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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시작은 난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석후는 홀로 살아남은 이후로 자신과 같은 또래의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같던 사냥꾼과 사냥을 하고, 그의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이 타인과 가져온 교류의 전부였다.
그런 석후에게 호윤과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은 무척이나 좋은 기분을 선사해 주고, 혼자 이 세상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다.
‘언젠간 반드시 그와 논검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설레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운기를 계속하던 석후는 날이 밝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냥 시에 발견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흔적은 사냥꾼에게 의심을 주기 마련이었다. 석후의 이동이 조금 더 늦춰진다면, 추격자들이 의심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이동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같은 종류의 수목이 산속을 지나는 내내 석후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고, 살짝 내려앉은 이슬을 머금어 기분 좋은 향을 느끼게 해 주던 흙 내음에서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마저 주위에서 사라져 고요 속에 갇힌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석후의 후방 오십 장(약 150m) 즈음 떨어진 거리에서 자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발자국 소리가 섞인 것이며, 일반적인 사람이 걸을 때 나는 소리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작았다.
숲의 바닥에는 온갖 잎과 풀들이 잔뜩 쌓여 있기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라면, 기감이 예민하여 청력이 뛰어난 석후의 귀에 더 크게 들려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점점 석후의 위치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자국 소리는 처음에 들리던 것과 비교하여 그리 커지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특히 경신술이 매우 뛰어난 자들이로군.’
무림에서 발자국 소리를 줄이는 경신술을 익히는 자들은 대체로 암살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석후와 손속을 겨루던 복면인들은 암살과는 거리가 멀고, 일인(一人)을 대상으로 하는 합격(合格)에 능한 자들이었다.
석후는 그들이 복면인들이 속한 집단에서 보낸 추격자가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져 발자국 주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던 석후는 자신의 옆에 오 장(15m)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장대한 나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무 위에서 움직임을 멈춘 석후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던 후방을 바라보며 기척을 숨겼다.
지루한 이동에 느슨한 마음을 다잡고,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여전히 그들의 발자국 소리는 작지만,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석후의 두 눈에 담기기 시작하였다.
두 인물은 경신(輕身)한 신법으로 표홀히 움직이고 있는데, 수풀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외양이 매우 특이하여 석후는 두 눈을 깜빡였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들 중 한 인물은 키가 칠 척(약 210㎝)즈음에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고, 그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다른 한 명은 오 척(약 150㎝)즈음에 과도하게 비만한 몸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석후가 올라 있는 나무 앞에 멈추어 땅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야 돈돈(豚豚)아, 세 명의 발자국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더냐?”
마를 대로 말라 몸이 비틀어지기 직전인 사내가 옆의 뚱뚱한 사내에게 말했다.
“황황(蝗蝗)아, 멀대 같이 높은 곳에 위치한 네놈의 머리로 생각 좀 해 보거라. 세 명이 동시에 하늘로 승천(昇天)이라도 하였겠느냐?”
그들의 대화를 나무 위에서 듣던 석후는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온 것이 맞으며, 복면인들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서로를 돼지와 메뚜기로 칭하며 말을 주고받던 이들이 이내 대화를 멈추었다.
멀뚱히 있던 그들 중 돈돈(豚豚)이라 불리는 사내가 불시에 주변 나무들로 권격(拳擊)을 네 번 펼쳐 냈다.
부웅―
중후한 소리를 내는 그의 권격은 발자국 주변에 놓인 각각의 나무에 한 번씩 격중되었다. 그의 주먹에 나무들이 뒤로 한껏 기울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관성으로 인해 계속해서 앞뒤로 흔들거렸다.
네 그루의 장대한 나무가 동시에 흔들거리며 무수히 많은 잎들을 바닥으로 비처럼 흔렸다.
네 그루의 나무 중 유독 한 그루만 덜 흔들리자, 황황(蝗蝗)이라 불리는 사내가 형체가 매우 작은 무언가를 나무 위로 던졌다.
그가 던진 것은 콩알만큼 작은 은구슬인데, 동시에 세 개가 정확히 석후의 미간, 인중, 화개의 혈을 노리고 날아왔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구슬 세 개가 매우 빠른 속도로 자신의 중요 혈도를 노리고 날아오자, 적잖이 놀란 석후가 공중에서 뒤로 몸을 젖히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병신 같은 놈. 네놈 실력을 보아하니, 이제 무덤에 들어갈 때가 되었나 보구나. 저런 갓난아이 하나를 못 맞추고 말이야. 크흐흐.”
돈돈이라 불리는 사내의 질책 섞인 말에 황황이라는 사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그러게 말이다 뚱보야. 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놈이 네놈이라면, 뚱뚱해 터질 것 같은 몸뚱이 중 어디에라도 맞았겠는데 말이야.”
