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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감숙에 위치한 사냥꾼의 거처에서 낙양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도 먼 여정이 될 터였다.
진지에서는 이미 황지의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응책을 마련하여 실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석후가 사냥꾼에게 사냥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힌 것은 감숙 내 회음현의 지리였다.
모든 사냥꾼들에게 있어서 장소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는지는 사냥할 때의 위험성을 줄이고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다음에서야 알아야 하는 것이 사냥감이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지, 어떤 먹잇감을 선호하는지, 어떤 장소에서 잠을 청하는지 등 사냥감의 습성에 대해 자신의 가족만큼이나 잘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석후가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의 역할이었다.
복면인들은 석후를 일부러 흘린 흔적을 보며 추적해 올 것이고, 싸움터는 석후에게도 그들에게도 낯선 장소가 될 것이 자명하였다.
하지만 무림초출인 석후와 비교하였을 때 여러 지역과 다양한 지형에 익숙한 인물이 추적자 무리에 속해 있다면, 의외의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석후가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여러 고민으로 가득 차 있던 석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이 넓은 중원의 모든 악인들을 찾아다녀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길운 덕분인지, 악운 때문인지 모르게 악인들 스스로가 부나방처럼 석후를 찾아오게 된 상황이 만들어졌다.
석후는 감숙에서 출발한 지 이튿날 해질녘이 되어서야 섬서로 통하는 경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이동을 하여도 무방하지만, 낙양에 들어서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도록 흔적을 지워 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낙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추격자들을 따돌릴 필요가 있기에 석후는 휴식을 결정하였다.
천천히 이동하여 추격대를 자신에게 유인해서 사냥꾼의 가족이 안전하게 이동할 시간을 버는 것, 낙양에 입성하기 전에 자신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는 것.
이 두 가지가 도주 중인 석후가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덧 어둠이 깊이 내려앉은 시간이 되자, 석후는 걸음을 멈추고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등지고 앉아 운기하기 시작하였다.
석후는 태극연단비결 호흡법의 제 이 단계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 년 전에 도달한 단계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삼단계로 나아갈 조금의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현재 석후의 이해도로는 삼단계까지 나아가기에 많이 부족한 실정이던 것이었다.
따라서 석후는 회음현을 벗어나 복면인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자정 이전 시간부터는 호흡을 꾸준히 운기하여 마지막 단계인 삼단계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챙챙챙―
석후가 운기를 시작한 지 한 시진가량 지났을 무렵, 주변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 기운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 소리는 복면인들과 관련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석후는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조용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일 리가량 이동하였을 때, 석후는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여성이 칼부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청색 의복은 복면인들의 의복과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고, 복면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관련 있는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같은 단체에 속한 인물들이 분명하였는데, 서로를 향해 뿌리는 검초들은 매우 과격하고, 심지어 초식과 초식 사이에 살초들까지 숨어 있어 마치 생사대적(生死大敵)과 겨루는 것처럼 보였다.
석후는 장시간 계속되는 수준 높은 비무를 지켜보며 자신을 그들의 비무 상황에 대입하여 관전을 하였다.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어 비무의 끝을 향해 치닫던 중, 여자 쪽에서 먼저 승부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초식을 거두어들인 여자가 엄청난 내력을 검에 주입하더니, 검의 손잡이를 길게 잡으며 남자의 단전을 향해 검을 쏘아 버리는 듯한 초식을 펼친 것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펼치던 초식과 강맹함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으며, 검을 길게 잡은 만큼 몇 배는 더 변화막측한 검로(劍路)를 펼쳐 보였다.
그녀의 초식은 남성을 향해 접근할수록 더욱 강맹해지고, 화려한 변화를 보이며 단전을 포함한 모든 신체 부위를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수많은 변화로 남성의 전신을 엄습하던 그녀의 변초 전부가 사라지며, 남자의 미간을 향해 엄청난 기운이 집중되었다. 변화난측한 허초들 속에 실초를 감추어 출수한 것이었다.
번쩍이는 기광(氣光)과 함께 굉음이 발생하였다.
쾅!
“이제 그만하시게나, 사매.”
“어떻게 막을 수 있었죠? 이미 모든 변초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실초를 파악하고 그렇게 간단히 막아 낼 수 있었냐는 말이에요!”
분기로 가득 찬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에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는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무언가를 석후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엄청난 빠르기로 던져 버렸다.
“헉!”
갑작스러운 남자의 출수에 깜짝 놀란 여자가 뱉어 낸 경호성과 함께 엄청난 내력이 실린 물체가 석후의 오른쪽 눈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 물체는 청색의 수실이 달린 단도였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접근하는 단도를 석후는 왼손으로 잡아 내었다.
