후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 정도 금액의 의뢰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소. 하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여 얼마간의 시일이 걸릴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소.”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릴 수 있소. 그만큼 내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요.”

“알겠소, 그럼 의뢰를 받아들이도록 하겠소이다. 당신과의 연통은 어디를 통해 주고받으면 되겠소?”

“나는 따로 묶고 있는 곳이 없소. 낙양에 개방 본거지가 있다는 말 하나만을 듣고 생에 처음 방문한 것이오.”

“묶고 있는 곳이 없다면 어떻게 연락을 할 셈이오?”

“그것 또한 의뢰를 맡은 당신이 해결해 주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하오.”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하는 석후의 모습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던 우재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당신처럼 뻔뻔한 의뢰인은 처음 보는 것 같소. 물론 묵을 곳을 마련해 줄 수 있소.”

“그뿐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오. 이 넓은 낙양 땅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당신의 연락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소?”

“신분 위장을 원하는 것이오?”

“신분 위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낙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원하오.”

“그게 신분 위장이 아니고 무엇이오? 신분 위장에 대한 비용은 따로 은자 열 냥은 주어야 하오.”

‘도둑놈들이 따로 없군. 돈을 이렇게 밝히는 작자들이 외양만 거지 차림으로 하고 다니는 것이로구나.’

“그 비용은 내가 일하게 될 곳에서 차감해 가져가는 것으로 하시오.”

“그렇게 하겠소. 내일 진시(07시∼09시)경 낙양루 앞에서 만나는 것으로 합시다. 일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오.”

“내일 진시, 낙양루로 알고 있겠소.”

말을 마치고 전각을 나서는 석후의 뒷모습을 보며 추가적으로 의뢰 보수를 얻게 된 것에 만족한 웃음을 짓는 우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