착지를 마친 석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들은 서로를 향해 욕지기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몇 번의 욕설을 더 주고받던 그들은 석후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말했다.
“그런데 왜 한 놈이지?”
무척이나 다른 외양을 가진 둘이 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모습을 보며 석후는 자신도 모르게 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석후가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돈돈과 황황은 어느새 석후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뿜어내었다.
“저 새끼, 지금 우리 보고 웃은 거지. 그렇지?”
돈돈이 씩씩거리며 황황에게 물었다.
“그래, 아무래도 돼지 같은 네놈의 몰골을 보고 웃음을 참기 힘들었겠지.”
돈돈의 말에 황황이 석후를 노려보며 대답하였다.
황황의 말에 무언가 말을 하려던 돈돈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석후를 향해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입을 열었다.
“아가야, 나머지 두 놈은 어디에 숨겼느냐?”
마치 자신의 아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묻듯 작게 들리는 돈돈의 음성에 석후가 다시 한번 웃음을 내뱉으며 대답하였다.
“큭큭큭, 하늘 위로 승천이라도 하지 않았겠소?”
나무 위에서 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내뱉으며 희롱하자, 돈돈이 석후가 올라 타 있던 나무를 제외한 세 그루를 향해 권격을 펼쳐 냈다.
그러자 이번엔 흔들리는 것이 아닌 세 그루 모두가 부서져 뒤로 넘어갔다.
세 그루의 나무가 모두 부서져 뒤로 넘어갔음에도 나머지 두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돈돈과 황황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석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장포에 손을 넣어 지팡이 두 개를 앞으로 내던졌다.
“네놈들이 찾는 것이 이 두 사람이더냐?”
지팡이에 연결되어 있는 두 쌍의 짚신을 그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를 유인한 것이로군.”
“그래, 우리를 유인한 것인가 봐.”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둘을 향해 석후가 왼손을 내 뻗어 가볍게 손짓했다.
“갓난아이를 힘들게 찾아오셨으니, 이놈이 펼치는 무예 한 번 견식 하시겠소?”
계속되는 석후의 도발에 두 사람은 시뻘게져 분기탱천한 것이 얼굴 가득 드러났다. 하지만 황황은 품 안에서 은구슬들을 천천히 꺼내어 왼손에 쥐고, 돈돈은 양팔의 소매를 천천히 접어 차분히 전투를 준비하였다.
‘쉽지는 않겠군.’
석후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돈돈의 권격과 황황의 암기술을 견식한 뒤, 그들이 자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복면인들 보다 한 차원 높은 고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희롱하여 냉정을 잃게 한 뒤 싸우려 의도하였으나, 분기가 가득함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임을 예상하는 석후였다.
시작은 황황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구슬 세 개를 쥐고 던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였다.
엄지를 제외한 각 손가락 사이사이에 구슬 세 개를 끼우고 동시에 발출하였는데, 석후가 회피할 범위를 미리 점하여 날아왔다.
이전에 구슬을 나무 위로 날릴 때는 석후의 상반신에 수직 방향이었다면, 지금 발출한 세 개는 수평이었다.
가운데로 날아오고 있는 구슬은 석후의 옥당혈을 향해 있는데, 만약 석후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피한다면,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두 개의 구슬에 의해 옥당혈이 파괴될 것이 분명하였다.
따라서 석후가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위 또는 아래의 두 방위로만 국한되어진 것이다.
석후가 재빨리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주저앉듯 자세를 낮추어 황황의 은구슬을 자신의 뒤로 흘려보냈다.
돈돈이 움직인 것은 석후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대부분의 무림인은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 중, 공중으로 몸을 띄우는 것을 최하의 수로 여겼다.
그것은 몸이 공중에 떴을 때 상대의 연이은 공격으로부터 무방비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황황이 은구슬을 던질 때 석후가 회피할 방위는 결국 아래로 몸을 낮추는 방법 단 한 가지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돈돈은 반드시 몸을 낮추어 피할 것이라 확신이라도 한 듯, 석후가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자마자 보법을 펼쳐 빠르게 다가갔다.
뒤이어 오 척에 불과한 키의 돈돈보다도 더 낮은 위치에 오게 된 석후의 안면을 향해 무거운 권격이 날아들었다.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려 재빠르게 권격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던 석후는 낮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개만 왼쪽으로 꺾어 회피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쒸익―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돈돈의 권격이 석후의 오른뺨을 빠르게 지나갔다.
돈돈과 황황의 합격을 모두 회피하는 것에 성공한 석후가 접은 무릎을 곧게 펴며 일어섰다.