자신이 날린 단도를 가벼이 잡아 내는 모습을 본 남성의 눈빛이 일순간 변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웬 놈이냐!”
여자가 뒤를 돌아 석후가 있는 방향을 보며 외쳤다.
“숲을 지나던 와중 칼부림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게 되었소.”
“흥! 무림인이 타 문파의 비무를 허락 없이 견식하는 것이 금기라는 것을 모르나 보지? 정체를 밝혀라!”
날카로운 여성의 음성이 야음을 타고 넘실대었다.
“미안하오. 밝힐 만한 정체는 따로 없고,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는, 볼품없는 과객이오.”
“일개 사냥꾼이 칠성의 내력이 실린 단도를 쉬이 잡아냈다는 것은 믿기 어렵소. 계속 그런 태도라면 청성의 이름으로 당신의 정체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소.”
가만히 석후를 노려보던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청성의 도사들이셨구려. 나는 적을 두고 있는 문파도 없고,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고는 사냥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오.”
“사형의 한 수를 가벼이 받아 낸 자가 사냥꾼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말이구나. 한 번만 더 입 밖으로 거짓을 내뱉는다면,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
석후는 난처함에 쓴웃음을 내뱉더니 다시 입을 떼었다.
“밝힐 정체가 없어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가 없구려. 그 대신에 당신이 사형에게 묻던 질문에 답하여 줘도 되겠소?”
“사냥꾼이라던 네놈이 무슨 수로 무공에 관한 답을 해 줄 수 있단 말이냐!”
여성의 일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석후는 제 할 말만을 내뱉기 시작했다.
“당신은 변(變)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소. 변이라는 것은 검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이 펼친 초식은 검로에 한정된 변화만을 추구했기에 쉽게 파악당한 것이오.”
“개소리! 말로는 누구나 무공의 고수가 될 수 있다!”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석후를 향해 분기 가득한 외침을 뱉으며 검을 뽑아 든 채 달려들었다.
여자는 사생결단이라도 내려는 듯 처음부터 엄청난 내력을 실어 석후의 심장을 노려 왔다.
청성 여검수의 출수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던 석후는 공격이 자신의 몸에 격중되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받아쳐 내는 것이었다.
“흥, 훈수를 두던 놈의 실력치고는 매우 형편없구나!”
여성이 큰 소리를 외침과 동시에 석후의 하반신을 베어 가던 초식을 자연스레 찌르는 초식으로 변화를 주어 목에 위치한 천돌혈을 향해 검을 찔러 왔다.
“끝이다!”
여도사가 승리를 예감하며 크게 외쳤다.
그때, 석후가 지금까지 보이던 움직임과는 궤를 달리할 만큼 빠르게 여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석후의 모습을 놓친 여검수는 놀랄 틈도 없이 손아귀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찰캉―
측면으로 이동한 석후가 여도사의 손등을 쳐 내어 손아귀에 쥔 검을 땅으로 떨어트린 것이었다.
여도사는 말을 잃은 채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석후의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변이라는 것은 검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오. 초식이 경로를 나아감에 있어서 방향에 변화를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나와 상대가 처한 상황, 지형, 속도, 그리고 심리를 모두 포함한 것을 의미하오. 무릇 내가 알고 있으며 상대 또한 알고 있는 것은 변이 아닌 것이오.”
석후의 말에 청성 남도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청성에서 가르치는 변은 오직 초식을 이끄는 경로의 다양함에만 치중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이는 결국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간직하고 있던 변의 심득이 사냥꾼이라 밝힌 눈앞의 사내의 입에서 뱉어지자, 그는 매우 놀랐던 것이다.
석후의 말이 이어졌다.
“검이라는 것은 손이 확장된 형태에 불과하오. 팔이 휘둘러지는 방위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것은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오. 하지만 모든 요소에 변의 이치를 적용한다면, 한정된 변화를 무궁무진하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오.”
침울한 표정의 여성은 석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내게서 검을 놓치게 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방금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오. 허락 없이 비무를 견식한 것에 대한 사죄가 이것으로 되었으면 좋겠소.”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려는 석후에게 남도사가 말했다.
“나는 청성의 일대 제자 호윤이라 하고, 내 사매는 혜아라 하오.”
정중히 포권을 하던 호윤이 석후를 향해 다시 질문하였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시겠소?”
말없이 호윤을 바라보던 석후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석 씨 성을 쓰는 아무개요. 사냥꾼을 업으로 하고 있소.”
호윤이 석후의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후일에 청성 근처에 들를 일이 있다면 청성파로 와서 나, 그리고 내 사매와 함께 논검(論劍)을 해 주길 바라오.”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하오.”