순간, 석후의 오른 뺨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시작은 난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석후는 홀로 살아남은 이후로 자신과 같은 또래의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같던 사냥꾼과 사냥을 하고, 그의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이 타인과 가져온 교류의 전부였다.
그런 석후에게 호윤과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은 무척이나 좋은 기분을 선사해 주고, 혼자 이 세상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다.
‘언젠간 반드시 그와 논검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설레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운기를 계속하던 석후는 날이 밝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냥 시에 발견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흔적은 사냥꾼에게 의심을 주기 마련이었다. 석후의 이동이 조금 더 늦춰진다면, 추격자들이 의심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이동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같은 종류의 수목이 산속을 지나는 내내 석후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고, 살짝 내려앉은 이슬을 머금어 기분 좋은 향을 느끼게 해 주던 흙 내음에서도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마저 주위에서 사라져 고요 속에 갇힌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석후의 후방 오십 장(약 150m) 즈음 떨어진 거리에서 자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발자국 소리가 섞인 것이며, 일반적인 사람이 걸을 때 나는 소리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작았다.
숲의 바닥에는 온갖 잎과 풀들이 잔뜩 쌓여 있기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라면, 기감이 예민하여 청력이 뛰어난 석후의 귀에 더 크게 들려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점점 석후의 위치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자국 소리는 처음에 들리던 것과 비교하여 그리 커지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특히 경신술이 매우 뛰어난 자들이로군.’
무림에서 발자국 소리를 줄이는 경신술을 익히는 자들은 대체로 암살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석후와 손속을 겨루던 복면인들은 암살과는 거리가 멀고, 일인(一人)을 대상으로 하는 합격(合格)에 능한 자들이었다.
석후는 그들이 복면인들이 속한 집단에서 보낸 추격자가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져 발자국 주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던 석후는 자신의 옆에 오 장(15m)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장대한 나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무 위에서 움직임을 멈춘 석후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던 후방을 바라보며 기척을 숨겼다.
지루한 이동에 느슨한 마음을 다잡고,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여전히 그들의 발자국 소리는 작지만,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석후의 두 눈에 담기기 시작하였다.
두 인물은 경신(輕身)한 신법으로 표홀히 움직이고 있는데, 수풀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외양이 매우 특이하여 석후는 두 눈을 깜빡였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들 중 한 인물은 키가 칠 척(약 210㎝)즈음에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고, 그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다른 한 명은 오 척(약 150㎝)즈음에 과도하게 비만한 몸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석후가 올라 있는 나무 앞에 멈추어 땅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야 돈돈(豚豚)아, 세 명의 발자국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더냐?”
마를 대로 말라 몸이 비틀어지기 직전인 사내가 옆의 뚱뚱한 사내에게 말했다.
“황황(蝗蝗)아, 멀대 같이 높은 곳에 위치한 네놈의 머리로 생각 좀 해 보거라. 세 명이 동시에 하늘로 승천(昇天)이라도 하였겠느냐?”
그들의 대화를 나무 위에서 듣던 석후는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온 것이 맞으며, 복면인들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서로를 돼지와 메뚜기로 칭하며 말을 주고받던 이들이 이내 대화를 멈추었다.
멀뚱히 있던 그들 중 돈돈(豚豚)이라 불리는 사내가 불시에 주변 나무들로 권격(拳擊)을 네 번 펼쳐 냈다.
부웅―
중후한 소리를 내는 그의 권격은 발자국 주변에 놓인 각각의 나무에 한 번씩 격중되었다. 그의 주먹에 나무들이 뒤로 한껏 기울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관성으로 인해 계속해서 앞뒤로 흔들거렸다.
네 그루의 장대한 나무가 동시에 흔들거리며 무수히 많은 잎들을 바닥으로 비처럼 흔렸다.
네 그루의 나무 중 유독 한 그루만 덜 흔들리자, 황황(蝗蝗)이라 불리는 사내가 형체가 매우 작은 무언가를 나무 위로 던졌다.
그가 던진 것은 콩알만큼 작은 은구슬인데, 동시에 세 개가 정확히 석후의 미간, 인중, 화개의 혈을 노리고 날아왔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구슬 세 개가 매우 빠른 속도로 자신의 중요 혈도를 노리고 날아오자, 적잖이 놀란 석후가 공중에서 뒤로 몸을 젖히며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병신 같은 놈. 네놈 실력을 보아하니, 이제 무덤에 들어갈 때가 되었나 보구나. 저런 갓난아이 하나를 못 맞추고 말이야. 크흐흐.”
돈돈이라 불리는 사내의 질책 섞인 말에 황황이라는 사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그러게 말이다 뚱보야. 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놈이 네놈이라면, 뚱뚱해 터질 것 같은 몸뚱이 중 어디에라도 맞았겠는데 말이야.”