석후 또한 호윤을 마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감숙에 위치한 사냥꾼의 거처에서 낙양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도 먼 여정이 될 터였다.
진지에서는 이미 황지의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응책을 마련하여 실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석후가 사냥꾼에게 사냥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힌 것은 감숙 내 회음현의 지리였다.
모든 사냥꾼들에게 있어서 장소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알고 있는지는 사냥할 때의 위험성을 줄이고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다음에서야 알아야 하는 것이 사냥감이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지, 어떤 먹잇감을 선호하는지, 어떤 장소에서 잠을 청하는지 등 사냥감의 습성에 대해 자신의 가족만큼이나 잘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석후가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의 역할이었다.
복면인들은 석후를 일부러 흘린 흔적을 보며 추적해 올 것이고, 싸움터는 석후에게도 그들에게도 낯선 장소가 될 것이 자명하였다.
하지만 무림초출인 석후와 비교하였을 때 여러 지역과 다양한 지형에 익숙한 인물이 추적자 무리에 속해 있다면, 의외의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석후가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여러 고민으로 가득 차 있던 석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이 넓은 중원의 모든 악인들을 찾아다녀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길운 덕분인지, 악운 때문인지 모르게 악인들 스스로가 부나방처럼 석후를 찾아오게 된 상황이 만들어졌다.
석후는 감숙에서 출발한 지 이튿날 해질녘이 되어서야 섬서로 통하는 경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이동을 하여도 무방하지만, 낙양에 들어서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도록 흔적을 지워 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낙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추격자들을 따돌릴 필요가 있기에 석후는 휴식을 결정하였다.
천천히 이동하여 추격대를 자신에게 유인해서 사냥꾼의 가족이 안전하게 이동할 시간을 버는 것, 낙양에 입성하기 전에 자신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는 것.
이 두 가지가 도주 중인 석후가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덧 어둠이 깊이 내려앉은 시간이 되자, 석후는 걸음을 멈추고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등지고 앉아 운기하기 시작하였다.
석후는 태극연단비결 호흡법의 제 이 단계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 년 전에 도달한 단계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삼단계로 나아갈 조금의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현재 석후의 이해도로는 삼단계까지 나아가기에 많이 부족한 실정이던 것이었다.
따라서 석후는 회음현을 벗어나 복면인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자정 이전 시간부터는 호흡을 꾸준히 운기하여 마지막 단계인 삼단계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챙챙챙―
석후가 운기를 시작한 지 한 시진가량 지났을 무렵, 주변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 기운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 소리는 복면인들과 관련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석후는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조용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일 리가량 이동하였을 때, 석후는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여성이 칼부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청색 의복은 복면인들의 의복과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고, 복면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관련 있는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같은 단체에 속한 인물들이 분명하였는데, 서로를 향해 뿌리는 검초들은 매우 과격하고, 심지어 초식과 초식 사이에 살초들까지 숨어 있어 마치 생사대적(生死大敵)과 겨루는 것처럼 보였다.
석후는 장시간 계속되는 수준 높은 비무를 지켜보며 자신을 그들의 비무 상황에 대입하여 관전을 하였다.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어 비무의 끝을 향해 치닫던 중, 여자 쪽에서 먼저 승부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초식을 거두어들인 여자가 엄청난 내력을 검에 주입하더니, 검의 손잡이를 길게 잡으며 남자의 단전을 향해 검을 쏘아 버리는 듯한 초식을 펼친 것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펼치던 초식과 강맹함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으며, 검을 길게 잡은 만큼 몇 배는 더 변화막측한 검로(劍路)를 펼쳐 보였다.
그녀의 초식은 남성을 향해 접근할수록 더욱 강맹해지고, 화려한 변화를 보이며 단전을 포함한 모든 신체 부위를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수많은 변화로 남성의 전신을 엄습하던 그녀의 변초 전부가 사라지며, 남자의 미간을 향해 엄청난 기운이 집중되었다. 변화난측한 허초들 속에 실초를 감추어 출수한 것이었다.
번쩍이는 기광(氣光)과 함께 굉음이 발생하였다.
쾅!
“이제 그만하시게나, 사매.”
“어떻게 막을 수 있었죠? 이미 모든 변초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실초를 파악하고 그렇게 간단히 막아 낼 수 있었냐는 말이에요!”
분기로 가득 찬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에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는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무언가를 석후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엄청난 빠르기로 던져 버렸다.
“헉!”
갑작스러운 남자의 출수에 깜짝 놀란 여자가 뱉어 낸 경호성과 함께 엄청난 내력이 실린 물체가 석후의 오른쪽 눈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 물체는 청색의 수실이 달린 단도였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접근하는 단도를 석후는 왼손으로 잡아 내었다.