착지를 마친 석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들은 서로를 향해 욕지기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몇 번의 욕설을 더 주고받던 그들은 석후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말했다.
“그런데 왜 한 놈이지?”
무척이나 다른 외양을 가진 둘이 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모습을 보며 석후는 자신도 모르게 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석후가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돈돈과 황황은 어느새 석후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뿜어내었다.
“저 새끼, 지금 우리 보고 웃은 거지. 그렇지?”
돈돈이 씩씩거리며 황황에게 물었다.
“그래, 아무래도 돼지 같은 네놈의 몰골을 보고 웃음을 참기 힘들었겠지.”
돈돈의 말에 황황이 석후를 노려보며 대답하였다.
황황의 말에 무언가 말을 하려던 돈돈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석후를 향해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입을 열었다.
“아가야, 나머지 두 놈은 어디에 숨겼느냐?”
마치 자신의 아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묻듯 작게 들리는 돈돈의 음성에 석후가 다시 한번 웃음을 내뱉으며 대답하였다.
“큭큭큭, 하늘 위로 승천이라도 하지 않았겠소?”
나무 위에서 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내뱉으며 희롱하자, 돈돈이 석후가 올라 타 있던 나무를 제외한 세 그루를 향해 권격을 펼쳐 냈다.
그러자 이번엔 흔들리는 것이 아닌 세 그루 모두가 부서져 뒤로 넘어갔다.
세 그루의 나무가 모두 부서져 뒤로 넘어갔음에도 나머지 두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돈돈과 황황은 고개를 갸웃하였다.
석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장포에 손을 넣어 지팡이 두 개를 앞으로 내던졌다.
“네놈들이 찾는 것이 이 두 사람이더냐?”
지팡이에 연결되어 있는 두 쌍의 짚신을 그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를 유인한 것이로군.”
“그래, 우리를 유인한 것인가 봐.”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둘을 향해 석후가 왼손을 내 뻗어 가볍게 손짓했다.
“갓난아이를 힘들게 찾아오셨으니, 이놈이 펼치는 무예 한 번 견식 하시겠소?”
계속되는 석후의 도발에 두 사람은 시뻘게져 분기탱천한 것이 얼굴 가득 드러났다. 하지만 황황은 품 안에서 은구슬들을 천천히 꺼내어 왼손에 쥐고, 돈돈은 양팔의 소매를 천천히 접어 차분히 전투를 준비하였다.
‘쉽지는 않겠군.’
석후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돈돈의 권격과 황황의 암기술을 견식한 뒤, 그들이 자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복면인들 보다 한 차원 높은 고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희롱하여 냉정을 잃게 한 뒤 싸우려 의도하였으나, 분기가 가득함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임을 예상하는 석후였다.
시작은 황황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구슬 세 개를 쥐고 던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였다.
엄지를 제외한 각 손가락 사이사이에 구슬 세 개를 끼우고 동시에 발출하였는데, 석후가 회피할 범위를 미리 점하여 날아왔다.
이전에 구슬을 나무 위로 날릴 때는 석후의 상반신에 수직 방향이었다면, 지금 발출한 세 개는 수평이었다.
가운데로 날아오고 있는 구슬은 석후의 옥당혈을 향해 있는데, 만약 석후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피한다면,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두 개의 구슬에 의해 옥당혈이 파괴될 것이 분명하였다.
따라서 석후가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위 또는 아래의 두 방위로만 국한되어진 것이다.
석후가 재빨리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주저앉듯 자세를 낮추어 황황의 은구슬을 자신의 뒤로 흘려보냈다.
돈돈이 움직인 것은 석후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대부분의 무림인은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 중, 공중으로 몸을 띄우는 것을 최하의 수로 여겼다.
그것은 몸이 공중에 떴을 때 상대의 연이은 공격으로부터 무방비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황황이 은구슬을 던질 때 석후가 회피할 방위는 결국 아래로 몸을 낮추는 방법 단 한 가지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돈돈은 반드시 몸을 낮추어 피할 것이라 확신이라도 한 듯, 석후가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자마자 보법을 펼쳐 빠르게 다가갔다.
뒤이어 오 척에 불과한 키의 돈돈보다도 더 낮은 위치에 오게 된 석후의 안면을 향해 무거운 권격이 날아들었다.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려 재빠르게 권격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던 석후는 낮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개만 왼쪽으로 꺾어 회피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쒸익―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돈돈의 권격이 석후의 오른뺨을 빠르게 지나갔다.
돈돈과 황황의 합격을 모두 회피하는 것에 성공한 석후가 접은 무릎을 곧게 펴며 일어섰다.
순간, 석후의 오른 뺨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흐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