자신이 날린 단도를 가벼이 잡아 내는 모습을 본 남성의 눈빛이 일순간 변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웬 놈이냐!”
여자가 뒤를 돌아 석후가 있는 방향을 보며 외쳤다.
“숲을 지나던 와중 칼부림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게 되었소.”
“흥! 무림인이 타 문파의 비무를 허락 없이 견식하는 것이 금기라는 것을 모르나 보지? 정체를 밝혀라!”
날카로운 여성의 음성이 야음을 타고 넘실대었다.
“미안하오. 밝힐 만한 정체는 따로 없고,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는, 볼품없는 과객이오.”
“일개 사냥꾼이 칠성의 내력이 실린 단도를 쉬이 잡아냈다는 것은 믿기 어렵소. 계속 그런 태도라면 청성의 이름으로 당신의 정체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소.”
가만히 석후를 노려보던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청성의 도사들이셨구려. 나는 적을 두고 있는 문파도 없고,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고는 사냥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오.”
“사형의 한 수를 가벼이 받아 낸 자가 사냥꾼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말이구나. 한 번만 더 입 밖으로 거짓을 내뱉는다면,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
석후는 난처함에 쓴웃음을 내뱉더니 다시 입을 떼었다.
“밝힐 정체가 없어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가 없구려. 그 대신에 당신이 사형에게 묻던 질문에 답하여 줘도 되겠소?”
“사냥꾼이라던 네놈이 무슨 수로 무공에 관한 답을 해 줄 수 있단 말이냐!”
여성의 일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석후는 제 할 말만을 내뱉기 시작했다.
“당신은 변(變)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소. 변이라는 것은 검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이 펼친 초식은 검로에 한정된 변화만을 추구했기에 쉽게 파악당한 것이오.”
“개소리! 말로는 누구나 무공의 고수가 될 수 있다!”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석후를 향해 분기 가득한 외침을 뱉으며 검을 뽑아 든 채 달려들었다.
여자는 사생결단이라도 내려는 듯 처음부터 엄청난 내력을 실어 석후의 심장을 노려 왔다.
청성 여검수의 출수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던 석후는 공격이 자신의 몸에 격중되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받아쳐 내는 것이었다.
“흥, 훈수를 두던 놈의 실력치고는 매우 형편없구나!”
여성이 큰 소리를 외침과 동시에 석후의 하반신을 베어 가던 초식을 자연스레 찌르는 초식으로 변화를 주어 목에 위치한 천돌혈을 향해 검을 찔러 왔다.
“끝이다!”
여도사가 승리를 예감하며 크게 외쳤다.
그때, 석후가 지금까지 보이던 움직임과는 궤를 달리할 만큼 빠르게 여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석후의 모습을 놓친 여검수는 놀랄 틈도 없이 손아귀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찰캉―
측면으로 이동한 석후가 여도사의 손등을 쳐 내어 손아귀에 쥔 검을 땅으로 떨어트린 것이었다.
여도사는 말을 잃은 채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석후의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변이라는 것은 검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오. 초식이 경로를 나아감에 있어서 방향에 변화를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나와 상대가 처한 상황, 지형, 속도, 그리고 심리를 모두 포함한 것을 의미하오. 무릇 내가 알고 있으며 상대 또한 알고 있는 것은 변이 아닌 것이오.”
석후의 말에 청성 남도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청성에서 가르치는 변은 오직 초식을 이끄는 경로의 다양함에만 치중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이는 결국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간직하고 있던 변의 심득이 사냥꾼이라 밝힌 눈앞의 사내의 입에서 뱉어지자, 그는 매우 놀랐던 것이다.
석후의 말이 이어졌다.
“검이라는 것은 손이 확장된 형태에 불과하오. 팔이 휘둘러지는 방위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것은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오. 하지만 모든 요소에 변의 이치를 적용한다면, 한정된 변화를 무궁무진하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오.”
침울한 표정의 여성은 석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내게서 검을 놓치게 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방금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오. 허락 없이 비무를 견식한 것에 대한 사죄가 이것으로 되었으면 좋겠소.”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려는 석후에게 남도사가 말했다.
“나는 청성의 일대 제자 호윤이라 하고, 내 사매는 혜아라 하오.”
정중히 포권을 하던 호윤이 석후를 향해 다시 질문하였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시겠소?”
말없이 호윤을 바라보던 석후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석 씨 성을 쓰는 아무개요. 사냥꾼을 업으로 하고 있소.”
호윤이 석후의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후일에 청성 근처에 들를 일이 있다면 청성파로 와서 나, 그리고 내 사매와 함께 논검(論劍)을 해 주길 바라오.”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하오.”
석후 또한 호윤을 마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